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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에서 코를 막다


두만강에서 코를 막다




카이산툰에서 백두산 천지까지 ‘250km 녹색순례’… 그 ‘일강
다색’의 현장



사진/ ‘일강이색’. 위쪽은 북한 무산철강 돌가루 물을 그대로
포함한 성천수가 두만강에 유입되면서 뚜렷한 색깔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두만강의 초여름, 강을 제외한 산과 들은 온통 푸르다. 짙어가는 신록에 막 모내기를 끝낸 논
과 쟁기를 끄는 소…. 산도 강도 낯익은 강원도 영월의 어느 산골을 걷고 있는 듯하다. 돌팔매
질 거리에 있는 건너편 마을이 처절한 피바다의 소용돌이 속에 갈라진 북녘 땅이라는 사실이 실
감나지 않는다. 개산툰에서 처음으로 두만강을 만났다.

손을 담그니 지독한 악취가…

두만강물에 손을 적셔보려고 강둑으로 달려갔지만 차마 손을 담글 수 없었다. 코를 감싸쥐게
만드는 지독한 악취와 개산툰화학섬유펄프공장(이하 ‘개산툰펄프공장’) 하수관에서 뿜어나오
는 엄청난 양의 폐수에 모두들 할말을 잃었다. 하수구 아래는 화학성분이 덩어리째 굳어 썩어 있
고, 짙은 황색과 보라색의 폐수가 유입된 두만강은 색색의 물감을 푼 것 같다. 연변녹색연합회
활동가들은 이를 ‘일강다색’(一江多色)이라고 표현했다.

1년에 3천만t의 폐수를 쏟아내는 개산툰펄프공장은 하류에 자리한 석현종이공장과 더불어 중국
에서 두만강에 흘러드는 산업폐수의 90%를 차지한다. 공장의 정화시설은 폐수에서 ‘펄프찌꺼
기’만 걸러낸 채 시커먼 물을 그대로 두만강에 흘려보내고 있다. 중국 정부가 2000년까지 정화
시설을 갖추지 못한 공장에 대해 폐쇄명령을 내려 실제 옌볜과 두만강 유역의 소규모 화학·제지
공장이 잇따라 문을 닫았다. 그러나 개산툰펄프공장과 석현제지공장은 주정부의 주요한 재정수입
원인데다 실업에 대한 부담 때문에 옌볜자치주에서 중앙정부에 특별고려를 요청한 상태이다.



사진/ 가까이서 비교해본 오염된 흙과 오염되지 않은
흙.


순례단과 동행한 옌볜인민방송국 편집부주임 리창순씨는 “개산툰 인구 3만명 가운데 1만5천명
이 개산툰섬유공장에서 일하고 있고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도 5천여명이나 된다”며 “수질
개선을 위해 공장 폐쇄를 고집하면 당장 2만여명이 굶어죽을 판”이라고 말했다. ‘환경’에 대
한 고려와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가 날카롭게 부딪치는 지점이다.

순례단은 두만강 상류를 향해 거슬러올라갔다. 북한 함경북도 무산시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언덕 위에서 바라본 두만강은 마치 연탄 몇 트럭분을 강물에 부어 휘저어놓은 것 같은 잿빛이
다. 무산철광에서 철광을 분리하고 남은 돌가루를 그대로 두만강에 흘려보내기 때문이다. 개산툰
에서 무산철강이 있는 남평에 이르는 170km의 두만강물이 온통 이런 잿빛이다.

무산시를 둘러싸고 있는 산등성이는 층계층계로 깎여 있고, 그 단 위로 수십여대의 불도저가
노천에서 철광석을 캐올리고 있다. 과연 아시아 최대의 철광산지에 걸맞은 규모였다. 무산철광
은 한해 생산능력이 500만t에 이른다. 철함량도 높아 100kg의 암석을 채굴하면 65kg의 철을 얻
을 정도다. 인수동에서 만난 김일룡(53)씨는 “두만강에 돌가루 물이 내려오기 시작한 것은 1969
년부터였다”며 “당시 두만강은 천지만큼이나 새파랬고, 말십조개와 뱀장어가 강바닥 자갈만큼
이나 많았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조개는 73년 이후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두만강물로는 농사도 못 짓는다



사진/ 골짜기에서 내려온 맑은 물이 흐려진 두만강 본류와 만나
더욱 뚜렷한 대비를 보여준다.

