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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문]경부운하의 담론화와 그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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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시민환경포럼]

경부운하, 한국판 뉴딜인가 망상인가?

일시 : 2006년 12월 4일(월) 오후 2시~5시 30분
장소 : 광화문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주관 : 시민환경연구소
주최 : 환경운동연합, 환경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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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운하의 담론화와 그 문제점

조명래(단국대 교수, 환경정의집행위원장)

1. 들어가는 말

2007년 대선을 앞두고 경부운하건설이 유력 대권주자의 핵심공약으로 제시되면서 이를 둘러싼 국민적 논란이 일고 있다. 그 논란은, 정치적 파장이 클 수 있기 때문인지 그런 지현재로선 수면 아래서만 조용히 일고 있다. 경부운하는 불확실성이 대단히 큰 토목사업이다. 그래서 그에 대해선 찬반이 있을 수 있지만 옳고 그름의 절대적 판단이 있을 수 없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담론적으로 조작되고 정치적으로 지지를 획득하면, 이 사업은 쉽게 현실화될 수 있다. 문제는 체계적인 검토와 논의가 없이 정치적 선동에 의해 경부운하가 추진되면 ‘재앙’ 수준의 국토환경의 파괴, 한반도 생태역사와 생태문화의 단절, 지방개발주의 확산, 개발독재의 등장과 같은 후유증이 오래동안 남을 수 있다. 특히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20세기의 개발주의 패러다임으로 21세기 한국사회의 발전에 관한 비전을 제시하고 또한 이를 실현하고자 하는 시대에 한물간 리더십의 문제다. 이러한 복합적 쟁점을 함축하고 있는 만큼, 경부운하건설은 없는 것으로 하는 게 마땅하지만, 최악의 경우 추진된다면, 그 역사적, 문화적, 생태적,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파장을 최소화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정치적 파장이 큰 특성으로 인해 경부운하 문제를 시민사회가 대응하는 데는 고도의 신중함이 요구된다. 그럼에도 무대응으로 일관할 수 없기에, 경부운하 문제를 올바르게 인식하면서 특정 지점에서는 전시민사회의 힘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경부운하 건설에 관한 담론이 어떻게 등장발전하면서, 그 실체가 무엇이고, 또한 담론 속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어떠한 것을 들추어냄으로서 향후 시민사회가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되는 시사점을 도출하려는 목적으로 작성된다.

2. 경부운하 담론의 등장과 전개

1995년 8월 세종대 부설 세종연구원은 ‘신국토개조전략’을 발표하면서 ‘경부운하’란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경부운하는 한강을 시발점으로 충주호에서 월악산을 관통하는 20.5km의 터널을 뚫어 낙동강까지 500.5km에 이르는 물길로서 폭 47-55m, 수심 4.0m, 갑문 17개, 댐 16곳, 리프트 5곳, 터널 1곳을 갖추도록 되어 있었다. 10조원의 사업비가 소요되는 경부운하가 완공되면, 경부 축 물동량의 4분의 1인, 연간 2207만 톤을 처리해 물류비 4조5천억 원을 절감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1996년 7월18일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신한국당 이명박 의원은 ‘경부운하가 건설되면 물류비용을 3분의 1로 줄일 수 있고 유지보수비가 필요치 않다. 또 관광레저산업에도 이용할 수 있고 수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어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경부운하건설을 제안했다. 이에 건교부 장관은 ‘타당성 검토를 위해 예비조사에 착수했으며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
1997년 4월 세종연구원은 ‘경부․경안운하 물류혁명(세종정책연구 2집)’란 보고서에서 ‘운하를 만들어 50년간 사용하면 38조4990억 원의 편익이 발생하는 반면, 8조6717억 원, 유지보수비 1300억 원 등의 비용이 들어, 편익/비용 비율(b/c ratio)이 무려 5.4에 이를 정도로 충분한 경제적 타당성이 있음’을 결론으로 제시했다.
1998년 1월 국토개발연구원(현 국토연구원)은 수자원공사의 의뢰를 받아 수행한 ‘지역 간 용수수급불균형 해소방안 조사’에서 ‘경부운하건설은 타당성이 없다’는 결론을 제시했다. 길이 540km, 수로 폭 47-5m, 수심 4m, 16개 댐, 20개 갑문, 1개 터널, 35.5km 우회수로, 선착장 41개, 터미널 5개의 제원을 갖춘 경부운하를 건설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은 9조8073억 원인 반면 편익은 4조2125억 원으로 추정되었다. 그러나 할인율 8%와 사용기간 50년이란 조건을 적용하면 편익과 비용은 각각 2조6202억 원과 8조1179억 원에 이르러 편익/비용 비율이 0.323에 불과해 경제성이 전혀 없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서울-부산 사이 운송 가능한 물량도 2021년 기준으로 경부축 전체 물동량 3.3%인 2207톤에 불과한 것으로 예측되었다(길윤형, 2006). 이로써 경부운하건설은 그 타당성을 상실함으로서 세간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졌다.
2005년9월23일 청계천 복원 준공식을 앞두고 이명박 서울시장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사사회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고용이다… 경부운하건설계획은 국가경쟁력을 키우고 일자리도 만드는 종합계획이다. 지도자는 국민에게 끊임없이 비전과 희망을 줘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차기 대권주자인 그는 경부운하 건설을 청계천 이후 후속사업으로 내세울 것임을 시사했다(박종찬, 2006). 10여 년 전에 타당성이 없었던 것으로 결론이 난 경부운하 건설이 유사한 성격의 토목사업인 청계천 복원이 국민적 열렬한 지지 속에서 완공되고, 그로 인해 차기 대권자로서 이명박 서울시장에 대한 관심과 지지도가 상승하는 시점에, 이명박 시장의 발언에 의해 국가미래를 여는 그 뭔가로 되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대권 유력후보로 꼽히는 이 시장이 청계천 복원으로 언론과 국민의 눈과 귀가 자신에게 쏠려 있는 시점에 경부운하 건설을 주장하고 나선 것은 정치적 함의가 깊다. 청계천 복원으로 대선 후보로서 입지를 다졌다면, 경부운하 건설은 여론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유도하면서 차기 대권의 주도권을 선점하려는 카드로 볼 수 있다. 경부운하는 수도권, 충청, 영남지방 등의 이해관계가 얽혀 전국적 이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행정수도 이전을 이슈로 내세웠던 모습과 다르지 않다.”(박종찬, 2005, p.3).

