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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심포지엄]강원 DMZ일원의 보전과 지속가능한 발전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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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DMZ일원의 보전과 지속가능한 발전 전망

함광복* 강원도민일보사 논설위원 실장
*

1. 한국 DMZ의 재발견

DMZ에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은 자연’이 있다고 평가하는 것은 몇 가지 오해 때문이다.
첫째, DMZ에는 DMZ가 없다는 사실에 대한 오해다.
정전협정 제1조 제6항은 ‘쌍방은 모두 비무장지대 내에서 또는 비무장지대로부터 또는 비무장지
대를 향하여 어떤 적대 행위도 감행하지 못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 제10항은 ‘민사행정
및 구제사업을 위하여 비무장지대에 들어갈 것을 허가 받은 군인 또는 사민의 인원수는 각각
1,000명을 초과하지 못하고, 휴대무기는 자동화기가 아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남
북한군의 방어 철조망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시계(視界)와 사계(射界)가 용이한 곳을 찾
아 한 발짝, 한 발짝 전진했으며 그 결과 DMZ 전 지역에서 ‘군사분계선(Military Demarcation
Line)’을 중심으로 2km씩 후퇴하기로 했던 최초의 약속이 지켜지고 있는 곳은 단 한군데도 없다
고 봐야 한다. DMZ는 DMZ에서 사라졌다. 그 곳은 중무장지대인 것이다.
둘째, 그 곳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 뒤에서 수행되는 이 교묘한 전쟁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화공전법’은 아직도 활용되고 있는 DMZ의 전쟁 방법이다. 2월 중순~5월 사이,
시계와 사계를 가리는 초목을 태워 없애는 것이다. 이 기막힌 ‘불 전쟁’으로 DMZ 내에서는 2000
년 한 해 19회의 불이 발생했으며, DMZ 총면적의 40%에 이르는 371㎢의 숲이 불탔다. ‘화학전
법’도 동원됐다. 1968년, 1969년 2년간 DMZ의 풀과 나무는 에이전트 오렌지, 블루, 모뉴런 등과
같은 고엽제의 집중적인 세례를 받았다. 1974년 11월15일 중부저선 군사분계선 표지판 0270호
남쪽 1km 지점에서 땅굴이 발견된 이래 ‘땅굴전법’은 상식화 됐다. 약 200만발의 지뢰가 묻힌 것
으로 추정되는 DMZ는 ‘지뢰전법’이 실전에 활용되고 있는 곳이다. 또 지금은 철거됐지만 휴전 이
후 지금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쌍방이 서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가공된 뉴스나 해설은 물론 가
요, 경음악, 또는 비방 등 ‘선전전법’을 쏟아 붓던 ‘소음의 전쟁터’였다.
셋째, 그 곳의 인구활동을 무시하는 것은 실수 중의 실수이다.
DMZ를 자연의 보고라고 하는 것은 그 곳의 높은 인구밀도를 계산하지 못한 실수에서 오는 오류
이다. 센서스에 나타난 인구통계는 DMZ 내 인구를 감쪽같이 속이고 있다. DMZ에서 군인은 늘 ‘숨
겨진 인구’이다. 접경지인 강원도 화천군의 면적은 909.45㎢이다. 1999년 말 현재 인구 현황은
총 8,813세대, 25943명(남 13,352명/여 12,591명), 인구밀도는 28.5명이다. 한국에서 두 번째로
인구밀도가 낮은 곳이다. 그러나 이 인구는 민간인만을 말하는 것이다. 주둔군인 인구를 포함할
경우 화천군의 인구밀도는 60명 선까지 올라간다. 민통선 북방지역을 포함한 강원, 경기도 15개
시,군, 98개 읍,면,동이 비슷한 현상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린 DMZ와 민간인 통제구역을 어떻게 봐야 할까. DMZ와 그 주변지역은 강력한 군
사적 간섭을 받는 지역이다. 그러한 군사적 간섭이 오히려 그 곳을 산업화의 간섭으로부터 보호
하는 기능을 했다면 그 속에는 과거에는 그 가치를 미처 몰랐던 값진 것들이 덜 망가진 채 보존
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는 그 속에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전혀 다른 것들이 생성되고 있을 지
도 모른다. 그런 눈으로 DMZ와 민통선 북방지역을 바라볼 때 ‘DMZ=자연’이라는 편협된 관념에서
자유스러워 질 수 있다. 당장 여섯 개의 얼굴이 보인다.

1) 뜻밖의 자연, 전쟁자연생태계

DMZ 자연생태계 조사는 기록상 휴전협정 직후부터 자원 조사 명목으로 실시된 것으로 돼있다.
그 일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1954년 : 휴전협정 다음해 한국 정부의 민통선 지역을 대상으로 실시.
▶ 1966년 : 한국자연보존연구소(한국자연보존협회 전신)와 미 스미소니언 연구소 2년 동안 예비
학술조사
▶ 1972년 : 한국자연보존협회 66년 조사지역 재조사. 문화재관리국 재정보조
▶ 1987년 : 자연보호중앙협의회 민통선북방지역 자원조사
▶ 1991년 : 성천문화재단 3년 간 생태조사/환경부 강원 경기도, 도서지방(백령, 연평도) 자연생
태조사
▶ 1995년 : 환경부 강원도 민통선지역 자연환경정밀조사/산림청 임업연구원 2000년까지 비무장
지대 인접지역 자연생태 조사
▶ 1996년 :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강원도 3개 지역 생태계보호지역 지정 용역조사(환경부)

그 외 국토통일원이 접경지역 기초조사를 한 일이 있다.

