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생태보전 관련자료

나무 이야기

생강나무

잎을 따서 손으로 비비면 생강 같은 향기가 코를 톡 쏜다. 그래서 생강나
무라는 이름을 얻었다.
나는 이 향기가 그렇게도 좋았다.
이러한 까닭에 이 나무의 잎은 흔히 희생을 당하게 된다. 아름다운 냄새
때문에 잎이 떨어져 나가고 상처를
받는다. 너무 좋아서 이롭지 못하다.

제자백가(諸子百家)에 보면 자기라는 사람이 상(商)나라의 어떤 곳을 지
나가다가 대단히 큰 나무를 보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큰 마차 천 대라도 그 나무의 그늘 아래에 둘 수 있을
만하였다.
자기란 사람이 이 나무를 쳐다보았더니 가지와 줄기는 굽고 울퉁불퉁해서
거의 쓸모가 없었다. 잎사귀를 따서
맛을 보았더니 쓰고 냄새가 고약하였다.
자기가 말하기를 이 나무는 소용이 없었기에 사람들의 지극한 보호를 받
아 오래오래 살고 영화를 누릴 수 있었구나
하였다. 쓸모와 능력이 없다는 것은 경우에 따라 매우 이로운 것으로 된
다.

생강나무는 새봄의 방문을 알리는 신호로서 꽃을 피운다.
잎이 피기 전 아직 산골짜기에 눈과 얼음이 남아 있는데도 가지의 마디마
디에 노란 구슬과 같은 꽃을 단다.
그 동안 얼어붙었던 땅속의 열기가 올라와서 생강나무가지에서 지날 길을
찾다가 꽃으로 변하고 말았다.

생강나무의 노란 꽃은 정열 그것이다. 생강나무와 함께 새봄의 촉감을 알
리는 것에 미선나무, 산수유나무,
그리고 개나리나무가 있다. 이들 모두 노란 꽃을 가지고 있다.

이 세상의 봄이 노란색으로 시작되는 이유를 나는 모르고 있다. 미선나무
도 노란 꽃으로 겨울을 쫓아보낸다.
노란색은 왜 그런지 평화의 상징 같다. 평화로써 봄을 시작해본다는 것이
다.

생강나무는 우리나라의 산야에는 어디든지 있다. 작은 나무인데 한자로
는 황매(黃梅)라 부른다. 열매로 기름을
짜서 머릿기름을 만드는데 이것을 동백기름이라 한다. 예전에는 상류 계급
의 부인들이 이 기름을 머리에 발랐다.
또 등잔불을 이것으로 밝히곤 했다. 어린잎을 가지고 작설차를 만든다.

나는 전에 전남 송광사에서 이 차를 대접받아 본 일이 있다. 맛이 좋았
다. 어린 가지로도 차를 만든다고
하는데 위장에 좋다고 한다. 이 나무의 가지로 이쑤시개를 만들면 향기가
좋아서 일품이다.

미국 사람들은 독립 전쟁때 이 나무의 열매를 갈아서 음식의 향료로 사용
하였고, 남북 전쟁 때에는 이 나무의
잎으로 차를 만들어 마셨다. 종자와 뿌리움돋이로 번식이 잘 된다. 중성
의 땅을 좋아하는 자웅이주(雌雄異株)의
나무이다.
양지바른 곳에 심는다. 이식은 다소 어려운 편이다. 암나무 한두 포기를
뜰에 심어볼 만하다.

나는 생강나무를 생각할 때에는 산을 생각한다. 생강나무는 사람들이 살
고 있는 마을의 나무라기보다는 산골의
나무 같다.
산은 좋다. 산이 좋아서 산으로 간다. 산에는 생강나무가 있어서 좋다. 깨
끗한 물이 있어서 좋다. 신선한
공기가 있어서 좋다. 예전부터 어진 사람은 산을 즐기고(仁者樂山) 지혜로
운 사람은 물을 즐긴다(知者樂水)고
했다. 이 말은 백번이고 옳다. 산에 올라서 광활한 세상을 내려다보았을
때 사람은 호연(浩然)의 기상에
젖게 된다. 인간은 넓은 공간에 있게 될 때 단지 기분뿐만 아니라 그의 생
리 상태도 달라진다. 며칠 동안
산에 있다가 낮은 곳으로 내려오면 그곳의 높은 농도의 산소를 호흡하게
되어서 정력이 더 강해진다. 산에
들어가면 일종의 향기를 느끼게 된다. 나뭇잎에서 갖가지 물질이 공기 중
으로 날아 나온다.

숲 안의 공기는 아르파피넨, 또는 베타피넨 등 테르펜(Terpene)을 많이
가지고 있다. 아르파피넨은
소나무좀벌레를 불러들이고 베타피넨은 그것을 쫓아버리는 구실을 한다.
공기를 무시할 수 없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종교적인 기분을 자아내게 하는 향기 중에는 많은 테르펜이 들어 있다. 시
원한 산의 공기 중에는 인간을 위해서
놀랄 만한 것이 들어 있다.
향기 높은 생강나무에 곁들여 산을 생각하여 본다.