2006년 9월29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현재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물류비용이 부산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가는 것보다 조금 더 비싼 것으로 나온다. 서울과 부산을 내륙으로 잇는 경부운하를 건설하면 고용창출, 내수확대, 국토균형발전 등 경제성이 놀라울 것이다’라는 입장을 다시 강조했다.
2005년 10월10일 건교부의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경부운하 건설의 비현실성’을 지적하자 이명박 서울시장은 ‘낙동강과 남한강이 떨어진 거리는 불과 20km에 불과하다며, 이 구간을 연결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다고 응수했다(박종찬, 2005). 이는 경부운하건설은 정파간의 논쟁의 대상으로 다루어지기 시작했음을 시사한다.
2005년 10월6일 리서치앤리서치는 국민의 67.7%가 환경파괴와 실현가능성이 없음을 이유로 경부운하 건설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하지만 이명박 시장은 찬성 90%이상으로 여론을 바꿀 자신이 있다고 맞받았다. 그리고 시장 사퇴 후 그는 경부운하를 자신의 주력 차기대선 공약으로 밀어붙일 것임을 분명히 했다. 청계천 신화를 다시 재현하겠다는 것이었다”(박태견, 2005). 이는 경부운하건설이 국민적인 논란의 대상으로 다루어지기 시작했음을 시시한다.
2006년 6월 말 퇴임 직전,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명박 서울시장은 ‘앞으로 10년 안에 국민소득 3만-4만 달러를 달성하려면 무엇보다 물류비를 줄여야 한다. 우리나라 내륙 물류비는 전체 기업들이 쓰는 비용의 16%를 차지한다….고속도로 하나 만드는 데 20조권이 들어가고 기간도 10년 이상 걸린다. 반면 한강과 낙동강 등을 연결하는 운하를 만들 경우 건설비용도 적게 들고 공사기간도 4년이면 충분하다. 순수 우리기술로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운하를 건설하면 당장 일자리도 크게 늘어나고 장기적으로는 국가경쟁력도 높아질 것이다’이라고 발언했다. 이는 경부운하 건설을 차기 대선 경제공약으로 내세울 것을 천명하는 것에 다름없었고(박태견, 2006), 이로써 경부운하건설은 정치적 프로젝트로의 성격을 분명히 갖게 되었다.
2006년 6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이명박 서울시장은 그간 밝힌 경부운하 건설 주장보다 더 상세한 계획과 철학, 밑그림을 제시했다. 이는 ‘경부운하건설이 청계천 다음사업을 뛰어 넘어 그의 신념이자 지도자로서 통치철학’ 그 자체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2006년 7월, 퇴임 후, 이명박 전서울 시장은 대구를 찾아 대한 어미니회 대구시회 회원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경부운하를 건설해 서울-부산 물길이 열리면 대구는 항구도시가 되어 가장 잘 사는 지역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섬유퇴조 등으로 만성적 경기불황을 겪고 있는 대구를 항구도시로 바꿔 ‘한국서 가장 잘 사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경부운하건설에 담긴 그의 정치적 비전을 지역정치 맥락으로 옮기고자 하는 의지를 본격적으로 표출하기 시작했다.
2006년 8월17일, 이명박 전시장은 3박4일 일정으로 경부운하 건설을 위한 내륙탐사를 나서면서 대선공약으로 경부운하건설을 추진할 의지를 보다 분명히 보여주었다. 이는 경부운하건설 프로젝트를 이른바 대선행보와 본격적으로 연계시켜는 것을 시사 하는 대목이다.
2006년 10월 24일, 독일 ‘라인-마인-도나우 운하’를 둘러보는 자리에서 이명박 전시장은 경부운하건설을 대선공약으로 사실상 발표했다. 이 때 이 전시장은 ‘국내외 학자 60-70년이 10년간 기술적 검토를 마쳤으며, 시작 후 4년 이내에 완공이 가능하다’며 ‘이를 통해 제2 경제도약을 이루겠다’고 말했다. 비용은 경인운하와 합쳐 15조 원 정도 들지만 준설작업에서 나오는 골재를 팔거나 민자를 유치하면 정부예산이 거의 들지 않을 것이라 했다. 그는 파급효과로 5000톤 급 바지선이 부산에서 강화도까지 왕래해 물류비용이 지금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고 관광 등 부가산업도 발전할 것이란 점을 들었다. 경부운하 건설은 그래서 ‘한반도 국운 재융성의 계기가 될 것’라는 포부를 밝혔다. 내륙운하는 ‘영호남을 하나로 연결하고 북으로 신의주까지 잇는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로 발전시킬 것이라는 비전도 내비쳤다. 이 전시장은 ‘정치적 목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21세기 새로운 정치는 실천 가능한 공약, 평소 충분히 검토된 공약으로 정책대결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부운하건설은 이로써 정치인 이명박의 그랜드 정치 전략이자 비전으로 포장되고 상징화되기 시작했다.
2006년 11월13일, 내륙운하를 연구하는 교수와 전문가들의 모임인 ‘한반도 대운하연구회’ 주최로 심포지엄이 개최되었고, 여기서 내륙운하건설을 지지하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쏟아졌다. 이 전시장은 축사를 통해 ‘내륙운하는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내놓은 즉흥적 발상이 아니라 국가적 사업이고 경제효과, 환경효과, 국토균형발전은 물론이고 한반도 국운융성의 계기가 될 것’라고 말했다. 그는 또 내륙운하에 대한 일부 비판론을 언급하면서, ‘이런 반대 논리는 이미 운하를 도입해 성공한 유럽에서 모두 해결된 것’이라며 ‘인류역사는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능성을 믿는 리더에 의해 이뤄진다’고 강조했다. 이로써 경부운하 건설은 그랜드 정치적 전략이자 비전으로 정당화되기 시작했고 대선이란 관문을 통한 국민적 검증을 기다리는 중이다.