두만강의 오염은 가뜩이나 살기 힘든 변방 주민들의 삶을 더욱 힘겹게 만들고 있었다. 강역대
대(중국 행정구역)에서 농사를 지어온 허보옥(56)씨는 “두만강물로 농사 지으면 논바닥에 온통
깡치(돌가루)가 꽉 차서 못 쓴다”면서 “예전엔 이 일대에 논농사가 그득했는데, 지금은 물이
없는 데다 그나마 오염돼 있어서 논농사가 안 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허씨의 논밭 근처에는
논에서 퍼낸 돌가루가 무더기를 이루고 있었다. 이 지역에서는 두만강물이 처음으로 흘러드는 논
은 아예 농사를 짓지 않는다. 농사도 안 될 뿐 아니라 돌가루를 1차적으로 침전시키기 위해 고안
한 고육지책이다. 돌가루가 들어와 땅이 굳어버리면 벼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해 수확량이
줄어든다.

밭농사라고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몇해 전부터 잦은 홍수로 밭에 돌가루가 덮치면서
콩 대신 옥수수를 심고 있다. 옌볜조선족자치주 환경보호국에 따르면 돌가루에 오염돼 폐경한 경
작지는 380ha에 이른다. 대량으로 흘러드는 돌가루와 벌목으로 유실되는 토양이 강바닥을 높이
고, 이에 따른 홍수 피해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돌가루는 농업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다. 두만강 중상류에 자리한 중국쪽 백금발전소에
서는 다른 수력발전소에서 8년에서 10년에 한번 가는 터빈을 해마다 교체한다. 돌가루가 터빈을
마모시키기 때문이다. 실제 발전소 관계자의 안내를 따라 내부를 들여다본 결과 터빈 주위에 돌
가루가 잔뜩 쌓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1년에 터빈 교체하는 데만 10만위안이 들고, 이
때문에 이 발전소의 이윤은 급격히 줄어들었다고 한다. 발전소 직원들이 터빈에 쌓인 돌가루를
날마다 물로 씻어내고 삽으로 치우는 것이 큰 일이라고 했다.



사진/ 상류지역 쑹산마을 강가에 방치된 병원폐기
물.


강물이 오염됨에 따라 두만강에서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주민은 거의 사라졌다. 상류인 백
금까지 거슬러올라왔던 송어와 연어는 이제 강 하구 방천에서나 간간이 볼 수 있고, 뱀장어와 산
천어는 그 수가 눈에 띄게 줄어 지금은 야리, 버들개, 모래무지, 붕어 정도가 잡힐 뿐이다. 중
국 학계에 따르면 두만강에는 송어, 뱀장어, 연어, 산천어 등 37종의 물고기가 서식했으나 최근
에는 백두산 기슭의 상류 100km를 제외한 중하류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중류에 자리한 초평2대 최고연장자 최붕호(71)씨는 “예전에는 강이 굽이치는 곳에 뗏목을 세
워두고 있으면 연어나 숭어 같은 큰 물고기가 뗏목 위로 튀어오르기도 했다. 그러면 몽둥이로 쳐
서 잡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1시간 정도 그물을 던지면 한 가마를 가득 채우는 게 일이 아
닐 정도였다”고 덧붙였다. 그러던 것이 두만강에 돌가루 물이 내려오면서 수초가 사라지고 물고
기들이 알을 낳아도 착상을 할 곳이 없어 물고기가 크게 줄었다. 심지어 두만강 하구에서 잡히
는 물고기는 페놀함유량이 높아 역한 냄새가 난다고 한다.