국제기구에 의한 DMZ 생태 조사도 있었다. 1992년 국제자연보호연맹(IUCN)은 유엔환경계획(UNEP)
을 통해 DMZ국제공원조성을 제안하면서 미 웨스팅사에 DMZ 서부지역과 동부지역의 자연조사를 의
뢰했으며, 미 아시아재단에서도 이 무렵 재미 한국 학자에 DMZ자연생태 연구를 용역 준 일도 있
다. 1996년엔 유엔개발계획(UNDP)이 서울대 환경생태계획연구실에 DMZ생태조사를 의뢰했었다. 언
론, 환경단체 등이 취재, 독자적 목적에 따라 조사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DMZ 생태계가 과거 전
쟁으로 파괴되고 그 후 반세기 동안 냉전 영향을 받은 ‘자연스럽지 못한 자연’이라는 관점에서
조사된 일은 없었다. 다만 1995년 비무장지대예술문화운동 협의회가 발간한 ‘비무장지대의 과
거․현재․미래’의 한 논문은 당시 환경처가 조사한 DMZ 인접지역의 녹지자연도 실상을 구체적으
로 밝히고 있다. 이 논문은 강원도 DMZ 인접지역의 숲은 88.4%가 녹지자연도에서 등급 7이하라
고 주장했다. 등급 7이란 20년 생 미만의 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정도를 일컫는다. 향로봉 산
맥일대에도 50년 생 이상의 나무가 주를 이루는 등급9의 임상이 있지만, 그 양은 전체의 1.5%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경기도 지역은 더 보잘것없었다. 등급7이하가 87.3%, 등급2이하가 51.2%나
된다는 것이다.
DMZ일대는 생태적 천이가 중단된 방해극상(妨害極相:Dis-climax Forest)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주
장하는 학자도 있었다. 온대지방의 경우 삼림이 파괴된 후 극상림(極相林:Climax Forest)에 도달
할 때까지 150~���200년이 걸린다고 볼 때 현재 이 일대는 생태적 천이(生態的 遷
移:Ecological Succession)이가 지속중이거나 천이 자체가 방해받고 있다는 것이다.
DMZ 자연조사의 결정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임업연구원의 조사결과도 비관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DMZ일대의 임목축적량이 남한 평균의 48%밖에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상당한 지역이 당
장 복원하지 않으면 안 될 빈약한 자연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DMZ 자연에 대한
그런 비판은 그곳에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자연’이 있기를 바라는 일반의 기대 때문에 주목
받지 못했다.
그러나 늦었지만 DMZ 자연생태계는 막연한’자연생태계의 보고’가 아니라, 냉전이 빚어낸’매우 독
특한 자연생태계’로 정정돼야 한다.
생태학적으로 DMZ의 특징은 능선 신갈나무, 골짜기의 버드나무 ․ 신나무 ․ 오리나무, 넓은 개
활지의 초지와 습지, 자랄 대로 자란 아카시아나무 숲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DMZ에 더 눈
을 가까이 해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그곳은 외래식물 돼지풀과 단풍잎돼지풀이 대군락지를 이
루면서 전 국토에 종족을 번식시키는 진원지가 되고 있으며, 울창해야 할 숲이 훼손된 곳은 초지
가 형성됐고, 그 풀밭으로는 고라니떼가 몰려들고 있다. 멧돼지 일가가 군인들의 ‘잔밥’을 구걸
하거나, 천연기념물 산양이 군인들이 던져주는 배추 덩이에 폭설기를 넘기고 있으며, 1993년 겨
울 DMZ에 첫 출현한 몽골산 독수리떼는 인근 축산농가에서 공급하는 폐기물로 겨울을 나고 있
다. 그런가 하면 유행성 출혈열, 말라리아가 연례적으로 발생하는 곳, 오소리가 소를 물어뜯은
이상한 일이 벌어진 후에는 반드시 광견병이 발생하는 곳도 그곳이다. DMZ는 자연의 피난처이
자, 자연이 냉전간섭을 뿌리치고 또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려는 생명력의 현장이다. 그곳은 결코
교과서대로 천이가 진행되지 않은 전혀 뜻밖의 자연이 있는 곳이다. 그곳을 지구에 단 하나밖에
없는 냉전자연생태계공원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2) 살아있는 전쟁박물관

6.25전쟁은 3년 1개월의 전쟁기간 가운데 3분의 2를 현 휴전선 일대에서 치른 특이한 양상의 전
쟁이다. 즉 전장이 휴전선 일대에 집중된 전쟁이다. 1951년 7월 10일 휴전교섭이 시작된 이래
1953년 7월 27일까지 2년여를 고스란히 한 자리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기 때문에 DMZ 일대는
전 지역이 피아가 서로 전승지로 내세우는 전적지이다. 한편으로는 포탄과 총탄으로 피 멍이 든
땅이다. 수많은 나라, 수많은 사람들의 수만 가지 얘깃거리가 묻혀있고, 별의 별 작전과 전술이
전개됐으며, 재래식 무기로는 최첨단 성능을 보였던 갖가지 신무기가 동원됐던 그 전쟁터다. 이
를 테면 DMZ 일대의 산, 강, 들판은 그 전쟁의 증거물들인 것이다.
그러나 그 증거물들은 지금 노인이 된 역전의 노병들의 가물가물한 기억 속이나, 그들이 후손들
에 남긴 옛날 얘기 속에나 남아있다. 또는 오래 전 기록된 전사 속의 ‘잠자는 역사’가 되고 있
다. 그 역사를 지금 강원도내 ‘단장의 능선 전투전적지’ 등 22개 전적지 그리고 ‘설화희생충혼순
국비’ 등 72개 비석, 탑, 건물, 교량 등의 냉전 기념물들이 새겨 놓고 있다.
2004년 6월3일과 4일, 남북한은 설악산에서 제2차 남북장성급군사회담을 개최했다. 이 회담에서
대한민국 국방부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인민무력부는 역사적 합의를 했다.
즉, ‘쌍방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쌍방 군대들 사이의 불신과 오해를 없애기 위해
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선전활동을 중단하고 선전수단들을 제거하기로 하였다’고 합의한 것이
다. DMZ의 선전물과 선전방송은 남북한군간의 진지한 전쟁수단이었다. 이 합의에 따라 쌍방은
2005년 여름까지 남측 100여 개, 북측 150여 개의 시각매개물을 제거했다. 드디어 심리전의 막
을 내렸다. 그러나 DMZ가 진정한 DMZ가 되기 위해서는 사라져야할 전쟁도구들이 너무 많다. 심리
전 장비 철거를 합의 하기 전까지 쌍방이 갖추고 있는 DMZ 군사시설물은 다음과 같다. 북측은 철
책선 260㎞, 감시초소(Guard Post : GP) 158개, 관측소(Observation Post) 124개, 방송시설 117
점, 막사 등 지원시설 3,362동, 기타 선전물 등 314 개를 구축해 놓고 있다. 그 외 4개의 땅굴
과 밝혀지지 않은 또 다른 땅굴들도 있다. 이에 대응하는 한국군의 DMZ 군사시설물은 철책선 290
㎞, 감시초소 87개, 관측소 13개, 방송시설 107점, 막사 등 지원시설 1,209동, 길이가 공개되지
않은 시멘트방벽 등이다. 이들 시설물은 ‘지구상 가장 큰 설치미술’이라는 희화적 평가를 받던
것들이다. 그러나 그 전쟁도구들이야 말로 기념비적인 냉전의 산물이 아닐 수 없다. DMZ는 도발
과 음모 그리고 화해와 합의의 수많은 사건과 사고를 생산했던 현장이다. 그 기록들을 증언하고
있는 냉전사의 서고(書庫)인 것이다.
그곳을 재래식 전재의 교과서, 동서냉전의 현장, 살아있는 전쟁박물관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
다.

• 북․미 군사마찰 일지
▶ 1959.6.15 P4정찰기 동해상에서 피습, 조종사 귀환
▶ 1963.5.17 H23 헬기 비무장지대서 피습, 조종사 2명 귀환
▶ 1965.4.28 RB47정찰기 동해상서 피습, 조종사 귀환
▶ 1968.1.23 프에블로호 원산 앞바다서 피납, 승무원1명 사망, 82명은 11개월 후 귀환
▶ 1969.4.15 BC-121 정찰기 동해서 격추
▶ 1969.8.17 OH23헬기 DMZ남방서 피격, 승무원 생환
▶ 1974.5.9 OH58헬기 및 AIG헬기 임진강 부근서 피격, 인명피해 없음
▶ 1976.8.18 도끼만행사건 판문점서 발생, 미군장교 2명 피살
▶ 1977.7.4 CH47헬기 북한영공서 피격, 사망자3명, 생존자 1명, 2일 뒤 귀환
▶ 1981.8.26 R71정찰기 동해 공해상서 북한 미사실에 피습, 승무원 무사
▶ 1994.7.17 H58헬기 원통 부근 북한지역 불시착, 조종사 1명 사망, 1명 억류
▶ 2002.1.30 미 부시대통령, ‘악의 축’발언
▶ 2003.3.2 북 미그기 미군 정찰기 근접 비행

