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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부른 가습기 살균제 공포,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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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서울 역 앞 계단에 전국에서 모인 가습기살균자 피해자들의 유품이 전시됐다. ⓒ 정대희

2011년 4월 어느 날, 서울의 한 병원에서 산모들이 잇따라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병명은 괴질. 이유를 알 수 없는 이상한 병이었다. 기괴한 일에 병원측은 자체 조사를 벌였다. 얼마 후, 사망 원인이 어느 정도 좁혀졌고 이를 정부에 알렸다.

굼뜬 결정 과정을 거쳐 마침내 정부가 역학 조사에 착수했다. 4개월 뒤, 우여곡절 끝 조사를 끝마친 정부는 놀랄 만한 내용을 발표한다. 산모 연쇄사망 사건의 병명은 폐질환, 원인은 ‘가습기 살균제’로 밝혀졌다.

손쉽게 구입해 사용하던 공산품의 유해성 소식에 여론이 들끓었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과 관련한 뉴스가 연일 쏟아졌다. 정부는 곧바로 가습기 살균제의 사용 자제와 판매 중단, 회수 권고를 내렸고 11월에는 인체 독성을 공식 확인해 발표했다.

가습기 살균제는 1997년 한국에서 최초 출시돼 2011년 사실상 판매가 중단되기까지 약 20여 종이 연간 약 60만 개(20억 원) 정도 판매됐다. 14년간 전국의 가정에서 약 840만 개를 사용했다는 거다.

2014년 8월 31일,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3년이 됐다. 이날 피해자와 가족모임은 국회 의원회관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대회를 열고 특별법 통과와 가해 기업의 처벌을 촉구했다.

앞서, 이들은 서울역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는 기자회견을 열고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에 대한 관심을 호소했다. 또한 정부, 기업 등을 상대로 살인죄로 형사 고발했다. 가습기 살균제 공포가 끝나지 않았다는 울부짖음이었다.

가습기 살균제 공포,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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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피해자모임의 최주완(61)씨는 지난 2008년 아내를 간질성 폐질환으로 잃었다. 그는 아내의 사인을 정확히 알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닌 끝, 가습기살균제가 원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그는 정부의 역학조사 결과 ‘가능성 낮음’을 판정받았다. ⓒ 정대희

“이게 말이지. 그동안 간장인 줄 알았는데, 열어서 맛을 보니 매실 엑기스인거 있지. 집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 같은데, 남자끼리 살다보니 알 턱이 없었던 거야. 요즘엔 이거 한 잔씩 마실 때마다 떠나간 집 사람이 더 그리워. 가만 생각해보면 내가 집사람을 많이 사랑했나봐.”

1.5리터짜리 생수병의 마개를 열며, 최주완(61)씨가 말했다.

지난달 25일 최씨를 만났다. 국회 앞에서 특별법 제정과 가해자 처벌 촉구를 위한 1인 시위를 끝낸 후였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어지럽게 널린 살림이 투박해 보였다. 필시 남자들만 사는 집이었다. 매실차를 만들던 그의 옆으로 벽면 한 귀퉁이에 걸린 액자가 눈에 띄었다. 빛바랜 사진 속에는 곱게 한복을 차려 입은 여자와 검정색 양복을 입은 남자가 다정히 서 있었다. 최씨 부부의 사진이었다.

지난 2008년 2월 감기로 병원을 오가던 최씨의 아내는 ‘간질성 폐질환’이란 진단을 받았다. 서둘러 큰 병원(종합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았지만, 아내는 미처 봄이 오는 풍경을 보지 못하고 그 해 사망했다. 입원 약 2개월 만이었다. 최씨는 백방으로 뛰어다닌 끝에 폐질환으로 사망한 아내의 죽음이 가습기 살균제와 연관성이 높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지난 3월, 그의 앞으로 도착한 한 통의 통지서는 쓰디쓴 좌절감을 맛보게 했다. 가습기 살균제와 아내 죽음의 상관 관계를 조사한 통지서엔 ‘가능성 낮음’이라고 게재돼 있었다. 피해 조사를 실시한 질병관리본부와 폐손상조사위원회가 아내의 죽음에 대해 내린 결론이었다.

최씨는 아내가 2005년 5월 간단한 수술(복강경 부신종양)을 받은 게 화근이 됐다고 한다.

“수술 경험이 있는 사람은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됐을 때 더 치명적일 수 있는데, 정부는 이를 감안하지 않고 오로지 폐질환만 놓고 가능성이 높네, 낮네를 따지고 있다. 정확한 인과관계를 따지는 게 합당한 조사 아닌가?”

서울 아산병원 소아청소년병원 홍수종 교수팀이 가습기 살균제와 원인 미상 간질성 폐질환과의 관련성을 연구한 결과, 지난 2006년부터 2011년까지 간질성 폐질환으로 전국 2,3차 병원에 입소한 소아·영유아환자는 138명이었다. 그러나 2011년 11월 가습기 살균제 판매 중단 후 소아환자는 더 이상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마찬가지로 지난 2012년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동물실험 결과에서도 가습기 살균제의 주성분인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와 PGH(염화에시에틸구아다닌)의 독성이 확인됐다. 최씨는 현재 정부에 재심청구를 신청한 상태다.

