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6월 민주항쟁 30년] “촛불은 한 세대에 걸쳐 성장한 6월 항쟁이 당당하게 피운 꽃” 6월의 노래, 다시 광장에서

2071이 1987에게, 다시 광장에 서서

그 유월의 함성, 다시 한번 그 유월의 어깨동무로

ⓒ 환경운동연합

ⓒ 환경운동연합

6월 10일은 민주항쟁 30년이 되는 날입니다.

6월 항쟁(六月抗爭)은 1987년 6월 10일부터 6월 29일까지 대한민국에서 전국적으로 벌어진 반독재, 민주화 운동으로 6월 민주항쟁, 6.10 민주항쟁, 6월 민주화운동, 6월 민중항쟁 등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4·13 호헌 조치와,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그리고 이한열이 시위 도중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사건 등이 도화선이 되어 6월 10일 이후 전국적인 시위가 발생하였고, 이에 6월 29일 노태우의 수습안 발표로 대통령 직선제로의 개헌이 이루어졌습니다.

이후 1987년 12월 16일 새 헌법에 따른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고 6월 항쟁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사회 운동이 비약적으로 상승하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이한열 열사 30주기 기념 문화제]

‘2017이 1987에게’

2017년 6월 9일(금요일) 저녁 6시부터 이한열 열사 30주기 기념 문화제가 서울광장에서 열렸습니다.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는 이날 무대에 올라 “촛불 혁명을 통해 탄생한 새 정부가 민주주의를 완성해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배은심 여사는 “촛불 시민 여러분, 반갑습니다. 우리 촛불 시민 여러분들은 큰일을 해냈습니다. 박근혜를 감옥으로 보냈고, 그 촛불이 한없이 넓어지고 커져서 촛불 대통령을 모시게 됐습니다”라고 말하며 “촛불 대통령을 모셨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난게 아니다. 촛불 대통령은 앞으로 노동자와 농민이 자기 목숨을 스스로 끊는 일이 없도록 민주주의 완성을 하셔야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문화제 본 공연에는 이 열사의 모교인 연세대 동문들로 구성된 이한열 합창단을 비롯해 노래를 찾는 사람들, 꽃다지, 안예은, 416합창단, 전인권 밴드, 안치환과 자유 등이 무대에 올라 민주항쟁 3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을 펼쳤습니다.

 

[‘6월 민주항쟁’ 30주년 기념식]
문재인 대통령 6·10 민주항쟁 30주년 기념사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6·10 민주대항쟁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촛불은 한 세대에 걸쳐 성장한 6월 항쟁이 당당하게 피운 꽃”이라며 “문재인정부는 6월 항쟁의 정신 위에 서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6월 민주항쟁 30년 기념 국민대회] ‘6월의 노래, 다시 광장에서’

10일 오후 7시 서울광장에서 6월 민주항쟁 30년 기념 국민대회 ‘6월의 노래, 다시 광장에서’가 열렸습니다. 약 1만5천여 명의 시민들은 노래와 공연을 들으며 30년 전 그날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공연 막바지에는 민주화 30년과 촛불 승리를 아우르는 ‘국민주권 대헌장’ 초안이 발표됐습니다.

국민주권선언

 

6월 민주항쟁 3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장 정성헌

 

 

 

6월민주항쟁 30년, 촛불시민혁명 원년을 맞이한 오늘 대한민국 국민은 전 세계 시민형제자매들에게 선언한다.

 

만인의 권리는 만국의 권력 위에 있으며 권력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만 존재하여야 한다.

 

하여 인간의 존엄을 억압하고 차별하는 모든 제도에 저항하고 불의한 권력을 무너뜨리는 일은 주권을 가진 시민의 책무이며 그 일이 최소한의 민주주의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이며 이를 부정하는 어떠한 차별도 있을 수 없다.

 

인종, 종교, 나라, 경제사회적 지위, 성, 이념, 나이 등에 따른 모든 차별과 혐오는 있을 수 없으며 불평등과 분열을 구조화하고 있는 일체의 독점 곧 권력, 자본, 자원, 지식을 독점하는 것은 시급히 근원적으로 해체되어야 한다.

 

스스로가 주인 되어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해 나갈 주권자 국민은 이제 협동을 통해 쇠된 모든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구현할 막중한 권한과 책무를 가진다.

 

주권자 국민은 남과 북의 삶의 터전을 사람과 모든 생명이 공생하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자유, 평등, 생명, 평화가 하나되는 세상 국민주권 세상을 이룩할 책무를 가진다.

 

나아가 주권자국민은 지구상의 모든 핵무기와 전쟁을 반대한다.

 

위대한 촛불시민혁명을 이루어 낸 주권자 국민은 영원히 기억하고 되새길 것이다.

 

불의한 권력이 자행한 수많은 죽음들 불평등한 사회구조와 경제적 착취구조가 만들어 낸 수많은 죽음들 탐욕한 자본과 부도덕한 권력이 만들어낸 수많은 죽음들 소외와 절망에서 벗어날 수 없어 스스로 택한 수많은 죽음들…

이 모든 죽임과 죽음들이 사라진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그 길에서

우리는 그 아픔과 희생을 한시도 잊지 않을 것이다.

 

이제 국민주권의 새로운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함께 그리고 끈질기게 나아가자.

 

주권자 국민은 스스로 권리와 함께 무한한 책무를 짊어진 새로운 민주주의의 주인이 되었다.

