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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달 파파로티와 까칠한 스승…”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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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파로티>를 보다

2012년 개봉한 우리 영화 <파파로티>는 성악을 꿈꾸는 조폭이 등장한다. 조폭이 사찰을 점령하고, 학교를 가고, 무당이 되는 설정은 있었지만, 클래식 하는 조폭은 생소하다. 하지만 <파파로티>는 실제 ‘고교생 파바로티’로 TV에 소개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장호(이제훈 분)는 성악 재능을 인정받아 낮에는 예술고등학교 학생이지만, 밤에는 아우들을 거느린 형님으로 생활한다. 그런 그를 반강제로 맡게 된 이가 바로 나상진(한석규 분)이다. 나상진은 한때 잘나가는 성악가였으나 지금은 시골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그저 까칠한 선생이다. 나상진의 눈에 건달이 클래식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상진은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봐야 하느냐”며 이장호를 무시한다. 그런 나상진에게 이장호는 “건달은 노래하면 안 됩니까?”라면서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상진은 이장호에게서 하늘이 내려준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되고, 부러워한다. 그러면서 그를 제대로 된 성악가로 만들기 위해 뛰어든다. 그러나 조폭 세계에 깊숙이 들어가 있는 이장호를 끌어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레슨비에 가로막힌 합창단원의 꿈

영화 <파파로티>를 보면서 옛 기억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1학년 어느 음악 시간, 선생님은 가곡 ‘선구자’를 한 명씩 부르게 했다. 내 차례가 끝난 후, 선생님은 급히 출석부에서 내 이름을 확인하며, “너 합창반에 들어와야 겠다”고 말했다. 친구들은 “와”라며 탄성을 질렀다. 당시 합창부는 축제 때 가장 큰 공연을 하는, 학교에서 제일 잘 나가는 서클이었다.

나는 조금, 아니 많이 떨렸다. 아마도 친구들 중에는 그때까지 내 이름도 모르는 이들이 많았을 만큼 난 조용했기에, 아이들의 주목은 나를 떨게 했다. 급기야 선생님은 “수업 끝나고 나 좀 보고 가라”고 했다. 친구들이 또다시 탄성을 내질렀다. 17살, 내가 뭘 잘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알게 된다는 것은 ‘설렘’이자 ‘환희’였다. 당연히 합창반에 들어가고 싶었고, 가능하다면 성악을 전공하고 싶다는 꿈도 꿨다.

그러나 나는 성악을 할 수 없었다. 누나 친구 중에 성악을 전공하는 이가 있어 어찌 해야 하는지 물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 기억 남는 건 별도의 레슨을 받아야 한다는 것뿐이다. 문제는 한 한기 등록금의 두 배가 넘는 비용을 레슨비로, 그것도 매달 지출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것은 우리 집 형편으로는 불가능했다.

내 위 형제들 모두 고등학교 졸업 후 집안 살림을 위해 취업에 나서는 상황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아예 꿈조차 꾸지 말자는 심정으로 합창반 들어갈 생각을 접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내내 ‘파바로티’를 ‘파파로티’로 잘못 알고 있으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꿈을 위해 매진하는 이장호가 부러웠는지도 모른다.

인생의 스승…자연이야말로 위대한 스승

아니다. 어쩌면 이장호를 이끌어 준 선생 나상진이야말로 더 부러운 존재가 아니었나 싶다. 만화가 박용흠 선생의 대표작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1995년)』이란 작품이 있다. 이 만화는 조선시대 차별 받는 이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가주의 작품으로서 당시 비평가와 독자들 모두에게 호평을 받았다. <왕의 남자>로 알려진 이준익 감독은 이 작품을 2010년 동명의 영화로도 연출하기도 했다.

원작에서 서자 출신 견자는 맹인 검객 황정학에게 검술을 배우면서 세상의 이치를 터득해 나간다. 어느 날 황정학이 견자에게 ‘하루살이가 하루에 얼마나 날 수 있냐?’고 묻는다. 견자가 아무 말도 못하자 황정학은 “하루살이가 기껏 날아봐야 하루에 10리를 갈 수 있을까?”라며 “하지만 하루살이가 천리마 등에 오르면, 하루에 천리를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보면 영화 <파파로티>에서 ‘하루살이’ 이장호를 천리를 가게 했던 것은 ‘천리마’ 나상진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이태리 유학을 갔다 와 귀국 인사를 위해 무대에 오른 이장호는 오늘의 자리까지 오게 한 사람이 바로 나상진이라 말하며 고마워한다. 그러면서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을 열창하면서 영화는 끝을 맺는다.

고백하자면 철없는 시절 ‘왜 내게는 천리마 같은 스승이 없을까?’라는 푸념 했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주변에 천리마 같은 스승이 넘쳐 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 아닌 모든 사람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어느 방향으로 천리를 갈 것인가와 나는 누구를 위한 천리마가 될 것인가도 생각하게 됐다. 행복을 받는 이가 있다면, 그 행복을 주는 이도 있어야 하니 말이다.

천리마 같은 스승은 사람만이 아니라는 점도 중요하다. 인류의 지혜의 근본은 자연에게 배운 것이 상당하다. 지금도 자연을 제대로 배워야 인류가 지탱가능하다는 점에서 자연이야말로 인류의 위대한 스승이 아닐까 싶다.

*이 글은 이철재 에코큐레이터(환경운동연합 정책위원)가 보내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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