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 활동소식

바오로 수녀와 함께 읽는 『생태주의자 예수』세번째 이야기– 태양의 시대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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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바오로 수녀님 리본

 

태양에너지는 무제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태양은 모든 인간에게 필요한 에너지의 15,000배나 되는 양을 매일 지구에 보냅니다. 그 에너지는 환경과 기후에 해가 되지 않으며 언제나 무료로 공급됩니다. 다른 어떤 에너지보다 환경 친화적이고 가격도 더 저렴합니다.

또한, 태양광 패널은 경비 소모가 적고 자연경관을 해치지 않으며, 전기가 필요한 바로 그 곳, 즉 각각의 가정에 설치될 수 있습니다. 에너지의 개별적 수급에는 별도의 요금이 필요 없으며, 언제라도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고, 소음이나 유독가스와 같은 부작용도 없습니다. 이보다 더 간단할 수는 없습니다. 불은 켜지고 전류가 흐릅니다.

 

 

환경운동은 모두에게 부유함을..

오늘날의 환경운동은 창조질서의 보존을 지향하면서 부분적으로는 아직도 금욕주의와 희생을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태적 예수는 우리가 자연의 풍요로움, 다양함, 무한함에 주목할 것을 권합니다. 예수의 가르침은 뭔가를 포기하라는 설교가 아니며, 그저 자연의 법칙을 가리킬 뿐입니다. 이렇듯 환경운동이 성공을 거두려면 환경보호나 환경정책이 포기가 아니라 이득이라는 것을 밝히 깨달아야 합니다. 장기적 안목이 없는 경제의 지배 아래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손실이 있을 뿐이지만, 환경운동은 모두에게 부유함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넉넉함, 기쁨, 풍성함에 대한 전망을 주지 못한다면 환경운동과 환경정책은 대중의 마음에 가 닿을 수 없습니다.

 

재생 가능한 에너지, 무한히 존재하는 에너지만이 모든 인간의 소원, ‘풍성한 생명’과 ‘넘치는 기쁨’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고의 전환을 이루지 못한다면 빠듯한 구식 에너지를 둘러싼 전쟁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태적 예수의 위대한 예언에 따르면 자연은 모든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 ‘태양정책’을 통해, 모든 사람의 노동과 복지, 모든 생명을 위한 생명의 풍성함으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 예수의 전략입니다.

 

저 석유 때문에 얼마나 더 많은 전쟁이 일어날 것인가요? 우리가 땅, 공기, 물, 기후와 평화의 약속을 맺지 않는 한 인간들 간의 평화도 불가능합니다. 생태계 위기에 대하여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한 그리스도교는 예수의 핵심을 이미 저버린 셈입니다. 그러나 최소한 몇몇 교회들은 시대의 징후를 파악하고 교회의 지붕을 남향으로 했습니다. 튼튼한 공동체는 새로운 길을 갑니다. 나쁜 모범이 그렇듯이 좋은 모범도 금방 옮아가기에 누군가가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4월 6일 이화삼성교육문화관에서 독일의 유명한 언론인이자 생태주의자인 프란츠알트박사가 석유가 아닌 생태주의적인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한 강연을 하고 있다. ⓒ시민환경정보센터 안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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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에너지면 충분합니다

저자 프란츠알트는 지붕에 두 개의 태양에너지 장치를 달기로 했습니다. 하나는 온수공급을 위한 태양열 집열판이고, 또 하나는 전기 공급을 위한 태양광발전 장치였습니다. 두 기계는 집 지붕의 25%정도만 차지했습니다. 에너지 독점 세력이 제기하는 비용과 장소에 대한 두 가지 반론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자기 집이 없는 사람은 공동설비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학교나 교회, 지역 건물 등의 공공건물에 설치를 하는 것입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태양의 시대로 돌입하는 첫 걸음을 내딛고 있습니다.

 

영국 <태양광발전 연구센터>에서 내놓은 연구결과에 따르면, 태양전력을 기존의 건물에 적용한다고 할 때 현재 지붕 면적의 10%만 개조해도 영국에서 필요한 전력 전량을 햇빛의 도움으로 생산할 수 있다고 합니다. 지금 독일은 태양열 장치를 지붕 경사면만이 아니라 벽면에 수직으로 장착할 수 있는 기술까지도 개발했습니다. 이렇듯 에너지 독점세력이 제기하는 ‘모든 에너지를 재생에너지원으로 생산하기에 국토의 면적이 충분하지 않다’라는 반론은 무의미합니다.