3. 경부운하 담론화의 특징

경부운하는 1990년대 중반 한 토목학자에 의한 국토개조론의 일환으로 제시되었고 언론에 의해 잠시 기사화되긴 했지만 국민 사이에 널리 회자되지(즉 담론화 되지) 못했다. 한강과 낙동강은 한반도 남단 지연지세(백두대간)의 바탕을 이루면서 영겁의 세월동안 민족이 살아온 터전이 되어 왔다. 그러기에 어느 누구도 감히 이 두 강을 연결할 상상을 하지 않았다. 때문에 경부운하 건설은 ‘토목적 공상’ 이상이 되지 못했다.
말하자면 토목적 공상에 불과하다는 인식은 경부운하가 국민다수를 화자(話者)로 끌어드리는 담론(discourse)의 대상으로 발전할 수 없었던 까닭이었다. 그것은 최소한 1996년 이명박 의원이 대정부 질의에서 경부운하건설을 제안했을 때까지도 그랬다. 그의 제안은 건설회사 CEO출신이란 직업적 배경에서 의례 것 나온 것으로 받아드려졌을 뿐이었다. 어느 누구도 경부운하가 실현가능하고 또한 제안자들이 말하는 물류혁명은 물론이고 국토개조를 담보해주는 것으로 인지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인식에 결정적으로 쐐기를 박았던 것은 국토개발연구원에 의한 ‘경부운하건설의 타당성 결여’란 연구결과였다. 이는 경부운하건설에 대한 ‘사실상의 사망선거’에 다름없었다(길윤형, 2006).
타당성이 없고 사망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경부운하가 타당성을 부여받으면서 회생을 넘어 국가미래를 열어주는 ‘솔로몬의 지혜’와 같은 것으로 극적 반전이 이루어진 것은 ‘정치적 영감(political inspiration)’이 불어넣어졌기 때문이다. 그 영감은 곧 ‘청계천 신화’에서 온 것이다. 유사한 성격의 사업이었던 청계천 복원을 공약으로 당선되었고, 또한 이를 화려하게 마무리 지으므로 써 이명박 전 시장은 유력 정치지도자로 국민적 관심을 집중 받게 되었다. 그러한 시점에 그는 경부운하를 대선의제로 가져갈 것을 언론에 흘렀다. 죽은 경부운하는 청계천 복원의 정치적 영감에 힘입어 되살아나기 시작했고, 주요 언론들은 노무현 후보가 내건 ‘행정수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대선의 뜨거운 쟁점이 될 것을 예측했다. 경부운하 건설의 기술적 타당성이나 사회적 효용성에 대한 검증, 그리고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국가융성을 위한 프로젝트로서 정치적 상징조작에 의해 경부운하의 가능성이 국민들 사이에 회자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이를 ‘행정수도․청계천의 학습효과’라 부른다.

“대권 유력후보로 꼽히는 이 시장이 청계천 복원으로 언론과 국민의 눈과 귀가 자신에게 쏠려 있는 시점에 경부운하 건설을 주장하고 나선 것은 정치적 함의가 깊다. 청계천 복원으로 대선 후보로서 입지를 다졌다면, 경부운하 건설은 여론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유도하면서 차기 대권의 주도권을 선점하려는 카드로 볼 수 있다. 경부운하는 수도권, 충청, 영남지방 등의 이해관계가 얽혀 전국적 이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행정수도 이전을 이슈로 내세웠던 모습과 다르지 않다.”(박종찬, 2005, p.3).