• 남․북 냉전일지
▶ 1955.5.28 ‘대성호’어부 10명 납치
▶ 1956.11.7 서해 상공서 아군기 2대 습격
▶ 1957.5.16 북 선박, 연평도서 어선 납북
▶ 1958.2.16 부산 수영비행장을 이륙, 서울로 향하던 창랑호(DC-3기, 승객28명, 승무원 3
명)를 무장 간첩들이 납치해 평남 순안비행장에 강제 착륙
▶ 1959.11.13 속초항 출발한 명태잡이 어선 용진호, 신영호 2척 납북
▶ 1960.8.24 연평도 근해 북 무장선 침범, 포격전 끝 격침시킴
▶ 1962.12.13 연평도 근해 북함정과 교전, 아군 6명 사상
▶ 1965.10.29 강화 앞바다 북함정, 어부 109명 납치
▶ 1967.1.19 동해 휴전선 근해에서 명태잡이 어선 보호하던 해군 제56함 당포호가 북한
군 육상 포대로부터 집중 포격 받고 침몰
▶ 1968.1.21 무장간첩 부대 청와대 기습 침투
▶ 1968.11.3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 1969.12.11 YS-11기 강릉 대관령 상공에서 공중 납북(승객, 승무원51명)
▶ 1970.6.21 연평도 서북방서 해군 방송선 납북(승무원 20명)
▶ 1970.7.22 국립묘지 현충문 폭파기도
▶ 1971.1.6 서해안서 북경비정 어선에 포격 1척 침몰
▶ 1972.2.4 대청도 서쪽해상 북한함정 포격, 우리 어선 1척 침몰
▶ 1973.3.7 군사분계선내 작업중이던 아군에 북 총격, 포격전 발생
▶ 1974.6.28 동해 해상 분계선 남쪽 거진 동쪽 25마일 해상에서 북한 해군 함정에 의해
해군 경비정 격침
▶ 1974.8.15 박정희 대통령 저격, 육영수 여사 서거
▶ 1975.10.6 대흑산도 무장간첩선 침투
▶ 1978.11.27 충남 홍성, 공주, 오산지역 3인조 무장간첩 출현
▶ 1980.3.23 한강입구 3인조 무장간첩 침투
▶ 1981.6.21 충남 서산 무장간섭선 격침, 9명 사살, 1명 생포
▶ 1982.4.21 중동부 전선 북한측 총격으로 경계초소(GP)간 교전
▶ 1983.6.19 문산천 침투간첩 3명 사살
▶ 1983.8.6 월성해안 무장간첩 3명 사살
▶ 1983.10.9 아웅산 폭탄테러
▶ 1983.12.3 부산 다대포 해안 간첩 2명 침투
▶ 1984.11.23 소련학생 마투조크 귀순때 판문점 JSA내 총격전, 아군1명 사망, 1명 부상,
북한군 3명 사망, 1명 부상
▶ 1986.4.24 동해 고성 앞바다 무장간첩선 격침
▶ 1986.9.14 김포공항 폭탄테러
▶ 1987.11.29 KAL858기 공중폭파
▶ 1992.5.22 무장병력 3명 중부전선 군사분계선 1km 침범, 전원사살
▶ 1993.5.3 DMZ내에서 아군 경계초소에 총격
▶ 1994.4.29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내 무장병력 40명 투입, 무력시위
▶ 1996.4.5~7 JSA내 무장병력 투입(200~300명),중화기 반입 박격포 진지 구축
▶ 1996.9.18 북한 잠수함 강릉 앞바다 좌초(26명 탑승) 13명 사살, 11명 자폭, 아군 14
명 사상
▶ 1997.6.5 북한함정, 서해 북방한계선 침범후 아군함정에 함포 3발 사격
▶ 1997.10.17 북한 무장군인 12명 대성동 주민 2명 납치
▶ 1998.6.22 북한 잠수정 1척 속초 침투(사체 9구) 발견
▶ 1998.11.18 북 반잠수정, 여수 침투
▶ 1999.6.7 북 경비정 서해NLL침범
▶ 1999.6.15 1차 서해교전
▶ 1999.9.2 NLL무효화, 해상군사통제수역 선포
▶ 2001.4.9 북경비정, 서해 북방한계선(NLL)침범
▶ 2001.6.2 북한 상선3척 제주해협 침범
▶ 2001.11.18 북한경비정, NLL침
▶ 2001.11.27 북한군 DMZ내에서 아군 경계초소에 총격
▶ 2002.6.29 2차 서해교전
▶ 2003.2.20 미그-19기 연평도 NLL 상공 침범
▶ 2003.2.24 북 지대함 미사일 동해상 발사.
▶ 2003.6.1 북한어선 8척 NLL 침범, 아군 경고사격
▶ 2003.7.17 경기도 연천 북방 20km지점 DMZ 안 북한군 경계초소에서 아군 초소에 총격

• 무장간첩 침투 주요 일지
▶ 1968.1.21 124군부대 무장공비 31명 청와대 기습 침투(29명 사살, 1명 생포, 1명 자폭)
▶ 1968.10.30 무장공비 120명 울진 삼척 침투(113명 사살, 7명 생포)
▶ 1969.6.12 흑산도에 간첩선 침투(3명 사살)
▶ 1970.4.8 경기도 금촌에 북한공작원 침투(3명 사살)
▶ 1975.9.11 전북 고창에 무장공비 2명 침투(1명 사살)
▶ 1976.6.19 중동부전선에 무장공비 침투(3명 사살)
▶ 1979.10.11 동부전선 비무장지대에 무장간첩 3명 침투(1명 사살)
▶ 1980.3.23 한강하구에 3인조 공비 수중침투(전원 사살)
▶ 1980.11.3 전남 횡간도에 무장간첩 침투(3명 사살)
▶ 1981.3.27 강원도 금화에 3인조 무장간첩 침투(1명 사살)
▶ 1981.6.21 충남 서산에서 무장간첩선 격침(9명 사살, 1명 생포)
▶ 1982.5.15 동해안에 무장공비 2인조 출몰(1명 사살)
▶ 1983.6.19 임진강에 3인조 무장공비 침투(전원 사살)
▶ 1983.8.5 경북 경주 앞바다에 출몰한 간첩선 격침(4명 사살)
▶ 1983.6.19 임진강에 3인조 무장공비 침투(전원사살)
▶ 1983.12.3 부산 다대포 침투 귀환 간첩선 격침(1명 사살, 2명 생포)
▶ 1985.10.20 부산 청사포 앞바다 출현 간첩선 격침(5명 사살)
▶ 1990.2월 하순 강화도 하일리에 고정간첩 김낙중 1차 침투(6명)
▶ 1990.10월 하순 강화도 하일리에 고정간첩 김낙중 2차 침투(6명)
▶ 1990.10월 하순 강화도 하일리에 고정간첩 김낙중 3차 침투(6명)
▶ 1992.2.10 서부전선 백학산 동북방 2.5km에 공비 3명 침투
▶ 1992.4.14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공비 3명 침투
▶ 1992.5.22 철원 남방 800m에 공비 침투(3명 사살)
▶ 1992.11.3 서부전선 전방 700m에 공비 3명 침투
▶ 1993.9.4 연천북방 DMZ내 공비 3명 침투
▶ 1993.10.4 강원도 명주군 주문진 동남방 3.km에 공비 3명 침투
▶ 1993.11.30 강화 교동도 빈장포 해안에 공비 3명 침투
▶ 1994.3.6 임진강에 공비 3명 침투
▶ 1995.10.17 임진강에 공비 3명 침투
▶ 1995.10.24 충남 부여군 석성면 정각사 뒷산 남파간첩 호송 무장간첩 2명 출현(1명 사
살, 1명 생포)
▶ 1996.9.18 강릉잠수함 무장간첩 26명 침투(13명 사살,11명 자폭, 생포1명, 1명 행불)
▶ 1998.6.22 속초 앞바다 북한 유고급 잠수정 1척 침투(9명 자폭)
▶ 1998.7.12 강원도 동해시 잠수복 차림의 무장공비 침투

