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순환 관련자료

태국 박문댐 관련 한겨레신문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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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댐 문을 열든지, 우릴 죽이든지…” ‘개발과 환경’의 화두 짊어진 박문댐 점거 시위 현장… 정치적 실험대 오른 추안 릭 파이 (사진/박문댐 주변의 선상 시위) “법대로만 한다.” “국사 결정이 너무 느리다.” 융통성 없는 정치가, 눈치만 보는 정치가로 야당의 공격을 받아왔던 추안 릭 파이 타이 총리. 그 래도 ‘깨끗한 손’ 하나로 시민들의 사랑을 차지했던 그가 요즘 궁지에 몰리고 있다. 경제회복 기운이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데다 11월로 예상되는 총선에 쫓기는 그에게 최근 동시다발로 벌어지는 ‘댐반대 투쟁’이 흘겨 넘길 수 없는 정치적 화두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5월15일 박문 댐 점거 시위에 이어 19일 라시 살라이댐이 주민들에게 점거당하면서 댐은 이제 그에게 피할 수 없는 전장이 되고 있다. 타이 정부의 공격적 홍보전, 역효과만 “공공 재산을 파괴시키지 않는다면 시위를 하든 뭘 하든 자유다.” “전력공사는 언론을 통해 적극적으로 시민들에게 홍보하라.” “공익을 위해서라면 공권력 투입을.” 지난 5월15일 박문댐 을 점거한 주민들의 시위가 장기화되면서 추안 총리의 여유는 점차 ‘짜증’으로 변해왔다. 주민 들의 입장에 서서 박문댐 시위를 연일 사회면 머릿기사로 끌고가는 언론들의 보도도 전에 없던 일로 추안 정부에 결정적인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언론들이 중심을 잃어 사태가 꼬였다.” 정부당국자들은 언론에 직간접적으로 불쾌감을 터뜨렸 다. 그러나 모든 신문들은 요즘 스트레이트 뉴스난과 칼럼난을 총동원해 박문댐 시위를 지원하 며 추안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이에 맞서 정부당국도 공격적인 홍보전을 펼쳐왔으나 아직까지 는 역효과만 도드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지역주민들의 박문댐 점거 시위가 예고되어 있던 지난 5월15일, 전력공사는 국내언론인들을 비행기로 실어와 호텔을 제공하면서 맞불을 놓았다. “댐 주변의 잘 가꾼 정원과 마을 견학 프로그램이다. 기자들을 시위현장과 격리시키겠다는 속셈 이 뻔히 보인다.” 이 프레스 투어에 참가한 한 기자의 말이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언론들은 일제히 박문댐 시위를 1면 머릿기사로 뽑아 전력공사의 작전을 우 스갯거리로 만들어버렸다. 헛물켠 전력공사의 분노는 엉뚱한 쪽으로 튀었다. “박문댐 사태는 당 신 같은 외국기자들과 외국의 시민단체들이 순진한 지역민들을 꼬드긴 결과다. 시위지도부가 외 국기자라면 사족을 못쓰니 그쪽에 가서 알아보라.” 전력공사 사장보 수삔 빤야막이 기자에게 던 진 이 말은 타이기자들 사이에 폭소를 자아내며 한편으로는 현안을 읽는 정부당국의 비뚤어진 시 각을 모자람 없이 드러내는 역효과의 백미로 꼽혔다. 10년이나 앓아온 주민들의 생존문제를 무시한 채 홍보전에만 치중하는 전력공사와 정부의 태도 는 사회 각 분야로부터도 큰 저항을 받아왔다. “아기들이라도 울면 돌아보게 마련인데, 주민들 의 소리를 10년 동안이나 이렇게 방치해온 정부가 홍보에만 매달려 있는 게 근본적인 문제다.” 니디 에오시옹 교수(치앙마이대학)는 박문댐 세미나 현장에서 열변을 토했다. “사람이 죽어가는 데 국민의 혈세를 거둬 거짓말 선전이나 하고….” 