 

그러면 비용문제는 어떻게 될까요? 우선 태양광 에너지를 쓰면 매년 5톤의 이산화탄소가 덜 배출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한 값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태양광 패널은 그 수명이 삼사십 년입니다. 이 투자비용은 대략 12년이면 상환될 수 있으며 그 뒤로도 이삼십년 동안은 이익을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생태와 경제의 완벽한 조화입니다. 오히려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지 않는 사람들의 돈이 굴뚝의 연기로 사라지는 셈입니다. 에너지 독점세력이 제기하는 ‘재생에너지는 너무 비싸다’ 라는 반론 또한 불필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새로운 환경윤리는 새로운 환경정책의 전제

생태적 기술이 아무리 많이 개발되어 있고, 또 지금도 개발되는 중이라 해도 환경적 양심이 작동하지 않는 한 정치가들, 경제인들, 그리고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 속에서 생태적 회심은 불가능합니다. 새로운 환경윤리는 새로운 환경정책의 전제이며, 많은 사람들이 환경을 고려하는 새로운 삶의 스타일을 전개하기 위한 전제입니다. 이런 새로운 환경정책을 위해 우리는 자연의 선물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활용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원자력 카르텔이 원자력에너지 개발을 포기하도록 돕기 위해 우리는 저 기업집단의 보스가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그 것은 원자력 카르텔의 상품을 철저히 보이콧하는 것입니다. 이제 저 기업집단을 향해 “원자력 정책을 포기하고 더 이상의 방사능 폐기물을 내지 말고 진보의 첨단에 서라”고 권고하기 위해 우리는 시장경제의 원리를 이용하여, 그 기업집단이 기존 원자력에너지 정책을 철회할 때까지 해당 기업의 상품을 구매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더 나은 길을 가도록 돕는 최선의 방법이 됩니다.

 

또한, 우리는 분명한 선택의 기준을 가지고 모든 선거에 임해야 합니다. 국가가 태양에너지로의 전환을 이룩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제대로 살펴야 합니다. 투표를 통해 이성과 환경의 승리, 미래지향적인 일자리를 위한 결정, 또한 에너지 독점세력이라는 비이성에 대한 승리를 거둘 수 있습니다. 그들의 치명적인 에너지정책에 대한 우리의 심판을 통해, 아래로부터의 압력이 올라올 때 비로소 새로운 에너지정책은 추진될 것입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마태6:24)”

태양, 바람, 물, 들판은 에너지 독점세력 없이도 우리에게 넉넉한 에너지를 공급해줄 수 있습니다. 만일 에너지 독점세력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고, 기술자들도 이 분야의 노력을 광범위하게 추진하지 못한다면 그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건 우리밖에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자가 공급, 자기 책임, 에너지 자율성이라는 ‘무기’를 들어야 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태양에너지의 시대로 가는 차에 올라타면 됩니다.

 

에너지 민주화를 이룬 독일 쇠나우 지역을 살펴볼까요?

모든 에너지 생산과 에너지 공급이 민주화된 쇠나우 지역에서 태양에너지는 민중의 에너지요. 자연과의 평화를 의미하는 에너지입니다. 교회지붕에는 거대한 태양열 장치가 설치되었고, 사람들은 그것을 쇠나우의 ‘창조질서의 창문’이라고 부릅니다.

 

하늘 아버지가 모든 사람에게 햇빛을 비추게 하신다는 선언을 통해 예수는 시간의 간격을 훌쩍 뛰어넘어 우리 시대로 찾아옵니다. 듣기만 해도 흐뭇한 예수의 이 말이 지금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이 것입니다. “너희의 모든 원자력발전소 가동을 중지하라! 정유공장을 철거하라! 석탄발전소의 문을 닫아라! 너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니다. 하늘 아버지와 그분의 태양, 바람, 물, 나무, 풀을 신뢰하라.”

독일 쇠나우 교회지붕에 설치된 태양열집열판

독일 쇠나우 교회지붕에 설치된 태양열집열판

이 나사렛 청년 예수가 말하고 있는 바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건설적인 미래 프로그램으로, 지금 여기서 적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의 프로그램은 좌파적인 것도, 우파적인 것도 아닙니다. 예수는 앞으로 나가는 사람일 뿐입니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지금도 예수는 미래의 사람입니다. 그가 주창하는 프로그램은 깜짝 놀랄 정도로 현실적입니다.

철저한 에너지 혁신은 막강한 자본력을 자랑하는 에너지 독점세력의 대규모 저항을 극복해야 합니다. 예수도 기존 권력의 격렬한 저항에 맞서 싸워야 했습니다. 우리는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 자는 그 위험 속에서 죽는다.’ 는 옛 변증법적 지혜를 기억하며 행동해야 합니다.

 

태양의 사람들에게 미래가 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생태적 예수를 따르는 이들은 태양의 편에 섭니다. 태양을 행해 얼굴을 들고 원자력, 화석에너지의 그늘에서 나올 때 우리에게 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태양에너지와 바람 에너지는 창조질서와 어울리는 것이기에 예수와도 어울립니다. 원자폭탄이 예수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원자력발전소도 예수와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마태6:24)”

 

 

생태적 예수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지금 여기 here and now를 살라! 생명을 신뢰하라! 창조세계와 미래를 신뢰하라! 낡은 것을 버리는 법을 배우라! 돈에 근거한 안전이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라!

 

글 │ 성가소비녀회 최바오로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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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재은

신 재은

환경운동연합 생태보전국 신재은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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