3) 민간인 통제구역의 ‘민통선 문화’

군사분계선이 시작되는 임진강 하구에서 동해안까지 DMZ 내에만 1950년 대 기준 약 80개의 마을
이 묻혀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사실은 그들 마을의 언어, 풍속과 풍습, 산업형태까지 고스
란히 묻혀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냉전의 예기치 않은 생산
력으로 빚어낸 DMZ 문화이며, 그 독특한 문화가 평가되기도 전에 어느 날 냉전 종식과 함께 사라
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점이다.
1954년 2월 3일, UN군사령부는 수복지구, 즉 휴전 후 남한 땅이 된 북위 38°선 이북의 DMZ 이
남 땅, 해방 후 북한통치를 받다가 휴전협정으로 남한에 귀속된 땅에 대한 행정권을 한국정부에
이양했다. 미 8군은 DMZ의 군사작전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민간인의 출입을 통제할 완충대
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DMZ 밖에 귀농선(歸農線)을 설정했다. 그 선을 넘어 들어가 영농은 할
수 있었으나 거주는 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1959년 6월 11일 DMZ 방어 임무를 한국군이 담당하
게 됐다. 한국군은 귀농선 북쪽의 옛 논과 밭을 개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귀농선을 민간
인 통제선(민통선)으로 이름을 바꾸고 이 선 너머로 민간인을 입주시키기 시작했다.
군사목적상 민통선 범위를 가장 넓게 적용하던 1983년 현재 경기도 연천 ․ 파주 ․ 김포 ․ 강
화군, 강원도 고성 ․ 인제 ․ 화천 ․ 양구 ․ 철원의 민통선 북방지역 81개 지역에는 총 8,799
세대 3만 9,725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
민통선 북방지역의 영농은 반드시 갈대밭으로 변해 버린 옛 논과 밭을 개간 할 필요에 의해서
만 이뤄진 게 아니다. DMZ와 민통선북방지역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도 높은 비중을 차지
했다. 예를 들어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만대리의 경우이다. 해안분지 남쪽 만대리는 분지 바닥
에 낮은 산맥이 구릉 이루고 있는 곳이다. 군인들은 이 구릉지가 전략적으로 매우중요하다는 사
실을 알아 차렸다. 해안분지의 북쪽 벽엔 V자 홈이 패여 있다. 만대리에서는 그 홈을 통해 북한
군이 밀집해 있는 매봉(1,290m)이 빤히 바라다보였다. 그 V자 홈을 통해 매봉에서도 만대리가 바
라다 보일 게 뻔하다. 그들에게 해안분지의 사람들이 무척 잘 산다고 선전할 필요가 생겼다.
1972년 개척민이 들어와 만대리에 멋진 집을 짓고 지붕을 주황색이나 하늘색으로 칠한 것은 바
로 그런 필요에 따른 것이다. 잘사는 척 해보이는 그런 선전전은 북한이 오래 전부터 써먹던 방
법이다. 그들은 남쪽에서 잘 보이는 곳에 아파트나 집단촌을 건설해 놓고 남한 병사들을 유혹했
다. 순전히 선전용인 건물도 있었다. 군인들은 그런 건물은 연극세트처럼 한쪽 벽만 만들어 세우
고 뒤쪽은 각목을 받쳐놓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민통선북방지역에 건설된 98개의 자립안정촌, 12개의 재건촌, 2개의 통일촌, 즉 12개 민통선북방
마을은 국토이용 제고와 북한의 계획적인 선전촌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적 필요에 따라 세워진 것
이다. 따라서 민통선 이주는 마치 조선조의 사민(徙民)정책처럼 강력한 인구이동정책이 뒷받침
될 수밖에 없었다. 사민의 사전적 의미는 ‘백성을 이주시켜 국토를 개척하는 정책적 이주’이다.
여진족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6진을 개척하기 위해 남방 각 도의 백성을 이주시킨 것 같이 조선
조가 단골메뉴로 써먹던 인구이동정책이다. 사민정책의 에너지는 유토피아의 꿈이다.
민통선 지역에는 드넓은 농지가 전후 가난한 농민들을 유혹했을 것이다. 귀농선이 설정된 1954
년 이래 민통선지역에서는 20세기 판 대사민이 이뤄진 셈이다.
그들은 유토피아를 향한 그들의 꿈을 이렇게 적고 있다.
‘그대들은 알아야 한다. 조국강산의 가장 중심 된 이 농토가 누구의 피땀으로 가꾸어졌는가를.
울진 사라호 태풍 수재민 66세대는 1960년 4월7일 이 땅에 입주하여 고달픈 천막생활과 허기진
배를 주리며 피땀으로 얼룩진 괭이와 호미로 6.25동란 이후 버려진 황무지를 옥토로 가꾼 개척정
신의 빛나는 업적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조상들의 숭고한 뜻을 후세에 전하
기 위하여 여기 조그마한 비를 세운다. 마현(철원군 근남면 마현리) 청년회’
그 후 민통선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해안분지의 오늘’이 증언하고 있다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은 전역이 해안분지 속에 들어앉아 있을 뿐 아니라, 분지 전역이 민통선북
방지역에 묶여 있는 곳이다. 분지를 개척한 ‘민통선 1세대’들은 1956년 4월25일을 기억하고 있
다. 이날은 개척민 150가구 965명이 ‘정책 이주’한 날이다. 1972년 4월25일 2차 개척민 100가구
476명이 또 분지로 들어와 만대리에 정착했다. ‘민통선 1세대’들은 농촌의 관습대로 환갑을 전후
해 자녀들에게 일손을 넘겨줬다. 해안분지는 언뜻 봐서는 대를 이어 농사를 짓고 땅을 지켜가는
평범한 농촌의 하나이다. 2001년 11월 현재 해안분지의 경지면적은 밭 1,820ha, 논 539ha로 집계
됐다. 1980년대에 비해 논은 크게 늘지 않았지만 밭은 3배 가까이 늘어났다. 밭은 80%가 배추,
감자 등 고랭지 채소, 인삼밭, 고랭지 화훼농장으로 경작되고 있다. 그런 영농구조는 ‘민통선 2
세대’, 개척민의 아들 세대들이 개편해 놓은 것이다. 산업구조도 다양해졌다. 유흥음식점, 여
관, 여인숙, 중장비업, 부동산업도 등장했다. 그런 비영농업종은 민통선 2,3세대들이 경영하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 보면 해안분지의 오늘은 반세기동안 이 분지에 쏟아 부어졌던 이질
문화가 뒤범벅되고 숙성돼 전혀 다른 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흔적을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해안분지가 ‘평범한 농촌’의 얼굴을 하기까지 이 분지 속에서는 수많은 갈등이 빚어졌을 것이
다. 우선 이 분지의 민간인 입주가 정책적으로 이뤄지면서 발생하는 출신과 성분상의 갈등을 들
수 있다. 정책사민은 여러 문화와 가치관이 혼재하는,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제3의 문화를 만들
어 냈다. 해안분지의 원주민 구성비율은 1987년 자연보호중앙협의회의 민통선 북방지역 자원조사
에서 처음 실시됐다. 당시 해안면은 490세대 중 원주민 비율이 10%인 49세대에 불과했다. 341세
대는 강원도 양구, 홍천, 인제, 경기도 양평 등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1987년 7월 해안면 현리
성인 남자 162명의 호적기록으로 실시한 이 지방의 통혼권(通婚圈)조사에서 놀랍게도 89%가 분
지 밖의 여자와 결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해안분지의 대부분 남자가 분지 밖의 여자와 결
혼을 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정황으로 불가능했다. 이 조사는 역설적으로 이 분지내의 대부분 세
대가 전국각처에 본적을 두고 있다는 사실로 해석될 수 밖에 없다. 그 만큼 분지의 주민구성이
복잡하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전국 각처에서 모여든 이주민과 이주민, 원주민과
이주민은 피차 문화적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통제자인 군(軍)과 피통제자인 입주민과의 대
립과 견제는 분지주민들이 겪던 가장 큰 갈등일 수 있다. 주민들은 더 많은 토지를 원하고 있
고, 주둔부대는 이 같은 욕구를 자신들의 권한 이상의 통제수단으로 이용했던 흔적도 많이 남아
있다. 해안분지는 철저하게 파괴됐던 전쟁폐허였다. 이 분지의 민간인 입주정책은 주인 없는 땅
을 개간하는 것이고 초기 입주자들도 “갯버들로 뒤 덮인 주인 없는 벌판에서 지뢰와 나무뿌리,
그리고 추위와 배고픔으로 살았다”고 회고하고 있다. 그러나 그 곳은 일시 전쟁을 피해 떠난 땅
주인이 있었으며, 1945년 이후 1950년까지 북한의 통치를 받던 곳이다. 이 때문에 해안분지는 개
척초기부터 토지분쟁 소지를 안고 있었으며 ‘땅을 버리고 간 자의 자기 땅 되찾을 권리’와 ‘지뢰
밭을 헤치며 목숨을 걸고 개척한 자의 소유 권리 주장’ 그리고 ‘주인 없는 땅에 대한 국가의 귀
속 권한’이란 삼각관계로 진통을 겪었다. 아직도 땅을 둘러 싼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양구 해안면이 그렇듯이 대부분 민통선북방지역의 원주민 비율이 평균 10% 선을 넘지 않고 있
다. 원주민 구성비율이 낮은 이유는 수복지구 행정권이 대한민국에 이양되면서, 이들 민통선 북
방마을들이 원주민과 함께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외래민에 의해 재건됐기 때문이다. 1973년 7월
20일 정착한 철원군 김화읍 유곡리는 최초 60세대가 입주했으나 이중 30세대는 전역을 앞둔 현
역 장교, 하사관들이었으며, 나머지 30세대는 35세 이하의 예비군들로 한정하는 등 마을 인구를
물리적으로 구성한 ‘정책’ 때문이기도 하다.
복잡한 주민 구성은 서로 다른 문화가 부딪히고 어긋나게 하는 부작용도 있었지만 서로의 문화
가 융합 되기도 했다. 따라서 민통선 문화는 과거 역사와 단절됐을 뿐 아니라, 인문 환경이 다
른 지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만들어 낸 문화이다. 민통선 문화를 한국판 멜팅포트(Melting
Pot)로 볼 수 있는 것이다.

