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 활동소식

태풍 하이옌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한 필리핀, 그러나 희망은 싹트고 있다

2013년 필리핀을 강타해 1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내고 92만 기후난민을 만든 태풍 하이옌. 이 열대성 태풍은 최근의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로 더 큰 위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온실가스 배출량 세계 7위인 한국. 우리가 쓴 화석연료들이 지구를 더 뜨겁게 만들고 결국 하이옌과 같은 슈퍼태풍도 만들어졌습니다. 필리핀의 국민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함께 노력을 나눠주는 일은 결국 우리의 책임 아닐까요?
환경연합 국제연대 담당자가 현지 필리핀 NGO의 초청으로 지난 6월 8~9일 필리핀 레이떼 지방에 다녀왔습니다. 이 곳은 태풍 하이옌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섬입니다.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지 반년이 넘었지만 현지는 아직도 거의 복구되지 못한 처참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필리핀 국민들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현지 NGO와 함께 방법들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2013년 11월 8일 태풍 하이옌이 필리핀을 강타했다. 2013년 한 해, 북서태평양에서 발생한 30번째 태풍이자 4번째  5등급 슈퍼태풍인 하이옌은 순간최대풍속 379 km/h 로 1만명 이상의 사상자를 냈다.

마닐라에서 1시간 30 분 비행후 도착한 타클로반.

6월 8일부터 9일까지 이틀동안 여정지의 지명은 필리핀 레이떼지방의 타클로반(Republic of Philippines, Province of Leyte, City of Tacloban). 비행기 트랩을 내릴때만해도 하이옌이 할퀴고 지나간 지역이라고 상상되지 않을 정도로 도시는 평온했다. 그러나 트랩을 내려 공항을 마주하니 공항의 꼭대기며 귀퉁이며가 모두 나가고 없었고 여기저기 서있는 미국 국제개발처(USAID), 유엔난민위원회(UNHCR) 천막이 이곳이 하이옌의 현장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부채탕감연대(Freedom from Debt Coalition)의 사미(Sammy)와 타클로반에서 활동중인 “Visays를 돕자(Let’s Help Visayas: BuilgVisayas)” 의 래리(Larry)와 함께 태풍 피해 현장으로 갔다. 슬럼가와 슬럼가의 주민들이 눈에 들어왔다. 슬럼 형성이 하이옌 이후 인지를 물으니 극심한 빈부의 차로 필리핀 전역엔 슬럼이 존재하고 타클로반 의 경우 하이옌 이후 슬럼이 더 확대되었다는 래리의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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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란다마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간판아래로 보이는 기부금 모금함. 욜란다는 영어의 하이옌(태풍)을 타갈로그어로 표현한 것이다 ⓒ환경운동연합 김춘이(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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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수는 아니고 세탁수로 쓰이는 타이어로 만든 마을의 우물 ⓒ환경운동연합 김춘이(2014)

마을 곳곳에 바다로부터 40미터 까진  “주택건축금지”라는 정부의 플랜카드가 나부끼고 있었다.
그러나 집 지을 땅도 없고, 정부도 이재민에 대한 확실한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주민들이 옛날 집터에 다시 얼기설기 집을 짓는 걸 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래리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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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로부터 40미터이전 까진 주택건축금지지역” 이라고 알리는 정부의 표시판 ⓒ환경운동연합 김춘이(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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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피해지역에 다시 들어선 바다에 면한 주민들의 집 ⓒ 환경운동연합 김춘이(2014)

갈 수록 더 가관이었다.

바다에 있던 다섯대의 큰 배가 엄청난 속도의 태풍수에 밀려 어쩔수 없이 자리한 곳은 아니봉 마을.
마을은 거대한 다섯척의 배 밑에 깔렸고 어린이들은 그자리에서 희생당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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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로 휩쓸려온 다섯척의 배중 세척의 배가 뱃머리를 맛대고 있는 모습. 멀리 마을사람들이 그린 희생당한 여자아이의 모습이 보인다. 정부는 네척은 해체하고 한척은 하이옌을 잊지 않기 위한 기념물로 보관할 예정이란다 ⓒ환경운동연합 김춘이(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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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를 불태우지 말라”, “우리는 음식, 쌀, 물을 원한다”사람들의 절실함과 분노가 묻어나는 글귀들. 그럼에도 아이들의 미소는 밝다 ⓒ환경운동연합 김춘이(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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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집어삼킨 대형 선박은 어이없게도 어린이들에게 그늘을 주는 놀이터가 되었다 ⓒ환경운동연합 김춘이(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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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기 어려운 조건들. 화장실 문의 “신으로부터 축복을”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환경운동연합 김춘이(2014)

마을을 집어삼킨 바다임에도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수영을 즐기고 있었고, 하이옌으로 모든 것을 잃은 어린 주부들은 우리의 질문에 수줍게 웃곤 했는데 이들의 순수함이 하이옌 피해자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아니봉 마을의 열악한 상황이 곳곳에 눈에 들어왔다. 오히려 돼지가 사는 공간이 더 깨끗할 정도였다. 마을의 여성 리더  마기(Margie Carbonell)와 크리시(Crisy Reyes)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뭐냐고 물으니 안전한 집과 수익창출을 위한 재봉틀이라고 했다.  재봉틀로  ‘타클로반의 하이엔 피해여성들이 만든 에코백’을 만들어 마닐라와 세부 등에 물건을 팔아 수익창출을 하고 싶노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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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가 공급되지 않으니 저녁에 매우 유용한 태양광 램프. 태양광 램프가 있으면 타클로반 지역30개의 마을보건센터에 저녁시간 아이들 단체학습을 시킬 수 있다고 했다 ⓒ환경운동연합 김춘이(2014)

우리 외교부를 포함 각국 공적원조기관지원으로 500여명이 살고 있는 카이반(Caiban)임시거처를 찾았다. 최종 입찰에 성공한 기업에 정부가 준 자금은 한채당 250만원.