구상나무

구상나무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나무이다. 그것도 한라산의
꼭대기와 지리산의 노고단
인걸 령에서 자라고 있다.

구상나무는 이와 같이 자라는 데가 극히 일부에 국한되어 있으므로 그 나
무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 비교적
적다. 나도 나무를 공부하고 있지만 구상나무에 대한 지식은 비교적 새로
운 편이다. 이 나무는 침엽수종의
하나로서 전나무 부류에 소속되고 있다. 전나무 종류에 소속되는 나무들
은 구과(열매)가 하늘을 쳐다보면서
위로 서는 성질이 있다. 아래로 쳐져서 달리는 일은 없다. 높은 곳을 향해
서 나아가고자 하는 힘이 있는
기상이다. 태양을 보고서 전진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상황이 전나무
로 하여금 굳세게 보이게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전나무나 구상나무의 구과는 떨어질 때 산산조각이 되고 만
다. 나무에 달려 있을 동안은 힘차고
굳은 의지를 보이고 아름다우나, 나무에서의 생애가 끝나고 새로운 길을
택하는 순간, 그들은 장한 산화(散華)의
길을 택한다.

이야기가 앞으로 되돌아가서 구상나무는 왜 한라산의 꼭대기에만 있는가
하는 문제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란
어렵지 않다. 지구가 약 50억 년 전에 만들어지고 그 뒤 생명이 탄생해서
지구는 화려한 생명들의 무대로
되었다.
그 위대하고 신비스러운 생물들의 활약은 상상을 넘는 것이었다. 처음에
나타난 나무들은 거대한 몸을 가지고
있었고 꽃과 열매는 가지지 못했다. 꽃과 열매는 생식기관이다.
생식기관이 발달하면 몸집으로 일컫는 영양기관의 발달은 크게 억제된다.

이와 같이 초기의 나무들은 물질을 생산하는 일꾼의 노릇에 만족했었다.
일만 하면 그것으로 족함을 느꼈고
그것을 모든 보람으로 알고 있었다. 그 당시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이 지구상에는 없었 다. 항상
여름뿐인 세상이었다.

그 당시의 나무들은 감각적인 생활을 몰랐다. 자극을 받는 생활을 몰랐
다. 그러던 것이 춘하 추동의 계절의
변천이 지구상에 갑자기 나타나자 나무들은 무서운 겨울에 대처하는 수단
으 로 꽃과 열매를 가지기 시작했다.
꽃은 감각적인 생식기관이다. 구상나무도 꽃을 달게 된 나무로서 과거 일
찍이 나타난 나무에 해당한다. 지구의
표면이 아 직 한랭한 옛적에는 낮은 곳에도 이 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었
다. 빙하가 이 지구의 표면을 엄습해서
남으로 내려올 때 지구를 둘러싼 공기의 온도는 대단히 낮았다. 그러한
때 기를 펴고 산 나무가 구상나무였다.
그러던 것이 빙하가 북극으로 물러가게 되자 하늘의 태양이 우리나라를 쪼
여 기온은 올라갔다. 낮은 곳에 자라던
구상나무들은 더위를 이겨내지 못해서 한냉한 산꼭대기로 밀려 올라갔다.
이것이 한라산의 위쪽에만 구상나무숲이
있는 이유를 설 명하는 것이 된다. 사람들은 이러한 나무를 보고 옛날의
유물이라고 말한다. 사실 그것은
유물임에 틀림없다.

한라산에 남아 있는 구상나무들은 그 자손을 남기는 데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자 손들이 잘 성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에는 몇 가지가 있다. 쉽게 그것을 설명하면 그들은
그러한 곳에서 살 만한 힘을 갖지
못하고 있다. 구상나무 중에도 춥고 황량한 곳에 살아 남을 수 있는 소질
을 가진 것이 있지만 그러한 것들은
우연한 기회에 모두 없어져버렸고 지금은 적응하기 어려운 구상나무들만
그곳에 남게 되었다. 지금 구상나무의
사회는 면적으로 보나 수로 보나 대단히 작은 사회를 이루고 있다. 이러
한 소집단은 살아가는 동안에 그들
자체의 생존이 대단히 이롭지 못한 것으로 되는 소질을 얻 게 된다. 얼마
남지 못한 구상나무의 숲이, 그것도
그 환경을 이겨내기 어렵다는 것은, 무언 가 그들이 비애를 안고 있는 느
낌이다. 지리산 쪽에 있는 구상나무숲은
한라산의 그것에 비 해 볼 때 더 건강하고 아직은 더 활기에 차 있다.

세계의 학자들이 우리나라의 구상나무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
런데 지리산 인걸령 에 나는 구상나무는
한라산의 그것과 크게 달라 줄기가 높고 곁가지가 비교적 가늘고 짧으며
얼핏 보기에 전나무에 많이 닮아 있다.
다 같은 구상나무이면서 곳에 따라 이와 같이 모양이 대단히 다르다.
우리는 구상나무를 잘 보호해서 그 사회가 더 발전되고 건강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 이다. 그 신화를
오래 남기고 뒤에 오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맛을 되씹에 보게 하자.


