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 활동소식

[특별기고] “죽은 이는 부디 눈을 감고 산 자들은 서로 손을 잡으라”

왜곡된 역사, 70년의 고통 제주4·3항쟁

 

박진우 (사단법인 제주4.3범국민위원회 집행위원장)

또 다시 봄이 왔습니다. 그러나 섬 제주 사람들은 이 봄이 전혀 다르게 다가옵니다.

73년 전에 미국군사정부(미군정)와 이승만정부가 섬 제주 사람들을 집단 학살한 고통이 되살아 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제주4·3항쟁이라 부르는데요. 4·3특별법과 정부가 발간한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에 의하면 4·3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가 가능합니다.

제주4·3항쟁이란 “미국군사정부(미군정)시기인 1947년 3.1절 기념행사에서 발생한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경찰과 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제주도민의 저항과 단독 선거 단독 정부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 봉기한 이래,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인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통행금지가 전면 해제될 때까지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제주도민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주 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

 

두 개의 나라가 아닌 통일된 나라, 분단된 민족이 아닌 하나된 민족

해방 후 섬 제주 사람들은 섬사람들의 공동체를 중심으로 새로운 세상을 건설한다는 기쁨에 설레었습니다. 그러나 미국군사정부가 들어서더니 일본제국주의 시절 조선을 배신한 친일부역자들을 모두 불러들이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을 괴롭혔습니다. 그리고 한반도를 점령한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 문제로 갈등을 빚었고 결국 미국군사정부와 이승만은 반쪽짜리 정부를 만들겠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섬 제주 사람들은 한반도가 둘러 나누어져 두 개의 정부가 들어서게 되면 전쟁이 나고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죽고 하나 된 민족은 더욱 어려워 질것이라 생각하여 남과 북이 따로 정부 수립하는 것을 반대하였습니다. 70여 년 전 제주도민들이 외친 구호도 완전 독립 전취와 통일된 정부 수립 이었습니다.

그래서 섬 제주 사람들은 38도선 남쪽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 유권자로 등록하는 것을 거부하였고, 미군정은 제주 도민의 이러한 마음을 빨갱이로 몰아 괴롭히기 시작하였고, 5월 10일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투표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엄청난 탄압을 시작하였습니다.

3.1 대시위. 관덕정 앞 사건은 어린애를 친 기마 순사에게 군중이 돌을 던지고 여세로 경찰서를 습격할 기세를 보임으로 발포하게 된 것이나 나중에 알아본 결과 군중들은 대로 만든 플래카드를 가지고 있었을 뿐 곤봉 같은 것은 갖고 있지 않았다. 그림 강요배.

 

전쟁시에도 금지된 초토화 작전 시행

4·3항쟁 기간 섬 제주 사람들 중 2,530명은 재판이라는 법적 절차도 거치지 않고 강제로 형무소로 끌려가 대부분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으며, 3,896명은 현재까지 행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인정한 공식 희생자는 14,235명이지만 당시 섬 제주 사람들의 인명 피해는 최소 3만 명에서 최대 9만 명까지 추정할 정도로 엄청난 피해입니다.

올해 1월에는 대한민국 사법부가 “4·3항쟁 당시 정부가 추진한 군사재판은 불법 구금과 고문 등으로 조작”되었으며, “우리는 죄가 없기에 다시 심의”해달라는 당시 수형인들의 요구에 공소 자체가 무효임을 판결하여 수형인들이 무죄임을 증명하기도 하였습니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

그리고 제주도민이 가장 많이 죽은 시기인 1948년 11월부터 49년 3월까지 계엄법도 없이 계엄령을 선포하여 탄압하였고, 전쟁 시에도 해서는 안 되는 초토화 작전의 시행으로 섬 제주의 중산간 마을 95%이상이 불타서 없어졌으며, 4만 여동의 주택이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4·3 학살의 주범은 미국

“원인에는 관심이 없다. 나의 사명은 진압 뿐”

“I don’t care about the cause, my mission is to suppress only.”

-1948. 6. 8. 브라운 대령, 군경토벌대 최고 지휘관-

빨갱이 사냥이라는 미군 보고서. <제주 4.3평화재단 전시관 자료>

제주4·3은 미국군사정부(미군정)시기인 1947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38도선 이남의 통치는 미국군사정부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당연히 미국의 일차적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1948년 8월 정부 재건후인 9일 만에 8월 24일 체결된 ‘한미잠정군사협정’에 의해 대한민국의 군사와 관련하여서는 미국이 직접 지휘 및 통제하였기에 미국의 책임이 분명합니다.

구체적인 사유를 든다면

첫째, 1947년 3.1절 집회에서 미군정 경찰의 발포로 인한 인명살상이 발생하였고, 이에 항의하는 제주도민에 대한 무차별 연행 등 대탄압을 하였다는 점입니다.