박문댐 반대 시위를 지원하고 있는 ‘빈민의 회’의 소문난 여장부 와니다도 분노를 쏟아냈다. 10년간 속아온 지역주민들의 분노 (사진/박문댐을 점거한 주민들의 시위(위). “단 1년간 만이라도 댐 문을 열어달라”는 절박한 요구를 내건 주민들은 댐 위에서 먹고 자고 노래부르며 기약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99년 2월 부터 주민들은 댐 옆으로 집단이주해 이른바 ‘항의마을’을 이뤄 살고 있다(아래)) 게다가 박문댐과 600km 떨어진 방콕 시민들의 정서도 추안 정부와 먼거리에 있기는 마찬가지다. “환경의 시대라고들 하는데, 아직도 댐 같은 것에 연연한다면 너무 촌스러운 거 아닌 가요?” “댐이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면 그거 없애야지요.” “정부가 주민들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지 요.” 현란한 불빛과 냉방장치가 하루 종일 돌아가는 쇼핑센터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분홍머 리, 코걸이, 너풀바지차림의 방콕 신세대 젊은이들도 한목소리로 박문댐에 대한 반대의사를 밝혔 다. 결국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추안 총리는 열흘이 지난 5월25일 ‘짜증’을 접고 대화를 통해 문 제 해결을 시도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나 총리의 이 근거없는 ‘짜증’ 너머에는 10년 간 속아온 지역주민들의 ‘분노’가 거센 물길을 이루고 있다. “고기잡이가 더 잘될 것이라는 말만 믿고 땅도 집도 모두 넘겨주었는데….” 억울한 세월을 되돌아보는 솜칫(62)은 나이가 들면 서 자꾸 눈물이 가벼워진다며 고개를 떨다. “국가사업이라는 말에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쫓겨났 는데 이렇게 먹고살기가 힘들게 될 줄이야.” 자신을 한때 애국자였다고 부르는 통(48)의 한은 줄줄이 이어진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그때 물에 빠져 죽든지 무슨 사생결단을 냈어야 하 는데, 아무것도 몰랐으니… 어리석었지.” 불같은 햇빛이 내리꽂히는 콘크리트 댐 위의 뜨거운 시위는 “댐 문을 열든지 우리를 모두 죽이 든지”라는 구호 아래 이제 열이틀째를 맞고 있다. “단 1년간 만이라도 댐 문을 모두 열어 매콩 강의 물고기가 문강으로 되돌아올 수 있게 해달라”는 절박한 요구를 내건 주민들은 댐 위에서 먹고 자고 노래부르며 가끔씩 무력진압에 대비한 저항훈련을 해보기도 하면서 기약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들은 박문댐이 건설되면서 보금자리를 잃고 생업이었던 고기잡이마저 불가능해지 자, 지난 99년 2월 댐 옆으로 집단 이주해 와서 이른바 ‘항의마을’이라는 이름을 걸고 난민생 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1년 전 우본랏차타니 주지사로부터 “건기라 할 일이 없으니 까 경치 구경삼아 소풍 나온거겠지”란 말을 들으며 울분을 삭여왔던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문강에 고기 씨가 말랐는데 어떻게 살란 말인가? 대대로 배운 건 고기잡이뿐인데.” “정부가 우리를 속였잖아. 많이 배운 방콕사람들이라면 이렇게 함부로 못했겠지.” 정부의 속임수가 괘씸하고 고기 잃은 문강이 원통해 시위에 나섰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았다. “거짓말이다. 오히려 새우를 비롯해 더 많은 고기들이 잡히는데, 돈을 얻어 내려는 수작들이 다.” 전력공사 수삔 사장보의 말에 시위 지도부의 솜폰 캄사왓은 “그럴 줄 알고 아예 처음부 터 주민들에게 보상금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하게 했다. 돈도 필요없다. 고기들만 문강으로 돌아 오면 된다. 그게 바로 우리의 삶이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친댐’ 주민들을 동원한 무력진압? (사진/추안 릭 파이 총리. 박문댐을 외면한 그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한편 기자가 지난 4월 말과 5월 중순에 걸쳐 매콩강과 문강의 박문댐 상·하류의 고기잡이 배를 강 위에서 직접 조사해본 결과 주민들의 하소연은 정당했고, 독립적인 조사기관인 세계댐위원회 (WCD)가 발표한 박문댐 재조사보고서(상자기사 참조)와 주민들의 주장도 일치하고 있음이 확인됐 다. 