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 활동소식

[기고] 생태민주적 전환과 생태민주 헌법

생태민주적 전환과 생태민주 헌법

 

구도완 (환경운동연합 정책위원장, 환경사회연구소 소장)

ⓒ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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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년의 꿈

2017년은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의 상징이 되고 있다. 낡은 체제를 힘겹게 벗어버리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꿈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꾸었고 그것이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그런데 새로운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아니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그런 세상을 만드는 데 걸림돌은 무엇일까? 그런 세상을 만들려면 법과 제도는 어떻게 바꾸어야할까? 이런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 글은 이런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생태민주적 전환’이라는 말을 중심으로 풀어가고자 한다. 1919년 3.1운동 이후 우리 선조들에 의해 만들어진 ‘민국’(‘제국’이 아니라) 달리 말하면 민주공화국의 꿈이 2017년 오늘 광장에서 새롭게 실현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민주주의를 회복시켜야할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재구성하고 전환시켜야만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왜냐하면 2017년 오늘 인류가 지구에 미치는 영향은 너무 커서 민주공화국과 지구 그리고 거기에 기대어 사는 모든 생명의 운명을 위태롭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글은 생태민주주의의 의미를 살펴보고 생태민주주의에 바탕을 둔 세상으로 전환하는 비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의 토대인 헌법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 살펴보겠다.

 

  1. 생태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생태민주주의란 사회경제적 약자는 물론 미래세대와 비인간존재의 생존과 복지를 향상시키기 위해 이들과 이들의 대리인 혹은 후견인들이 정치 과정에 참여하는 정치 제도와 과정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생태 민주주의의 주창자들은 현재의 정치과정에 참여하지 못하는 미래세대는 물론 비인간존재의 권리를 인정하고 이들의 대리인들이 정치과정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류라는 종이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에 기대어 진화하여 생태계 서비스를 공짜로 받으면서 오늘에 이르렀지만 인류는 원전, 핵무기, 화학물질, 기후변화 등 수 많은 환경문제를 일으켜 자연의 순환시스템을 파괴하고 있다. 그러므로 비인간존재의 생존과 생명의 권리를 인정하고 이들의 대리인 혹은 후견인들이 참여하는 가운데 중요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고 있다.

 

생태 민주주의의 흐름

생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를 생태적으로 완전히 바꾸어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크게 보면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조금씩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데, 이들의 생각과 가치는 크게 다섯 가지 쟁점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현세대의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삶의 권리를 보장하고 지켜야 한다고 보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현세대의 평등과 정의를 중시한다. 둘째, 말 못하는 동물이나 식물을 포함한 자연은 그 자체로 소중하기 때문에 이들의 생명을 지키는 데 관심을 집중하는 이들도 있다. 셋째, 어떤 이들은 생태사회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정책과정에 충분히 참여해서 토론하고 숙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넷째, 어떤 이들은 생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계에 바탕을 둔 공업 중심의 경제성장이 아니라 서로 도우면서 공동체를 살려가는 대안적인 자립의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자연을 파괴하는 정치 시스템을 세계시민의 관점에서 세계적 차원에서 변화시켜 자치의 정치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이제 평등, 생명, 숙의, 자립, 자치와 같은 다섯 가지 쟁점을 중심으로 생태 민주주의는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발전시킬지 이야기해 보자.

 

평등

생태민주주의자들은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생태사회위기의 원인이자 결과라고 본다.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 강자는 약자를 억압하고 착취하며, 생존의 위협에 처한 사람들은 또 다시 자신들보다 약한 인간, 동물, 그리고 다양한 비인간존재들을 공격하고 착취한다. 착취와 폭력의 악순환 속에서 사회적 불평등과 폭력 그리고 자연에 대한 착취는 심화된다. 생태민주주의자들은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모든 인간들이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하면서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더 이상의 경제성장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불필요하다고 주장한 생태경제학자 허먼 데일리(Herman Daly)는 일정한 소득을 넘어서는 부에 대해서는 100% 세금을 물려서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써야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극단적인 불평등 구조를 끝내고 좀 더 평등하고 공평한 사회를 만드는 일은 현세대 사람들과 미래세대는 물론 비인간존재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생명과 생태

시장이 세상을 움직이는 중심 제도가 되면서 생긴 가장 중요한 변화는 사람이나 자연이 소중한 생명을 가진 하나하나의 구체적인 존재가 아니라 화폐라는 매개를 통해 숫자로 계산되는 추상적인 존재가 되었다는 점이다. 사람은 노동력으로, 자연은 토지나 자원으로서 그 가치가 교환가치 즉 가격으로 추상화된다. 이러한 과정이 오랫동안 굳어지면서 생명이 아니라 화폐가 주인으로 보이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생태 민주주의자들은 사람은 물론 사람 아닌 존재들의 존재 자체로서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람들이다. 이 점이 인류중심(anthropo-cenrtrism)의 민주주의와 생태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차이다. 고통을 느끼는 동물들의 권리에 관심을 집중하는 이들도 있고, 모든 생물, 더 나아가 자연 전체의 내재적 가치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숙의와 참여