제주국제공항(당시 정드르 비행장)에서 집단 학살된 유해발굴현장

둘째, 1948년 4월 3일 무장봉기 발발 이후 선 제주 사람들과 군인들의 평화적 해결의 길을 거부하고 무력충돌의 격화와 대규모 희생을 낳을 수밖에 없는 강경진압 작전을 지휘하였다는 점입니다.

셋째, 5월 10일 38도선 이남의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선거에서 제주도 2개 선거구 선거가 투요율이 50%미만으로 무산되자 미군정은 제주지구 사령관으로 브라운 대령을 파견하여 강경진압 작전 시행하였습니다.

넷째,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한국군에 대한 작전권을 갖고 있던 미 군사고문단이 1948년 가을 이후의 무차별 대량학살을 제어하기는커녕 초토화 작전에 직·간접으로 개입하여 학살을 부추겼다는 사실 등 제주4·3에 대해 미국이 법률적, 정치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책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사진 제주4.3범국민위원회>

특히 미군의 비밀문서에 의하면 미군의 군사 통제를 받는 한국군이 제주도민을 야만적으로 학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제하지 않고 무기를 지속적으로 제공하였기에 더더욱 책임을 물어야 하고 미국은 진실을 밝히고 사과해야 합니다.

 

진실 규명을 위한 노력과 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의 사과

70여 년 전 섬 제주의 집단 학살과 왜곡에 대해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많은 노력들이 있었습니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항쟁으로 시작한 4.19시민혁명으로 섬 제주에서는 제주신보와 4·3사건진상규명동지회가 활동을 시작하였고, 군부독재 시절인 1978년 현기영 선생의 소설 ‘순이삼촌’으로 4·3은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일본에서는 조선적의 경계인인 김석범 선생이 1970년대부터 대하소설 ‘화산도’가 20여 년 동안 4·3의 진실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습니다.(2016년에 한글 완역본 발간)

19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화의 바람을 딛고 ‘제주4·3연구소’ 설립과 4·3증언집 ‘이제사 말햄수다’가 발간되었고, 제민일보가 ‘4·3은 말한다’ 연재를 시작하며 언론도 함께 하였고, 서울과 제주에서 4·3추모제가 공개적으로 진행하면서 4·3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났습니다.

노무현재단 제주위원회

1999년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었고, 2003년 ‘제주4·3사건진상보고서’확정 및 노무현대통령의 제주 방문을 통해 유가족과 제주도민에게 사과를 하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추념식 사과 <사진 제주4.3범국민위원회>

4·3평화공원의 조성과 함께 2006년 노무현대통령의 추념식 참석 시 다시 사과를 하였고, 2014년도에는 4·3을 국가 추념일 지정, 2017년에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의 출범과 함께 민주주의의 심장인 광화문광장에서 역사적인 첫 추념행사가 이루어졌고, 문재인대통령이 70주년 추념식에 참석하여 사과를 하였습니다.

 

제주4·3특별법 개정이 시급하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약칭 4·3특별법)」은 1999년 12월에 제정되어 20년이 흘렀습니다. 당시 4·3특별법은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법률이었고, 희생자 조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정부의 조사 결과 정부가 인정한 14,235명중 군인과 경찰 등 정부의 공권력에 희생된 사람이 85%이며, 무장대에 희생된 사람이 13%로 대부분 정부에 의해 희생되었음이 확인 되었습니다. 그래서 정부가 죽여서 빨갱이로 만들었으니 명예를 회복시켜 주고, 공권력이 섬 제주 사람들을 죽였으니 당연히 배․보상을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4·3당시 살아남은 아기들 대부분은 부모들이 죽어서 다른 사람의 호적으로 올라가 있어 법률적으로 부모를 찾기 위해서는 개별적으로 사법부의 판결을 받아야 하는데 엄청난 행정력 낭비가 되니 특별법으로 일괄의제처리 하자는 내용들을 중심으로 4·3특별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되어 있습니다.

(사)제주4·3범국민위원회는 17년부터 법안 준비 작업을 하여 유가족들의 의견을 수렴 한 후 오영훈 의원을 대표 발의로 하여 4·3특별법 개정안을 준비하였으나 국회에서 1년 반 동안 제대로 된 심의조차 안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난해 초부터 여야 국회의원들을 만나 설득하고, 청와대 관계자들을 만나 필요성과 함께 도움을 청하고, 서울과 제주에서 특별법 개정안 촉구 결의대회를 하는 등 많은 활동에도 불구하고 여당은 매번 시급히 처리해야 할 법안이라고 이야기 하면서도 심의하지 않고 있고, 정부는 국가 재정이 많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습니다. 야당은 “협조하겠다”라는 뜻을 밝히고 있을 뿐, 고통스러워하는 유가족들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4·3특별법 개정안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조속히 심의하여 70여년 의 한을 풀어주어야 합니다.

