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유령마을로 가라?…소련도 이렇게는 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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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인리포트-공포의 후쿠시마, 그후 4년⑦] 다시 찾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피해현장

글쓴이는 시민방사능감시센터 위원장 겸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입니다.

후쿠시마역에 설치된 후쿠시마 홍보 부스 모습이다. '복이 만개한 도시로 관광 오라'는 홍보 문구가 쓰여 있다. ⓒ 김혜정

후쿠시마역에 설치된 후쿠시마 홍보 부스 모습이다. ‘복이 만개한 도시로 관광 오라’는 홍보 문구가 쓰여 있다. ⓒ 김혜정

후쿠시마가 위치해 있는 일본 동북지역은 벚꽃과 복숭아로 유명하다. 다른 지역에 비해 벚꽃이 오랫동안 피어 봄이면 복이 만개한다고 불리는 도시다. 하지만 지난 2011년 3월 11일 벚꽃이 필 무렵 원전사고가 발생하면서 복 받은 도시서 재앙의 도시로 탈바꿈했다. 사고 발생 4년이 지난 올해 3월 11일 도쿄를 거쳐 후쿠시마에 도착했다.

기차가 후쿠시마역에 미끄러지듯 들어섰다. 차창 밖으로 눈이 내렸다. 방사능에 오염된 눈일까 의심이 된다. 찝찝한 기분이 들지만 주위를 둘러봐도 우산을 쓴 사람은 없다. 거리도 마찬가지. 몸을 피하는 이들이 없다. 대신 기차역 곳곳에 관광 홍보 포스터가 내걸려 있고 대합실 TV에선 홍보 영상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복이 많은 섬 후쿠시마, 벚꽃 피는 복이 만개한 계절이 되었으니 관광 오라.’

방사능에 오염된 재앙의 도시가 복이 많은 도시라니. ‘눈 가리고 아웅’하는 일본 정부와 지방정부의 홍보정책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일본 지배층이 내세우는 ‘지나간 과거는 중요하지 않고 미래가 중요하다’는 프로파간다(propaganda, 정치선전)가 일본 국민들의 뇌리에 깊이 박힌 것일까. 원전 4기가 폭발해 방사능 대재앙이 일어난 지역이라고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후쿠시마 곳곳엔 관광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었다.

숙소로 향하는 길, 문득 지난 2월에 발생한 사건이 떠오른다.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후쿠시마 원전의 운영사인 도쿄전력은 방사능 오염수를 고의적으로 바다에 유출하고 은폐하다가 10개월 뒤에 발각됐다. 제1원전 2호기 배수로의 오염수를 측정한 결과 방사성 물질 세슘137(Sc-137)이 리터당 2만3000베크렐(Bq/L), 세슘134(Cs-134)가 리터당 6400베크렐(Bq/L) 등으로 나타났다(식품위생법상 방사성세슘 기준치는 킬로그램당 100베크렐).

도쿄전력은 지금도 폭발한 원전의 녹아내린 핵연료를 식히기 위해 매일 400톤의 냉각수를 퍼붓고 있다. 고농도 방사능 오염수로 바뀐 냉각수는 원전 부지 내 임시저장 탱크에 담기거나 지하수 또는 바다로 흘러들어가 결국 200km 이상 떨어진 도쿄의 해안까지 오염시키고 있다.

육상에서는 사고원전에서 뿜어져 나온 방사능이 공기 중에 섞여 원전에서 50km 떨어진 지역까지 뻗어나갔다. 지금도 이들 지역은 고농도 오염지역으로 분류돼 출입이 제한되고 있다. 12만 명 이상의 주민은 난민이 돼 후쿠시마현을 비롯해 전국에 흩어져 피난생활을 하고 있다.

화가 난다. 상황이 이런데도 일본 정보는 후쿠시마 사고를 ‘과거’ 일로 치부하고 ‘후쿠시마 부흥정책’을 펼치고 있다니. 후쿠시마산 모든 쌀에 대해 방사능 조사를 실시하고 다른 농산물도 엄격히 검사하고 있다고 선전에만 안간힘을 쓰고 있다니. 갑자기 후쿠시마산 복숭아와 사과, 배를 원료로 만든 과일음료들로 채워진 홍보 포스터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머리가 아프다.

방사능오염 여전한데 관광 오라니… 화가 난다

다음 날(12일), 사고 현장으로부터 가까운 마을을 둘러보는 일정이 잡혔다. 복잡한 심정을 다스리며, 이이다테촌(飯館村)과 나미에정(浪江町)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두 지역은 원전사고 후 각각 거주제한구역과 피난지시 해제준비구역으로 나뉜 도시다. 하지만 두 지역 모두 차례로 귀환대상에 포함될 예정이다.

나미에정에 다다르자 방사능에 오염된 토양을 걷어낸 거대한 검은 포대가 산처럼 쌓여 있다. 제염작업자와 굴삭기를 제외하고는 움직이는 물체를 발견하기 어렵다. 사람이 떠난 공간을 방사능이 채운 도시, 그야말로 유령마을이다.