그런데 모든 생명이 평등하게 자신들의 잠재력을 발휘하면서 함께 어울려 사는 세상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생명이 살아가기 위해 다른 생명을 먹어야 하는 현실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고, 이를 누가 결정할 것인가? 권위주의자들은 전문가, 관료, 정치인 등 지식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 올바로 결정할 수 있고 그렇게 하는 것이 민주주의가 중우(衆愚)주의로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만약 지식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 인류중심주의 가치관을 갖고 산업자본주의적 발전만이 살 길이며 사회경제적 약자, 미래세대, 비인간존재의 권리를 무시한다면 어떻게 될까? 안타깝게도 지구상의 많은 국가와 정부는 이와 같은 개발 권위주의의 특성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생태위기가 긴박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강권과 권위주의를 동원해서라도 생태위기를 해결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생태민주주의자들은 충돌하는 이익과 대립하는 가치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현실 사회에서 자신들의 가치나 이익만이 독점적인 권위를 갖는다고 강변하지 않는다. 이들은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정책을 펴야할 지 열린 공론장에서 토론과 숙의를 통해 결정할 때, 사람도 살고 자연도 살 수 있다고 본다. 이 공론장에는 사회경제적 약자는 물론 미래세대와 비인간존재의 대변인 혹은 후견인들도 참여해야 한다. 비인간존재들은 말은 못하지만 온 몸으로 자신들의 고통과 즐거움의 신호를 우리들에게 보내고 있다. 생태학자들은 그 신호를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여 소통하게 하는 통역자가 될 수 있다. 시민들은 이들이 참여한 공론장에서 충돌하는 이익과 가치들을 놓고, 어떤 결정이 현세대, 미래세대, 비인간존재들의 삶을 좀 더 자유롭고 평등하고 지탱가능하게 할 것인지 토론하고 숙의한다. 시민들은 직접적이고 단기적인 자기 이익을 넘어서서 인류 공동체와 자연 그리고 미래세대를 위해 무엇이 필요하고 올바른지 판단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생태민주주의자들은 본다.

이 세상은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이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남의 말은 듣지 않고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으며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살아간다. 그런데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 한 자리에 앉아 남의 말, 남의 고통을 진지하게 듣고 공감하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이치와 도리에 맞는 방안을 찾을 수 있을까? 인간의 이성과 양심을 믿는 숙의 민주주의의 지지자들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숙의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생태민주주의자들은 생태사회위기가 아무리 심각하고 긴박하더라도 시민들이 참여해서 토론을 하고 그 결과를 따르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만약 시민들이 참여해서 숙의를 한 결과, 사회적 약자나 미래세대나 비인간존재의 권리를 보호하지 않는 방향으로 결론이 난다면 생태민주주의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숙의의 과정에 권력이 약한 존재들이나 이들의 대리인이 충분히 참여하여 토론했다면 반생태적인 결론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생태민주주의자들은 그 결론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민주적 절차와 생태적 보전은 서로 다른 차원의 일이기 때문이다. 생태민주주의자들은 생태주의자이면서 동시에 민주주의의 지지자이기 때문에 다른 가치와 이해관심을 가진 이들을 존중해야 한다. 이들은 한 사건에서 시민들을 설득하지 못했다면 왜 그랬는지 성찰하고 또 다시 일어나 생명을 지키고 자연을 살리기 위해 다른 방법, 다른 일을 찾아 움직인다. 이런 참여와 숙의의 공론장이 열려 있을 때 사람들은 사회적 학습을 통해 더 민주적이고 더 생태적인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이 지속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 현실에서는 정부와 의회, 법원 그리고 이들 뒤에서 자본이 권력을 독점하고 대중매체를 동원하여 불평등하고 반생태적인 구조를 재생산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열린 공론장을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이상적이고 철 없는 이야기가 아닐까? 물론 그렇다. 현실에서 어떤 국가도 스스로의 권력, 즉 결정하고 실행할 수 있는 권리를 시민들에게 공짜로 내어주지 않는다. 타인의 의사에 반하여 결정하고 실행할 수 있는 힘, 그것이 권력이다. 그런데 강제력만 있을 뿐 동의를 얻지 못하는 권력은 스스로 지탱할 수 없다. 그래서 권력은 사람들을 설득하고 꼬드기고, 이들에게 쾌락을 선사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은 언제나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억압적이고 배제적인 권력, 사람들을 현혹하는 권력은 다른 권력과 싸워야하고 나누어 줄 수 있는 자원과 권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생태민주주의자들은 우리가 지구라는 한계가 분명한 행성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억압적이고 배제적이며 쾌락적인 권력의 작동방식을 서로 대화하고 소통하며 합의를 만들어 가는 방식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민들이 지구 전체와 먼 미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정보와 기회를 제공하면 이들은 민주적인 방식으로 지구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태민주주의자들은 믿는다.

