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초록세상 사람들

(털복숭이 똥자루 칼잽이들이) 아이누에게 배우다

[정영수 칼럼] 아이누에게 배우다

(털복숭이 똥자루 칼잽이들이) 아이누에게 배우다

아이누족이 어떻게 곰을 잡을까?
홋카이도의 원주민으로 알려진 아이누는 몸집이 왜소한 털북숭이다.
…평균 150cm정도의 작은 키에 별다른 무기도 없이
400kg가 넘는 시베리아 곰을…

홋카이도 숲속에서 늘어지게 잠을 잔 곰은 새벽 일찍 어슬렁거리며 바닷가로 나온다.
맛있는 연어로 아침식사를 즐기기 위해서다.
제철일 땐,
연어가 지천이어서 생선 알만 빼먹고 내던지지만,
철이 아니면 연어 한 마리 잡기도 힘들다.

생선 알이 바닷가에 즐비하다.
이게 웬 떡이냐 싶어 실컷 먹어댄다.
아이누들이 며칠째 소금에 절여 뿌려놓은 것이다.
배불리 먹은 곰은 심한 조갈을 느낀다.
뒤늦게 짠맛이 올라온 것이다.
이번엔 바닷물을 마구 들이켠다.
이미 생선 알로 채운 배에 바닷물을 한없이 마셨으니 배가 남산만하다.
숨쉬기조차 힘들어 그냥 앉아 있을 수밖에. 그때 아이누들이 달려들어 목에 올가미를 채운다.

기공식에 참석하기위해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던
러시아 황태자 니콜라이 2세가 잠시 일본 제국에 들렀다.

대마도에서 러시아에 조공을 바치던 일본은
황태자를 영접했다.

그런데 큰 일이 터졌다.
황태자 일행을 등진 채 경비를 서던
일본 순사가 돌연 몸을 돌려
총검으로 니콜라이2세의 목을 겨냥해 내리쳤다.

일본과 러시아의 긴장은 고조되었다.
이때 젊은 일본 사관 몇 명이 연판장을 돌렸다.
“일본이 러시아를 치자.”는 내용이었다.

“아이누가 어떻게 곰을 잡는지 아십니까?”

생선 알은 조선이고,
바닷물은 중국이라는 거였다.

아이누의 본고장인 홋카이도에서
7일부터 주요 8개국 정상회담이 열렸다.

때 맞춰 세계 곳곳에서 소외받고 있는 원주민들이 모여 그들만의 외교잔치에 반발하고 나섰다.
홋카이도의 원주민인 아이누족은 미국 인디언 등 세계 11개국 대표를 초청,
1일부터 홋카이도에서 350여명이 모인 가운데 ‘원주민 서미트’를 열었다.

원주민 서미트에 참가한 각국 참가자들은
“선진국 자신들이 초래한 문제들을
가난한 국가나 자급자족으로 생활하는 원주민들에게까지 떠넘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는 세계 매스컴에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ps>((대한민국=한국=독도=원주민=알
칼=일본=전쟁광=살인마=killing whale=日本刀=Japanese sword=killer=murder…
Remember the Pearl Habour…))

ps>((겉과 속이 다른…일본…))

섬 지명 혼란한 틈타 다케시마로 둔갑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oid=037&aid=0000005278
일본은
(앞으로는) 한일 정상회담에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와 협력증진’을 약속하면서도,

뒤로는
중학교 사회과 교사용 지침서에

‘주간동아’는 한일 정상회담 직후인
4월25일 발행된 634호 커버스토리
(‘동해 이름 침략…일본은 당장 멈춰라!’,
‘독도 침탈…참기 힘든 분노’ 제하 기사 참조)를 통해
일본의 의도를 앞서 공개한 바 있다.

(영토, 역사, 교과서) 왜곡과 관련한
일본의 꼼수가
한국인의 감정을 건드리고 있는 가운데,
독도 문제 관련 학술토론회가 5월29일 독도연구보전협회(회장 김학준) 주최로 열렸다.

