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순환 관련자료

도시하천의 건강성 찾기

도시하천의 건강성 찾기

(사)환경과 자치연구소 송보영

들어가는 말
예로부터 인류는 삶을 보다 낫게 영위할 수 있는 터전이 가지는 조건의 하나로서 하천의 유무들
들고 있다. 인류의 정착생활은 하천이 있는 곳에서 시작되었고 아울러 하천은 인류에게 풍요를
가져다 준다고 생각되었다.

“무릇 물이 없는 곳은 살 곳이 못된다…. 물은 반드시 흘러오고 흘러감이 지리(땅·산·강·바
다 등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이치)에 합당한 다음이라야 비로소 정기를 모아 기르게 된다….물
은 재록(財祿)을 맡은 것이므로 큰 물가에 부유한 집과 유명한 마을이 많다.”(이중환의 「택리
지」 가운데 ‘복거총론-지리’에서)

“….많은 하천이 관류하는 벌판이다. 따라서 그의 풍요는 모두 그 벌판을 이루고 있는 하천
의 덕택이다.”(헤겔의 「역사철학강의」 가운데 ‘제2편 세계사의 지리적 기초’에서)

이러한 이면에는 하천은 물이 흐르며 물은 인류의 생명유지와도 직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말
하자면 하천은 무엇보다도 인류의 생명 젖줄이었다(공급원). 그런데 오늘날에 와서 (도시) 하천
은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가. 하천은 모든 생명의 젖줄이기를 그만두고 몹쓸 온갖 처리장으
로 변모하고 죽어버렸다(하수구). 인간이 하천을 이렇게 만들어버렸다. 역사책 속에는 하천은
인류문명의 발상지였다고 기술되어 있다. 이를 장차 태어날 세대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또한
정주지나 도시는 주로 강이나 하천을 끼고 형성되었다고 역사책 속에 기술되어 있다. 하지만 이
제 도시에서는 강이나 하천을 볼 수 없게 되었을 때(왜냐하면 죽어 복개되어 없어져 버렸기 때문
이다) 이들 세대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도시의 아이들이 도시에 대해 가지는 인상은 도시
에는 하천이나 강이 없으며 아파트 등의 공동주택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도
시의 캪슐 이미지). 아니 태어나 성장해감에 따라 이들 세대로서는 하천이나 강이 없고 인공구
조물로 덮인 대지를 원래의 것으로 인식하고 이를 자연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농촌의 하천과 달리 특히 도시의 하천은 산업화·도시화를 거치면서 각종 용수공급원으로서의 역
할보다는 점차 하수처리장으로서의 역할이 큰 비중을 차지하여 왔다. 그리하여 하천의 자정처리
능력을 상회하는 배출하수로 인하여 하천의 생명은 꺼져갔다. 또 한편으로는 농촌에 비해 도시
는 많은 인구가 조밀하게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하천의 기능은 집중호우시 방재시설로서 기능하
여 왔다. 하지만 도시의 대지가 불투수성의 인공물로 점차 덮혀짐에 따라 하천의 유수(임계)능
력은 쏟아지는 유출수가 감당할 수 없게 되어 점차 자연하천은 인간에 의해 인공하천으로 변경되
어 왔다(대개 治水 목적의 하천개수사업은 저수로·고수부지·하도의 선형 정비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어 하천변 동식물의 서식지를 근본적으로 변혁하는 공사이다). 그리하여 하천에는 모든
생명의 터전이 되는 자연요소가 사라져갔다. 결과적으로 하천은 생명을 잉태하지도 담지하지도
못하는 장소가 되어버렸다. 인간으로 인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과 하천간의 유기적 고리가
끊어져 버렸다.

현재에 와서 결과적으로 보면 어떠하든
利水를 목적으로 한 하천의 이용은 하천이 생명을 담지하지 못하는 장소로
治水를 목적으로 한 하천의 개수는 하천이 생명을 잉태하지 못하는 장소로
만들어버렸다.

오늘날 도시의 특징을 한 마디로 요약하여 비약하자만 ‘생명이 없다’는 것이며 인간의 특징
은 ‘메마르다’는 것이다. 오늘날 도시문제·인간문제들 가운데는 많은 원인은 ‘생명이 없음’에
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타 생명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타 생명에 관심이 없으며 타
생명을 배려하지도 못한다. 오로지 자기 생명만이 있으며 중요할 뿐이다. 인간문제·도시문제
의 근본원인도 여기에 있다.