 

자립과 협동

생태민주주의자들은 산업자본주의의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생태사회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고 본다. 환경친화적 기술을 아무리 발전시킨다 하더라도 인구가 급증하고 소비가 늘어나는 한 지구는 지탱할 수 없다. 기후변화는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더 많은 생산과 소비, 그리고 이를 위한 더 많은 부채의 악순환을 지구는 감당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우리는 자립의 삶을 기획해야 한다. 오늘처럼 지구가 하나의 공동체처럼 교류하고 있는 시대에 자급자족의 폐쇄 경제로 돌아간다면 많은 사람은 고통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 이외 자연과 함께 살아가면서 미래세대에게도 삶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는 자립의 경제, 자급의 경제를 확대시켜야 한다. 한살림을 비롯한 많은 생협들은 ‘가까운 먹을거리’를 고집하며 자립과 자급의 경제를 확장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시장과 자본으로부터 자립의 힘을 키우는 일은 자연과 사람을 살리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주식회사는 1주 1표의 원칙에 의해 대주주가 왕인 체제이지만 협동조합은 1인 1표의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체제다. 물론 협동조합이 1인 1표의 원칙으로만 운영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원칙이 갖는 민주적 의미는 매우 크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영리집단이면서 동시에 사람들 사이의 협동을 조직하는 결사체(어소시에이션)이다. 기업이 이익을 위해 자연과 사람을 토지와 노동력이라는 상품으로 취급하며 비용을 줄이는 데 온 힘을 기울일 때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의 삶을 가능한 한 살리면서 공동의 이익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이런 개념 정의와 달리 현실에서는 이름만 협동조합일 뿐 관료제의 비효율과 무능력으로 인해 사라져가는 협동조합도 적지 않다. 협동하는 사람들도, 협동의 정신도 없이 공동의 이익에만 관심 있는 이들이 모일 때, 협동조합은 협동 없는 기업일 뿐이다.

협동조합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경제조직이 자연과 사람을 살리는 생태적이면서 사회적인 경제를 발전시키고 있다. 키친아트라는 주방용품 제조회사는 부도가 난 회사를 노동조합원들이 함께 인수하여 종업원 지주회사로 거듭났다. 동물실험에 반대하는 기업, 공정무역 기업, 마을 기업 등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기업들이 이곳저곳에서 생겨나고 있다. 이러한 생태적이고 사회적인 경제 부문이 연결망을 이루어 하나의 자립적인 영역을 이루면 이것이 갖는 사회적 의미는 매우 크다. 산업자본주의가 경제의 주류를 형성하지만 그 구조에 연결되어 있으면서 비자본주의적이면서 생태적인 경제영역이 형성되고 유지되기 때문이다. 회사인간으로 살기 싫거나 그럴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자립과 협동의 연결망 속에서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하며 평화로운 삶을 사는 세상은 실현가능한 꿈이다.

 

자치와 분권 그리고 세계시민주의(코스모폴리탄주의)

마음 맞는 사람들이 모여서 마을을 이루고 거기서 자연과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고 싶다는 꿈을 꾸는 이들이 많다. 이들은 그들만의 섬 마을을 만들고 육지와는 다리 하나로 연결하며 그 유토피아를 가꾸고 싶어한다. 그런데 섬 밖에서는 공장들이 이산화탄소를 마구 배출하고 있고 무장한 국가가 세금을 내라고 하고 있다. 국가는 그들이 동의하지도 않은 토목사업, 원자력 발전, 송전탑 건설, 무기 구매에 그 세금을 쓴다. 국가의 결정은 섬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기후변화로 인해 수퍼 태풍이 섬마을을 덮칠 수도 있고 전쟁 위험 때문에 고기잡이를 못 나갈 수도 있다. 육지에 댐이나 하구뚝이 건설되어 물고기가 잡히지 않을 수도 있다.

현대의 기술문명은 그 규모와 영향력이 너무 커서 지구 생태계 전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때문에 작은 마을이나, 지방자치단체가 해결하기에는 너무나 큰 문제들이 우리 모두의 삶을 규정짓고 있다. 후쿠시마에서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던 죄 없는 농민들은 하루아침에 그들의 삶을 잃어버렸다.

IPCC의 보고서는 시장과 국가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행위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촉발제가 되기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생태사회위기가 지구 차원의 위기이기 때문에 방법론적 국가주의(일국주의)의 시각으로서는 문제에 대한 진단이나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울리히 벡은 위험(리스크)의 경계가 불일치하거나 불명확한 현대의 특성을 적절히 지적하면서 방법론적 코스모폴리탄주의를 제안한다.

<표 1> 세계 위험사회의 비판이론: 사회적 불평등의 사회학의 패러다임 이동

방법론적 관점
국가 국제
경계의 변형 경계의 일치

(국가 또는 국제)

방법론적 국가주의

(맥락주의)

방법론적 국제주의
경계의 불일치

(국가와 국제)

방법론적 초국가주의

(지역주의)

방법론적 코스모폴리탄주의

출처: Ulrich Beck (2009: 164)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적 위험은 물론 금융자본주의의 위험이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 구분 없이 지구전체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방법론적 국가주의나 국제주의의 이론이나 정책으로는 글로벌 위험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다. 생태민주주의는 이와 같은 세계 위험사회에서 국민국가의 한계를 뛰어 넘어 풀뿌리, 글로벌 환경 단체, 국민국가, 국제기구 등이 방법론적 코스모폴리탄주의의 관점에서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실천하는 것을 지향한다.

이제 우리는 지구 전체에 걸맞는 생태적이고 민주적인 정치 시스템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마을은 협동을 조직하기에는 적당한 규모이지만 지구 환경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너무 작다. 국가는 근대적인 의미의 국경과 주권, 사적 폭력을 관리하기에는 적절하지만 지구적인 문제를 풀기에는 너무 작고, 지역의 생활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너무 크다. 국가들의 연합으로서 유엔은 지구적인 폭력과 환경문제를 풀기에는 무력하고 무능하다.

