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기업의 사회적책임

한반도 환경협력 실현을 위한 국제심포지엄 – 생명평화의 한반도를 위한 실천

생명평화의 한반도를 위한 실천
최 열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오늘 우리는 냉전의 종식이 곧 평화의 실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
습니다.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은 지구상에서 평화가 위협받을 때 가장 위태로운 곳이 한반도라
는 것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한반도는 여전히 냉전의 어두운 그늘이 지배하는 곳이며 한국인들은 반세기
전 참혹했던 전쟁의 기억을 아직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
진 전쟁에 뒤이어 부시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의 하나로 지목한 이래 한반도에서는 또
다시 전쟁위기설이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특히 내년, 즉 2003년은 북한에 대한 전력 지
원이 지연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 약속한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기간이 만료되는 해입니다. 이
때문에 내년은 한반도의 위기가 고조될 가능성이 큰 해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남북 정상이 역사
적인 만남을 통해 공동선언을 채택하고, 반세기를 헤어져 살아온 이산가족들이 상봉하고, 남북
각계각층의 민간교류가 확대되고 있는 와중에도 한반도는 여전히 위기 상황을 벗어나고 있지 못
한 것입니다.
한편 분단의 반세기는 환경파괴와 생명의 위기를 심화시킨 세월이기도 했습니다.
한반도 남측에서는 삶의 질과 지속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급속한 개발이 추진되었습니다.
그 결과 화석연료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공해산업이 경제의 중심에 자리잡았고 과중한 대기오염
에 시달리는 도시는 인간 이외의 생명을 찾아보기 어려운 곳으로 변모했습니다. 경제 개발과 도
시의 팽창을 위해 농촌 경관과 갯벌 생태계, 자연림과 생물다양성은 급속하게 무너져 갔으며,
산업화의 부산물인 독성화학물질은 작업 환경과 공기, 물, 먹을거리를 오염시켜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도 최근의 식량난과 에너지난으로 인해 산림이 훼손되고 있으며 공
단과 도시의 국지적 오염문제도 가중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한반도에서 평화의 위기와 생명의 위기는 상호작용하고 있다
는 점입니다. 오늘날 생명의 위기를 낳은 남한의 경제개발 정책이, 체제를 유지하고 상대방을
압도해야 한다는 명분에 의해 정당화되어 왔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북한의 식
량난과 에너지 위기가 체제 대결로 인한 자원의 과도한 군사적 전용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도 간
과할 수 없습니다. 결국 평화의 위기가 생명의 위기를 심화시킨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자리에서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생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남과 북의
환경협력이 한반도의 평화 위기를 극복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환경분야 협력은
남과 북의 정치․경제․문화적 차이를 넘어서서 실현될 수 있으며 남북 주민들의 삶의 질을 개
선하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공동의 실질적인 혜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함께 일하는
경험, 그리고 이를 통해 얻어지는 신뢰는 평화와 통일의 소중한 기반을 제공할 것입니다. 종국
에는 통일 이후 이 땅의 주인이 될 우리 후손들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유산인 건강
한 자연환경을 물려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환경운동연합은, 지난 2월 1일 평양에서 북한의 환경보호연구소와 자연보호
연맹 관계자들과 첫 만남을 가진 것을 시작으로 한반도 환경협력을 본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다
각도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작은 결실로 환경운동연합과 북측의 환경 기관들은 올 6월 15일
금강산에서 열릴 남북공동선언 두 돌 기념 행사에서 한반도 자연환경 사진전을 공동개최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행사는 작은 시작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서울과 평양에서 연이어 이와 같은 행
사가 개최된다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없는 남과 북 양쪽의 국민들에게 한반도 자연환경에 대한
애정을 불러일으키고 한반도 환경보전을 위한 의지를 촉발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남북 민간의
환경교류는 정보 교환과 학술 교류에서부터, 친환경적인 재생가능에너지의 보급과 환경기술의
교류, 비무장지대와 서해안 갯벌, 백두대간 등 주요 생태계의 공동 조사와 보전을 위한 협력,
그리고 환경적․경제적 혜택을 동시에 추구하는 생태관광의 도입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어
갈 것입니다. 또한 황사와 월경성 대기오염 물질에 대한 공동대응, 해양환경의 보전 등 동북아
시아의 지역적 환경문제에 대한 공동대응으로 발전될 수 있을 것입니다.