 

‘억’ 소리 나는 치료비… 정부지원은 ‘찔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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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서울역 앞 계단에 전국에서 도착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유품이 전시됐다. ⓒ 정대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만난 신지숙(37)씨는 코에 연결된 산소 호흡기로 힘겹게 숨을 내쉬었다. 한 손에 쥔 휴대용 산소통을 이끌며, 힘겹게 걸음을 옮기던 그는 끝내, 또 다른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인 임성준(12)군의 휠체어를 얻어 타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신씨는 일반인의 21%밖에 작동하지 않는 폐로 인해 산소통에 의지해 호흡하며, 생활하고 있다.

정부의 역학조사 결과 그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질환이 인정됐다. 정부는 ‘거의 확실함(127명, 35.2%)’, ‘가능성 높음(41명, 11.4%)’ 등의 판정을 받은 피해자들에게 의료비와 장례비 233만 원(2014년 기준)를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가능성 낮음(42명, 11.6%)’과 ‘가능성 없음(144명, 39.9%)’, ‘판정 불가(7명, 1.9%)’ 등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의료비는 피해 당사자 또는 가족이 실제 지출한 의료비로 진료비와 호흡보조기 임대료, 선택진료비, 상급병실 차액 등 일부 비급여 항목이다.

신씨의 병세가 호전되는 유일한 길은 폐 이식 수술이다. 하지만 그는 경제적 부담으로 망설이고 있다. 알아보니 폐 이식을 위해서는 약 7000만 원이 필요했다. 여기에 병원비와 간병비 등을 합하면, 1억 원에 육박하는 경제적 부담이 뒤따랐다. 반면, 정부는 지원 대상에서 간병비와 생계수당 등은 제외됐다. 구상권 청구가 그 이유다.

정부는 우선 지원급을 지급하고 향후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청구해 지원금을 되돌려 받는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간병비와 생계수당 등은 소송에 승소해도 제조업체로부터 되돌려 받기 어려운 항목으로 애당초 지원 범위에서 삭제한 것이다.

신씨는 “(건강에) 좋다고 해서 사용한 제품인데, 그로 인해 몸이 엉망이 되고 형편도 나빠졌다.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고 기업은 엄청난 수의 피해자가 나타나는데도 사과 한 마디가 없다. 정부와 기업이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일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가해기업, 징벌적 배상으로 책임 물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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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로 목숨 잃은 어린천사 지난달 28일 서울역 앞 계단에 전국에서 모인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유품이 전시됐다. ⓒ 정대희

지난달 26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 서인 엄마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그때, 주변에서 맴돌던 아이가 엄마를 향해 걸어가 손을 꼭 맞잡았다. 아이는 기자회견 내내 그렇게 엄마의 손을 놓지 않았다.

안흥재(38), 최지연(36)부부는 지난 2008년 5월, 서인이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다. 첫 생일날이었다. 지연씨의 손을 잡아준 것은 몇 년 만에 다시 생긴 둘째 아이였다.

눈물을 보인 것은 서인 엄마만이 아니었다. 28일 서울역 앞에서 열린 ‘가습기 희생자 추모대회’에선 성준 엄마 권미애씨는 목이 메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손에 쥔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성준이는 지난 2004년 겨우 돌잔치를 끝낸 뒤 감기 증상으로 동네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후에 대학병원으로 옮겨지고 나서야 간질성 폐질환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중환자실에서 심폐 소생 시술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아찔한 경험을 한 뒤였다.

환경보건시민센터가 기록한 피해자들의 사연은 더욱 참담하다. 결혼 5년 만에 어렵게 얻은 쌍둥이 아이를 잃은 부부(대전 거주), 태아와 산모 모두 한 순간에 떠나보낸 남편(충북 옥천), 건강했던 자매가 모두 목숨을 잃은 가정(경기도 인천) 등 헤아릴 수 없는 피해자가 발생했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2014년 3월 기준,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고 사례는 361명으로 이중 104명이 사망했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손상이 거의 확실한 사례는 127명(35%)였으며, 이중 소아는 81명(63.8%)으로 절반을 훌쩍 뛰어 넘었다.

피해자 중 60%정도는 대부분 옥시레킷벤키저 제품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을 사용하다 피해를 입었다. 옥시는 2010년 기준으로 10억 원 규모로 성장한 가습기 살균제 시장의 47%를 차지한 업계 1위 기업이다.

2012년 공정거래위원는 옥시를 상대로 가습기 살균제에 ‘인체에 안전한 성분’이라는 표시를 했다며, 허위·과장광고 등으로 과장금 5100만 원을 부과했다. 이에 옥시 측은 해당 제품의 유해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달 17일 법원은 공정위의 손을 들어줬다.

시정명령과 과징금 부과가 정당하다는 판결이다. 옥시는 판결 이후, 공식적인 사과 등 아직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는 않은 상태다. 현재로썬 지난 2013년 기부금 50억 원을 출연한 것이 전부다.

지난 3년간 이 사건을 이끌어 온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정부는 특별법을 제정해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도와야 한다”며 “기본적으로 이 사건은 생활용품을 사용하다 사망자와 피해자가 발생했기에 안전성 점검을 소홀히 한 정부 책임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해당 기업에는 징벌적 배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며 “가해 기업은 하루 빨리 정부의 역학조사를 수용하고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하고 대책마련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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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정부와 15개업체를 대상으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살인죄로 형사고발했다.

 

 

※ 글 : 정대희 활동가 (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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