국가가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의 원인이라면 다른 대안은 무엇이 있을까? 한편으로 도시나 지방정부(지방자치단체)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 세계 정부 혹은 생태자치연방이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주권이 없어서 국가에 비해 무력한 것처럼 보이지만 주민들의 삶의 요구를 듣고 이들의 아프고 가려운 곳을 찾아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국가가 법을 만들고 경찰, 군대, 정보기관을 동원하는 동안 지방자치단체는 조례를 만들고, 쓰레기를 치우고, 문화행사를 연다. 벤자민 바버는 도시 정부는 강력한 권력이 없어서 오히려 사람들과 협의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에 더 유능하다고 말한다. 앞에서 보았듯이 머레이 북친은 중세도시들이 봉건제에 저항하며 자유의 공기를 퍼지게 만들었듯이 도시들의 연합으로 자본주의와 산업주의를 극복하는 미래를 상상한다.

도시들의 연대를 통해 생태민주주의 자치의 정치 시스템을 그려보는 일은 지구화 시대 코스모폴리턴 정치를 기획할 때 많은 상상력을 제공한다. 그러나 미국이 강력한 군사력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일본과의 동맹을 바탕으로 중국을 압박하며 잠재적인 전쟁 상태의 압박을 높이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권력의 재편 없이 도시들의 연대로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분명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구적인 생태, 경제, 사회 위기 상황에서 새로운 정치 체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전쟁과 자연파괴 위에 세워진 현대의 정치시스템은 평화와 생태의 새로운 정치 시스템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위험이 지구적으로 확산되고 그 위험이 사회경제적 약자와 미래세대, 그리고 비인간존재에게 전가되는 시대에 국민국가의 주권 혹은 군사력을 줄이고 지방자치단체와 마을의 힘을 키우는 정치적 전환이 필요하다. 가라타니 고진이 이야기했듯이 국민국가의 군사력을 세계공화국에 양도하게 하여 세계적인 평화 체제를 만드는 거시적인 기획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람들의 삶과 자연을 돌보고 시민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지방자치단체들의 자치와 분권을 확대하고 이들 지방자치단체들의 연방을 만들고 연방들의 연방으로서 세계적인 생태자치연방의 기획을 현실정치 속에서 조금씩 실현해 나가는 상상력을 발휘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주장은 현실주의자들의 눈으로 보면 황당하기 이를 때 없는 이상주의자의 궤변으로 들릴 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가간의 전쟁 위험이 커지고, 자본주의의 부채 경제가 한계에 다다르며 기후변화와 핵의 위험이 지구적으로 확대될수록 국민국가 시스템을 넘어선 세계적 생태평화체제의 필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이런 기획은 엄청난 희생을 경험한 이후에야 현실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태민주주의자들은 모든 생명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이런 기획을 이야기하고 이를 위해 작은 실천을 조직하는 사람들이다.

 

  1.  어떤 국가를 만들 것인가?

산업자본주의의 확장이 한계에 이르고 기후변화와 피크 오일이 현실로 다가온 21세기에 복지국가의 물질적, 사회적 조건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기술발전과 정책변화를 통해 생태적 현대화를 이루는 전략도 부분적으로 일부 지역에서 성공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조건 속에서 인종, 종교, 계급, 젠더 간 적대를 부추기고 이를 통해 정치적 이익을 얻는 극우 파시스트들과 종교근본주의자들이 전세계에서 돌진하고 있다.

복지국가 자본주의를 통해 계급 적대를 약화시키고, 환경문제도 해결하려는 리버럴들은 한편에서는 신자유주의자들에 의해, 다른 한편에서는 이들과 유사하면서도 다른 파시스트들, 그리고 전근대 근본주의자들 사이에서 전망을 잃고 위기에 처해 있다. 만약 권위주의적 사회주의, 파시즘,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 손꼽히던 복지국가 자본주의가 공업중심 자본주의의 경제적, 사회적, 생태적 한계 때문에 대안이 될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떤 국가를 꿈꿔야 할까?

새로운 국가를 꿈꾸는 이들은 자연은 무한히 자원을 공급해주고 영원히 오염물질을 처리할 수 있으며 기술개발을 통해 생산과 소비는 무한히 성장할 수 있다는 성장주의 신화를 버려야 한다. 현대의 국가는 불평등 문제를 더 많은 생산과 소비를 통해 해결하려는 성장 중독증, 성장 정명(imperative)을 유지하는 한 시스템을 지속할 수도 없고, 실질적인 삶의 질을 높일 수도 없다.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생산 위기와 자연재난, 원전 사고, 중국의 대기오염과 미세먼지 등은 직접적인 위험으로 다가오고 있다. 성장이 위기에 처할수록 제로섬 게임의 적대는 강화되고 전쟁국가와 실패국가는 양산된다. 난민, 실업자, 빈민이 늘어날수록 인종, 종교, 계급, 문화를 둘러싼 배타주의는 심화된다.

새로운 녹색국가는 환경 파괴를 당연시하면서 경제성장을 최우선으로 하는 개발국가가 아니라 자연보호를 우선으로 하면서 사회경제적 평등을 추구하며 미래세대와 비인간존재의 권리와 복지를 최대로 고려하는 국가다. 녹색국가는 국내총생산(GDP)이라는 잘못된 지표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실질적인 삶의 질과 평화의 증진에 초점을 맞춘다. 한마디로 녹색국가는 현세대 인간중심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미래세대(후손)의 삶의 질은 물론 인간 아닌 생명과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관계에 관심을 집중한다.