베르그송은 「창조적 진화」에서 ‘우주뿐만 아니라 우주 안의 온갖 생물도 꼭 같이 지속하는 것
이 창조적 진화이며’ 또한 ‘모든 생명적 존재를 낳는 근원적 힘이 생의 약진력이고 인격의 원리
로서 영원한 창조적인 사랑의 약진력이 생의 창조적 진화의 근원이다’고 말하고 있다.
칸트는 「판단력 비판」에서 말하기를 ‘자연의 아름다움에 관한 직접적인 관심을 갖는 것은….
언제나 선한 영혼의 징표이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자연의 아름다움에 관한 관심은 이미 도덕
적 감정에 호의적인 정서를 갖고 있는 것이 되며 따라서 자연의 아름다움이 도덕적 존재의 실존
에 기여한다면 자연미는 바로 이런 이유에서 최고의 선일 것이다. 그리고 최고의 선으로서 자연
의 아름다움이 생명·생태·관계의 미에 근거를 두고 있다면 도시에서의 생명성 또한 최고의 선
일 것이다.

도시하천의 복원에 대한 사고전개의 길잡이
하수구로서 전락해버린(생명을 잃어버린) 도시하천을 작금에 와서는 복원해야 한다는 인식과 함
께 복원의 주장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러면서 자연형(自然型) 하천으로 굳이 복원
해야 한다고 한다. 왜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해야 하는가? 또한 자연형 하천은 어떠해야 하는
가? 그리고 자연형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러한 의문은 상기의 주장을 피력함에 있어서 우
선적으로 구명되지 않으면 하천을 복원함에 있어서 실제 나아갈 방향성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이에 앞서 복원(復元, restoration)이라는 용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字義的인 의미로
는 ‘근원으로 다시 돌아가다’ 즉 ‘원래대로 회복하다’이다. 이 의미는 현재(상태·상황)가 뭔
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 아니면 뭔가 잘못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
재의 도시하천은 (이전과 비교하여)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변경
하려(alter) 하는 것이다. 변경의 방향은 되돌려 놓으려고(bring back) 하는 것이다. 현재의
도시하천은 이전의 도시하천보다 못하기 때문에 원래의 상태로 회복하려는 것이다. 이는 도시하
천의 복원을 주장함에 있어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점이 무엇인가를 시사해준다.

첫째, 현재의 도시하천과 이전의 도시하천간의 비교이다. 비교하여 무엇을 되돌려 놓아야 하는
가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를 이전으로 완벽하게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
히 하천의 입지적 상황이 달라져 있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또한 이전의 상태로 단순히 되돌
리는 것이 참으로 가치 있는가. 어쨌든 이 점은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연이어지는 다음 단
계로의 사고를 전개시키는 시발점이다.
둘째, 인간에 있어 이전의 하천의 존재가치는 무엇이었는가. 즉 이전 하천의 존재이유는 무엇이
었나. 현재의 하천의 존재이유를 인간은 무엇이라고 규정하는가. 즉 현재의 하천의 존재가치
는 무엇인가. 통시적으로 동일한 위치에 있는 하천이라 하더라도 그 상황적 맥락이 달라짐으로
써 인간은 하천을 달리 바라본다. 하지만 현재의 하천이 문제가 되는 것은 현재의 인간의 가치
판단에 의거해 하천을 (개조·정비 등의 인위적인 간섭·개입을 통해) 이용해왔기 때문에 발생
한 것이라는데 있다. 그렇다면 하천복원에 있어서 고려되어야 하는 점은 하천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이전의 시점의 인간의 가치판단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는 하천복원이 목표로 지향하
는 하천(환경)을 설정하는데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현재의 하천문제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인간활동의 누적결과 때마침 현재에 와서 밖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한다면, 하천이라는 자연요소
가 가진 외부영향 수용능력을 감안해 볼 때, 언제라도 인간의 활동이 있는 한 하천의 문제는 잠
재하고 있었지만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것에 다름 아니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여하튼 결과적
으로는 하천이 가진 수용능력을 상회함으로써 노정된 것이다.
셋째, 하천문제에서 중요한 하천의 수용능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을 비유로 해서 설명하
면 인체는 외부의 세균이 침입하면 대항하여 처음에는 자연치유력으로·나중에는 항체로 싸워 이
기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완전히 세균에 감염되어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인간에 있어서 생
존은 세균에 대항하여 싸워 죽음에 이르지 않는 전투수용능력(다양한 항체의 능력에 의존한다)
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전투수용능력이 지지해주는 한 인간은 세균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다. 전투수용능력은 인간의 생존력에 다름 아니다. 하천은 (인간에 의해 부여된다기보다
는 하천이 인간에게 보여줌으로써 인간이 알게되어 해석될 수도 있는) 하천 그 고유의 변치 않
는 존재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한 존재가치가 없다는 존재이유도 없기 때문이
다. 하천 고유한 존재가치는 어디에 바탕을 두고 있는가. 하천 나름의 생존력이 바로 고유의
존재가치를 지탱하는 필요충분조건이다. 하천의 생존력은 어디에서 발생하는 것인가. 하천의
생존력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외부의 영향에 대한 수용능력에 달려 있다. 하천은 그 수용능력으
로써 외부영향에 대항하여 자신의 생존력을 유지시키기 위해 다양한 대처(변화)를 도모한다. 하
지만 수용능력이 한계에 도달하면 하천은 죽음의 사막으로 변모함으로써 생을 마감한다. 하천
의 수용능력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인간의 (세균에 대한) 전투수요능력은 다양한 항체
로 구성되어 있다. 하천에 있어서 인간의 다양한 항체에 해당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
름 아닌 하천이 지닌 생태계(생태적 저항력)이다. 그러한 생태계는 외부상황의 변화에 따라 그
자체도 서서히 변화를 꾀하면서 하천으로서의 생을 보존하고 존재가치를 유지하려 한다. 예를
들어 수질이 악화되면 오염에 강한 식생이 들어오면서 주어진 조건 속에서라도 생명을 잉태하고
담으려 한다.