4) 그 곳은 거대한 역사유적지

DMZ 한 가운데 들어 앉아 있는 궁예도성을 일부 학자는 ‘현존하는 미발굴 유적지 중 가장 규모
가 크다’고 평가하고 있다. 서기 896년 궁예는 철원에서 자신을 왕이라고 선언하면서 국가를 선
포했다. 궁예는 그 때를 위해 4년 전 북원(원주)을 떠났다. 그는 양길로부터 얻은 600명의 군사
를 이끌고 동쪽으로 가고 있었다. 3년 후, 궁예는 엉뚱하게 북원의 북쪽, 반도의 서쪽인 철원에
나타났다. 그러나 그의 여정은 기록으로 제대로 남아 있지 않다. 역사 기록들을 짜깁기 해보면
궁예는 양길의 명을 받아 주천(酒泉)과 영월, 영주를 지나 태백산맥을 넘어 어진(울진)을 차례
로 정복하고 894년 10월 명주에 입성했다. 그는 명주에서 순식간에 2,900명의 병력을 불러 모았
다. 총 3,500명의 병력을 확보한 그는 14대로 부대 체제를 정비, 동해안의 명주를 떠나 저족(인
제) 생천(화천) 부약(금성)을 거쳐 이듬해 8월 한반도의 중심인 철원에 입성했다. 마침내 왕이
된 것이다. 명주를 출발한 그가 3,500명의 대군사를 이끌고 어디로 어떻게 태백산맥을 넘어 철원
에 이르렀을까. 역사 속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던 명주에서 철원까지, 894년 10월부터 이듬해 8월
까지 10개월 동안 그의 행적은 의문투성이다. 그러나 그의 흔적을 찾아 짜깁기 하면 그때 그는
금강산에서 말머리를 돌려 서쪽으로 가고 있었다. 금강산에서 인제, 화천, 금성, 철원, 개성 그
리고 다시 철원으로 되돌아와 태봉국을 세운 그 길 위로는 지금 DMZ가 지나가고 있다. 그는 그
때 1,000년 후의 DMZ를 걷고 있었다. 그리고 철원 풍천원 DMZ 한 가운데 그의 궁성 ‘궁예도
성’을 묻어 두었다.
관방(關防)유적은 성곽이나 봉수(烽燧), 진(鎭), 보(堡), 돈대(墩臺), 포대(砲臺) 같은 각종 군
사시설물 유적을 의미하는 용어다. 이들 관방유적은 육군박물관에 의해 산성 67개소, 평지성 15
개소, 봉수터 57개소, 진 ․ 돈대 ․ 포대 78개소, 기타 4개소 등 총 221개소가 확인됐으나 아
직 문화재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한 채 거의 방치되고 있다. 궁예도성과 함께 DMZ가 ‘보호’하
고 있는 역사유적들이다.