성장을 통해 모두의 경제적 이익을 늘릴 것을 약속하는 개발국가와 달리 녹색국가는 평화로운 수단으로 현세대의 불평등을 개선하면서 미래세대의 권리를 보장하면서 지구를 지켜야하는 무거운 과제들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이것은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될 때 가능하다. 첫째, 세계적 불평등과 환경위기가 심화될수록 상호의존적인 지구의 생태계와 경제 시스템이 지탱불가능하기 때문에 공멸의 리스크가 커진다는 사실을 세계인들이 인식해야 한다. 인류라는 종 혹은 일부 파워 엘리트들이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합리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이 커질 때 생태민주적 전환과 녹색국가의 건설이 가능하다. 둘째,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먼 나라 어린이를 위해 기꺼이 매달 후원금을 내는 시민이 늘어날 정도로 인류의 공감능력이 커졌다. 북극곰이나 돌고래, 길고양이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이들에게 감정이입을 하며 이들을 위해 몸과 마음을 쏟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2016-17년 한국의 촛불혁명에서 보듯이 평화롭게 민주주의를 되살리는 이들, 생명, 평화, 생태, 정의를 평화롭게 실천하는 시민들도 늘어나고 있다. 파시스트들의 주먹질이 험해질수록 평화적인 시민들의 힘도 커지고 있다. 이런 새로운 주체들이 녹색 국가를 만드는 주된 힘이다. 전세계적인 생태-사회 위기에 대한 인식의 증대와 이에 바탕을 둔 공감하고 감정이입하는 사람들의 확산 이 두 조건이 결합할 때, 녹색국가, 혹은 생태민주주의 국가가 새롭게 싹 틀 잠재력도 커진다.

이런 조건 속에서 해방 이후 한국의 국가는 어떤 유형이었는지, 대안적인 국가 유형은 무엇인지 유형화해보자. 한국의 국가는 크게 권위주의와 민주주의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이 기준과 별도로 환경을 파괴하는 것을 감수하고 성장과 개발을 지향하는 개발주의와 환경, 생명, 생태의 지속가능성을 우선하는 생태주의로 나눌 수 있다. 한국의 역대 정부들은 개발주의 패러다임을 공유했다 (표 2 참조).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민주주의의 진전과 남북평화에 큰 기여를 했지만, 산업자본주의에 바탕을 둔 환경파괴적 성장전략을 개발독재국가와 유사하게 추진했다. 앞에서 보았듯이 이러한 개발주의 패러다임에 바탕을 두고서는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진전시키더라도 우리의 삶의 기반인 국토와 자연을 보전할 수 없기 때문에 미래세대의 안녕도 보장할 수 없다. 우리는 이제 생태 패러다임에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생태 권위주의는 생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강권과 억압을 불러오는 것을 정당화하는 담론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생태적 지속가능성 안에서 사회적 평등과 정의를 실현하는 생태 민주주의 국가의 전망을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표 2> 권위/민주, 개발/생태를 기준으로 한 국가유형

권위주의 민주주의
개발주의 개발독재 국가 민주적 발전국가
생태주의 생태권위주의 국가 생태 민주주의 국가

생태 민주주의 국가는 누가, 어떤 지향을 갖고, 어떻게 지배하는 국가인가?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생태 민주주의 국가는 ‘모든 생명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는 지구를 지향하는 사람들(약자들, 미래세대와 모든 생명에 감정이입을 하는 현세대 사람들)이 정치과정에 참여하여 자치와 평화의 코스모폴리탄 지구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국가’라고 정의할 수 있다.

<표 3> 평등/국가/생태 기준 정치담론

평등지향 불평등지향
공동체 국가 개인
산업 패러다임 리버테리안 사회주의 국가 사회주의 복지국가 자본주의 국가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생태 패러다임 생태 공동체 / 어소시에이션주의 국가 생태사회주의 복지국가 생태자본주의 (생태복지국가) 국가 생태자본주의 자유주의적 환경관리주의

 

<표 3>은 평등, 국가, 생태를 기준으로 구분한 정치담론들이다. 이 표는 현대 정치담론들의 다양하고 복잡한 지형을 보여준다. 수 많은 층위의 문제들을 둘러싸고 다양한 주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갖고 정치에 참여하고 있는 현대에 하나의 정치담론이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어렵다.

생태민주주의 국가는 국가, 개인, 공동체가 함께 참여하고 발전하면서 공업(산업) 패러다임을 넘어서서 유연하고 종합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유능한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부드러우면서 강한 국가를 통해 환경과 생명의 위기를 해결하면서 불평등 문제를 개선하며 개인과 공동체의 자유를 보장하는 모델을 발전시켜야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위로부터의 국가에 모든 권한을 양도하는 리바이어던 국가가 아니라 아래로부터 결사들의 결사를 통해 자치를 확장하고 도시들의 연대를 확장하며 평화국가들의 연합체로서 세계공화국을 상상하는 새로운 모델을 꿈꿀 수 있다.

 

  1.  생태민주적 전환의 비전

모든 생명이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가?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기 위해 어떤 영역에서 무슨 일을 해야 할 지 생각해보자.

