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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검찰의 가습기살균제 재수사, 달갑지만은 않은 이유

더디기만 가습기 살균제 참사 해결

 

▲ 지난 5월 8일 어버이날을 맞이해 여의도 옥시레킷벤키저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망자 1403명을 추모하는 행사가 열렸다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또 한 명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사망했다.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을 사용하다 정부로부터 폐질환 4단계 피해를 인정받은 고 조덕진 님이다. 그는 3년 전 병원으로부터 간질성 폐렴과 폐 섬유화 진단을 받고, 정부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신고했으나 환경부는 고 조덕진 님의 폐 손상에 대해 ‘가능성 거의 없음(4단계 피해자)’으로 판정했다. 결국 정부와 가해 기업으로부터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하다 결국 사망했다.

고 조덕진 님의 가족은 옥시 제품을 2007년부터 2010년까지 매일 사용했다. 그의 모친은 2012년 사망했다. 피해를 신고했지만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로 인정되지 않았다. 폐 질환을 앓던 부친은 2018년에서야 겨우 천식 피해자로 인정받았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시간이 흐를수록 문제들이 해결되기 보다 점점 다양한 양상으로 피해 사례들이 확인되고 있다. 피해자들의 고통도 그만큼 증가하고 있다. 지난 4월 19일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접수된 가습기 살균제 사망 피해자 수는 1,402명. 지난 4월 25일 사망했으나 피해 신고와 발인을 미룬 고 조덕진 님을 포함하면 1,403명이 가습기 살균제로 목숨을 잃었다.

 

환경부의 고발과 검찰의 재수사

 

최근 검찰의 심상찮은 행보 속에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재수사가 진행 중이다. 가습기 살균제 유해성 자료를 은폐한 혐의로 박철 SK케미칼 부사장 등 임원들과 고광현 전 애경산업 대표가 구속한 데 이어 이마트 등 전현직 임직원들의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2016년 옥시와 롯데마트 등 일부 가해 기업들의 관계자들은 처벌을 받았지만, SK케미칼과 애경, 이마트의 경우 피해 사건과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검찰의 수사망을 피할 수 있었다. SK케미칼(현 SK디스커버리)은 국내 최초로 가습기 살균제 원료인 CMIT/MIT 물질을 개발하고 유통했다.

애경과 이마트는 그 원료 물질을 받아 ‘가습기 메이트’를 만들어 2002년부터 2011년까지 판매했다. 하지만, 2011년 질병관리본부는 역학조사 결과를 통해 옥시 살균제 원료인 PHMG 성분은 유해하다고 봤지만, SK케미칼이 사용한 CMIT/MIT 성분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인과관계를 밝히기 어렵다고 발표했다.

▲ 2016년 7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검찰 수사에서 제외된 애경과 SK케미칼을 검찰 수사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과 시민단체는 여러 차례 SK케미칼과 애경을 검찰에 고발하며 수사를 촉구했지만, 검찰은 질병관리본부의 역학 조사 결과를 이유로 들며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최근에서야 환경부가 CMIT/MIT 흡입독성에 관한 동물실험 및 국내외 유해성 입증 조사 결과를 검찰에 제출한 데 이어, 가습기 살균제 유해성 보고서를 숨긴 SK케미칼을 검찰에 직접 고발까지 하고서야 재수사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면면을 살펴보면 검찰의 재수사가 마냥 달갑지만은 않은 게 현실이다. 2011년 당시 SK케미칼이 만들고 애경이 판매한 CMIT/MIT 함유 가습기 메이트 제품만을 단독으로 사용한 3명에 대해 정부는 공식적으로 피해자로 판정한 바 있다. 이는 CMIT/MIT 원료 성분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와 관련성이 높다는 것을 정부가 인정한 것이다. 관련성이 확인된 만큼 국가기관인 검찰은 CMIT/MIT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 판매한 SK케미칼과 애경, 이마트에 대하여 수사를 진행했어야 했다.

하지만 2013년 검찰은 질병관리본부의 동물실험에서 가습기 메이트와 폐 손상과의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을 내세워 기소 중지를 결정했다. 기소 중지란 일정 기간 수사를 일시적으로 중지하는 검사의 처분을 말한다. 분명 제품으로 인한 피해자가 있고, 기업의 책임 소재를 가려야 할 권력 기관임에도  검찰이 수사를 진행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게다가 최근 검찰의 요란한 수사 과정과는 달리,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전혀 새로울 게 없다는 게 피해자들과 시민단체의 입장이다. 오히려 검찰의 기소 중지로 인해 수사 대상자가 증거를 인멸할 수 있도록 시간을 제공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사건의 성격상 제품을 개발하고 제조, 판매 등에 관한 기업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을 살펴보고, 결정에 관여한 책임자 처벌 유무를 가려내야 하는 만큼 기업 측에서의 증거 인멸이나 증거를 조작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 등을 고려한다면 기소 중지가 적절했는지 의심스럽다.