문제가 되는 (도시)하천의 복원에 있어 필히 고려(담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점을 위에 언급된
사고전개를 역순으로 진행해나간다면 목표(추상성)로부터 실행프로그램(구체성)으로 나아가는 과
정을 모색할 수 있는 시발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하천의 복원은 (하천의 존재의미는 물이 흘러야 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생명을 잉태하고
담을 수 있는 대지를 무엇보다도 재생하여(자연적 대지의 되찾음) 생태적 저항력을 높이도록 한
다 – (건강성) 복원의 토대 마련.
둘째, 인간은 스스로의 환경을 창조해나가는 존재라는 점을 전제한다면 그러한 창조는 인간을 죽
음으로 이끌고 다른 생명체를 소멸로 이끄는 방향으로 나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
는 다른 생명체의 존재가 인간 자신의 생명을 존립시키는 기반임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면 인간이 하천을 창조적으로 이용하는 방향은 인간과 다른 생명이 共在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
아가는 것이다. 인간은 하천을 무분별하게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인간은 다른 생명을 잉
태하고 담는 장소로서 하천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이는 하천의 생태적 저항력의 한도 내에서
인간이 하천을 이용하도록 유도할 것이다. 따라서 (문제)하천의 이용은 생물 서식지를 훼손시키
기 않는(복원하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고 특히 불투수성 인공구조물로 하천을 덮어서는 안될
것이다 – 자연성 회복(생태적 저항력 회복).
셋째, 하천에 있어 인간의 개입(심하게 말하면 간섭)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이 좋은가. 현 상황
은 하천에 문제가 발생하였다. 치유해야 한다는 과제가 던져졌다. 이는 하천복원에 있어 또 다
른 하나의 문제를 던진다. (문제의 하천을 이전의 상태로 완전히 복원할 수 있다고 전제했을
때) ‘손상되지 않은’ 빈궁한 경관이 좋은가 아니면 (완전히 이전의 상태로 복원하지 못한다는 것
을 전제했을 때 해결의 방향을) 수복하여 생물의 다양성이 풍부하고 그 기능이 완전히 충족되는
경관이 좋은가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인간은 세계와의 관계에서 자기의 존재를 인식하고 의미
성을 부여하며 정체성을 획득한다. 그렇다면 어쨌든 인간은 하천과 관계를 맺으려 할 것이다.
(하천문제가 발생하기) 이전의 하천은 현재의 하천에 비해 (상대적으로·절대적으로) 인간의 개
입(간섭)이 적었으며 간섭했다 하더라도 하천이 수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인간의 하천에의 개
입은 하천이라는 대상 및 하천을 포섭하는 자연요소에 순응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이와 달
리 현재의 하천은 인간의 간섭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되어 있으며 그러한 간섭도 하천의 수용능력
을 배려하지 않은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여기서 시사하는 바는 하천의 복원(이용)은 인간의 개
입(간섭)을 하천에 순응하는 방향에서 행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다루고 있는 것
은 하천의 복원이다. 하천을 이전과 똑같이 되돌 수 있는가. 불가능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전
과 다른 하천의 맥락적 조건(상황)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완전한 복원이 불가능하다면 생명-창
조적인 수복·회복의 방향으로 이루질 수밖에 없다 – 건강한 하천으로서의 거듭나기.