먼저 경제 시스템을 산업자본주의 중심에서 지속가능한 생태경제로 전환해야한다. 현대는 산업자본주의에 의해 지배되고 있기 때문에 산업주의와 자본주의 안에서 이를 조금씩 변형시키면서 새로운 체제의 씨앗을 키워나가는 장기적 과정이 필요하다. 우선 GDP 중심의 국가 통계 시스템을 삶의 질, 행복, 지속가능 복지 지수 등으로 개편하는 것이 하나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이와 함께 환경을 파괴하고 자원을 착취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세금이나 부담금을 더 많이 물리고, 자연을 보호하고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행위에 대해서는 보조금을 높이는 경제, 세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원자력, 석탄, 도로건설 등에 지급되는 환경파괴적 보조금을 줄이고 점차 없애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로 생산 부분에서 자원을 덜 쓰고 폐기물과 오염을 줄이며 효율을 높이는 정책이 필요하다. 기술개발에만 의존하여 생태효율성을 높이는 전략은 상대적인 경제성장-환경파괴의 고리 끊기(de-coupling)만 가능할 뿐 절대적인 고리 끊기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럼으로 탈성장(de-growth) 전략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이를 점진적으로 실천해 나가야 한다.

셋째, 환경을 파괴하고 자원을 낭비하는 산업에서 자연을 덜 파괴하며 모든 이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산업구조를 전환해야 한다. 인류는 놀라운 기술발전으로 높은 생산력을 실현했지만 여전히 공업 중심의 산업구조는 지속되고 있다. 현대의 기술과 산업을 생태적 한계 안에서 재구조화하는 전략을 지금부터 추진해야 한다. 원전, 석탄화력, 대형 댐, 간척 등 환경 파괴적 산업에서 재생에너지, 자연형 하천 개발, 역간척, 친환경 농업, 돌봄 노동 등 생태적, 사회적으로 지속가능한 산업으로 전환하는 것이 절실하다. 저개발국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성장과 지속가능발전 전략이 필요하지만 한국을 비롯한 산업화된 국가들은 환경파괴적 공업 중심에서 지속가능한 농업, 돌봄 노동, 사회적 경제 중심으로 산업구조의 중심을 옮겨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넷째, 노동의 전환이 필요하다. 노동시간을 줄이고 교육, 돌봄 등 자원을 덜 쓰면서 행복을 높이는 일자리를 만들고 일과 생활의 균형을 이루는 경제, 사회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구 전체에는 상품이 넘쳐나지만 한편에서는 과로로 죽어가고 다른 한편에서는 일자리와 먹을 거리가 없어서 죽어가고 있다. 모두를 위한 일과 여가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거대 산업, 금융 자본 중심의 체제를 변형해 나가야 한다.

다섯째, 소유의 전환이 필요하다. 자연환경(토지, 대기, 바다, 강, 바람, 지하수, 야생동식물 등)은 지구상 모든 생명이 살아가는 터전이므로 국가와 국제연합은 이를 공적 자산으로 수탁하여 관리할 책무가 있다. 국가는 이를 훼손하는 행위를 제한해야 할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공동으로 이를 보전하고 관리하도록 지원하는 법과 제도를 발전시킬 책무가 있다. 인류는 오랜 역사 속에서 공동체가 자연을 관리하며 무리를 이루어 살아왔다. 그러나 국가가 점차 커지면서 마을과 공동체의 공동자원(commons 또는 common pool resources)에 대한 관리권은 약화되거나 사라졌다. 이제 지구의 자원과 자연이 점차 희소해지고 이를 둘러싼 갈등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마을 공동체가 공동의 자연을 지속가능하게 유지하고 관리할 수 있는 소유제도를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모든 것이 개인, 기업, 시장에 맡겨져 있는 상황에서 자연을 다시 함께 지키고 관리하는 공동화(commoning)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여섯째, 기술의 전환이 필요하다. 오늘의 풍요는 인간의 기술 발전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기술은 우리에게 풍요를 안겨 주었지만 불평등과 환경파괴도 가져다주었다. 인간 이외의 유기물과 무기물을 분석과 착취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가치관은 기술 발전과 함께 성장했다. 이제 우리는 그 맨 끝에 와 있다. 기술을 유기적이고 생명과 사랑이 넘치는 사회 안으로 다시 불러들이지 않으면 기술-자본-산업 동맹의 노예가 된다. 따라서 환경과 생명을 파괴하고 생명을 도구화하는 과학기술(예: GMOs, 원전, 핵무기)을 통제하고 에너지와 자원을 덜 쓰면서 폐기물과 온실가스를 덜 배출하며 그 혜택이 모든 이에게 돌아가는 환경 친화적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사회가 통제해야 한다.

