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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벨트는 독재정권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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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6일 정부종합청사 후문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시민단체들이 그린벨트 해제 철회를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남호진 기자>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책 ‘문명의 붕괴(collapse)’에는 도미니카공화국과 아이티공화국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34%의 국토를 자연보호지역으로 지정해 보전하는 도미니카와 녹지율이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아이티는 인접 국가이면서도 극과 극을 달리는 나라들이다. 다이아몬드는 이들 나라의 녹지율이 곧 희망의 비율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적고 있다. 녹지가 부족한 아이티에도 희망이 전혀 없는 건 아니라는 것이 그의 견해다. 하지만 두 나라의 정치사를 살펴보면, 녹지와 희망의 비율에 어떤 함수관계가 숨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도미니카와 아이티는 한때 독재정권이 철권통치를 휘둘렀던 나라들이다. 도미니카의 라파엘 트루히요와 아이티의 프랑수아 뒤발리에 부자는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독재자로 악명이 높다. 하지만 이들보다 다이아몬드의 눈길을 끌었던 인물은 호아킨 발라게르라는 도미니카의 독재자였던 듯하다. 냉혈 정치가이면서 동시에 전투적 환경주의자이기도 했던 그는 1966년부터 무려 34년간 대통령과 정계 막후의 실력자로서 도미니카를 실질적으로 지배했던 인물이다.

발라게르는 요즘으로 말하자면 열정적인 ‘숲 지킴이’였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의 생계형 벌목이건 호화별장을 지으려는 부자들의 탐욕형 벌목이건 가리지 않고 엄벌에 처했다. 강과 해안의 습지대를 보호구역으로 묶고, 국립공원을 지나는 도로공사와 대규모 환경 파괴를 부르는 댐 건설을 강제로 중단시켰다. 오늘날 도미니카가 자랑하는 녹지의 대부분은 발라게르에게 빚을 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재자가 지킨 녹지, 민주화 이후 야금야금

발라게르는 권력을 잡기 위해 암살과 고문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숲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수많은 주민을 총칼로 내몰았던 냉혹한 독재자였다. 오늘날 도미니카 환경단체들은 발라게르가 폭력을 동원해 보호했던 숲과 강을 시민들의 합의와 자발성을 바탕으로 지켜나가고 있다. 그렇다 해서 그들이 이 독재자를 미화하고 상찬하는 건 아니다. 단지 도미니카의 환경이 지금 정도로 유지할 수 있게 된 데는 그의 공로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을 뿐이다.

박정희는 우리나라에서 발라게르와 같은 인물이다. 그는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경제 개발을 위해 환경오염을 당연시한 독재자였다. 하지만 그의 유산 가운데 산림녹화와 그린벨트를 빼놓기는 힘들다. 박정희가 설치했던 그린벨트는 그가 죽은 후 야금야금 훼손되다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폭 풀렸다. 김대중 이후의 정권들도 그린벨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는 그린벨트를 풀어 대규모 임대주택을 지었으며, 이명박 정부 역시 서민주거단지와 산업단지 용지부족 해소를 명분으로 분당의 16배에 달하는 규모의 그린벨트 해제를 공언하고 있다.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시절에도 지켰던 것이 그린벨트다. 도미니카처럼 가난한 나라들조차 그린벨트와 같은 녹지를 기를 쓰고 지키려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린벨트는 도시민들에게 산소호흡기와 같은 존재다. 도심 콘크리트 숲이 뿜어내는 열을 식히고 맑은 공기를 불어넣어준다. 그린벨트가 없다면 끝없이 팽창하려는 도시의 욕망을 억제하기 힘들다. 수도권 그린벨트에 대규모 주택단지나 산업단지가 들어서면 교통지옥이 더 가중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다이아몬드에 따르면 인류 역사 속에서 대규모 자연훼손은 어김없이 ‘문명의 붕괴’를 불렀다. 그린벨트 파괴가 당장 문명 붕괴로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 해도, 부동산 투기와 녹지훼손은 두고두고 우리 경제와 환경의 목을 조를 것이다. 도미니카의 환경운동가들이 발라게르를 그리워하지 않듯 우리도 박정희가 보고 싶은 건 아니다. 하지만 도미니카의 자연보호구역이 그들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면, 그린벨트는 우리에게 생명선과 같은 존재임에 틀림없다. 건설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생명선까지 넘보는 일이 언제까지 반복될 수 있을까?


* 이 글은 10월 21일 위클리경향 796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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