보통사람의 상상으론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청계천 복원이 현실화되면서 이를 뒷받침했던 정치적 지도력에 대한 신뢰를 학습하게 된 사람들은 동일한 정치적 리더십에 의해 추진되는 비슷한 성격의 프로젝트가 약속하는 ‘국가융성’이란 비전을 점차 주목하기 시작했다. 죽은 경부운하는 이렇게 해서 되살아났다. 되살아난 경부운하는 더 이상 순수한 토목/토건적 과제가 아니라 정치적 과제이고, 그 담론은 더 이상 토건적 가능성을 둘러싼 것이 아니라 정치적 지지와 반대를 둘러싼 것이 되었다. 물론 이명박 전시장 측은 경부운하건설을 대선과 연결시키지 말고, 또한 정치적으로 반대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진술 자체가 이미 정치적 담론의 일부다. 대권을 꿈꾸는 정치인인 한, 그의 주요 행동은 정치적인 의미와 효과를 띨 수밖에 없다. 때문에 경부운하에 관한 그의 언급은 전문가나 관료가 말하는 토목사업에 관한 언급과 달리 그의 정치적 행보와 관련된 것으로 국민적 논란을 불러오게 된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경부운하의 건설담론은 정치화된 담론이 될 수 없다. 유력 대권 후보자가 내건 국가비전으로 상징 조작될수록, 그것은 더욱 정치화된 담론의 성질을 띠게 된다.
그럼 왜 하필이면 ‘경부운하’인가? 이는 일차적으로 청계천 신화로 입증된 건설회사 CEO 출신이란 이명박 전시장의 리더십이 반영되어 선정된 것이다. 그러나 경부운하는 청계천 보다 훨씬 더 분명한 정치공학적 특질을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경부운하는 토목사업의 불확실성 논쟁을 정치적 선택담론으로 바꾸어내는 독특한 효과를 지닌 정치적 의제다.
국토 전체를 포괄하는 (즉, 수도권, 충청권, 영남권의 정치적 시장을 포괄하는) 초대형 토목사업으로 경부운하는 실현가능과 그 효과에 대한 현격한 찬반논란을 불러오지만, 그 찬반이 정치적인 지지와 반대를 둘러싼 찬반으로 바뀌는 가운데 특정 정치적 입장의 선택을 강제하는 담론적 효과를 발휘한다. 경부운하에 대해선 토목적으로 ‘옳다/그르다’, ‘가능하다/그렇지 않다’는 관점으로 절대적인 답을 줄 수 없고 단지 정치적 관점에서 선택만 할 뿐이다. 다시 말해 경부운하 건설은 찬반이 있을 수 있지만, 옳고 그름의 정답이 없는 전형적인 담론적 쟁점이다. 경부운하 건설은 믿는 사람만 믿되, 그 믿음은 경부운하를 정치적 의제로 내건 정치인에 대한 정치적 믿음의 다른 표현이다. 경부운하가 가지는 생태적, 문화적, 역사적, 산업적 쟁점들은 정치적 믿음 여하에 따라 모두 달리 해석된다. 이는 정치적 담론에 의해 경부운하의 실체가 포획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경부운하가 단순히 정치적 담론으로 포획되는 상태만 아니라 그 포획을 통해 경부운하를 정치적 의제로 내건 정치인에 대한 정치적 반대가 지지로 전환되는 기제를 담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경부운하가 고도의 정치적 정략으로 다루어질 수 있음을 뜻한다. 다시 말해 근본적으로 불확실한 토목사업인 경부운하에 대한 논쟁을 열어 놓은 뒤, 반대를 정치사회적으로 극복해가는 가운데, 경부운하는 가능성의 프로젝트로 바뀌는 것과 동시에, 이를 국가적 의제로 내건 정치인에 대한 신뢰와 지지를 이끌어내게 된다. 말하자면, 그랜드 플랜으로서 경부운하는 강한 토목적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지만, 선거란 담론적 정치과정에서 강한 안티를 불러내는 동시에 그 안티를 극복하는 가운데 강한 정치적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고도의 정치의제적 성질을 띠고 있다. 이는 실제 이명박 전시장 측에서 밝힌 바이다.

“…‘공약은 안티가 있는 그랜드 플랜이어야 한다’며 ‘누구나 상식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공약이라면 얘기가 안 된다’고 했다. 안티의 대상으로서 이슈를 쟁점화해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고, 안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강한 추진력과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어 경부운하는(인용자 추가) 일석이조 효과를 얻을 수 있다…”(최은주, 2006).