일곱째 소비의 전환이 필요하다. 오늘날 한편에서는 너무 많이 소비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너무 적게 소비한다. 자본주의는 확대재생산을 통해 불필요한 소비를 부추겨서 지구를 위험에 빠트리고 있다. 개인이나 공동체가 지속가능한 소비를 위해 실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소비는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개인의 생활양식 변화로는 전환을 이루는 데 한계가 있다. 자원낭비, 환경 파괴적 소비를 줄이고 자연의 순환을 되살리고 이웃 간의 우애를 높이는 지속가능한 소비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유인과 생태 시민성(ecological citizenship) 강화가 모두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경제적 유인으로서 생태적 세제개혁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소비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에 대해 스스로 성찰하고 이에 대한 책무를 실천하는 덕성을 키우는 생태 시민성을 시민들이 키워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과시적인 소비나 개인적 탐욕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연대를 통해 화폐 소비 없이도 성숙과 풍요를 경험하는 문화가 자리 잡을 때 생산의 쳇바퀴(treadmill of production)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여덟째, 국가의 전환이 필요하다. 시장의 힘이 커질수록 국가의 공적 책무는 더 무거워진다. 2016-17년 촛불은 ‘이게 나라냐’에서 ‘이게 나라다’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게 나라다’라는 명제는 아직 미완이다. 오늘날 국가는 국민국가로서 국민들의 행복을 증진시킬 책무를 가질 뿐만 아니라 세계시민들과 함께 보편적 가치와 자원을 지키고 관리해야할 책무를 함께 떠안는다. 권위주의 정부들은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 받았음에도 스스로 권력의 주체라고 의도적으로 오해하고 권력을 사유화하고 남용했다. 이제 우리는 억압적, 폐쇄적 권력에서 ‘친절하고 열린 권력’으로 전환해야 한다(한병철, 2006). 새로운 국가는 근대국가 이후 확립된 ‘폭력의 독점체’로서의 지위를 스스로 내려놓고 거버넌스 위원회, 숙의 포럼 등을 확대하고 이를 바탕으로 풀뿌리 정치 공동체에 바탕을 둔 분권과 자치 체제를 지향해야 한다. 모든 이들이 정치과정에 참여하여 스스로 토론하고 숙의하여 권력과 이익에 대해 협의하고 합의를 형성할 때 국가의 억압적 기능은 줄어들고 공동자원의 관리자의 기능과 권능은 커진다. 이제 국가는 군대를 중심으로 억지력을 증가시키는 전쟁국가에서 국가 간의 평화를 진전시키고 기후변화 대응, 생물종다양성 등을 위해 호혜적 교류와 협력을 확대하는 생태평화국가로 전환해야 한다.

아홉째, 시민사회의 전환이 필요하다. 시민은 사적이면서 공적인 정치적 주체들의 집합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시민들은 소비자, 노동자, 주부, 청년, 실업자, 투자자, 자본가, 어린이, 노인 등 다양한 주체의 위치를 가지기 때문에 이들의 요구와 선호는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들의 입장에서 국가에 요구하는 주창 집단으로 조직된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각자의 주체의 지위를 누리지만 지구라는 행성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하나의 종이다. 그 행성에는 인류는 물론 수많은 유기체와 무기물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자본주의는 ‘나’라는 개인의 독립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크게 기여했다. 나는 독립적인 존재로서 내 뜻에 따라 내 힘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나는 나의 삶의 대부분을 내가 내 노력으로 이루지 않은 것들에 의존하여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기대어 사는 지구의 한 성원으로서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기여해야 할 책무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 서면 시민사회는 사적 이익의 결사체를 넘어서서 생태적 한계 안에서 자기성찰적인 능력을 키우고 이를 제도로 전환시키는 힘을 키워야 한다. 권리의 주체 담론을 넘어서서 성찰 담론을 내면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치의 힘을 키워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열째, 한국은 남북한과 동아시아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영구 평화를 정착시키는 생태민주적인 코스모폴리탄 평화 국가로 전환해야 한다. 2차대전 이후 전지구적으로 평화가 진전되었지만 한반도에서는 아직도 전쟁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남북한의 휴전 상태는 남북한 양쪽에서 억압적 국가를 온존시키고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국가의 탄생을 제한하고 있으며 주변국들의 적대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잠재적 전쟁상태로 이익을 보는 세력들은 이런 적대적 상호의존 체제를 온존시킴으로써 환경과 생명을 파괴하는 군수산업, 토건산업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인류는 물론 수많은 생명을 절멸시킬 핵무기와 화학무기 앞에서 영구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작은 신뢰를 큰 신뢰로 확장해야한다. 남북 상호교류와 협력을 통해 신뢰를 확장하고 이를 바탕으로 남북한이 함께 협력, 발전하는 ‘한반도 지속가능발전’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국가와 시민사회는 평화를 추구하는 세계시민과 연대하여 무력과 긴장을 줄여나가서 결국에는 각국의 무력을 국제기구에 양도하고 지역의 안전보장을 집단적으로, 지구적으로 추구하는 ‘영구평화’의 이상을 실현하는 방안을 찾아 나가야 한다.

 

  1.  생태민주 헌법의 구상

헌법은 정치공동체의 기본 가치와 원칙에 대한 기본적인 합의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생태위기 시대 헌법은 어떤 가치를 담아야 할까? 기후변화와 핵 위험의 시대에 우리가 새로운 헌법을 만든다면 우리 민족과 국민의 생존뿐만 아니라 미래세대의 권리와 비인간 생물 그리고 자연의 내재적 가치를 존중하고 이를 지키기 위한 세계시민의 관점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앞에서 여러 번 이야기했듯이 기후변화와 핵의 위험은 우리 국민은 물론 전 지구의 생명을 위험에 몰아넣고 있기 때문이다. 헌법의 기초인 지구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헌법의 기초를 잘 보살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아래와 같은 원칙이 강조되어야 한다고 본다.

