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보전 활동소식

인간의 도로건설 ‘예의’를 갖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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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느날 그 길에서’의 한 장면. <뉴스메이커>
“도로 갓길에는 장갑, 신발, 음료수 병, 과일 껍질 등이 있다. 그러나 갓길에는 쓰레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버린 물건 옆에는, 바로 몇 분 전까지 인간처럼 붉고 뜨거운 피를 가졌던 하나의 생명이, 걸레처럼 나뒹굴고 있다.”

자동차 바퀴에 치여 죽어가는 동물들을 다룬 황윤 감독의 로드킬 영화 ‘어느날 그 길에서’의 줄거리 글에 나오는 대목이다. 올해 3월 개봉한 이 영화는 인간에겐 속도와 번영의 상징인 도로가 동물에겐 목숨을 앗아가는 끔찍한 수난의 길임을 보여준다. 초여름마다 남쪽지방 거제에서 열리는 야생동물 위령제도 별반 뜻이 다르지 않다. 위령제에 모인 사람들은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간 가엾은 넋을 위로하고 동물들의 주검 너머로 아른거리는 우리의 이기심과 욕망을 되돌아본다.

로드킬은 순전히 자동차 문명이 빚은 현상이다.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국산차 ‘시발’이 생산된 것은 1955년 8월이다. 반세기를 훌쩍 지난 지금 자동차가 몰고 온 변화는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자동차 수가 1700만 대에 육박하고 도로 길이도 10만㎞ 이상으로 늘어났다. 도로 길이가 늘어났다는 건 그만큼 많은 산림과 녹지가 훼손됐다는 뜻이다.

야생동물 안전한 전용통로 건설해야

도로 건설이 생태계에 주는 영향은 택지를 개발하고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것과 차이가 있다. 일직선으로 쭉 뻗은 도로는 마을과 생태계를 둘로 쪼개 섬처럼 고립시킨다. 생태학자들은 이 현상을 ‘서식지 파편화’라는 이름으로 부르는데, 사람으로 치면 집이 몇 조각으로 쪼개져 방과 부엌이 따로 노는 형국이다. 도로는 야생동물들의 보금자리를 쪼개는 전기 톱날이자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없도록 만드는 장애물인 것이다. 하지만 가장 심각한 것은 역시 로드킬이다. 야생동물과 차량이 충돌하면 비단 동물들만 피해를 입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도로에 멈춰선 동물과 충돌을 피하려다 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동물들의 속절없는 죽음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동차를 멀리하고 되도록 도로를 만들지 않는 일이다. 자동차와 도로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렵다면, 야생동물들이 안심하고 지나다닐 수 있는 길쯤은 군데군데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게 우리가 동물들에게 베풀어야 할 최소한의 예의다.

야생동물 전용도로에는 가짓수가 많다. 크게 볼 때 도로 위를 지나는 육교형과 도로 아래에 설치하는 터널형으로 나뉜다. 차를 몰고 가다가 “동물이 지나가고 있어요”라는 대형 팻말이 눈에 들어오면 육교형으로 생각하면 된다. 육교형은 산이나 구릉을 절개해 도로를 낸 곳에 설치하는 것이 보통이다. 곰, 멧돼지, 오소리, 너구리, 고라니, 노루처럼 몸집이 큰 동물들의 이동을 돕기 위해서다.

터널형은 육교형에 비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규모도 작을 뿐 아니라 흙을 쌓아 도로를 낸 구간 아래쪽을 관통하는 형태로 설치하기 때문이다. 터널형은 개구리, 두꺼비, 맹꽁이, 뱀, 도롱뇽과 같은 양서·파충류와 비교적 몸집이 작은 포유동물인 족제비, 멧토끼, 오소리의 이동을 돕는 데 안성맞춤이다. 터널형 가운데는 양서류를 위해 특별히 설치하는 양서류 전용도로도 있다. 이 경우에는 바닥에 부식토나 낙엽을 깔아 습기를 유지해야 한다. 양서류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몸에 수분이 없어져 말라붙는 일이다.

그런데 많은 예산을 들여 야생동물 전용도로를 만들어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계곡이나 강을 따라 형성된 수변을 잘 가꾸면 야생동물들에겐 최상의 전용도로가 된다. 운전자들의 노력으로 로드킬을 줄이는 방법도 있다. 자동차를 가능한 한 천천히 모는 것이다. 올여름 멀리 휴가를 떠날 생각이라면 먼저 ‘어느날 그 길에서’를 구해 감상해보면 어떨까?


* 이 글은 뉴스메이커 782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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