그러나 물론 공약으로 다루어진다 해서 안티가 찬성으로 자동적으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정치사회적 공작이 필히 매개되어야 한다. 이 매개는 정치적 상징조작을 말한다. 경부운하는 국가기관에 의해 타당성이 없는 것으로 오래 전에 판명 났지만, 이명박 전시장은 이를 뒤집을 어떠한 견고한 논거나 문서를 제시하지 않는 상태에서 담론적으로만(discursively) 타당성을 주장하면서 그의 지지자에 의한 정당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가령, 2005년 10월에 실시된 한 여론 조사에서 국민의 67.7%가 ‘환경파괴와 실현가능성이 없음을 이유로 반대의견’을 나타냈지만(박태견, 2005), 당시 이명박 시장은 ‘찬성 90% 이상으로 여론을 바꿀 자신이 있다’고 맞받았다. 그리고 그 이후 언론과의 잦은 인터뷰를 통해, 그는 경부운하를 ‘내륙운하’, ‘한반도 대운하’ 등의 용어로 확장하면서, 동시에 어떠한 근거나 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경부운하 건설을 반대하는 측에 대해 ‘정치적 공세’이고, ‘반대를 위한 반대’이며, 또한 ‘모르고 하는 소리’라는 담론으로만 경부운하의 타당성을 주장해왔다.
그러면서 그는 그의 담론적 주장에 신뢰성을 부여하기 위해 ‘내륙운하는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내놓은 즉흥적 발상이 아니라 국가적 사업’이며 ‘경제효과, 환경효과, 국토균형발전은 물론 국운 융성’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담론적 상징조작을 끝없이 시도하고 있다 이는 2006년 11월13일, 한반도 대운하 연구회가 주최한 ‘한반도 대운하 심포지움’ 축사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 그러면서 그는 내륙운하에 대한 일부 비판론에 대해선 ‘이런 반대 논리는 이미 운하를 도입해 성공한 유럽에서 모두 해결된 것’이라 하면서 ‘인류역사는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능성을 믿는 리더십에 의해 이뤄진다’고 주장하고 있다(이승관, 2006). 청계천복원을 성공시킨 그의 리더십을 내세워 내륙운하 건설의 타당성을 담론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경부운하 건설은 단순한 토목적 사업이 아니라 그의 통치철학과 리더십의 탁월성을 보여주는 국가비전이나 발전전략으로 상징 조작화 하고 있다.
그의 리더십에 대한 신뢰를 이끌어내기 위해, 그는 경부운하건설은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라 오랜 숙고의 산물’이라고 기회가 있을 마다 강조한다(박태견, 2006). 그의 오랜 숙고는 정치계에 입문하기 전인 현대건설 재직시절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현대건설 재직시절 유럽을 방문했을 때 라인강과 도나우 강을 연결하여 유럽 대륙을 가로지르는 운하가 1백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유람선과 바지선들이 드나드는 운하를 굽어보며 앞날을 내다보는 유럽인의 혜안과 악조건을 극복한 의지에 감탄했다”(박태견, 2005에서 재인용).
청계천 복원 시에도 복원의 준비부족을 지적하면, 그는 늘 오래 전부터 준비하고 연구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 연구란 것은 알고 보면 스스로 연구자가 되어 한 것이 아니라 특정 연구자 집단(예, 청계천살리기연구회)의 연구결과를 선택적으로 수용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물론 이도 연구의 한 방식이지만 연구란 의미의 진정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준비’와 ‘연구’란 말은 ‘준비된 지도자’임을 강조하기 위해 그가 즐겨 사용하는 표현들이다. 경부운하건설과 관련하여서도, 국가기관에서 타당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난 것에 대해, 이를 번복하는 자료나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그는 ‘국내외 학자 60-70명이 10년간 기술적 검토를 마쳤다’고 주장하고 있다(권대열, 2006). 청계천 복원 때와 마찬가지로 그는 전문가의 도움을 얻기 위해 ‘한반도 대운하 연구회’를 꾸리고 있고, 그 연구회는 심포지움을 통해 경부운하 건설의 타당성과 당위성을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그 주장들은 개별연구자의 단편적인 입장 천명에 불과해 국책연구기관에 의해 제시된 경부운하건설의 타당성 결여란 결론을 여전히 번복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검토’가 끝났다는 주장(즉, ‘전문성을 빌어 경부운하 건설의 타당성’의 주장)은 담론적 상징조작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청계천 복원 때와 달리 경부운하 건설의 타당성은 정치화된 대중적 논쟁을 통해서도 상징 조작화 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경부운하 건설의 토목적 가능성 자체는 절대적으로 판단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어떠한 입장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진다. 결국 경부운하 건설의 타당성은 논쟁을 통해 결정되지만, 그 논쟁이 정치적 입장에 의해 오염된다는 데 문제가 있다. 경부운하 건설 논란은, 입장이 다른 정치인 사이에서 혹은 전문가 사이에서 간간히 있었지만, 네티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부터 점차 힘을 얻고 있다. 그 논쟁은 이명박 전시장을 지지하는 입장과 그렇지 않는 입장 사이에서 전개되는 것이 보통이다. 정치인, 전문가, 시민단체 등이 경부운하 건설의 부당성과 문제를 제기하면, 이명박 전 시장을 대리하는 ‘고용된 논객’이 칼럼 등을 통해 반론을 펴는 데, 그 반론들은 대개 객관적 논거나 깊은 신념 등을 결여한 채, 지지를 위한 지지의 논리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 태반이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담론적 상징조작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경부운하건설에 대한 대중적 논쟁은 이명박 전시장에 대한 지지도 상승과 더불어 그를 지지하는 네티즌과 그렇지 않는 네티즌 사이에서 치고 박고하는 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이는 대개 인터넷 상의 글이나 주장에 대해 리플을 다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데, 속성상 개관적이고 합리적인 논쟁을 하는 게 아니라 각자의 주장을 배설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사이버 공간을 통한 논쟁에서 경부운하가 국가융성을 위한 그 뭔가로 지지를 얻는다면, 이는 어떠한 합리적 논거나 논리에 기초하기보다 정치적 입장에서 담론적으로 주장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이버공간을 통한 경부운하건설의 타당성 획득은 담론적 상징조작의 또 다른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경부운하에 대한 정치화된 담론이 곧 ‘죽은 경부운하’를 되살려내고 있는 것이다. 정치화된 담론에 의해 그 타당성이 인정받게 되면, 경부운하의 생태․문화․역사 등과 관련 실체적 쟁점은 그만큼 부차화 된다. 이는 경부운하 담론이 가지는 그림자다.

4. 경부운하 담론이 갖는 문제점

그렇다면 경부운하 담론에는 어떠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을까? 아래에서는 경부운하 담론에 담긴 문제점을 살펴본다.

