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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일주가 아니라 TV 토론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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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추석에는 보름달을 볼 수 있었다. 화창한 가을날은 아니었지만 보름달이 밝게 혼란스런 이 세상을 비추었다. 옛날만큼은 아니어도 여전히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요즘의 세태로 보자면, 아마도 ‘민생’과 관련된 소원이 가장 많았을 것 같다. 그러나 갈수록 반복지 세력의 힘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경제성장이 되더라도 민생의 보름달을 보기는 갈수록 어려워진다.

 

이번 대선의 최대 쟁점은 당연히 민생의 개선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영어로 ‘민생’은 public welfare, 즉 ‘복지’이다. 민생의 개선은 복지의 증진을 통해 이룰 수 있다. 그런데 재벌을 비롯한 반복지 세력은 거꾸로 복지의 감축을 통해 민생의 개선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로지 경제성장만이 필요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IMF 이후 지난 10년의 변화에서 잘 알 수 있듯이 경제성장 자체는 민생의 개선을 보장하지 않는다. 반드시 적극적으로 복지의 증진을 추구해야 비로소 민생의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번의 대선은 민생 대 반민생, 복지 대 반복지의 대결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반민생-반복지 세력의 기세는 무섭도록 등등한데 비해 민생-복지 세력은 여전히 지리멸렬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실 민주개혁세력은 시대의 요청인 민생-복지 세력으로 발전하지 못하면서 스스로 무너지고 말았다. 노무현 정권은 ‘비전 2030’을 발표하며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려고 했으나, 전체적으로 그것은 너무나 미약했고 토건국가의 확대정책을 훨씬 강력하게 추진했다.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는 마치 노무현 정권의 토건국가 확대정책을 염두에 둔 듯이 전대미문의 토건사업을 최대의 정책공약으로 내걸었다. ‘경부운하 구상’이 바로 그것이다. ‘경부운하 구상’은 낙동강과 남한강의 물길을 이어서 거대한 배들이 부산과 서울을 오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황당하고 어이가 없는 것이지만 이명박 후보는 여기서 더 나아가 금강과 남한강을 잇고 북한강과 대동강을 잇는 ‘한반도 대운하’를 건설하겠다고 해서 세상을 아예 아연하게 만들었다.  

 

이명박 후보의 최측근인 한나라당의 이재오 의원은 추석을 맞아서 9월 22일부터 26일까지 4박 5일 동안 ‘경부운하’ 예정지역 560km를 자전거로 달리는 행사를 벌였다. ‘한반도 큰 물결 자전거 탐방’이라는 이름으로 치러진 이 행사는 한나라당 홈페이지와 오마이뉴스를 통해 중계되었다. 이 행사를 마치고 이재오 의원은 “자전거 일주를 해 보니 확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나는 이 기사를 보고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사업에 대해 기껏 자전거 일주로 확신을 하게 되다니.

 

‘경부운하’는 단순히 커다란 운하를 건설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백만년 전에 형성된 이 나라의 자연조건 자체를 불과 십수년 사이에 수십조원의 혈세를 탕진해서 대대적으로 파괴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자기의 최대공약이라는 이유만으로 강행할 수 있는 사업이 절대 아니다. 이런 사업은 오랜 시간에 걸친 면밀한 연구를 통해 비로소 추진 여부를 토론할 수 있다. 이제까지 드러난 결과로 보자면, 이명박 후보 쪽은 이에 대해 추상적 구상을 넘어선 구체적 계획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상황이 이런 데도 불구하고 이명박 후보가 계속 모든 계획이 갖춰져 있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시민사회는 ‘TV 공개토론’을 해서 시시비비를 가리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명박 후보는 이러한 시민사회의 제안을 별 다른 이유없이 부당하게 거부하고 있다. 이것은 명백히 국민을 우습게 보는 무책임한 정략적 태도이고, 바로 이 때문에 이명박 후보에 대한 시민사회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이명박 후보의 최측근인 이재오 의원이 “자전거 일주를 해 보니 확신이 생겼다”고 말한 것이다.

 

김병기 기자의 취재기에 따르면, 이재오 의원을 비롯한 ‘자전거 탐방’에 참여한 한나라당 의원들은 줄곧 ‘국토개조론’을 외쳤다고 한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낡고 낡은 ‘국토개조론’ 따위를 외치며 ‘일류국가’로 나아가자고 하는가? 한나라당의 ‘국토개조론’은 전 일본 수상 다나카의 ‘일본열도개조론’을 떠올리게 한다. 다나카는 ‘열도개조론’을 내세워서 일본 열도 전역에서 대규모 건설사업을 벌였고, 그 결과 일본은 세계적으로 악명높은 ‘토건국가’가 되고 말았다. 이명박 후보는 한국의 다나카를 꿈꾸는가?

 

이재오 의원은 ‘발로 뛰는 정치’로 유명한 사람이다. 이번에도 역시 그 연장선에서 ‘자전거 탐방’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발로 뛰어야 할 일이 있고 열심히 말을 해야 할 일이 있는 법이다. 아무리 발로 뛰어도 ‘경부운하’의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재오 의원은 아름다운 강줄기를 굽어보며 ‘저기 바지선이 보인다’고 외치기도 했던 모양이다. 거대한 ‘바지선’은커녕 작은 통통배조차 다니기 어려운 얕은 곳이 숱하다. 그 억지에 ‘안습’을 넘어 목이 메인다. ‘환각’을 보는 것은 자유일 수 있지만 그것 때문에 재앙을 일으키도록 해서는 안 된다.

 

이명박 후보는 하루빨리 ‘경부운하 TV 토론’에 나서야 한다. 경부운하가 그렇게 좋은 것이라면 하지 말라고 해도 적극 나서서 TV 토론을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뭐가 그렇게 구리고 무서워서 TV 토론을 하지 않는 것인가? 지금 정말로 필요한 것은 ‘자전거 일주’와 같은 체력과시형 행사가 아니다. 이재오 의원을 비롯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체력은 충분히 입증되었다. 이제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 의원들의 머리와 마음을 입증해야 할 때가 되었다. 국민들은 이미 너무나 불안하다.

 


 이 글은 인터넷참여연대 칼럼에 9월 28일 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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