• 임진강 유역 및 철원 평야의 성지
1.오두산성 : 파주시 단현면 성동리, 석축산성, 둘레 1,200m, 삼국
2.덕진산성 : 파주시 군내면 정자리, 석축산성, 둘레 내성 600 외성 1,000m 삼국
3.월롱산성 : 파주시 덕은리 월롱산, 토석혼축, 둘레 1,000m, 삼국
4.봉서산성 : 파주시 내면 봉서리, 석축산성, 둘레 1,000m, 삼국
5.용미리성지 : 파주시 관탄면 용미리 명봉산, 석축산성, 둘레 460m, 삼국
6.금파리성지 : 파주시 파평면 금파리 산 18, 토축평지성, 둘레 1,500m, 선사
7.이잔미성지 : 파주시 적성면 장좌리, 석축산성, 둘레 300m, 삼국
8.육계토성 : 파주시 적성면 주월리 육계동, 토축평지성, 둘레 내성 120 외성 700m, 선사
9.칠중성 : 파주시 적성면 전읍리 148, 석축산성, 둘레 800m, 삼국
10.아미성 : 파주시 적성면 적암리, 석축산성, 270m, 삼국
11.당포성지 : 연천군 미산면 마전리, 토석혼축평지성, 둘레 내성 50 외성 150m, 삼국
12.호루고루성지 : 연천군 장남면 원당3리, 토석혼축평지성, 둘레 80m, 삼국
13.수철성 : 연천군 전곡면 양원리, 석축산성, 둘레 250m, 삼국
14.우정리성지 : 연천군 군남면 우정리, 토석혼축산성, 둘레 250m, 삼국
15.무등리성지 : 연천군 군남면 무등리, 석축산성, 둘레 200m, 삼국
16.초성리성지 : 연천군 청산면 초성리, 석축산성, 둘레 180m, 삼국
17.초성리토성 : 연천군 청산면 초성리, 토축평지성, 둘레 570m, 선사
18.대전리산성 : 연천군 청산면 대전리, 석축산성, 둘레 700m, 삼국
19.옥계리성지 : 연천군 군남면 옥계리 옥계봉, 토석혼축산성, 둘레 700m, 삼국
20.군자산성 : 연천군 연천읍 차단2리 군자산, 토석혼축산성, 둘레 450m, 삼국
21.삼거리성지 : 연천군 군남면 삼거리, 토석혼축산성, 둘레 360m, 삼국
22.은대리성지 : 연천군 청산면 은대리, 토석혼축산성, 둘레 370m, 선사
23.성령산성 : 연천군 연천읍 동막리, 토석혼축산성, 둘레 800m, 고려
24.동주산성 : 철원군 철원읍 산 21, 석축산성, 둘레 800m, 후삼국
25.궁예도성 : 철원군 철원읍 흥원리 북방, 토석혼축, 둘레 내성 600 외성 1,200m, 후삼국
26.고석정 : 철원군 동송읍 장흥4리, 석축산성, 둘레 820m, 후삼국
27.성산성 : 철원군 김화읍 읍내리, 석축산성, 둘레 880m, 통일신라
28.명성산성 : 철원군 갈말읍 신철원리, 석축산성, 둘레 2,000m, 후삼국
29.어음성 : 철원군 갈말읍 문혜리, 석축산성, 둘레 400m, 삼국
30.토성리토성 : 철원군 갈말읍 토성리, 토축평지성, 둘레 600m, 선사
31.성모루토성 : 철원군 양지리 오목동, 토축평지성, 둘레 190m, 선사
32.할미산성 : 철원군 동송읍 장흥4리, 석축산성, 둘레 250m, 삼국
33.중어성 : 철원군 무장면 대마리, 석축산성, 둘레 300m, 후삼국
34.성동리산성 :철원군 영중면 성동리 산727, 둘레 368m, 삼국
35.고소산성 : 포천시 창수면 고소성리, 석축산성, 둘레 444m, 삼국
36.소고산성 : 포천시 창수면 주원리 산186, 석축산성, 둘레 85m, 삼국
37.반월산성 : 포천시 군내면 구읍리 산734, 석축산성, 둘레 1,080m, 삼국
38.고모리산성 : 포천시 소흘읍 고모리 산734, 토석혼축, 둘레 830m, 삼국
39.운악산성 : 포천시 화현면 화현리 산202, 석축산성, 둘레 2,000m, 후삼국
40.보개산성 : 포천시 관인면 부곡리 산251, 석축산성, 둘레 4,100m, 후삼국

5)’근현대사 문화의 무덤’

구 철원읍은 민통선 이북의 철원평야, 그 가운데서도 노른자위 땅으로 구 철원군청 소재지였다.
일본이 1937년 발간한 철원읍지에는 당시 철원읍 인구가 4천269가구, 1만9천693명이라고 기록하
고 있다. 학교5, 은행4, 행정기관34, 여관, 식당, 술집은 103군데나 됐다. 1932년 작은 촌락이
읍으로 승격된 이래 커다란 도시로 발전한 것이다. 90년대 초 발행된 철원군지는 1945년 8월15
일 현재 철원읍 인구가 3만7천855명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학교나 은행 등이 얼마나 되었는지
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도시 최후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노동당사와 동주금융조합과 철원군
청, 수도국, 종연방적 등의 폐허가 말해주고 있다.
1914년 추가령열곡대를 따라 서울~철원~원산을 잇는 철도가 뚫렸다. 강원도 창도에는 철이 풍부
했다. 1926년 철원~창도를 잇는 철도가 뚫렸다. 1931년까지 창도의 철을 기차가 싣고 철원, 원산
을 거쳐 동해안 흠남제련소로 수송했다. 창도~내금강까지 철도가 연장 부설되던 1931년 7월1일부
터 철원~내금강까지 철도가 연장 부설되던 1931년 7월1일부터 철원~내금강 사이는 전기철도로 바
뀌었다. 산업철도가 관광철도로 바뀐 것이다. 철원은 농업의 중심, 교통의 중심으로 변했으며 도
시는 이런 산업을 담을 만큼 큰 그릇으로 변해갔다.
1945년 8월15일 이후 해방공간과 북한 정권 수립기 그리고 6.25 전쟁이 발발하기까지 5년 동안
은 북한이 통치하던 땅이다. 한때 북한은 일제가 건설한 그 계획도시 위에 북한 강원도청소재지
를 세웠었다. 그리고 ‘철원군노동당사’, ‘승일교’ 등 북한건축의 걸작품들을 건립했다.
그 도시가 지금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그러나 그 도시유적들이 지금 그 도시의 일상과 그 도시
의 길과 건물의 내력을 담은 근대사 역사책처럼, 그 도시 사람들의 말과 생각을 담은 설화책처
럼 그때를 증언하고 있다. 그 곳은 근현대사의 자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20세기 유적
지’이다. 전쟁이 그 도시를 파괴하고, 냉전이 그 도시의 재건을 막았지만 반사적 이익으로 그 곳
은 세계적인 근대건축 그리고 토목사 박물관으로 회생했다.

• DMZ 일대의 등록문화재
1. 철원 노동당사(제22호), 철원 철원읍 관전리 3-2외 4필지 (2002. 5. 31. 지정)
2. 철원 감리교회(제23호), 철원 철원읍 관전리 100-2외 1필지(2002. 5. 31. 지정)
3. 철원 얼음창고(제24호), 철원 철원읍 외촌리 603-1, (2002. 5. 31. 지정)
4. 철원 농산물검사소 (제25호), 철원 철원읍 외촌리 620-1(2002. 5. 31. 지정)
5. 철원 승일교 (제26호), 철원 동송읍 장흥4리, 갈말읍 문혜리 읍계 (2002. 5. 31. 지정)
6. 화천 인민군사령부막사 (제27호) 화천 상서면 다목리 (2002. 5. 31. 지정)
7. 파주 구 장단면사무소 (제76호) 파주시 장단면 동장리 515 (2004. 2. 6. 지정)
8. 경의선 구 장단역지 (제77호) 파주시 장단면 동장리 198 (2004. 2. 6. 지정)
9. 장단역 증기기관차 화통 (제78호) 파주시 장단면 동장리 198 (2004. 2. 6. 지정)
10. 경의선 장단역 죽음의 다리(제79호) 파주시 장단면 도라산리 894 (2004. 2. 6. 지정)
11. 화천 수력발전소(제109호) 화천군 간동면 구만리 (2004. 9. 4. 지정)
12. 화천꺼먹다리(제 110호) 화천군 간동면 구만리 (2004. 9. 4. 지정)
13. 금강산 전기철도교량(제112호) 철원군 김화읍 창리 산81-5 (2004. 9. 4. 지정)

그리고 그 곳은 한국전쟁 당시 12명의 목회자가 목숨을 잃은 순교지이다. 추가령지대는 한국 기
독교의 ‘바이블 루트’이다. 한국 전쟁 발발과 함께 경기도 파주에서 강원도 철원, 김화, 금성,
금강산에 이르는 지역에는 12명의 목회자가 순교한 감춰진 역사의 길이 덮여 있다. 한 지역에서
전쟁으로 12명의 목회자가 순교한 사건은 기독교 사상 그 유례가 없다.
한국 DMZ는 지구촌 냉촌사의 다큐멘터리이다. 그 곳은 이제 ’20세기가 지구에 남긴 냉전 유적
지’ 또는 ‘한국 DMZ 자연사 공원’으로 고쳐 불러야 할 필요가 있다.

