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순환 활동소식

Laguna 호수의 비극

4월 29일 필리핀 공항의 늦은 밤, 내 짐이 한국에서 출발하지 못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부터
필리핀 일정은 꼬이기 시작했다. 더 멀리는, 담당 업무자를 대신해 출장을 떠나고, 마닐라 인근 주민들에게 많은 피해를 주는 댐건설을
대우건설이 추진하고 있으니 현장을 조사해 대우에 주의를 촉구할 필요가 있다는 정도로 임무를 이해했던 것부터가 실수였다.

4월 30일 오전 내내, 우리는(Korea Fact Finding Team – 문창식 대구환경연합 사무처장, 염형철 중앙환경연합
국장, 김익배 前 서산태안환경연합 활동가, 이강준 참여연대 간사) 우리를 초대해 준 COM(Community Organization
Multiversity-시민운동가 재교육 기관) 활동가들로부터 ‘마닐라시 홍수 통제 제방도로 공사, Metro Manila Flood
Control Project – West of Manggahan(Road Dike Project)’의 현황과 주민들의 피해,
자신들이 생각하는 대책들을 소개받았다. 내용인 즉, 세계적인 규모의 마닐라시에 접해 있는 동양최대 Laguna호
수 일부에 홍수예방을 위한 제방도로를 건설하는 것으로, 제방이 완공될 경우 수몰되는 8만 가구의 주민들이 피해를 입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번 공사는 일본의 개발자금(JBIC)이 차관을 제공하고, 일본의 기업체를 중심으로 한국 대우건설과 중국의 회사가 일부를
나눠
추진한다고 했다. 이제야 우리는 사업의 내용이나 영향이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4월 30일 오후와 5월 1일, 우리는 라구나 호수 주변의 Barangay Lower Bicutan, Barangay wawa,
taguig 지역들(한국의 면단위에 해당)을 방문하여, 주민대표들로부터 자신들이 처한 상황과 제방건설 반대활동을 들었다. 주민들의
생활은 (극히) 어려운 상태였지만, 필리피노들 특유의 밝고 적극적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조사를 통해, 라구나 호수가
최근 30년간 급격히 오염되고 있으며, 남한의 1/20(49000ha)에 해당할 만큼 거대한 이 호수의 깊이가 평균 8m에서
3미터로 얕아졌으며, 어획량도 1/10로 줄어들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주민들은 오염의 원인을 라구나 호수와 마닐라만을 연결하는
Pasig강이 정부에 의해
차단되어 태평양의 맑은 물이 들어오지 못한 때문이므로, Pasig강을 다시 열고, 호수와 마닐라만을 연결하는 Barayake
수로를 새로 완공하면, 수질 오염을 해결하고 홍수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지도 1.

하지만, 5월 1일 저녁 우리들과 COM 활동가들이 함께 진행한 평가와 대책회의에서 우리는 그들에 동조하는 의견을 낼 수 없었다.
우리는 라구나 호수의 위기가 제방축조를 반대하고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유지하기만 하면 해결되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처럼
수질오염이 가속화되어, 황폐화된 주변 지역의 산지로부터 토사가 흘러들어 호수바닥을 메꾸는 상황이라면, 어업을 되살리거나 홍수를
막기 어렵겠다는 의견을 냈다. 주민들과 함께 라구나 호수와 Pasig강을 보트로 답사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겪었던 하수구 같은
수질과 숨
이 막힐 것 같았던 냄새를 예로 들며, 이 강의 오염을 둔다면 아무런 대책이 될 수 없을 것이라는 얘기를 했다. 또 Pasig
강의 길이가 16km이고, Barayake 수로의 길이가 9km에 달하는데 이를 통해 마닐라만의 바닷물이 들어와 얼마나 호수를
정화할 수 있을지도 의문을 표시했다. 출발할 때의 판단과 달리, 필리핀 주민과 단체의 의견을 지지하는 것으로 임무가 끝날 수
없게 되어가고 있었다.

5월 2일 오전엔 Baseco Community를 방문했다. 이곳은 Pasig강 하구의 마닐라만에 있는 빈민촌인데, 지금은
필리핀 정부가 Pasig강의 오염개선을 명목으로 ADB(Asian Development Bank, 아시아 개발은행)의 차관을
들여와 주민들의 거주지를 철거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다. 공동체에는 ‘어깨 걸고’라는 뜻의 kabalikat이라는 잘 조직된
주민단체가 있었는데, 이들은 pasig강의 개선을 위해 이주에는 찬성하지만, 생계가 어업이기 때문에 이주지역이 인근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으며, 더 심각한 오염원인 공장들의 이전도 형평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새롭게 알게 된 것은 마닐라만의
수질 또한 엉망
이어서 이곳의 물이 Laguna 호수로 흘러들어 간들 도움될 게 없다는 것이었다.

5월 2일 오후에는 DPWH(Department of Public Works and Highways, 필리핀 건교부에 해당)의
국장 등 관계자들, 대우건설 현장책임자, 일본 건설 감리단 책임자 등과 두 시간 넘게 회의했다. 우리는 제방의 환경영향평가가
10년 전인 92년에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평가 대상이 지나치게 협소하거나 왜곡되어 있으므로, 좀 더 신중하고 사회의 동의를
얻을 수 있도록 진행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또 과학적 조사를 위해 민간단체와 함께 공동조사를 실시하되, 가능하면 한국과 일본의
NGO들이 참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부정적인 답변을 않는 것이 필리핀 정부의 특징이라고는 들었지만, 담당국장은 의외로
흔쾌히 이러한 제안을 수용했고, 이후 관련 단체에 공문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이어서 우리는 대우 책임자와도 회의를 했는데, 대우는 공사에 대해 결정적 위치에 있지 않다고 양해를 구하고, 필리핀 주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공사를 강행하지 않을 것임을 약속했다.

3일 동안의 빡빡한 일정을 마무리하는 5월 2일 저녁, 우리는 COM 활동가들과 함께 근사한 식사와 술자리를 갖았다. 자리에서는
이번 조사 활동을 기념해 COM은 우리에게 감사장을 전달하는 감동적인 순서도 있었다. 그 자리에서는 필리핀의 시민운동에 대해서도
많은 얘기를 했는데, 특히 시민운동가 교육과정은 많은 것을 생각게 했다. 시민운동가를 자원한 사람은 우선 자신의 지도자(Trainer)로부터
수년간 교육을 받게 되는데, 교육은 대체로 지역공동체의 주민을 조직하는 것이었다. 필피핀 활동가들의 강한 현장성, 헌신과 정열,
수수하고 꾸밈없는 자세 그리고 우리가 며칠 동안 만났던 주민조직들의 민주적인 운영과 왕성한 활동, 독재정권과 부패정권을 두 번이나
쫓아낸 저력, 아시아 시민운동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그들의 전통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배울 수 있었다.

5월 3일 마닐라를 이륙한 비행기에서 Pasig 강의 흐름을 따라 Laguna 호수 깊숙이까지 이어진 검은 오염의 띠와 민둥산이
된 붉은 산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슴이 답답했다. 이미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재앙의 그림자를 보는 듯 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최선을 다해 활동했다고 생각하지만, 이것들이 삶터를 지키려는 필리핀의 사람들과 그 자리에 아름답게 존재했던 자연을 되살리는데
무슨 도움이 되었을까하는 자괴감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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