 

4370+1 “봄이 왐수다”

이번 4·3주간에는 제주 외에 광화문광장에서도 다양한 행사가 준비중에 있습니다.

4월 3일 11시에 광화문 중앙광장에서 추념식이 진행될 예정이며  7일까지 매일 종단별 추념의례도 계획 되고 있습니다.

4월 6일에는 젊은이들이 중심이 되어 4·3을 주제로 한 다양한 체험 행사와 함께 18시부터는 수도권 시민들과 함께하는 문화제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 4·3주간에는 광화문 중앙광장 추념관 옆에 상설 전시장을 마련하여 해방의 기쁨과 함께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똘똘 뭉쳤던 제주인들의 희망을 짓밟은 4·3항쟁을 정리하여 시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환경운동연합

ⓒ환경운동연합

ⓒ환경운동연합

ⓒ환경운동연합

(사)제주4.3범국민위원회는 4.3항쟁 71주년을 맞아 4.3의 정신을 기리고 추념하는 시민 추모공간과 함께 4.3항쟁의 평화 인권 메시지를 담은 4.3국민 문화제를 개최한다. 4월 3일부터 5일간 광화문 중앙광장에서 시민들을 맞이하게 될 이 행사는 “4370+1, 봄이 왐수다”라는 표어 아래, 지난해 70주기의 “제주4.3은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라는 메시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시민들이 제주4.3에 대해 편안하게 이해하고 감성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기획하였다. 사진은 4.3 70주년 광화문 행사장모습 ⓒ환경운동연합

동백꽃 추념 중앙광장 옆 전시장에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말과 글, 그리고 제주의 현장을 중심으로 하는 특별한 기록전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재건되고 나서 계엄법의 제정도 되기 전에 계엄령을 선포한 이승만 대통령의 계엄 서명과 자국민을 “기혹한 방법으로 탄압하라”는 이승만 대통령의 유시를 비롯하여 87년 6월 항쟁이후 김대중 대통령 후보의 서귀포 연설시 4·3진실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발언과 4·3특별법 공포를 위한 서명 등의 기록들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특히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로는 처음으로 4·3의 현장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 후보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써 두 번이나 “국가 공권력의 잘못에 대해 사과”하고 추념식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 후보와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4·3현장 방문과 방명 기록 등도 전시를 준비하고 있으며, 촛불 대통령인 문재인대통령의 4·3현장 방문과 추념식에 참석하여 사과하는 기록 등 대한민국 정부 재건이후 대한민국 대통령들을 통해 4·3의 진실을 접근하고자 하였습니다.

“4370+1, 봄이 왐수다”의 봄은 71년간 겨울처럼 봉인되어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로 남겨져 있는, 그래서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처럼 ‘제주4.3의 완전한 해결’을 바라는 염원을 담았으며,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4.3특별법 개정안이 조속히 통과되어 4.3의 피해 조사에서 명예를 회복하는 법률로 개정되어 정명을 찾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다. 그리고 매해 4월이 되면 봄날보다 아픔을 더 되새겨야 했던 아픈 “봄”을 넘어, 생명이 꿈틀대는 희망처럼 시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청년들을 중심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그리고 바로 옆 전시관에서는 4·3현장에서 수확한 보리로 4·3의 아픔을 작품으로 표현한 보리공예 전시도 함께 하며 시민들과 마음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제 4·3과 같은 역사가 다시는 발생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의 역사를 기억해야만 합니다. 여러분의 추념의 참여와 기억으로 4·3의 정신을 이어 나갈 수 있습니다.

제주시 하귀리 소재 영모원. 음력 1월3일에는 전 주민이 참석해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영모원은 군·경 희생자와 4·3 희생자를 한 곳에 모셔 같이 위령제를 지내는 곳이다. 하귀리는 4·3 당시 희생자만 300명이 넘었다. 위령비에는 당시 숨진 마을 주민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제주 4.3 아카이브>

미디어홍보국 은 숙 C

미디어홍보국 은 숙 C

"당신은 또 어느 별에서 오신 분일까요/ 사열식의 우로 봐 시간 같은 낯선 고요 속에서 생각해요/ 당신은 그 별에서 어떤 소년이셨나요 // 기억 못 하겠지요 그대도 나도/ 함께한 이 낯설고 짧은 시간을/ 두고온 별들도 우리를 기억 못할 거예요/ 돌아갈 차표는 구할 수 있을까요/ 이 둔해진 몸으로/ 부연 하늘 너머 기다릴 어느 별의/ 시간이 나는 무서워요/ 당신도 그런가요" 「은하통신」 김사인.

환경일반 활동소식의 최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