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보전 활동소식

우리에게 집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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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아파트라는 콘크리트 속에서 살기 시작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아랫집도,
위집도, 옆집도 모두 똑같다. 심지어 우리 집과 다른 집과의 거리는 채 5m도 안된다. 그런데도 마음의 거리는 10리 그 이상이다.

아파트는 공동체를 형성하기에 취약한 구조이다. 공동체성은 공원이나 길과 같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아파트 단지 안에는 우리들이 모일 공간이 없을 뿐더러, 길까지 가려면 엘리베이터라는 걸 타고 한참을 내려가야 한다. 창문만
열면 또는 문만 열고 나가면 지나가는 철수 엄마, 영희 아빠를 만나 이야기 한마디 건넬 수 있는 그런 마을 구조부터가 애초부터
아닌 것이다.

도시도 그렇고, 아파트도 그렇고, 도시나 주택 형태는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생활패턴에 많은 영향을 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도시나 주택 형태를 선택하지 못하고 공장에서 찍어내는 듯한 획일적 대량생산된 아파트라는 곳에서 살고 있다.

더구나 이놈의 아파트는 위로 솟아오른 높이만큼이나 땅속과 땅위도 못살게 만든다. 땅 속으로는 굵고 큰 기둥을 박아 아파트를 고정시키고
지하엔 동굴 같은 주차장을 만들어 놓는다. 넘쳐나는 차들은 지상도 콘크리트로 꼭꼭 포장을 시킨다. 숨 막히는 땅, 숨 막히는
우리… 우리는 이제 화분 분갈이를 하고 싶어도 흙을 사야만 하는 그런 곳에 살고 있다. 아파트라는 놈은 그리고 아파트를 사랑(?)하는
우리들은 자연과의 조화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건 아닌지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그럼, 과연 이런 아파트의 피해를 받는 건 자연 뿐일까? 우리는 아파트 안에서 안전하고 자유로운 것일까? 옛날에 10층 15층
하던 아파트들은 어느새 20층 30층 아니 그 이상으로 계속 올라가고 있다. 하늘 가까이 가고 싶은 인간의 욕구일까? 아님 땅위에
바쁘게 사는 우리네들을 아랫것들로 내려 보고 싶은 욕구일까?

어찌되었던 우리는 집을 살 때 높은 아파트 높은 층을 좋아하며 앞이 탁~ 트여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우리 집만 높아야
한다는 이기심도 한몫하여, 우리 집 앞에 높은 아파트가 들어서면 조망권이니 일조권이니 사생활 침해니 하면서 한바탕 싸우기 일쑤이다.
어찌되었던, 이런 높은 아파트들은 환기도 중앙에도 해준단다. 고마워해야 하나? 그런데 전기세는 왜 이리 많이 나오는 걸까? 자연바람을
쐬고 싶어도 창문을 열수가 없다. 왜냐면 안전 때문에 창문을 활짝 열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드는 나의 엉뚱한 상상,
‘불나면 어떻하지! 번지점프라도 해야 하나!’ 그런데 번지점프도 어렵겠다. 유리창이 깨져야 뛰어내리든 말든 하지, 강화유리는
우리는 철저하게 보호(?)해 준다. ‘불나면 엘리베이터 타지 말라고 했는데, 계단으로 내려가려면 도대체 몇 층을 내려가야 하는
거야!’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정신이 아찔하다.

우리 국민들은 불쌍하다. 압축적인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 새로운 주거문화라고는 아파트문화 밖에 경험해보지 못했다. 집을
공급하는 사람들(정부, 건설회사) 입장에서는 아파트를 지어서 분양하는 게 땅을 사고, 집을 설계하고, 공사 할 때 편리할
수 있겠지만, 아파트의 폐해는 고스란히 우리들 몫이다. 또한 경제성장과 함께 돈을 번 사람들이 아파트를 투기의 재물로 삼으면서
아파트 장만이 서민들의 평생소원이 되게 하였으니,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럼, 우리는 여기서 한탄만 하고 있어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패배자처럼 이런 상황을 무기력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자존심 상한다.

아파트는 설계와 공사 때부터 자연과의 조화, 이웃간의 공동체성 확보, 에너지 절약이 가능한 구조여야 한다. 이러한 변화가
가능하려면, 우리는 새로운 주거문화를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하고 그 변화가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음을 확인시켜줘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희망이 환경아파트 운동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시구(詩句)처럼, 혼자 있으면 외롭지 않은가? 이웃과 자연과 친구해봄이 어떨지… 살며시 옆
집 문을 두드려보고 싶다. 어릴 때, 친구집 문 앞에서 “지희야 놀자!”를 외칠 때처럼.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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