첫째, 역사를 거꾸로 가는 미래비전과 시대착오적인 리더십

경부운하 담론은 단순한 국토개조에 관한 입장이 아니라 국가운영에 관한 비전과 철학을 반영하는 것이라면(박종찬, 2005), 이는 역사를 거꾸로 가는 미래비전과 시대착오적인 리더십을 보여줄 뿐이다. 주창자와 지지자들의 강변에도 불구하고 경부운하 건설을 통해 국운을 융성케 하자는 비전과 철학은 기실 20세기 토목적 개발주의 시대에 부합한 것이고, 그런 만치 21세기 지구화 시대 국가를 꾸려갈 비전과 철학이 되기엔 적합지 않다는 비판을 사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비판은 정치적 공격이란 것으로 옹호자들에 의해 폄훼되고 있다. 하지만 같은 정파에 속하는 다른 유력정치인이 이러한 비판을 제기한다 점에서 이는 단순히 정치적 공격으로만 치부될 수 없는 것이다. 가령, 손학규 전경기지사는 ‘70-80년대 권위주의적 리더십이나 몇 개의 산발적 프로젝트로 선진복지국가를 만든다는 것은 환상이고.. 과거 개발시대 패러다임을 갖고 21세기 선진강국을 만들 수 없다’고 비판한 바 있다.
. 경부운하를 통해 국가융성을 주장하는 것은 청계천 리모델링에 대한 시민적 지지를 과대평가한데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경부운하담론은 청계천 리모델링의 ‘성공 아닌 성공’을 국가적 차원으로 확대하는 것이지만 청계천 복원류의 진정성 없는 개발정책은 거기서 멈추어야 한다. 경부운하 건설이 가능하고 또한 경제적으로 타당하다 하더라도, 이는 개발정책을 주무하는 부처의 장이 발표할 것이지 일국을 이끌 지도자가 국운융성을 운운하면서 올인(all-in)할 성질의 것은 결코 아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경부운하건설로 물류비가 3분의 1로 준다는 주장은 신빙성이 없을 뿐 아니라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1996년 국회에서 질의할 당시나, 지금이나, 경부운하가 건설되면 물류비가 3분의 1로 줄어, 물류혁명은 물론이고 운하건설에 따른 고용창출, 지역경제 활성화 등을 주장했다. 그러나 1996년과 2005년 사이 도로는 8만2342km에서 10만2293km로, 고속도로는 1866km에서 2932km로 늘어났다. 매출액에서 기업의 물류비 비중도 1996년 12.6%에서 2005년 9.9%로 늘어났다(길윤형, 2006). 전국화물물동량조사에 의하면, 경부운하의 연결구간인 수도권과 영남권 사이의 물류통행량은 전국의 3%이고 컨테이너 물동량은 전국의 12.4%에 불과해, 경부운하 건설로 컨테이너 화물의 20%, 벌크 화물의 40%를 흡수한다고 물류혁명이 일어날 수 없다(염형철, 2006).
, 다른 대안(예, KTX를 이용한 물류개선 등)과 비교하면 더욱 충분한 타당성을 갖기 어려우며, 설령 타당하다 하더라도 물류비 3분1 감소로(파생효과를 포함해) 국가경제가 선진화된다고 믿을 사람은 별로 없다. 산업화 초기, 철도․도로․해운 등과 같은 교통통신의 혁명은 콘트라티프가 말하는 자본주의의 장기파동(50-60년을 한 주기로 함)에서 상승국면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지구화 시대인 지금, 물길하나 여는 것으로, 물류비 일부가 절감되는 것으로 산업이 재흥하고 국가경제가 부활하며, 그래서 국운이 융성한다고 주장은 누가 봐도 설득력이 없다. 우리사회가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선 중진국 함정에 빠져있는 정치경제 시스템 전반을 업그레이드 하면서 지속가능한 발전 한국의 근대화는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담보하지 못해 온 한계를 가지고 있다. 경제규모에서 한국은 현재 세계 11위에 해당하지만, 2005년 지속가능성 지표를 보면 세계 146개국 중에서 122위이다. 이런 상황에 경부운하 건설과 같은 토목주의적 개발정책을 중심으로 국가발전을 추구하면 한국의 발전은 지속가능성과 더욱 멀어지게 된다. 지속가능하지 못한 발전은 미래세대가 그 비용을 우선적으로 부담하지만 자연의 황폐화로 인간생명이 위협받는 비용은 현세대를 포함한 국가사회의 모든 성원이 부담하게 된다 (조명래, 2006).
을 이끌어낼 수 있는 철학과 비전이 우리가 지금 필요로 하는 리더십의 덕목이다.

둘째, 개발주의에 대한 편집증과 토건국가로의 전락 위험성

경부운하 담론은 개발주의에 대한 강한 편집증을 보여주고 있고 또한 한국의 국가를 토건국가로 전락시킬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한강-낙동강 물길을 잇는 대규모 토건사업을 통해 고용을 창출하고 지역경제가 활성화되며 물류개선을 통해 산업경쟁력을 높인다는 발상은 전형적인 개발주의 사고를 반영한다. 토건 및 토목사업의 지속적 추진을 통해 가시적인 발전의 성과를 추구하고자 하는 이런 류의 사고는 개발이 아니면 발전이 없다는 개발주의에 대한 일종의 편집증을 드러내고 있다. 때문에 이러한 성향의 지도자가 국가를 경영하게 되면, 국가차원에서 대규모 개발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개발기구, 개발정책, 개발행정을 확대시켜 가는 가운데 국가 자체가 토건국가로 전락된다. 따라서 경부운하 건설이 성공적일수록 토건국가의 현상은 더욱 깊어진다. 가령, 강 모래를 채취해 이의 판매를 통해 개발재원을 확보한다면 모래를 이용하는 아파트 건설 등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데, 경기가 좋을 경우는 건설경기가 과열화되어 집값 등 부동산 가격 앙등을 초래하게 되고, 경기가 안좋으면 미분양이 속출해 지방경제를 황폐화시킬 수 있다. 건설사업의 확장에 따른 지역환경의 파괴, 지방토건세력의 발흥 등의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이명박 전시장은 경부운하 건설이 ‘청계천 복원 보다 더 쉽다’고 자주 언급하고 있다. 이는 청계천복원시에 ‘청계천 복원은 간단하다. 뜯고 물 흘러 보내는 사업이다’이라고 언급했던 것과 비슷하면서 더욱 위험한 개발주의 사고 일단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다. ‘뜯고 물 흘러 보내는 방식’으로 추진한 결과, 복원 청계천은 자연을 거세한 것이 되었고, 그 결과 제대로 된 생태복원을 위해 많은 돈을 들어 언젠가 대대적으로 뜯어고쳐야 할 짐이 후대에 남겨졌다. ‘경부운하가 청계천 복원 보다 더 쉽다는 주장’대로 경부운하가 건설되면 청계천의 잘못된 복원 보다 더 심각한 문제와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 청계천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복잡한 역사적, 문화적, 생태적, 경제적, 정치적 쟁점을 포함하고 있는 경부운하 문제를 ‘청계천 보다 더 쉽게’ 여기는 그의 주장은 그의 개발만능주의 철학을 보여주거나 아니면 국토환경을 바라보는 반생태적, 반역사적, 반문화적 사고를 보여주는 것에 다름없다.