2. 대안적 DMZ

1) 한시적 존재로서의 DMZ

DMZ를 바라보는 한국인의 생각은 어떤 것일까. 분명 DMZ는 언젠가는 사라지고 말 ‘한시적 유한
적 존재’다. DMZ는 남북의 두 정치 이데올로기가 충돌하는 전선이다. 두 세력간의 엄청난 군사력
이 맞닿아 있는 사실상의 전장이다.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어느 한 세력이 무너지
는 희생을 치르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곳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 힘의 균형이
깨지지 않는 ‘온순한 DMZ’가 유지되길 바라는 것이 정치적 희망사항이다. DMZ는 마치 비슷한 힘
을 가진 두 사나이가 팔씨름을 할 때의 그 정적 상태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곳의 평
화는 힘의 균형이 깨지기 전까지만 유지되는 매우 가장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DMZ는 한시적
존재인 것이다.
그 한시적 존재로서의 인식이 지금 DMZ 일대의 자연환경 및 문화자원의 보전과 관리의 발목을 잡
고 있다. 실증적 예가 DMZ와 관련된 각종 법령이다. DMZ와 관련된 법령은 정전협정, 접경지역지
원법, 군사시설보호법, 환경정책기본법, 자연환경보전법, 기타 환경보전을 위한 개별법 등이 있
다. 이 가운데 DMZ의 자연환경 및 문화자원 가치를 보전하기 위한 적극적인 법은 하나도 없다.
정전협정은 DMZ를 관리하기 위한 국제법이다. 상호 적대행위 금지와 자유로운 출입을 통제함으로
써 자연환경이나 문화자원이 간접적으로 보호됐을 뿐, 이의 보전과 관련된 사항은 없다. 접경지
역지원법은 접경지역의 경제발전, 주민복지 향상, 평화통일의 기반조성을 목적으로 제정됐다. 자
연환경 보전․관리에 대한 항목이 있으나 법이 취지는 어디까지 낙후지역의 개발을 촉진하기 위
한 것이다. 군사시설보호법은 환경보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법률이다. 그러나 군사
시설보호를 위한 각종 규제가 직접적으로 자연환경과 문화자원을 간섭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지, 적극적인 보전 방안을 수립할 수 있는 근거법은 되지 못하고 있다. 자연환경보전법은
DMZ 일대의 자연환경 보전을 위한 핵심적 법률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법은 DMZ에 관해 ‘관할권
이 대한민국에 속하는 날로부터 2년간 자연유보지역을 지정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관할권이
대한민국에 속하는 날’은 DMZ의 정치적 목적이 실효 됐을 때, 즉 대한민국 주도의 남북통일이 되
는 날이다. 따라서 이 조항은 관할권이 넘어오기 전에는 DMZ 환경관리를 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
름없다. DMZ의 자연환경 및 문화자원 보전 정책은 지금 당장 이 같은 제반 법제 정비의 필요성
에 발목이 잡혀있는 것이다.
DMZ는 언젠가 사라질 ‘한시적 유한적 존재’라는 인식은 DMZ와 이해관계가 직결돼 있는 접경지 주
민 의식 속에도 꽉 박혀있다. DMZ 일대는 휴전이래 접경지역적 특성으로 개발이 극도로 제한되어
왔다. 총면적 823.5㎢ 중 99.9%인 823.4㎢가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묶여 개발과 경제활동의 제약
을 받고 있는 강원도 철원군의 경우가 좋은 예다. 이들 지역에서는 남북간의 교류확대에 따라 통
일이 되면 한반도 중심으로서 중추적 위치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란 강한 기대를 갖고 있다. 이
들 지역에 자연환경 또는 문화자원의 보전과 관리 목적의 정책이 수립된다는 것은 주민들의 기대
와 꿈을 짓밟는 것이나 다름없다. 1995년 환경부는 철원평야, 양구군 대암산 ․ 두타연 일대, 인
제군과 고성군의 향로봉산맥일대 총 609.9㎢를 ‘자연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하려다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로 무산됐다. 2000년엔 철원평야 샘통 철새도리지(천연기념물 제245호)를 확대지정
하려다 실패했으며, 2001년엔 강화남단 갯벌을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하려 했지만 역시 무산됐
다. ‘접경생물권보전지역(TBR)’이나 ‘자연유산’은 그 취지 당위성에 앞서 당장 지역의 이해관계
의 장벽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2) DMZ에 대한 북한의 시각

‘접경생물권보전지역(TBR)’이나 ‘자연유산’은 그것이 DMZ 자연환경 및 문화자원 보전관리 정책
의 결정판이라고 하더라도 북한의 동의와 협력을 얻어야 하는 상대적 제약이 있다. ‘접경생물권
보전지역(TBR)’의 경우 지정 절차는 다음과 같다. 우선 남북한간의 ‘접경생물권보전지역(TBR)’
추진에 대한 공동합의를 도출해야 하고, 이를 실무적으로 추진할 실무 작업반을 구성해야 하며,
남북한 공동의 생태계조사(문화유적자원 조사 포함)를 실시해 용도구획 및 관리계획을 수립해 공
동 작성한 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남북한 관계에서 환경협력은 경제협력과 달리 우선
관심대상이 되지 못한다. 더구나 DMZ는 속성상 정치 군사적으로 매우 예민한 지역이다. DMZ 자연
환경 보전을 위한 북한의 협력을 이끌어 낸다는 것은 쉽지 않으며, 2001년부터 추진되고 있
는 ‘접경생물권보전지역(TBR)’에 대해 북한 당국의 자익 무응답이 그 실증이다.
2004년 10월 6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세계박물관대회(ICOM)의 박물관 및 유산위원회(ICOMOS)
에서는 DMZ를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지정 등록하자고 제안되고 있었으며, 이를 효율적으로 수
행하기 위해 북한측이 협력을 촉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같은 시각 북한의 중앙방송은 ‘DMZ 세계
문화유산 등록’ 움직임에 대해 “비무장지대는 나라의 통일과 민족공동의 발전을 가로막고 북남대
결과 군사적 충돌만을 초래하는 저주로운 민족분열의 상징이고 통일시대에 하루빨리 없애버려야
할 북남 대결시대의 유산”이라며 극력 반대했다. 중앙방송은 이날 시사논단 프로에서 “비무장지
대를 생태환경 보존이라는 구실을 붙여 세계유산으로 등록하고 국제관광지로 만들려 하는 데는
명백히 이 곳을 영구보존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구경시켜 우리 민족의 영구분열을 국제적으로 공
인시키려는 범죄적 기도가 깔려 있다”고 `’민족분열의 영구화 책동’으로까지 비난했다. 또 비무
장지대가 “이미 생태환경이 가장 혹심하게 파괴된 지역”이라면서 남측당국의 콘크리트 장벽 구
축, 유독성 화학물질 고엽제의 대량살포, 비무장지대 부근에서 군사훈련 실시 등이 그 원인이라
고 주장했다.
북한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10월 4일 이와 비슷한 담화를 발표했으며, 8일은 평양조선중안통신
이 노동신문의 논평을 인용해 같은 입장을 표명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3) 대안은 지자체의 전략적 사고다

