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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누구를 개조하려는가

▲5월 19일, 세월호 사고 34일만에 세월호 사고 대처에 대한 사과와 함께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박근혜 대통령 <사진 출처-경향신문>
오늘 아침 집을 나서면서야 알았다. 옆집 화단에 외로이 서있던 창포꽃이 시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지고 있는 꽃을 보며 즐거워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래도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것은 다시 봄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세월의 흐름을 따라 겨울 끝자락까지 걷다 보면 어느덧 새 봉오리를 맺은 봄꽃들을 만나게 될 터다.

그들도 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푸른 바닷속을 그곳 주인들과 유유히 헤엄치다 내년 이맘때쯤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올 수 있다면. 팽목항 부두에서 가족 품에 안기는 그 환한 얼굴들 속에는 “너희 친구들을 다 구해주고 난 나중에 나갈게”라던 박지영씨도,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고 사랑을 지킨 예비부부 김기웅·정현선씨도, 친구에게 구명조끼를 건네던 정차웅군도, 갑판까지 올라왔다 단짝을 구하러 선실로 돌아간 양온유양도 있을 것이다. 이들 곁에는 “혼자 살기에 힘이 벅차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단원고 교감 선생님도, 자기 자식인 듯 봉사활동에 나섰다가 비극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스러져간 중년의 이름 모를 사내도 웃고 서있을 게다.

하지만 잠에서 깨어나 눈을 떴을 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잔혹한 현실이다. 한 달이 지났건만 슬픔은 깊어지고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는다. 무고한 생명들이 가라앉은 수면 위로 탐욕스러운 자본과 무능한 권력이 자신들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것을 보며, 최소한 이번만은 인간의 예의가 지켜지길 바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라. 국회의원, 교수, 보도책임자라는 자들이 자식 잃은 아비와 어미의 가슴을 후벼 파는 막말들을 거침없이 뱉어낸다. 이들이 쏜 신호탄은 익명의 방패 뒤에 숨어 유족들에게 모욕과 조롱을 일삼는 잔인한 무리들을 복제해 불러내고 있다.

섬뜩한 것은 대통령의 입에서 나오는 언어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쳐부술 원수, 암 덩어리, 한 번 물면 살점이 완전히 뜯어져 나갈 때까지 진돗개 정신으로, 불타는 애국심, 사생결단하고 붙어야…거두절미하고 들으면 북의 대남방송을 듣고 있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다. 그런데 이번에는 적폐를 도려내고 국가를 개조한다고 한다. 이 판국에 단어 몇 개가 뭐 그리 대수냐겠지만, 언사의 주인이 대통령이라면 예삿일이 아니다. 살아오면서 자연스럽게 배어든 습관 탓인지, 아버지에게 배운 통치철학의 영향 때문인지, 아니면 아랫사람들의 기강을 다잡으려는 의도된 언어 구사인지는 중요치 않다. 문제는 말이 은연중에 사고방식과 행동을 내비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르면 이번주에 국가개조 마스터플랜을 발표한다는 소식이 불편한 것은, 개조라는 섬뜩한 단어 뒤에 도사리고 있는 낡고 반생태적이며 파시즘적인 의미 때문만은 아니다. 국민들은 이렇게 묻고 있다. ‘대통령 스스로는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나? 그리고 왜 이렇게 서두르는가?’ 대통령이 국가의 무너진 기틀을 다시 세우겠다고 나서는 것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하지만 누가 누구를 개조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관료들이 만든 마스터플랜에 의지해 국민을 동원체제의 한낱 들러리 또는 개조의 대상으로 삼을 생각이라면,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지금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섣부른 국가개조 방안 발표가 아니다. 우선해야 할 것은 유족들과 국민들을 위로하고 깊이 팬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이다. 광장을 활짝 열어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에 담겨있는 국민들의 다짐과 분노를 사회 변화의 동력으로 녹여내야 한다. 철저한 진상 규명을 통해 무엇을 쇄신하고 무엇을 뿌리내리게 할지 분명히 가려내야 한다. 산업화 이후 경제성장이라는 미명 아래 안전과 생명의 가치가 어떻게 묵살되어 왔는지 깊이 성찰해야 한다. 국가개조든 사회 업그레이드든 순서는 그 이후가 되어야 마땅하다.

※ 글 :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

※ 이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되었습니다.
http://m.khan.co.kr/view.html?category=2&med_id=khan&artid=201405142125105&code=990100
Source: 정소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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