산벚나무

벗나무」로 쓰이기도 하지만 「벚나무」로 쓰는 것이 더 옳을 것 같다.
벚나무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어서
구별에 당황하게 되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산야에는 각종 벚나무가 나 있고 화사한 봄날을 혼자서 차지하
겠다는 뜻을 훤하게 들여다 볼 수
있다.
벚나무의 꽃에 매혹된 몇 군데가 있는데, 남한산성의 수어장대에 오를 때
맞은편으로 보이는 것이 분홍색의
안개 아니면 구름이 산허리를 감고 흐르는 것을 느끼게 했고 서울 남산의
유보도를 따라서도 화사한 꽃길을
만들어 준다. 무어니해도 벚나무하면 전주와 군산을 잇는 도로변의 가로수
이며, 또 하나 장수군 장수읍 용계리에서
장수읍 대성리 구암까지에 이르는 도로변인데 이곳 벚나무는 우리나라에
서 가장 오래된 큰 규모의 것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서울 여의도의 윤중로에도 벚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일본의 국화이
고 그들이 줄곧 그들의 꽃으로 자랑을
늘어놓곤 하는데 구태여 벚나무를 심을 게 무어냐 하는 우려도 있었
다.
나도 그 당시에는 왜 벚나무를 심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대체
로 나라꽃이란 사람들이 나름대로 그와
같이 정한 것이지 어떤 이유가 있고 정연한 이론 위에서 그 꽃이 가려지
지 않으면 안 될 내용이 담겨진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벚나무 스스로가 「나는 일본사람들의 것이다」라는 생각
은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벚나무는
「나는 모든 사람들의 꽃이다」라는 생각으로 살아오고 있다.
벚나무가 누구의 꽃이든 우리는 그것에 관심을 쏟을 필요는 조금도 없다,
이것이 자연을 이해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의 바탕인 것이다.

벚꽃은 화사한 빛의 절정에 올랐다가 일시에 떨어져서 팍 무너지는, 말하
자면 옥쇄산화(玉碎散花)의 끝장을
자랑처럼 여긴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꽃 무궁화하고도 대조적이고, 끈질기고 악착같이 죽어
도 견디면서 해내겠다는 무궁화와는 다르다.
벚나무는 연장으로 가지나 줄기를 쳐주는 것을 무척 싫어하고 견디지 못하
나 무궁화는 가위로 가지를 쳐서 아담하게
다듬어 주는 것을 잘 참는다.

제주도에 왕벚나무가 자생하고 있고, 이것은 일본의 국화이지만 일본에서
는 자생의 사실이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아 식물학자들의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왕벚나무는 남제주군 남원웁 신례리에 자라는 것을 천연기념물 제156호
로, 그리고 제주시 봉개동 산78번지에
자라는 것을 천연기념물 제 159호로 지정해서 보호하고 있는데 봉개동에
는 두 그루의 큰 왕벚나무가 서있다.
일본의 고이즈미(小泉)박사에 의해서 한라산에서 왕벚나무가 확인됨으로
써 제주도가 왕벚나무의 자생지라는 학계의
논쟁이 잠자고 있는 느낌이나 일본학자들은 왕벚나무의 자생지에 대해서
단정을 내리기를 머뭇거리고 있는 느낌이
없지 않다.
전남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대둔사에도 왕벚나무가 자생한다는 것이 알려
져서 제주도의 왕벚나무는 일본으로 건너가기
어렵다 하더라도 대흥사의 명찰(名刹) 부근에 있는 이곳 대둔산의 것은 건
너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니냐 하는
추정도 있다. 그러나저러나 일본의 국화 사쑤라의 본거지가 어디이건 그것
이 문제로 될 것은 조금도 없다.
제주도가 왕벚나무의 자생지라고 해서 일본이 자진해서 우리나라의 속국
이 되기를 원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리가 우쭐했댔자 그들의 기가 꺾일 것도 아니고 알고 보면 소용없는 이
야깃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뭐니해도 벚나무는 단명하는 것이 아쉽다. 큰나무치고는 생애가 짧지 않
은 것이 없다. 고급스럽고 화량이
많아서 그렇다. 붉은 버찌(벚나무 열매)가 지천으로 달릴 때 그것도 아름
답다. 소식(蘇軾)의 앵도를 벚나무로
보아서는 안될지 모르나「버찌 익을 때 뜰은 붉게 물든다」는 표현은 상황
과 마음의 너그러움이 엿보인다.
벚나무는 꽃나무이고 꽃은 좋은 것이다.

글/ 임경빈 (고문, 서울대 명예교수)
자료제공 : 생명의 숲 가꾸기 국민운동본부

admin

admin

(x)생태보전 관련자료의 최신글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