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에서 만난 멸종위기 준위협종, 붉은가슴도요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국장(booby96@kfem.or.kr)
<문버드>. 돌배개에서 나오는 책제목이다. 이 책은 위대한 비행을 하는 새, B95를 그리고 있다. 저자인 필림 후즈는 붉은가슴도요를 문버드라고 부른다. B95라는 것은 다리에 단 가락지 번호다. B95번의 붉은가슴도요의 비행거리가 52만3000km가 넘는다.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가 38만km 정도. 먼 거리를 비행하는 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문버드’라고 칭하고 있다.
붉은가슴도요 같은 도요새들은 1년 동안 수만km를 비행한다. 새들의 무게는 채 200g도 되지 않는다. 작은 체구로 수만km를 비행하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시베리아 북부, 북미 북부, 그린란드에서 번식하고 서유럽, 아프리카 호주, 남미 등에서 월동한다. 번식지와 월동지가 목적지라면, 우리나라는 휴게소 같은 곳이다. 도요새들은 우리나라 서해안 갯벌이라는 훌륭한 휴게소에서 볼일도 보고 허기도 채우고 다시 비행을 떠난다.
붉은가슴도요는 우리나라 서해안의 갯벌에서 봄과 가을철 매우 드물게 나타난다. 나그네새라는 명성을 입증하듯, 필자 역시 이들을 본 적이 많지 않다. 2000년에 아산만에서 본 이후 16년 정도 볼 수 없었다. 새가 좋아서 탐조를 수시로 다니는 사람에게조차 그 모습을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 정도로 우리나라를 찾는 붉은가슴도요의 수는 많지 않다. 수십에서 수백 마리 많게는 수만 마리의 도요새 무리 중에 1~2마리의 붉은가슴도요를 찾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수도 있다.
수만 마리 중 하나, 너를 만난 건 뜻밖의 행운
그런데 올해는 봄과 가을 두 번이나 붉은가슴도요를 목격했다. 지난 5월 서산 출장 중에 굴밥집에서 붉은가슴도요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간월도 굴밥집 앞 갯벌에 수백 마리의 도요새 무리 중에 1마리의 붉은가슴도요를 확인했다. 탐조인으로 도요새 무리를 그냥 지나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잠깐 시간을 내기로 했다. 차에서 급하게 망원경을 설치하고 도요새 무리를 살피다 붉은가슴도요를 만났다. 붉은가슴도요와 함께 붉은어깨도요, 개꿩, 왕눈물떼새, 중부리도요, 민물도요, 꼬까도요 등 다양한 종류의 도요새들이 있었다.
5월 우연히 만난 붉은가슴도요를 이번에는 서천에서 확인했다. 수천 마리의 도요새 무리 중에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뜻밖에 횡재라 잠시 흥분하기도 했다. 16년 만에 두 번이나 만나게 된 붉은가슴도요를 기록하기 위해 사진을 찍고 한참 관찰했다. 지난 9월 19일의 일이다. 잠깐의 시간을 내어 보려던 탐조. 3시간을 넘겼다. 참 나도 별난 사람이다. 죽마고우를 오랜만에 만난 듯한 설렘을 느꼈다.
붉은가슴도요는 세계자연보전연맹 IUCN 멸종위기종 목록에서 준위협종으로 분류될 만큼 보호가 필요한 종이다. 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철새가 찾아오는 장소 열 곳에 들어가는 곳이 서산 간월도 일대의 천수만과 서천의 금강 하구일 것이다.
흔히들 겨울철새만 찾아오는 곳으로 알고 있지만, 그야말로 1년 내내 새들이 끊임없이 드나드는 곳이다. 새들과의 만남이 가능한 건, 갯벌과 드넓은 농경지 덕분이다. 각종 개발 계획으로 꾸준히 위협받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곳만은 꼭 지켜지길 바란다.
필자의 고향이기도 한 서산은 어릴 적부터 새들에 대한 많은 기억을 남겨 준 곳이다. 서천은 새를 보기 시작하면서 매년 수십 번씩 찾아가는 중요한 탐조지이다. 그 기억을 간직하고 찾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를 붉은가슴도요 가슴에 담아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