첫째, 가장 약한 이들을 최대한 배려해야 한다. 현행 헌법은 이러한 정신을 어느 정도 담고 있지만 이를 좀 더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사회경제적 약자들은 경제적 불평등뿐만 아니라 환경파괴로부터 말 못할 고통을 받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로 죄 없이 죽어간 어린이들을 보면 국가와 기업의 무책임과 부작위가 얼마나 위험한 범죄행위인지 잘 알 수 있다. 위험 결정자들은 위험한 시설들을 인구가 적고,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이들이 사는 곳에 주로 건설한다. 사회적 약자들은 위험결정자들(주로 국가 관료와 정치인, 그리고 자본)이 위험의 배분을 결정하는 순간부터 지역갈등과 잠재적, 실제적 위험으로 고통 받는다.

둘째, 미래세대가 지구에서 스스로의 필요를 충족하며, 평화롭고 행복하게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며 이들의 필요충족 능력을 현세대가 저해해서는 안 되는 책무가 있음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

셋째, 비인간 생명 혹은 유기물은 인간의 필요 여부와 관계없이 내재적 가치를 가진다. 만약 현세대 인간들의 탐욕이나 부주의로 어떤 종이 멸종에 이른다면 미래세대는 지구의 다양한 생명체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인간은 다른 생물들과 달리 법적 책임과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지만 그 사실이 인간이 다른 생물보다 도덕적으로 더 우위에 있으며 법적 보호의 유일한 대상이 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넷째, 산, 강, 숲, 바다, 광물과 같은 자연은 그 자체로 수많은 생물이 사는 서식지이거나 미래세대의 필요를 충족하실 수 있는 자산이므로 현세대의 국가나 개인, 집단이 이를 함부로 훼손하거나 독점해서는 안 된다. 공동자원(commons, common pool resources)은 공동체, 국가, 그리고 세계시민의 공유자산이므로 국가는 이를 지속가능하게 관리하고 유지해야 한다.

다섯째, 지구의 관점이 필요하다. 국토의 자연과 환경 그리고 사람들의 삶은 지구의 일부분으로 그 영향을 받는다. 또한 한국인의 행위는 지구 환경에 생태적 발자국을 남기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지구의 일원으로서 한국의 국민과 국가가 맡아야 할 세계시민(코스모폴리탄)으로서의 책무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섯째, 분권과 자치를 확대하여 중장기적으로 생태민주적인 자치체들의 연방을 지향하는 한반도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

위와 같은 가치와 원칙을 어떻게 헌법에 담을 것인가? 환경운동연합은 2017년 3월 17일에 정책제안 보고서에서 생태헌법의 필요성과 개정 방안을 [참고자료]와 같이 제안했다. 여기에는 동물보호, 지속가능발전, 생명, 참여 등 중요한 가치들이 담겨있다. 또한 대화문화아카데미의 2016년 헌법안에도 생태헌법을 지향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박명림은 새 헌법안은 생명헌법, 인권헌법, 생태헌법을 지향한다고 하면서 생명, 인권, 생태는 대한민국의 양보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공동체 가치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대화문화아카데미, 2016: 52-53). 환경운동연합과 대화문화아카데미의 논의들은 매우 전향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어서 앞으로 헌법을 생태민주적인 방향으로 개정하는 데 중요한 준거가 될 것이다.

 

  1. 결론

2017년 촛불혁명은 폭력과 탐욕, 아집과 독선에 포획된 국가 공동체를 사람들의 품에 다시 되돌려서 민주공화국으로 살려내려는 고통에 찬 몸부림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 다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 또는 ‘좌파 신자유주의’ 아니면 ‘반공 개발 권위주의’ 같은 오래된 패러다임으로 돌아가야만 할 것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생태민주주의 국가, 녹색 국가와 같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꿈 꿀 것인가?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녹색국가의 꿈을 꾼다고 해도 그 꿈을 이룰 조건과 사람이 없다면 그 꿈은 꿈일 뿐이다. 왜냐하면 그런 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막는 이들이 정치경제적 권력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태민주적 세계시민은 그 수도 적고 힘도 약하다. 그렇지만 약한 촛불이 몽둥이와 총칼을 이겼듯이 약한 힘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파시스트들과 종교근본주의자들의 주먹질이 심해질수록 생태민주주의자들의 ‘부드럽고 약한’ 평화의 힘은 더욱 강해질 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환경을 파괴하며 불평등을 심화시킨 개발권위주의 국가와 신자유주의 국가의 경험을 반성하며 민주국가-생태 시민사회-사회적 경제의 생태민주연대를 만들어 자연의 한계 안에서 덜 일하고 덜 쓰면서 많이 쉬며 다 함께 풍요를 누리는 사회를 상상할 권리가 있다. 현대의 기술을 유기적인 사회 안으로 불러들여 생태민주사회를 만든다면 이것은 가능할 것이다. 생태민주헌법을 이야기하고 토론할 때 그런 세상이 좀 더 빨리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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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운영국 은 숙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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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또 어느 별에서 오신 분일까요/ 사열식의 우로 봐 시간 같은 낯선 고요 속에서 생각해요/ 당신은 그 별에서 어떤 소년이셨나요 // 기억 못 하겠지요 그대도 나도/ 함께한 이 낯설고 짧은 시간을/ 두고온 별들도 우리를 기억 못할 거예요/ 돌아갈 차표는 구할 수 있을까요/ 이 둔해진 몸으로/ 부연 하늘 너머 기다릴 어느 별의/ 시간이 나는 무서워요/ 당신도 그런가요" 「은하통신」 김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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