셋째, 정책의 경제적 합리성을 정치적 합리성으로 대체

경부운하 담론은 정책의 경제적 합리성을 정치적 합리성으로 포장함으로서 장기적인 사회경제적 비용을 유발할 수 있다. 국책연구기관에 의해 타당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나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전시장은 이를 번복할만한 논거나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경부운하건설은 국운융성 위한 필요한 국가적 사업이라고 일방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객관적인 자료나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선거공약으로 경부운하를 내걸게 됨에 따라, 사업의 경제적 합리성이 정치적 합리성으로 대체하거나 포장되고 있다. 그간 우리는 표를 얻기 위해 급조된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뒤 이를 국책사업으로 둔갑시켜 억지 춘양식으로 추진하는 가운데 많은 사회경제적 갈등과 비용을 발생시키는 경우를 너무나 자주 보아 왔다. 경부운하는 어느 토목사업보다 불확실성이 많고, 또한 현재의 평가기법으로 올곧게 평가할 수 없는 다양한 가치적 요소를 함축하고 있어, 이에 대한 체계적인 검토, 국민적 합의, 올바른 추진체계 등이 강구되지 않으면 ‘재앙’에 가까운 국토환경의 황폐화를 불러올 수 있다. 개발주의 편집증에 빠진 리더십 하에서 추진되면 경부운하는 이러한 후유증을 더욱 많이 초래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운하건설론자들이 준거모델로 삼는 독일에서도 목도되는 바이다. 운하건설론자들이 독일의 라인-마인-도나우 운하를 성공사례로 부각시키면서 벤치마킹하고 있지만, 독일 사민당 출신의 연방교통부 장관을 지냈던 폴커 하우스는 ‘라인-마인-도나우 운하는 인류가 바벨탑을 쌓은 이래 두 번째로 바보 같은 짓’이라고 말한 바 있다.

넷째, 한반도 생태역사의 단절과 생태적 홀로코스트(holocaust)

경부운하 담론은 지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국토개조란 이름으로 영겁의 세월을 통해 형성되어 온 한반도 생태역사와 생태문화를 폐절시키고 생태적 홀로코스트를 불러 올 수 있는 점이다. 주지하다시피, 한반도의 역사는 한반도의 자연에 터한 생태역사이고, 그 정초엔 백두대간과 이를 근간으로 하여 형성된 강유역권이 깔려 있다. 가령, 영남지방은 백대대간(영)의 남쪽으로 낙동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강유역권을 말한다. 영남의 역사와 문화는 바로 이러한 낙동강 생태계를 바탕으로 하는 역사이고 문화다. 마찬가지로 기호지방은 한강수계를 중심으로 하는 생태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한반도 남단에서 전개된 5천 역사는 바로 이러한 강유역을 바탕으로 하여 구축된 생태적 역사다. 해서 한강과 낙동강의 물줄기를 잇는 것은, 물류혁신과 지방경제 활성화란 당대의 물질적 이익과 편리를 위해, 한반도 남단에 오래 세월 형성되는 온 초역사적이고 초경제적인 생태문화적 가치와 자산(당대의 경제적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을 청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같은 생태역사적 특수성은 운하건설론자들이 준거로 삼는 독일에선 찾을 수 없는 우리의 특이성과 독특함이다. 수 십개의 댐과 갑문이 들어서고 강이 직강화 되며 많은 유량을 담아내기 위해 하상이 넓어지면, 운하 500km 주변의 하천생태계가 파괴되고 또한 수많은 문화유산과 하천경관이 유실되거나 사라지게 된다. 더욱이 물줄기가 이어지면 한강과 낙동강 수계에 독특하게 형성되어 있는 어류 등의 서식체계는 광범위하게 파괴되어 생태적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실현되어야 할 생물종과 문화종 다양성을 해치게 된다. 이는 일종의 생태적 홀로코스트(holocaust)다. 개발주의 편집증 혹은 토건적 개발주의에 빠져있는 입장에서는 이러한 생태역사적, 생태문화적 가치가 제대로 평가될 수 없으며, 평가된다 하더라도 경제적 가치를 실현하는 수단으로만 간주될 뿐이다.

다섯째, 새로운 지역주의와 지방개발주의의 발흥

경부운하는 특정지역으로부터 지지를 얻기 위한 정치적 프로젝트로 추진되는 성향으로 인해, 그 추진과정에서 새로운 지역주의와 지방개발주의를 자극해 지방자치를 개발정치로 오염시키게 된다. 대구지역을 방문하면서 이명박 전시장이 행한 ‘경부운하를 건설해 서울-부산간 물길이 열리면 대구는 항구도시가 되어 가장 잘사는 지역이 될 수 있다’는 발언은 이미 ‘섬유업의 퇴조 등으로 만성적인 경기불황을 겪고 있는 대구를 항구도시로 바꿔 한국서 가장 잘사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귀 솔깃한 공약’이었다는 평을 듣고 있다(박태견, 2006). 실제 경부운하 건설을 운운하면서 영남지역을 순회한 결과 그에 대한 지지도에 의미 있는 변화가 나타났다. “한길리서치가 2006년 10월14-15일에 조사한 대선 예비주자 지지율을 보면, 대구․경북 지역에서 이명박 전시장은 37.4%로 28.9%를 얻은 박 전대표를 8.5% 포인트 차로 앞질렀다. 이 지역에서 이 전시장은 박 전대표에게 줄곧 뒤졌고, 한 달 전 실시된 같은 조사에서도 11.9%포인트 차로 뒤진 바 있다. 지지도 변화와 경부운하가 어떠한 상관관계에 있는 지를 밝히기 위해서는 정교한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경부운하는 영남지역에 ‘새로운 도약’으로 스며들고 있다.”(최은주, 2006). 그래서 “여당의 한 대선 예비후보 쪽은 경부운하가 대구․경북과 충청 지역을 거친다는 점에서 신지역주의 부활‘이라고 공격한 바 있다(최은주, 2006). 지역발전을 합리적으로 추구하는 것이야 누구나 원하는 바이고, 경부운하 건설이 이러한 방식의 지역개발을 유도해낼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표를 얻기 위한 전략으로 추진되는 개발사업들이 지역주의를 자극하게 되면, 개발에 대한 과도한 요구와 기계적인 추진으로 말미암아 개발과정에서 많은 폐해를 낳게 된다. 이는 토건국가 현상이 지방화되는 것의 또 다른 측면이라 할 수 있다.