여기서 잠깐, 나미에정 마을과 일본 정부의 주민귀환정책에 대해 알아보자. 나미에정은 후쿠시마 원전에서 서북방향에 위치한 지역이다. 사고원전에서 가깝게는 4km, 멀게는 30km까지 펼쳐져 있다. 나는 원전사고 이후 세 번째 후쿠시마를 방문하지만 이곳은 첫 방문이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일본정부의 귀환정책 때문이다. 나미에정 일부 지역이 피난지시 해제준비구역으로 지정돼 외부인도 출입이 가능해졌다. 일본 정부는 내년부터 나미에정 주민들을 귀환시킬 계획이다.

앞서 2012년 일본 정부는 주민귀환정책을 실시, 피난지시지역을 3개 구역으로 재정비했다.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연간 방사능 피폭선량이 20밀리시버트(mSv/h) 이하인 지역은 피난지시 해제준비구역, 피폭선량이 20~50밀리시버트(mSv/h)인 지역은 거주제한구역, 피폭선량이 50밀리시버트(mSv/h) 이상인 곳은 장기귀환곤란구역으로 지정했다.

방사능오염에 따른 구역별 표시. 초록색 지역이 피난지시 해제준비구역이고 오렌지색으로 된 부분이 거주제한구역, 짙은 분홍색 지역이 귀환곤란지역이다. 이이다테촌은 거주제한구역으로, 나미에정은 피난지시 해제준비구역과 거주제한구역이 뒤섞여 있다. ⓒ 김혜정

방사능오염에 따른 구역별 표시. 초록색 지역이 피난지시 해제준비구역이고 오렌지색으로 된 부분이 거주제한구역, 짙은 분홍색 지역이 귀환곤란지역이다. 이이다테촌은 거주제한구역으로, 나미에정은 피난지시 해제준비구역과 거주제한구역이 뒤섞여 있다. ⓒ 김혜정

이 중 장기귀환곤란구역을 제외한 나머지 두 지역은 주민귀환을 목표로 제염사업이 대대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1차로 주민귀환이 이루어지는 지역은 피난지시 해제준비구역이다. 현재 나미에정은 주민귀환을 위해 낮 동안 출입이 허용돼 있었다.

버스가 나미에정 청사에 들어섰다. 청사에는 주민귀환을 위해 2년 전부터 60여 명의 공무원이 되돌아와 근무를 하고 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하지만 그 누구도 방호 장비를 착용하지는 않았다. 곧 나미에정 공무원의 상황 설명이 이어졌다.

“원전사고 이전 나미에정에는 7614세대, 2만1434명의 주민이 살았다. 평야와 해안이 두루 펼쳐져 있는 이곳은 해산물과 사케 등이 유명하다. 하지만 3·11 대지진과 원전폭발로 쓰나미와 지진피해, 방사능 재앙까지 겹치면서 지금은 전 지역이 사람이 살 수 없는 유령마을이 됐다. 이재민이 된 주민들은 4년간 후쿠시마현 내와 바깥에 설치된 임시 가설주택에서 생활하고 있다.”

묵묵히 지난 4년간의 일들을 설파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만감이 교차했다. 따지고 보면, 원전사고의 피해를 키운 것은 일본 정부다. 피난 지시 상황만 늘어놓고 봐도 그렇다.사고 당일(11일) 오후 9시 23분이 돼서야 반경 2km 지점에 피난 지시가 떨어졌다. 그리고 이튿날(12일) 오전 5시 44분 반경 10km로 확대됐다. 12일 오후 6시 25분이 돼서야 피난 지시는 반경 20km까지 늘어났다.

“귀환지시 나면 피난 배상금 끊겨… 눈물 머금고 돌아가야 하는 상황”

하지만 나미에정 주민들은 말한다. 단 한 차례도 정부로부터 직접적인 피난 지시를 받은 적은 없다고. 정전으로 TV 방송까지 중단돼 방사능오염과 피난 등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없어 최소 4일 이상 고농도 오염지역에 방치돼 있었다며 분개하기도 했다. 20km 바깥의 주민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현지 주민들이 말했다.

“나미에정은 2, 3대가 모여 살던 동네였다. 그런데 원전사고가 일어난 후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신체적 고통은 물론 정신적으로도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정부와 지방정부는 이 같은 호소에도 대책은 고사하고 다시 방사능에 오염된 유령마을로 돌아가라고 강요하고 있다. 귀환지시가 결정되면 피난 배상금이 끊기기 때문에 별다른 생계대책이 없는 주민들은 눈물을 머금고 되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다.”

다시 버스에 올라 사고현장으로 달려가는 길, 차창 밖으로 지진과 쓰나미로 무너진 집들이 방치된 채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모습이 스쳐지나간다. ‘폐허’란 단어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풍경이다.