 

대한민국 주권자국민이 만들어 낼 새로운 문명사회가 자본과 폭력의 세계화를 막아내고 생명이 존중되고 평화가 실현된 인류공동체를 이룩하는 희망의 등불이 될 것을 확신한다.

 

촛불이여 영원하라.

광장이여 영원하라.

민주주의여 영원하라.

주권자시민이여 영원하라.

 

2017년 6월 10 ‘6월민주항쟁 30년사업 추진위원회’ 드림

 

 

 

[만화로 보는 민주항쟁 – 최규석의 100℃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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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은 왜 일어났을까요?

 

신군부의 12.12쿠데타

1979년 10·26 사건으로 17년간 독재정치를 펼치던 제4공화국의 대통령 박정희가 사망하고, 새로 취임한 대통령 최규하는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수용하겠다고 밝힌다.(서울의 봄) 하지만 이 기쁨도 잠시, 전두환 등을 비롯한 신군부(하나회)가 군사반란을 일으켜 군부 내 실권을 장악했다. 이후 전두환은 최규하를 로봇처럼 조종했고, 집권 시나리오에 따라 집권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광주 시민들이 민주화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곧바로 시위 규모는 커졌고, 시위 참가자들도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군부는 이를 무력으로 유혈 진압하였다.(5·18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전두환은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해 장충체육관에서 대통령으로 추대되어, 새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된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종철은 1987년 1월 13일 자정 경 하숙집에서 치안본부(現 경찰청) 대공분실 수사관 6명에게 연행되었다.

‘대학문화연구회’ 선배이자 ‘민주화추진위원회’ 지도위원으로 수배 받고 있었던 박종운을 잡기위해 연행한 것이였다. 취조실에 연행해간 공안 당국은 박종철에게 박종운의 소재를 물었으나, 박종철은 순순히 대답하지 않았다. 이에 경찰은 잔혹한 폭행과 전기고문, 물고문 등을 가하였고, 박종철은 끝내 1987년 1월 14일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 509호 조사실에서 사망했다. 11시 45분 경 중앙대 용산병원으로 옮겨졌는데 의사가 검진했을 당시 이미 숨져 있었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고문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 라고 사망원인을 발표하였다.

2월 7일 전국 주요 도시에서 “박종철군 범국민추도식” 및 도심 시위가 열렸고, 이어 3월 3일에는 “박종철군 49재와 고문추방 국민대행진”과 함께 또 다른 시위가 열렸다. 이후 4월 2일 서울대학교 학생들의 학부모 130여 명이 건국대학교 사태 등 시국관련 구속학생의 징계철회를 요구하며 철야 농성을 벌였다.

 

 

정부의 개헌논의 유보(4.13 호헌조치)

하지만, 전두환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1987년 4월 13일, 그는 ‘대통령 특별담화’를 발표, 개헌(改憲) 논의를 유보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전두환은 대통령 선거인단 선거와 대통령 선거는 1987년 내에 공정한 선거관리를 통해 자유 경선의 분위기가 보장되는 가운데 차질없이 실시할 수 있게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으며, 또 민정당의 후임 대통령 후보는 조속한 시일 안에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인물 가운데서 당헌 절차와 민주 방식에 따라 전당대회에서 선출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호헌 조치’라는 그 이름대로 현행 헌법에 따라 권력을 이양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국민들의 큰 기대를 얻을 것이라 믿었으나, 기대는커녕 오히려 반발을 가져오는 요인이 되고 말았다. 곧바로 이튿날인 4월 14일 천주교 김수환 추기경 등 각계 인사들이, 호헌 조치를 비판하는 시국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경찰 최루탄에 의한 이한열 사망

5월 18일 명동성당에서 광주항쟁 7주년 미사에 정의구현사제단 김승훈 신부가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이 경찰에 의해 축소·은폐되었음을 폭로하였다. 이에 제5공화국 정권을 비판하던 국민들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옳지 못함에 크게 분노하였고, 이후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에서 자주 일어났다. 이후 5월 23일 “박종철 고문살인은폐조작규탄 범국민대회 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고, 이들은 6월 10일에 규탄대회를 갖기로 결정하였다(그날은 노태우가 민정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날이기도 하다).

전두환은 후계자로 국무총리 노신영을 지명했으나, 5월 26일 고문치사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어 노신영 국무총리를 경질하였다. 이후 이한기를 신임 총리로 교체하였다. 이튿날 전국의 재야지도자 2200여 명이 함께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를 결성하였고, 한국 기독교 장로회 향린교회에서 발기인 대회 를 열었고, “호헌 조치 철회 및 직선제개헌 공동쟁취 선언”을 발표하였다.

6월 9일 연세대학교 학생인 이한열이 학교 앞 시위 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부상(7월 5일 사망)을 입었다.

(6월항쟁 홈페이지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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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참여국 은 숙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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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또 어느 별에서 오신 분일까요/ 사열식의 우로 봐 시간 같은 낯선 고요 속에서 생각해요/ 당신은 그 별에서 어떤 소년이셨나요 // 기억 못 하겠지요 그대도 나도/ 함께한 이 낯설고 짧은 시간을/ 두고온 별들도 우리를 기억 못할 거예요/ 돌아갈 차표는 구할 수 있을까요/ 이 둔해진 몸으로/ 부연 하늘 너머 기다릴 어느 별의/ 시간이 나는 무서워요/ 당신도 그런가요" 「은하통신」 김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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