실제로 언론에 보도된 검찰 수사에 따르면, SK케미칼이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 2013년부터 최근까지 가습기 살균제 제조와 관련한 자료를 삭제, 폐기하는 등 증거를 인멸한 것은 물론 테스크포스(TF)를 꾸려 조직적으로 증거를 은폐하고 조작하도록 한 정황이 확인됐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여전히 인정받기 어려워

 

▲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인 박수진 씨는 5월 7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전신질환 인정, 판정기준 완화, 피해단계 구분철폐를 요구하며 삭발을 하고 청와대에 손 편지를 전달했다ⓒ 오마이뉴스

SK케미칼과 애경이 검찰의 수사망에 빠져있는 동안 피해자들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가습기 메이트는 옥시 다음으로 많은 피해자를 발생시킨 제품이다. 가습기 메이트 피해자 중 공식 인정받은 피해자는 130명, 그중 10명은 가습기 메이트 제품만을 사용했다. 정부는 가습기 메이트로 인한 인체 위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부 피해자만 인정했다가 2015년에서야 피해자로 공식 인정했다.

이처럼 대다수의 가습기 메이트 피해자들은 몇 년 동안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가해 기업이 검찰 수사에서도 제외되면서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는 상황에 놓여있었다. 게다가 피해자 배상과 보상은 법률상 책임을 전제로 하고 있어, 가해 기업에 대해 법적인 책임을 묻지 않는 이상 피해자 구제는 묘연한 상태다. SK케미칼이 제조한 물질과 애경이 만든 제품으로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았고 환경부의 조사에 따라 피해자 판정이 내려졌음에도 해당 기업들은 피해자들에 대하여 아무런 사과도 표명하지 않았다. 무책임하고  후안무치한 기업임을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근본적으로 정부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 판정 기준이 매우 협소하고, 특정 폐질환 위주로 인정되다 보니 피해 신청자들 대다수가 피해 인정을 못 받고 있다. 현재까지 가습기 살균제 피해 조사 판정 결과를 받아든 피해자 5,435명이다.

그 가운데 대표적 인정 질환인 폐 질환을 인정받지 못해 정부의 공식 지원을 받지 못하는 3, 4단계 및 판정 불가 피해자는 4,961명(91.3퍼센트)에 이른다. 가습기 살균제 사용 여부나 그 피해 가능성 유무에 따라 가능성이 거의 확실한 1단계, 가능성이 높은 2단계, 이 밖에 수많은 피해자는 3단계(가능성 낮음)•4단계(가능성 거의 없음)로 분류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특정 폐 질환 뿐만 아니라 천식, 태아 피해 등 피해 인정 질환 범위가 넓어졌다지만, 그 외 질환의 피해자들은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최근 여러 연구에서 가습기 살균제 물질이 폐는 물론 호흡기, 피부 등을 통해 온몸에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킨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피해를 신고한 316명의 폐기능을 분석한 결과, 정부로부터 공식 인정 받은 피해자(1•2단계)뿐만 아니라 3•4단계 피해자들도 폐의 산소 교환능력이 저하되는 현상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게다가 가습기 살균제 사건 원인이 밝혀지고 난 직후인 2012년,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의 동물실험에서 가습기 살균제가 폐뿐만 아니라 간, 콩팥, 비장 같은 장기에 침투해 독성을 일으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가습기 살균제 판매 중단 전후로 폐렴과 간질성폐렴, 기관지확장증 뿐만 아니라 간염, 비염, 아토피 피부염 등의 질환과의 연관성을 밝힌 바 있다.

또, 최근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SK케미칼의 가습기 메이트 제품에 노출된 반려동물에게도 사람에게 나타난 증상과 똑같이 사망, 폐 손상, 호흡 곤란, 비염 천식 등 건강 피해 사례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반려동물 피해사례는 가습기 메이트의 인체 위해성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연구 사례가 보고되고 있지만 정작 정부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참사 이후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폐 질환 중심의 피해 판정 기준을 고수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오히려 정부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가해 기업과 책임자들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살수 밖에 없다. 이처럼 정부의 피해 단계 구분 방식은 피해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더디기만 한 가습기 살균제 참사 해결

 

▲ 지난 5월 7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유족 등이 피해자 전신질환 인정과 판정 기준 완화 등을 촉구하는 집회를 가졌다ⓒ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단순한 화학물질 사고가 아니다. 사고의 근원은 영업 이익에 눈이 어두워 제품 안전을 무시한 기업과 제품 안전 관리를 방조한 정부의 무책임에 있다. 최근 검찰 조사로 뒤늦게나마 책임 기업 관련자들이 구속되고 있지만, 처벌은 참사를 해결하는 첫 단추에 불과하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진상 규명부터 시작해 피해자 구제, 그리고 제2, 제3의 화학물질 사고를 막기 위해 우리 사회가 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와도 이전 정부와 똑같이 더디다. 제한된 피해 판정으로 대다수의 피해자는 배제되어 있고, 진상 규명이나 재발 방지 대책에서도 전향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2017년 8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피해자들과 직접 만나 피해 범위를 확대하고 진상 규명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피해자들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청와대, 국회, 가해기업을 전전하며 삭발식과 1인시위로 ‘전신 질환 인정’과 ‘판정 기준 완화’, ‘피해단계 구분 철폐’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 글은 <함께사는길> 2019년 6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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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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