자연과 類似자연
문제가 되는 하천을 완전하게 이전의 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문제의 하천을
어떤 방향으로 치유해야 한다는 것은 위에 개괄적으로 언급하였다. 하지만 좀더 심층적으로 들
어가면 다음과 같은 점을 고찰하지 않으면 무의미할 것이다. 왜냐하면 문제가 되는 하천에 있
어 복원의 목표지향점은 자연형 하천으로 만들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형이란 무엇을 일컫
는 것인가.

여기서 말하는 자연형 하천이란 가능한 한 자연에 가까운 하천을 통상 지칭할 것이다. 인간이
란 이상을 궁극에는 실현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부단하게 이상을 실현하려고 하는 존재이다. 그
런 연유에서 자연에 근접·근사 하는 하천을 만든다는 것을 수용해보자. 각각의 하천은 서로 같
지 않다. 아마 여기서 사용되는 자연은 만물에 기초를 주며 생성과 소멸이 일어나는 근원적인
세계를 의미할 것이며; 그리고 개별 하천은 근원적인 세계가 포섭하고 있는 하나의 小자연으로서
(근원적 세계는 시공간에 무관하다는 의미에서 대자연이라고 하면) 그 나름의 생물상과 물리적
환경 및 이것들간의 상호작용을 내포하는 토대이지만 대자연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다. 더구나 개별 하천 그 나름의 생물상과 물리적 환경은 대자연의 속성인 변화있는 변화없음
에 의해 변화하는 것으로서 이로 인해 순환적으로 개별 하천도 변화할 것이다(여기서는 상호 가
역적인 변화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하자고 했을 때 자연형을 어
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이때 자연이란 대자연에 영향 하에 있는 소자연의 자연으로 해석해야 하
는가. 아니면 소자연을 지배하는 대자연의 자연으로 해석해야 하는가. 아니면 두 가지 의미를
다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해야 하는가. 이를 파악하기 위해 자연형의 한자어를 살펴보자.
자연형의 한자어는 自然型 또는 自然形일 것이다. 한자어 自然型은 자연의 틀에 맞춘다는 의미
가 강조될 것이고; 自然形은 자연의 겉으로 드러난 모습에 맞춘다는 의미가 강조될 것이다. 그
런데 통상 하천복원에서 사용되는 자연형은 근원적 세계라는 대자연의 본질인 생성과 소멸이 순
환하는 터전이라는 속성의 자연을 일부 지니면서 이러한 자연에 지배를 받는 소자연의 자연을 자
연스럽게 드러내는 자연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형이란 용어를 다소 적절치 못하게 사
용된 것 같다. 왜냐하면 하천이라는 소자연은 절대적이고 초월적 존재인 대자연을 포섭할 수 없
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다루고 있는 하천의 복원이란 그러한 본질과 현상이 드러날 수 있
는 얼개(framework)를 만드는 것이라면 다소 경직된 틀(moulding)로서의 自然型을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틀은 내용과의 상호연관해서 산출되는 것이라면 적절치 않은 것이
된다. 따라서 자연이 가지고 있는 속성에 순응하면서 반응하는 특성 다시 말해 자연성이란 용어
가 적절한 것 같다 – 근원적 터전으로 모든 생명의 생성과 소멸이 순환하고 또 이 현상이 밖으
로 드러나는 자연을 인간은 직관한다 – 인간이 자연을 직관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주는 자연성
하천.

자연성은 문제의 하천을 복원함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현재의 문제는 무차별적인 인공
성에 의해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그 반동으로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주장된다. 하지만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면서도 초월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무작정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인간이 인간
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 인간의 존재의 상실. 인간이 자신의 존재의미를 지니면서 현안(하천
복원·도시문제 나아가 인간문제·생태문제)을 타개하기 위한 돌파구로는 지나친 이기적 인공성
에 반발하여 공생적 자연성을 도입하여 전체에 사랑의 생명성을 불어넣는 창조적 인간성을 회복
하는 것이다. 자연성은 모든 생명이면서 공생으로 가기 위한 정초(디딤돌)이다.

자료출처 : 환경과 자치연구소

admin

물순환 관련자료의 최신글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