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기후변화 활동소식

원전사고 비상대책본부가 세월호 선장이 되지 않으려면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원전 사고. 피해를 최소화 하려면 제대로 대비할 수 있도록 사전에 준비하고 교육하고 훈련해야 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전 세계는 일본의 허술한 조치에 대해 비난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우리나라가 과연 일본만큼이라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원전 사고는 여러 가지 상황과 원인이 복합적 작용했을 때 발생하지만 최종적으로 원전이 폭발하는 경우는 세 가지다.

 

 

하나는 체르노빌처럼 핵연료의 핵분열반응이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냉각재가 급격히 끓어올라 생긴 증기압으로

원자로 자체가 폭발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핵분열 반응은 줄어들어도 핵연료가 녹아내리면서 이를 냉각시키기 위해 계속 투입한 냉각수로 인해

발생한 증기가 원자로 밖으로 새어나가면서 격납 건물이 증기압으로 폭발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핵연료가 녹아내리면서 발생한 수소가 원자로 밖으로 새어나가면서 격납건물이 수소 폭발하는 것이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국제적인 안전기준 상 원자로는 냉각재가 빠져나가더라도

핵분열 반응이 급격하게 일어나지 않도록 설계되었다.

후쿠시마 원전이나 우리나라의 경수로 원전에서는 첫 번째 폭발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중수로인 월성 1, 2, 3, 4호기는 이런 폭발이 발생할 수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처리 비난받은 일본, 이런데도?

 

 

후쿠시마 원전은 세 번째 이유로 폭발했다.

 

동경전력은 두 번째 경우로 생기는 폭발까지는 막았다. 증기압 폭발을 막기 위해 증기압을 격납건물 밖으로 빼내는 방출을 결정했다. 이때 방출되는 증기에는 핵연료가 녹아내리면서 발생한 다량의 방사성물질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방출하기 훨씬 전부터 주민 피난 명령이 시작되었다.

후쿠시마 원전 4기나 폭발했지만 급성사망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은 이유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들은 안전하게 자동정지했다(물론 이때부터 지진으로 인한 배관파손이 있었다는 정황 증거도 있다).

하지만 곧이어 들이닥친 해일로 인해 한 시간 만에 발전소 전체가 정전되었다

(고리원전 1호기가 2012년 3월에 발전소 전체가 정전되었지만 한 달간 조직적으로 은폐되었다).

 

 

 

한 시간도 안 되어서 대책실이 설치되었고 오후 7시 3분에 원자력 긴급사태가 발령되었다.

그 후 30분도 안 되어서 육상 자위대가 출동했지만 총무부장관이 원자로 자체는 문제없다고 했다.

그러나 후쿠시마현의 대책본부는 2킬로미터 이내 주민에게 피난을 지시했고

오후 9시 23분에 수상은 3킬로미터 이내 주민들까지도 피난시켰다.

 

 

 

오후 10시에 원자로 핵연료 노심이 녹아내리기 시작한 것을 감지하고 증기압이 최고압에 달할 것이라고 예측되자,

다음 날 새벽 1시 10분 주민들을 피난시키기 위해 60대의 버스가 확보되었다.

새벽 3시 5분에 방사성물질 방출을 실시할 것이라고 발표한 뒤 새벽 5시 44분에 수상은

원전 반경 10킬로미터 이내 주민들을 피난 시켰다.

 

 

 

그 후 4시간 반이 지난 오전 10시 17분, 후쿠시마 원전 1호기 방사성물질 방출이 시작되었다.

이것으로 증기압 폭발은 막았지만 오후 3시 36분 1호기의 수소폭발이 발생했고

오후 6시 25분에는 반경 20킬로미터 이내 지역까지 피난명령이 내려졌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때 주민 피난은 사고가 발생한 지 하루가 지나서 시작되었다.

4월 26일 오전 1시 24분에 원자로가 폭발했지만 오후 10시에 대피 결정이 내려졌다.

하지만 피난명령은 이보다 한참 뒤인 다음날 오전 11시에 내려졌고 피난민을 태울 1200대의 버스는

오후 2시에나 도착해서 피난이 시작되었다.

 

 

 

원전이 폭발해서 방사성물질이 방출된 지 37시간 만에 피난이 시작된 것이다.

일부 지역은 10킬로미터 이내임에도 불구하고 사고 발생 나흘이 지난 4월 30일에 피난이 시작되기도 했다.

그만큼 인명 피해도 컸다.

 

 

 

 

 
원전 인근 주민 피난 훈련 4년에 한번, 면진동은 빠져 있어

 

 

 

 

 

우리나라는 과연 언제 피난명령이 내려지고 어디까지 피난구역이 설정되고 피난 준비가 시작될 수 있을까.

얼마 전 국회 미래창조과학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한 ‘원자력시설 등의 방호 및 방사능 방재 대책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따르면 방사선비상계획 구역이 현재의 8~10킬로미터에서 20~30킬로미터로 확대되었다.