유엔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공간구분없는 협소한 장소에, 습기를 흡수할 수 있는 장치 없이 사람이 살기에 부적합하다고 평가를 내렸단다. 6개월간의 임시거처라 이마저도 6월이면 정부가 개인업자에 땅을 임대한 기간이 만료되는 시점이라 이곳의 주민들은 어디로 갈지 막막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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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반 임시거처 거주민들에게 대한 자세한 기록지. 주민들의 일상적 건강징후로 기침 등이라고 적혀있다 ⓒ환경운동연합 김춘이(2014)

지역여성들과의 만남을 끝내고 동부비사야주립대(Eastern Visayas State University )의 리토 일라간(LitoIlagan)교수를 만나러 갔다.  5개의 외부 캠퍼스를 갖고 있고, 본 캠퍼스 포함 모두 1,000명의 학생을 보유한 이 대학도 태풍피해의 예외는 아니어서 학교의 지붕은 날아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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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학과 교수이면서 동시에 FDC Eastern Visayas 의장으로도 활동중인 리토 일라간 교수. 태풍피해 학생들의 장학금을 찾는 것도 그의 업무다. ⓒ환경운동연합 김춘이(2014)

환경학/생태학/식물학 등을 가르친다는 사람좋은 그는 생태학자답게 지역의 생태성을 잘 설명해주었다. 그에 따르면 빈번한 화산활동으로 이 지역은 필리핀에서 가장 큰 지열생산지역이지만 마르코스 시대 때 이미 사유화돼서 지역주민들에겐 돈을 주고 이용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했다.

 

오후에 아니봉 마을 여성들과의 만남이 있었다.  어린나이에 아이를 낳은 앳되보이는 이들부터 나이든 할머니까지 함께 한 이 자리에서 “앉으면 죽은 가족밖에 생각안나는 이 곳을 하루빨리 떠나고 싶다. 그런데 갈 곳이 없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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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정부가 마을의 취약그룹에게 25,000페소(약 600만원 가량)를  지급했으나 바닷물에 잠긴 신원을 증명할 만한 어떤 것도 재발행되지 않아 보조금은 여전히 은행에서 잠자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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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봉 마을의 여성들. 이들의 요구는 “임시가 아닌 무료/영구 거주지, 생활을 위한 경제활동 확보”였다 ⓒ환경운동연합 김춘이(2014)

6월 9일 아침 10시경 산호세(San Jose) 마을을 향했다.

 

FDC, PMCJ, BuilgVisayas(Visaya를 도웁시다)라는 세 NGO가 함께 5월 27일 화재로 희생당한 7명을 추도하기 위해서였다. 하이옌으로 1,000명 이상이 사망한 이 마을에 정부와 유엔은 임시거주지를 열었고 이곳엔 500여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임시거주지에서 사용하던 등유램프가 엎어져 불이 나 부부와 5명의 어린 생명들이 참변을 당했다.

 

임시거처를 마련할 때 정부는 6개월후의 영구거주지 마련을 약속했지만, 진전이 없는 가운데 이런 사고가 생겼으니 지역주민들의 참담함이 이해가 갔다. 어린 생명들이 피지도 못하고 떠난 현장을 보자니 “너희들을 그렇게 만든 우리 어른들을 하늘에서도 용서하지 말라”는 세월호 분향소 어느 한 시민의 글귀가 오버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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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연합 김춘이(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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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유램프가 엎어진 사고로 7명이 목숨을 잃은 5월 27일 화재의 현장. 솥. 슬리퍼. 아이들의 옷가지가 여기저기 나뒹그러져 있다 ⓒ환경운동연합 김춘이(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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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대학 타클로반 캠퍼스에서 산림생태학을 전공하는 아이알. 화재로 부모와 조카들을 한꺼번에 잃은 그녀가 마을 추도식에서 발언중이다 ⓒ환경운동연합 김춘이(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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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현장 산호세마을의 태양전지판 ⓒ환경운동연합 김춘이(2014)

추도식에 모인 여성들은 정부를 믿고 기다렸지만 아무 대책이 없다며 개인은 약하니 ‘피해자’ 라는 하나된 이름으로 정부, 지방정부에 목소리를 내자고 말했다.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험난한 고통속에서도 해맑은 필리핀 사람들의 이유를 물으니
“필리핀인들은 어제 힘든 일이 있어도 오늘은 웃는다. 어제 일을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필리핀인 나름대로의 어려움과 슬픔에 대처하는 방법(coping strategy)이다”라고 사미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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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타클로반에서 함께한 지역여성들ⓒ 환경운동연합 김춘이(2014)

피해현상 타클로반을 뒤로 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절망의 현장 타클로반을 보고도 절망이 아닌 희망이 느껴지는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태풍피해로 부서진 공항에서도 땀흘리며 열심히 일하는 공항직원들을 보면서, 더 험난한 고통속에서도 망고 알러지에 쬐끔 고생하는 필자를 더 걱정하는 아니봉 마을 여성리더 마기와 크리스티를 보면서, 마을 아주머니들과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논의하는 래리와 사미를 보면서, 만날때마다 웃음으로 인사하는 피해지역주민들과 아이들을 만나면서 슬럼으로부터 느껴지던 절망은 어느새 희망으로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은 바로 이런 사람들 때문에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글/사진 : 김춘이 처장(환경운동연합 국제/정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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