1953년 7월 27일 생인 DMZ는 사람의 나이로도 만 51세를 넘겼다. 현역에서 은퇴할 나이를 먹고
있다. 이미 ‘그는’ 사라지기 시작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인류 평화라는 관점으로는 DMZ의 ‘탄
생’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본의와 관계없이 지금 뜻밖의 결과를 맺어놓고 있
다. 한국 DMZ가 냉전세기가 지구에 유일하게 남긴 냉전유적지이자, 자연사 공원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 반사적 이익만은 챙겨두어 유산으로 보전했으면 좋겠다는 것은 많은 이들의 희망이
다. 이를 보전하려는 여러 가지 방안이 발의되고 있고, 국제적 관심도 고양되고 있다. 그러나
DMZ가 ‘접경생물권보전지역(TBR)’ 또는 ‘자연유산’ 등으로 지정돼 인간으로부터 보호받게 되는
순간까지는 많은 시간을 소모해야 한다. 우선 남쪽만이라도 DMZ와 관련된 법제를 바꿔야 하고,
가능하다면 DMZ의 지속가능발전을 유도할 수 있는 법을 신설해야 한다. 북한을 환경협력, 문화협
력의 파트너로 삼기 위해서 들여야 하는 노력도 만만치 않다. 자칫 통일부담금의 일환으로 환경
부담 등이 국민 몫으로 전가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접경지역 만큼 지역을 무엇으로 지정한다는
데 민감한 곳도 없다. 접경지의 삶은 통제의 삶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통선북방지역은 아
직도 국민의 기본권을 구속받고 있는 곳이다. 그들은 ‘지정’을 족쇄라고 단호하게 규정할 수밖
에 없는 것이다. 더구나 접경지역도 다른 지역처럼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욕구도 팽배해 있다. 남
북관계가 좋아지면서 통일 후의 수요를 예상해 땅값이 오르는 곳도 있다. 이들에겐 DMZ의 습지
나 전쟁의 흔적, 무너진 산성 따위가 아직 농지나 관광지로 개발하지 못한 미개척지일 수밖에 없
다. 그리고 때가 돼도 북쪽으로 날아가지 않고 텃새가 돼 못자리를 파헤치는 오리나 기러기 떼
가 피해조류일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그런 것들이 소중한 자원이라고 설득해 동의를 받기는 그
무엇보다도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DMZ는 시간이 없다. DMZ는 언젠가 사라져버릴 ‘한시적 유한적 존재’라는 데 기초한
계획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저만치 앞서가고 있는데, DMZ의 자연환경 및 문화적 가치를 찾아 보
전하자는 주장은 아직 논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접경생물권보전지역(TBR)’ 또는 ‘자연유산’ 등
으로 지정될 때는 정치적, 사회적 그리고 남북한간의 정치 환경이 무르익었을 때를 의미한다. 그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은 과일이 무르익어 땅에 떨어질 때까지 인내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 사이 우리는 저만치 앞서 사라져가고 있는 DMZ에서 많은 것들을 잃어버릴 게 뻔하다. 그 속도
가 예기치 않게 빨라질 경우 어쩌면 DMZ의 유산적 가치를 보전하겠다는 계획들은 무용지물이 될
지 모른다.
정치적으로 한반도는 지금 남북 화해 협력 또는 교류 협력의 무드가 조성된 ‘통일 공간’의 시대
이다. 남북단절에서 남북통일로 가는 기간, ‘틈새의 시대’이다. 이 틈새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지금 DMZ와 그 주변지역, 접경지역에 방치되고 있는 수만 가지 냉전 유적과 그 산물을 자원으로
활용하느냐 또는 냉전 쓰레기로 폐기처분하느냐의 기로에 놓여 있는 것이다.
강원도에 속한 DMZ와 접경지역은 전체 면적의 약 60%에 이르고 있다. 이는 이 일대에 방치되고
있는 생태, 문화, 역사 자원도 그만큼 된다는 뜻이다. 이들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이 지역
을 부상시키는 방안은 오로지 지자체의 전략적 사고밖에 없다. 즉, 소 떼 방북, 남북정상회담,
남북경협으로 이어지고 있는 ‘통일 공간’을 어떻게 현실에 적용해 활용 하느냐는 것이다. 그것
은 막연히 ‘죽음의 지대’로 알려진 DMZ 일대를 경제와 문화, 생태, 관광의 ‘평화 지대’로 바꾸
어 만들려는 꿈과 용기가 과연 있으며, 노력하겠다는 의지가 있는지를 묻는 것과 같다. DMZ를
강원도의 최대 자산으로 보는 전략적 사고의 핵은 ‘관광’이다. 즉 앞으로의 관광은 먹고 마시고
즐기는 관광(Sightseeing)이 아니라 생각하고 느끼고 체험하는 관광(Tour)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세계 유일의 비무장지대이자 전쟁생태계, 냉전유적, 냉전문화 그리고 역사유적이 고스란
히 남아 있는 DMZ는 세계적인 관광자원, 지구에 단 하나밖에 없는 ‘보고 체험할 거리’라는 것이
다. 21세기는 DMZ만 갖고도 먹고 살 수 있다는 단언은 다름 아닌 강원도를 두고 하는 말인 것이
다.
기실 DMZ는 돌멩이 하나, 녹슨 철조망 한 조각이라도 그것에 생명을 불어넣으면 기막힌 자원으
로 변신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젠 DMZ를 역사, 지리적 공간 개념이 아닌 수천 년 인문, 역사, 자연 생태가 빚은(혹은
축적되고 만들어진) ‘복합지대(Complex Zone)’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공간, 혹은 유
적 속에 담긴 생각과 가치를 찾아낼 수 있고, 마찬 가지로 무너진 건물 폐허도 건축사 박물관이
나 냉전 유적으로 ‘가치 이해’가 될 수 있다. 또한 정책사민의 땅인 철원 근남면의 ‘울진촌’이
나 양구 ‘해안마을’도 DMZ가 빚은 ‘멜팅 포트(Melting Pot)’나 ‘문화의 무덤’으로 볼 수 있다.
철조망과 벙커, 탱크 저지선 같은 DMZ 건조물은 군사문화재 혹은 국방유적으로 테마 화 할 수 있
다.
DMZ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역사, 인문, 자연, 문화적으로 복합돼야, DMZ를 그런 복합 지대
로 접근해야 ‘DMZ는 생태계의 보고’라는 단순한 등식에 빠지지 않고 DMZ를 냉전유적 또는 자연
사 공원으로 리모델링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금강산관광을 계기로 남북교류협력의 물꼬가 트이자 강원도는 ‘남북강원도교협력사업’을 전개해
지방자치단체로서는 가장 모범적인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실현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북강원도
연어부화장 건설, 금강산 솔잎혹파리 방제 등은 직접적인 남북강원도교류협력사업이다. 이에 반
해 ‘인제평화생명공원’ 조성, 고성 ‘남북교류타운’ 조성, 철원 ‘평화시’ 건설 계획 등은 남북교
류 기반 및 통일 시대를 대비한 간접 남북강원도교류협력사업으로 볼 수 있다. 이들 3대 사업은
DMZ 중동부 지역이자 강원도 접경지역이 그 대상지이다. 바로 이들 구상에 DMZ가 가지고 있는 냉
전유적 또는 자연사 공원으로서의 자원적 가치의 살을 붙이자는 것이다.

참고 자료

DMZ는 국경이 아니다 (함광복/1995/문학동네)
한국민족사 대관 ‘민간인 통제구역’ (함광복/1988, 2000/정신문화연구원)
‘접경지역의 자연생태환경’ (조두순/2000/환경부)
‘상호이익을 위한 DMZ 정책’ (김재한/2000/한림대)
‘군사분계선의 영역과 비무장지대’ (이문항/2000/한림대)
From DMZ to ZOP(Zone of Peace)’ (Johan Galtung/2000/유럽평화대)
JSA-판문점(1953-1944) (이문항/2001/한림대)
할아버지 연어를 따라오면 한국입니다 (함광복/2002/이스트워드)
The Living Story of the DMZ(함광복/2004/이스트워드)
한국 DMZ, 그 자연사적 탐방(함광복/2005/집문당)

* 출처 / 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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