환경연합은 이러한 구상을 정리하여 지난 2월 말 북측 환경기관에 제안한 바 있으며, 그중
몇 가지 사업은 구체적인 협의 과정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한반도 환경협력의 과정에 남측
의 다양한 민간환경단체들이 참여하도록 요청하고 있으며 정부기관과 기업의 역할도 필요하다
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국제적인 민간단체들과 학자들의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이제 막 물꼬를 튼 한반도 환경협력을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추진할 것을 제안합니다.
한반도 환경협력은 분단 과정에서 빚어진 한반도 환경과 생태계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 되
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국토의 생태적 잠재력을 보존함으로써 미래를 적극적으로 준비하는 노력
이 포함됩니다. 특히 비무장지대 생태계 보전을 위한 협력은 분단이라는 위기를 미래의 생태적
잠재력으로 반전시키는 극적인 과정이 될 것입니다. 분단된 한반도의 환경적 상처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했습니다만, 저는 남과 북의 환경 질을 개선하는 노력이 정치․경제 분야의 교류협력
에 뒤쳐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경제협력을 통한 공단개발과 관광개발이 추
진되고 비무장지대를 관통하는 교통로가 개설되는 상황에서 환경보전을 위한 노력을 마냥 훗날
로 미룬다면 그나마 남아 있는 국토의 생태적 잠재력은 고갈되고 우리 후대들은 훨씬 큰 희생
을 감내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한반도 환경협력은 전쟁을 방지하고 남북의 신뢰를 구축하는데 기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환경협력은 의견을 교환하고 물자가 오가는 것 이상이어야 합니다. 남
과 북의 학자, 기술자, 주민들이 어깨와 어깨를 맞대고 함께 일함으로써 지난 반세기 동안 단절
되었던 인간적 신뢰를 회복하며, 이 모든 협력의 과정이 국제사회에는 한반도 평화의 신호로 전
달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의 삶의 질에 실질적인 혜택을 주는 협력사업을 우선
적으로 추진한다면 남과 북의 신뢰 구축은 물론 환경협력의 지속성 확보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한반도 환경협력은 남북 당사자들만이 아니라 국제적인 참여와 지지를 확대하는 과정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달성하는 데에 남북 당사자들의 노력에 더해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조가 필수적인 것처럼, 환경협력의 과정에서 직면하게 될 여러 난관을 극복하는 데에
도 국제사회의 지원과 참여가 필수적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이 행사에 함께 참여하는
DMZ 포럼(DMZ Forum), 국제두루미재단(International Crane Foundation), 국제새보호재단
(BirdLife International), 쿠릴섬보호네트워크(Kuril Islands Network)등과 같은 여러 국제기
구, 해외단체들의 협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나아가 해양환경 보전과 월
경성 대기오염 문제의 해결 등 남북이 함께 직면하고 있는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
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들의 이해와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반도 환경협력은 생명평화의 한반도라는 이상을 지향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통
일을 이루는 데 기여해야 할 것입니다. 분단의 극복은 정치군사적 의미의 통일로 완성되지 않습
니다. 이미 독일 통일의 과정을 통해 우리가 교훈을 얻었듯이, 한반도 전체의 환경위기, 생명
의 위기를 극복함으로써 남북 주민들이 함께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을 때 통일은 체감될 수 있
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인위적으로 분단된 한반도 생태계의 총체성을 회복할 때 진정한 통일
은 완성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분단은 한반도 남과 북의 사람들과 자연에 씻기 어려운 상처를 남겼지만 그 상처의 한가운데
에 비무장지대라는 생명의 보고를 잉태했습니다. 비무장지대는 평화의 위기 속에서 형성된 미
래 한반도의 생태적 잠재력입니다. 분단의 반세기 동안 이 땅에 살 권리를 빼앗긴 수많은 토착
생물종들의 피난처입니다. 한반도 전체를 놓고 볼 때 비무장지대는 백두대간과 더불어 한반도
생태계의 중심축을 이룹니다. 그런 의미에서 비무장지대의 보전은 생명평화의 한반도를 실현하
는 실천 과정에서 중심적인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국제적으로도 비무장지대는 생태적 가치
와 역사적 가치를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비무장지대는 인류 모두가 극복하기를 열망하는 지
난 세기의 군사적 적대와 생명파괴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세계사적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따라
서 비무장지대를 평화의 현장, 생명존중의 현장으로 재탄생시킨다는 것은 우리 시대의 간절한
염원을 형상화하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한반도 환경협력의 실현과 비무장지대 생태계 보전에 뜻을 함께 하는 여러
나라 인사들이 참석하고 계십니다. 여러 학문분야의 전문가들과 현장의 환경운동가들, 정부 관
계자와 언론인들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폭넓은 토론이 생명평화의 한반도를 실현하기
위한 실천을 촉발하고 국제사회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는 좋은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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