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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석유’를 위한 로비

▲미국-유럽연합 간 자유무역협정 TTIP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유럽의 환경정책을 위협하고 있다 ⓒWorld Development Movement
무역이 환경의 발목을 잡으려 한다. 국제 환경단체인 지구의벗은 지난 7월 17일 보도자료를 내어 미국과 유럽연합 간 자유무역협정이 유럽연합의 환경정책을 이미 훼손시키고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유럽연합 간 자유무역협정 혹은 범대서양 자유무역협정이라고 불리는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 TTIP(Transatlantic Trade Investment Partnership)는 미국과 유럽연합 간의 방대한 무역협정으로 지난해 2월부터 추진돼 왔으며 최근 벨기에에서 6차 협상을 마쳤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연료품질지침
같은 날 발표된 지구의벗 유럽과 미국이 참여한 보고서에 따르면 TTIP는 겉과 속이 다른 ‘더러운 협상’의 장이다. 보고서는 특히 유럽연합의 연료품질지침(FQD, Fuel Quality Directive) 시행이 지연되고 있는 것이 TTIP 협상을 빌미로 이뤄지고 있는 산업계 로비 때문이라고 밝혔다. 환경정책을 무역을 방해하는 장벽으로 보는 시각이 TTIP 협상장에 만연한 가운데 수출시장의 환경정책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연료품질지침은 2009년 유럽연합이 내놓은 강력한 기후변화 대처의 일환이다. 유럽연합은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섭씨 2도씨 이내에 머무르게 하는 기후공약을 지키기 위해 유럽에서 사용되는 수송연료로부터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하고자 했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담고 있는 연료품질지침 7a항은 2010년과 2020년 사이에 수송연료의 온실가스를 6퍼센트 낮추기로 했다.
그런데 연료품질지침이 이행되려면 화석연료의 온실가스를 계산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적용해야 하는지 유럽집행위원회가 회원국들에게 안내를 해줘야 한다. 2011년 이를 위한 첫 번째 이행안이 제안되었고 여기에는 화석연료의 온실가스를 차별화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예를 들어 석탄액화석유, 타르샌드, 오일셰일 등은 일반 석유가 아니라 가공이 필요한 비전통적 석유로 분류된다. 이런 비전통적 방법으로는 석유를 추출하고 가공하는 과정에서 원유보다 추가적인 에너지가 더 들고 연료 사용 시 온실가스도 더 많이 배출된다. 2011년 제안은 이 점을 연료품질지침에 차별적으로 반영하겠다는 것이었다.
타르샌드는 끈끈한 액체 형태의 원유가 모래에 달라붙어 있는 것이다. 오일샌드라고 불리기도 하는 타르샌드의 경우 원유 대체자원으로 각광받고 있긴 하나 채굴과 정제 과정에서 많은 오염 물질을 배출시킨다. 이번 보고서에 따르면 타르샌드의 추출과 가공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이 유럽연합에서 쓰이는 일반 연료의 평균치보다 23퍼센트 높다.
그러나 연료품질지침은 채택 이후 5년이 지난 지금도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캐나다와 석유산업계의 로비로 인해 유럽집행위원회가 유럽연합 회원국들로부터 필요한 승인을 얻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후 유럽집행위 또한 어떤 새로운 제안도 내놓지 않은 상태인데 여기엔 타르샌드를 둘러싼 석유산업계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 채굴과 정제과정에서 많은 오염 물질을 배출해 ‘더러운 기름’이라 불리는 타르샌드를 유럽시장에 팔기 위한 석유업계의 로비가 도를 넘고 있다
석유업체의 더러운 로비
캐나다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오일 원천을 앨버타 주에 두고 있기 때문에 연료품질지침에 예민하다. 한편 국제석유산업계도 타르샌드에 집착하고 있는데, 오일 원천을 더 이상 보유하기 어려운 한계적 상황에서 타르샌드야말로 구속 받지 않고 접근할 수 있는 석유 원천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제일 큰 상위 7개 석유회사들(Shell, ExxonMobil, BP, Sinopec, Chevron, ConocoPhillips, Total)은 캐나다 타르샌드에 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다.
한편 석유산업계와 캐나다 정부는 수출시장이었던 미국이 자체적인 석유 생산에 주력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수출시장을 찾아왔던 터다. 이들은 연료품질지침으로 인해 유럽이라는 수출시장을 잃는 것, 타르샌드에 붙은 ‘더러운 자원’이라는 표식이 확대돼 추가적인 시장 확대 여지를 좁히는 것 모두를 두려워한다.
석유 회사들과 정제사, 캐나다와 앨버타 주 지방정부는 유럽연합의 연료품질지침을 약화시키기 위한 공격적인 로비 전략을 구사해 왔다. 이들은 유럽의 산업 로비집단인 비즈니스유럽(BusinessEurope), 미국상공회의소, 미국국제경영협회, 범대서양경영협회 등에 연료품질지침을 무시해 달라고 로비해 왔다. 대서양 무역의 사나운 촉진자인 이들은 거대 석유회사의 요구를 대변할 것이다. 이와 관련 비즈니스유럽은 “지속가능성을 명분으로 유럽집행위원회가 원료공급자와 마찰을 일으킴으로써 산업계에 더 많은 비용을 부과하고 있다”며 “무역분쟁을 예고하는 것은 경제 파트너십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로비집단들은 유럽연합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지지한다고 말하면서도 연료품질지침 이행이 연기된 것을 성과로 간주하는 모순적 태도를 보인다. 미국상공회의소는 2013년 정책적 성과 가운데 하나로 유럽집행위원회의 수송연료 제안이 연기되고 있는 것을 꼽았다. 한편 미국의 정부 문건 역시 지구적 환경정책을 자국 산업의 잠재적 무역 장벽으로 보고 있음을 드러낸다. 미국통상대표부(USTR)는 자체 보고서를 통해 연료품질지침이나 재생에너지지침(Renewable Energy Directive) 등 유럽연합의 환경정책이 미국 무역의 잠재적 장벽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사실상 TTIP는 연료품질지침이 약화되도록 유럽연합을 압박하는 동력이 되어왔다. 석유 회사와 정제사들을 대표하는 AFPM(American Fuel   Petroleum Manufacturers)은 2012년 미국통상대표부(USTR)에 편지를 보내 TTIP 협상에 연료품질지침 논의를 포함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연료품질지침이 TTIP 안건이 되어야 산업계에 유리하고 타르샌드에 대한 유럽연합의 온실가스 차별화에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온실가스 감축은 가능할까
자유무역을 방패삼아 환경적 가치를 훼손할지언정 자기 이익을 중시하는 세력이 힘을 얻고 있다. 이들은 미래의 더 큰 이익을 위해 당장 많은 돈을 쓰면서도 타국의 환경정책을 위협한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수송연료의 배출을 규제하려던 유럽연합의 환경정책은 자유무역 협상장의 로비력 앞에 무릎을 꿇으려 하고 있다. 관료들은 무역 협상이 환경을 보호하는 규제 조치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곤 하지만, 자유무역은 힘들게 마련된 타국의 환경정책마저 번번이 교란하려 든다. 누가 이들을 막을 것인가?
<출처: 함께사는 길 / 글:  김현지 환경운동연합  국제연대 활동가>
Source: 정소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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