여섯째, 국민 정치의식의 퇴행과 발전기회의 상실

특정 정치인에 대한 지지의 연장으로 타당성이 검증 안 된 운하사업을 맹목적으로 지지한다는 것은 분별있게 판단하고 실천해야 하는 국민들의 정치의식이 그만큼 황폐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적 현안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무차별적으로 비판하고 공격하는 방식으로 논의되면 사안을 합리적으로 논의하고 토론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해진다. 경부운하는, 이렇게 정치적으로 논쟁하기에 앞서, 전문적인 기관이나 조직에 의해 체계적으로 분석되고 검토되어야 할 사안이다. 표를 얻기 위해 경부운하건설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선동적으로 주장하고, 또한 그러한 주장에 대해 정치적으로 동조하거나 반대하는 과정에서, 경부운하와 관련된 실체적 쟁점들은 무시되거나 부차화 된다. 이것이 함의하는 바, 이러한 복잡한 사안을 선거전략으로 삼게 되면 그와 관련된 국민일반들의 정치의식을 그만큼 퇴행시키게 된다는 사실이다. 올바른 의식을 가진 정치지도자라면, 이제 더 이상 혹세무민하는 정치적 의제를 가지고 권력을 잡으려 해선 아니 될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국가적 과제가 이렇게 성급하게 동원되는 방식으로 추진되면, 이는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추진되어야 할 국가발전의 기회를 앗아가는 것이 된다. 이는 선진국을 향한 발전기회의 상실을 뜻한다.

일곱째, 신개발독재의 등장?

경부운하 담론은 신개발독재의 등장을 암시하고 있다. 대규모 토목사업이 국책사업으로 결정되어 추진되면, 사업의 성격상 충분한 논의와 합의를 바탕으로 하기보다, 일부 추진주체(대개는 개발주의 세력)들이 폐쇄적으로 결정하고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것이 지금까지 관례다. 사안이 복잡하기 그지없는 경부운하의 경우도, 이를 공약으로 내건 후보가 당선되면, 공약이행이란 미명으로 추진의 합법성을 내세워 추진과정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문제제기를 일축하면서 일방적으로 추진될 개연성이 너무 크다. 실제, 이명박 전시장이 시장재임시절 추진한 주요 시정을 보면, 겉으론 시민들의 의견을 모으고 민주적으로 추진한다고 하면서 실제는 스스로의 판단을 중심으로 일방적으로 추진되어 왔던 것이 태반이다. 그래서 시장재임시절 그는 이미 ‘독선적 리더십’, ‘불도저 시장’, ‘신개발주의 리더십’, ‘개발 일방주의 드라이브’ 등의 다양한 평을 들었다. 지금도 주요정책을 추진할 때면, 현대건설 시절 이룩한 업적을 내세워, 그는 그의 독선적 리더십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준거로 삼는 리더십은 많은 경우 박정희이나 정주영과 같은 개발 독재형이다. 근자에는 일상정치에서도 그러한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 가령, 대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는 그에게 제기된 각종 의혹과 비판을 법정대리인을 내세워 고발고소하는 등으로 대응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풀어야할 부정적 비판을 법률적 잣대로 일일이 대응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그가 권력자가 되면 그 권력을 이용해 그의 개발주의 독선적 리더십에 대한 어떠한 도전과 비판도 허용하지 않을 것임을 읽게 해준다.

5. 맺음말: 시민사회의 대응과제

경부운하가 충분한 검증과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경부운하가 선거공약으로 채택되어 추진되는 것은 이 시대 우리가 겪는 하나의 비극이다. 토목주의 건설관을 국가융성이란 국가철학으로 둔갑한 채, 정치적 인기영합주의를 이용해 이를 정당화하면서 국민적 지지를 얻어 내고 있는 현실은 더욱 우리를 슬프게 하고 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경부운하 건설로 국가융성’을 꿈꾸어야 하는 지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반문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현실은 저러한 꿈에 대한 호소가 갈수록 설득력을 얻고 있지 않는가? 경부운하는 기술적으로 가능하고 경제적으로 타당하다 하더라도 21세기를 이끌 지도자가 올인 할 성질의 의제가 아니다. 더욱 경부운하가 아무리 타당하다 하더라고 그로 인해 초래될 한반도 생태역사와 생태문화의 단절은 우리 세대가 역사에 남길 가장 큰 빚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비관스럽게도, 경부운하 건설의 문제를 제기하면 할수록 정치적 효과를 발휘해 운하건설론자들의 정치적 입장만 유리하게 한다. 이런 점에서 문제제기는 조심스러워한다. 특히 시민사회에 의한 문제제기는 정치적으로 역풍을 맞거나 악용될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서, 우리는 세 가지 문제를 시민사회를 통해 제기하고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첫째, 경부운하 건설의 타당성 문제를 지금과 같은 토목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한반도 생태역사와 생태문화의 관점에서 제기하고 논의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 개발주의 리더십과 개발독재형 리더십의 문제를 집요하게 제기하고 이를 넘어서는 대안적 리더십이 사회적으로 논의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독선적 리더십이 권력으로 이어지면 국가-시민사회의 민주적 관계유지는 더 이상 지탱될 수 없다. 셋째, 선거과정에서 선동적으로 제시된 공약이 국책사업과 같은 공식적인 정책으로 전환될 때는, 이를 검증하고 국민적 합의를 거쳐 추진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예, 국책사업관리법)를 강구하도록 해야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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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견, 2006, ‘이명박식 뉴딜, 경부운하 논란 재연’, <<뷰스앤뉴스>>, 200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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