하지만 예방적 차원에서 우선 피난이 실시되는 예방적보호조치구역은 3~5킬로미터에 불과하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방사성물질이 방출되기 전에 예방적으로 10킬로미터 이내 주민들을 미리 피난시킨 것을 교훈으로 삼는다면 예방적보호조치구역이 최소한 10킬로미터는 되어야 한다.

그리고 원전 인근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일상적인 피난 훈련이 있어야 하지만 주민들을 포함한 피난 훈련은 4년에 한 번꼴이다.

그마저도 자율 참여라서 학생들을 버스로 소풍가듯이 실어나르는 수준이다.

 

 

 

환경운동연합이 2012년 5월 발표한 원전사고 모의실험에서는 반경 30킬로미터 이내에서 피난 대상 거주민들이 방사성물질 방출 후 2일 이내에 모두 피난가는 것으로 설정했다.

이때 고리원전 1호기의 경우 급성사망자가 1만 7천명, 월성원전 1호기의 경우 4천명이 발생했다.

인명피해 규모가 큰 이유는 주변에 인구밀집도시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방사성물질 방출 후에 피난을 갔기 때문이다.

방사성물질 방출 전에 피난 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일본 정부는 최악의 경우 200여킬로미터가 떨어진 동경 전체를 대피시켜야할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사고가 그 정도로 확대되지는 않았다.

후쿠시마 원전 부지 내에 있는 면진동(지진을 면하는 건물)에

비상대책본부를 두고 현장을 수습할 수 있었던 것이 한 역할을 했다.

 

 

 

이 면진동은 지진을 견딜 수 있고 필터가 장착되어 방사성물질을 거를 수 있다.

원전 건물과 독립된 비상발전기가 있어서 정전이 되어도 전기공급이 가능했다.

수십 명이 여러 날 머물 수 있는 비상 식량과 식수가 있고 숙소가 마련되어 있다.

현장을 지휘하는 책임자와 사고를 수습하는 내부 직원들뿐만 아니라 복구작업을 위해 파견된 외부인들도 거주할 수 있다.

 

 

 

이런 면진동은 2007년 일본의 가시와자키 가리와 원전에서 지진으로 인한 화재와 방사성물질 누출 사고가 발생한 뒤에 권고사항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2012년 7월부터는 전 원전에 의무사항이 된 건물이다.

 

 

원전사고 비상대책본부가 주민 두고 도망가지 않으려면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우리나라가 마련한 50개의 후속대책에는 빠져 있다.

현재로는 사고를 수습해야 할 비상대책본부가 거주하는 건물은 원전에서 월성원전의 경우 14킬로미터 밖에 있다.

주민들은 원전반경 1킬로미터 지점부터 살고 있지만

정작 사고를 책임지고 수습해야 할 이들은 한참 밖으로 도망 가 있는 것이다.

 

 

 

이정도라면 사고가 났을 때, 세월호를 빠져나간 선장과 다를 바 없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운 상황이다.

비상상황에는 주제어실을 기술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방도 있고 수리와 정비를 담당하는 인원이 머무를 수 있는 방도 있다.

하지만 모두 원전 건물 내에 위치하고 있어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같은 중대사고가 발생하면 무용지물이다.

 

 

 

뒤늦게 지난 3월 14일 원자력안전위원회에 보고된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속대책의 추가대책(안)에는 이런 ‘비상대응거점’을 확보할 것을 검토하겠다는 내용이 있다.

검토가 아니라 원전 부지별로 면진동을 마련하는 것을 의무화해야 한다.

 

 

 

한편으로 현장의 책임자에게 전권을 위임하는 것도 중요하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총리에게 원전 비상 대책을 결재받기 위해 원전 구조를 설명하는데 2박 3일이 걸리면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시기를 놓쳤다는 얘기가 있다.

세월호 사고 발생 초기 현장 지휘체계 혼란으로 구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위계질서를 중요시하는 관료주의의 폐해가 사고 방지와 구조 시기를 놓치는 데 영향을 준 것이다.

 

 

 

미국에서 9·11 사고가 났을 때 현장 책임자에게 전권이 주어지고 외부에서는 인력과 비용을 전면 지원했다고 한다.

원전 사고 시 대통령이나 총리 결재 기다리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현장 비상대책본부에 전권을 위임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이때 비상대책본부장은 각 원전의 본부장인데 기술적인 내용을 모르는 외부영입인사인 경우가 있다.

원전 사고가 났을 때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이해시키느라 시간을 허비할 수 있다.

때문에 본부장은 기술전문성을 갖춘 이라야 한다.

 

 

 

원전 사고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고 확률이 높은 원전부터 하루빨리 가동을 중단시켜야 한다. 지금은 설계수명을 다한 고리원전 1호기와 월성원전 1호기가 그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앞으로는 수명연장 시도 자체를 금지하는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원전 사고는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예방적인 보호조치구역은 최소한 10킬로미터로 확대되어야 하고 사고수습을 위한 원전 부지내 면진동 마련은 의무화되어야 한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게재되었습니다.

 

 

※ 글 :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 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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