매콩강에서는 20cm 이상의 고기들이 대부분이었고 투망으로 하루에 보통 1인당 35kg 정도는 잡고 있었지만, 문강쪽에서는 하루 종일 몇 마리를 잡는 수준이었고 크기도 3cm 정도짜리가 전부 였다. “댐 짓고 난 뒤에는 고기가 없다. 하루에 겨우 몇 마리 잡는데 가족 찬거리 정도지 씨가 작아 시장에 팔진 못한다.” 모든 문강 어부들의 공통된 말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박문댐에 설 치한 물고기 사다리를 내세우며 주민들의 주장을 거짓말로 몰아부쳤으나, 전문가들은 “이 사다 리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 고기는 몇종밖에 없고 크기도 작아 실효성이 전혀 없다”고 발표해 정 부를 다시 궁지에 몰아넣었다. 실제로 사다리를 하루 종일 보고 있어도 장난처럼 뛰고 있는 기 껏 2cm 남짓한 몇몇 놈들만 눈에 띌 뿐이다. 문제는 설득력을 잃은 정부가 사태 해결과는 무관한 길을 걸어왔다는 데 있다. 진지하게 주민들 의 고통을 들여다보면서 현실에 접근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전력공사는 대화보다는 시위대를 향 해 “시위 주민들이 기계를 건드려 고장을 냈으니 전기 공급을 할 수 없으면 그 책임은 모두 시 위자들에게 있다”는 따위로 엄포만 놓았고, 경찰당국은 “시위대가 유리창과 댐 기물을 파손했 기 때문에 수사가 필요하다”며 300여명의 중무장 진압대를 풀어 긴장감만 높여온 식이다. 이런 까닭으로 ‘비폭력’을 내건 주민 시위대는 정부당국에 대한 강한 불신감을 쌓으면서 평화적 해 결에 대한 기대를 접는 분위기가 되었다. “우리가 왜 알지도 못하는 기계를 건드리나. 점검이 필요하다면 중립적인 전문가를 데려오라.” “갑자기 웬 유리창? 우리를 폭도로 몰지 말라.” 시위 주민들은 당국의 공격적인 저의를 파악한 뒤부터 ‘즐겁게’ 잡혀가는 방어훈련을 하기 시 작했다. 뿐만 아니라 추안 총리가 대화쪽으로 방향을 잡던 날도 경찰은 시위지도부 14명의 수배 명단을 발표함으로써 정부의 의지를 의심스럽게 만들어버렸다. 추안 총리가 대화를 선언한 다음 날에도 계속해서 전력공사는 근거없는 ‘홍수 위기설’을 퍼뜨리며 시위 주민들에게 책임을 떠넘 겨 긴장을 조성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시위 주민들 사이에는 정부가 ‘친댐’ 주민들을 동원해 주민들끼리 충돌을 일으킨 뒤 이를 빌미로 상황을 진압할 것이다는 소문이 돌아 위기감이 높아가 고 있다. 실제로 이는 시위지도부에서는 첫날부터 가장 경계해 왔던 일로, 최근 들어 문강 유역 의 일부 친댐 주민들이 무력행사를 선언하고 나서 최악의 사태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분위기이 다. 한편 우본랏차타니 주청사 앞에서는 취재기자와 사진기자들에 대한 폭력사건이 일어나고 있 기도 하다. 남은 것은 추안 정부의 명쾌한 결정뿐 이제 남은 것은 추안 정부의 명쾌한 결정뿐이다. 10년을 앓아온 주민들의 요구조건은 간결하고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어떤 자세로 이 사태를 풀어갈지 추안 총리는 댐을 진 무거운 발걸음으로 정치적 시험대에 올랐고 동시에 태국 사회는 ‘개발과 환경’‘인본주의’ 라는 21세기의 무거운 주제를 끌고 길을 나서기 시작했다. 휘황찬란한 도시의 밤길과 공장의 기계들을 위해 무참히 겁탈당한 사람들, 나라를 위해 삶터를 내주고 개발 앞에 처절하게 유린당한 사람들, 박문댐에는 그 고단한 사람들의 하루가 저물고 있 다. 추안 릭 파이 총리와 수삔 전력공사 사장보가 집으로 돌아가 에어컨 바람 앞에서 가족과 오 손도손 하루를 정리할 이 시간에도. 콩치암=글·사진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한겨레21 2000년 06월 08일 제3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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