오후 3시 30분께, 사고원전에서 4km 떨어진 지점에 도착했다. 이름 모를 폐가 옥상에 올라 사고원전을 바라봤다. 지금껏 거쳐온 참사현장이 떠올라 기가 막혔다. 바로 눈앞에서 거대한 방사능 쓰레기 적치장과 방사능 쓰레기를 소각하는 시설을 보고 있자니 주민귀환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아베 정부의 사악함에 치가 떨렸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통제선을 뚫고 사고원전까지 향할 수 있을 정도로 허술한 통제구역 관리에 감정이 북받쳤다. 눈이 저절로 질끈 감겼다.

일본 정부에 묻지 않을 수 없다. 누구를 위한 귀환과 부흥정책인지. 일본 정부는 도쿄전력의 파산을 막기 위해 2011년 1조 엔(약 9조 원)을 출자한 데 이어 이듬해 9조 엔(약 84조 원)을 추가로 출자해 사실상 도쿄전력을 국유화 했다. 도쿄전력이 피해자 보상금 및 제염과 오염수 처리비, 중간처리시설 준비 등으로 투입한 예산은 한화 약 102조 원에 달한다. 반면 후쿠시마 소책자 간행위원회에 따르면, 후쿠시마 원전 폐로와 제염작업 견적 비용만해도 23조 엔(약 213조 원)을 넘는다. 실로 어마어마한 비용이다.

주민들의 주장처럼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제염작업에 천문학적 금액을 사용하기보단 주민들의 이주를 지원하거나 보상하는 데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 더 경제적인 주민 안전대책 아닐까. 일본 정부와 후쿠시마현의 뜻대로 사고원전 가까이 사람이 살아야 복원이 입증되고 제염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까.

그렇다면 국민을 희생양으로 삼은 일본 정부는 과연 누구를 위한 정부일까. 부흥정책이란 미명하에 유령마을에 꽃을 심고 도로를 건설해놓는다고 사람이 돌아오지 않듯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는 법이다.

전국 곳곳서 방사능쓰레기 소각… 야만적이고 반생명적인 정책

▲ 후쿠시마현 가설 소각로 지도 ⓒ 김혜정

▲ 후쿠시마현 가설 소각로 지도 ⓒ 김혜정

 

또 부흥산업의 일환으로 실시하는 방사능 쓰레기 소각로 건설은 어떠한가. 방사능 폐기물중간처리장 확보가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로 일본 정부는 방사능 쓰레기를 소각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방사능 쓰레기 소각을 생각하는 후쿠시마 연락회’의 와타 나카코 대표에 따르면, 방사능 쓰레기의 경우 Kg당 10만베크렐(bq) 이하면 방사능 폐기물 처분장으로 향하지 않고 일반 쓰레기로 분류돼 소각된다고 한다.

이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소각시설이 후쿠시마현 내 19개 시·정·촌에 모두 24기가 존재한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현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의 지자체 소각시설로 방사능 쓰레기를 보내서 태워 없애고 있다.

소각로에서 날리는 소각재는 1~10마이크로미터(㎛) 미만의 아주 작은 미립자다. 꽃가루보다 더 작다. 바람을 따라 소각재가 날아간다면, 일본 전 지역이 방사능에 오염된다. 아베 정부와 일본 원자력계의 목적은 방사능 쓰레기를 태워 없애는 것뿐만 아니라 방사능오염의 전국화 현상을 통해 후쿠시마 암환자 발생율과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을 없애려는 것이란 의심을 받고 있다. 정말이지 야만적이고 반생명적인 정책이 아닐 수 없다.

아베 정부의 주민 피난 대책은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 당시 소련 정부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반인륜적이다. 소련은 연간 5밀리시버트(mSv/h) 이상 지역을 이주의무지역으로 지정했다. 연간 20밀리시버트(mSv/h) 미만 지역은 강제피난지역으로 설정했다. 또 1~5밀리시버트(mSv/h) 지역도 이주권리지역으로 지정했다. 특히 사고 이후 29년째인 지금까지도 원전 반경 30km 안은 사람이 살 수 없는 통제구역으로 지정해두고 있다.

일본 정부의 무리한 제염작업과 주민귀환정책은 지역주민이 아닌 원자력촌의 재건과 토건세력을 위한 것일 뿐이다. 지난 40년간 대도시 전력공급을 위해 희생된 지역주민들은 원전사고로 건강과 고향을 잃고 난민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후쿠시마 부흥정책을 통해 지난 세월 원전산업으로 이익을 본 건설업계가 다시 원전사고로 이익을 얻는 수혜자가 되었다. 포크레인과 검은 방사능 쓰레기 더미는 제염을 구실로 한 원전산업과 토건세력의 돈벌이 사업일 뿐이다. 방사능오염지역은 주민 귀환이 아니라 폐쇄지역으로 지정해야 하는 게 마땅한 조치다.

다음 목적지인 이이다테촌으로 향하는 버스 안, 만약 우리나라에서 사고가 나면 어떻게 될까 생각하니 후쿠시마 상황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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