천혜의 원시림 속에서 희망을 보다



사진/ 두만강 발원지에서 20∼30km 정도 떨어진 상류지역은 사람
의 발길이 닿지 않아 강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다.


두만강 유역의 야생동물상은 한국과 거의 비슷했다. 주민들을 상대로 청문조사를 한 결과 두만
강 중하류의 인구밀도가 높은 곳에서는 거의 야생동물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다만 멧돼지, 노
루, 산토끼, 꿩 등이 이따금 나타나는 정도. 인적이 드문 상류의 인수동부터는 검은담비, 족제
비, 오소리 등과 드물게 곰, 여우, 사향노루를 보았다는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인수동의 김일
룡(53)씨는 “승냥이는 가끔 마을의 개까지 물어가고, 슬기(삵)는 가득하다”며 “올 봄 강가에
서 수달도 보았다”고 말했다.

동물의 흔적을 눈으로 확인한 것은 백두산 기슭에서 발견한 노루와 꽃사슴의 발자국과 배설물
이 전부였다. 야생동물 개체수가 이렇게 기대 이하인 것은 이곳 역시 야생동물의 가장 큰 적인
밀렵이 성행하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 정부는 멸종위기 야생동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지정된 사
람 외에는 야생동물을 포획하는 것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5년 동안 실시된 사냥금지 조처로 동물들이 많이 늘었지만 이미 개체수가 심각하게 줄어든
범, 스라소니, 표범, 늑대는 두만강 인접지역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최근 지린지역의 조사결과,
지린성 일대 훈춘 동부 산악지대에 7∼9마리의 아무르 호랑이와 4∼7마리의 아무르 표범이 서식
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순례단이 머물던 시기에 한국에서 온 자연탐사단이 북한쪽 백두산
천지 정상에서 생태조사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곧 가려진 북한의 야생동물에 대한 현황
이 공개될 날이 멀지 않아 보인다.

‘설마 이렇게 시커먼 물만 보다가 끝나는 건 아니겠지’ 하는 의구심이 들던 순례 6일째, 드
디어 두만강의 넘치는 ‘생명력’과 ‘희망’을 보았다. 천혜의 원시림 속에 둘러싸여 강바닥이
훤히 보이는 맑디맑은 두만강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순례단은 환호성을 질렀다. 비무장지대
녹색순례를 끝내고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자연의 아픈 곳을 내디딜 때면 우리의 몸과 마음이
함께 아파 오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살아 있는 곳에서는 우리 역시 숨통이 트이고 다리에 힘
이 붙는다. 기실 사람과 자연이 둘이 아니고 하나다”라고. 그 말이 정말 사실인 듯하다.

백두산 기슭, 두만강 발원지에서 물이 퐁퐁 솟아난다. 중국과 북한의 공동경비구역에 자리한
이곳은 강의 너비가 채 30cm도 되지 않아 폴짝 뛰면 넘나들 수 있을 정도다. 흐르는 물, 바람,
구름, 그리고 야생동물에게 인간이 인위적으로 그어놓은 국경이란 게 무슨 의미인지. 녹색순례
의 목적은 아마 이런 깨달음을 얻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두만강 하면 자연스레 아버지 세
대의 애창곡 ‘두만강 푸른 물에 노젓는 뱃사공’을 연상하게 된다. 두만강에는 그러나 ‘푸른
물’도 ‘뱃사공’도 없다. 두만강은 그 푸른 빛깔을 이미 30년 전에 잃어버렸다. 지금 두만강에
는 공업용수로도 쓸 수 없을 만큼 오염된 물과 삶의 터전을 버리고 떠나는 조선족 동포들이 있
다. 두만강 녹색순례는 끝났다. 그러나 두만강을 가슴 가득 담고 돌아온 우리에게 맑은 두만강
을 찾기 위한 또다른 순례는 이제 시작이다.

두만강=글·사진 이유진/ 녹색연합 국제연대 활동가 leeyj@greenkorea.org

자료제공: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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