제성호 교수 “시마네현 고시는 국제법상 무효”
독도학회와 한국영토학회, 독도연구보전협회가 주관하고…
‘한국의 독도 영유권…
누가 침탈하려 하는가?…’

주제 발표는 신용하 이화여대 석좌교수
(대한제국 1900년 칙령 제41호의 독도 영유 재선언과 독도의 증명),

독도영유권-역사가 말한다
1. 한국의 독도영유권의 역사적 권원
독도영유권 문제에서 맨 먼저 고찰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독도가 누구의 땅인가를 밝히는 일이다.
독도영유권의 역사적 권원(historical title)을 밝혀야 영유권의 최초의 국제법적 근거가 밝혀진다.

한국은 서기 512년(신라 지증왕 13년)에
동해의 우산국(于山國)이 신라에 병합될 때부터
문헌상 명료하게 한국의 고유영토가 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1432년 편찬),‘동국여지승람’(1481년),
‘신증동국여지승람’(1531년),‘만기요람’군정편(1808년),
‘증보문헌비고’(1908년) 등에 비교적 명료하게 기록돼 있다.
이때 조선왕조는 독도를 ‘우산도’(于山島)라고 호칭했다.

일본은 18세기에
울릉도를 죽도(다케시마)로, 독도(우산도)를 ‘송도’(마쓰시마)라고 불렀다.

‘만기요람’ 군정편에서는 여지지(輿地志)에 이르길
“울릉도와 우산도는 모두 옛 우산국 땅이다.
우산도는 왜인들이 말하는 송도(松島)이다.”라고 기록했다.

또한 독도의 옛 이름인 ‘우산도’의 명칭 자체도
‘우산국’에서 나온 것으로서 우산도(독도)가 우산국의 일부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2. 일본 고문헌도 “독도는 한국영토”
…정작 이 보고서를 보니
울릉도(죽도)와 독도(송도)는 고려 영토이고,
일본의 서북쪽 국경은 은기도(隱岐島·오키섬)를 한계로 한다는 내용이다.
일본 최초의 독도관련 고문헌도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17세기 이후 1905년 2월까지
일본의 모든 고문헌과 고지도들은
모두가 독도는 한국 영토라고 기록하고 있고,
독도를 일본 영토로 기록한 것은 단 1건도 없다.

3. 일본 도쿠가와 막부도 1696년 독도는 한국영토로 재확인
뿐만 아니라, 1696년 1월28일
도쿠가와 막부 정부는 대마도주의
울릉도 독도에 대한 조선의 항의를 받고
조사한 끝에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 영토임을 재확인하고,

일본측은 이같은 내용의 외교문서를 조선정부에 보내왔었다.

4. 일본의 명치유신 정부도 울릉도·독도를 조선영토로 재확인
1868년 1월 수립된 명치유신 정부도 마찬가지다.
명치정부 태정관(총리대신부)과 외무대신은
조선과의 신 외교관계 수립을 위해
1869년 12월 조선 부산에 외무성 고위관리를 통해,
‘울릉도(죽도)와 독도(송도)가 조선부속(朝鮮附屬)이 되어 있는 시말’을 내탐 조사하도록 훈령했다.
그 조사 보고서가
‘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朝鮮國交際始末內探書)’라는 제목으로 ‘일본외교문서’제3책에 수록돼 있다.

이 일본 관찬 공문서는
일본 국가최고기관인 태정관과 외무대신이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부속령이었음을 잘 인지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자료이다.

더욱 결정적인 일본정부 공문서 자료가 있다.
1876년 일본 내무성은 근대적 전국 지적도 작성을 위해
각 현에 자기 현의 지도를 작성해 올리라고 훈령했다.

내무성은 약 5개월간 조사한 후,
울릉도(죽도)와 독도(송도)는 조선영토이고,
일본과는 관계없는 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또 당시 일본 국가최고국가기관인 태정관 우대신(총리대신에 해당)
이와쿠라 도모미(岩倉見視·명치유신의 최고 지도자)는 1877년 3월20일
“울릉도(죽도)와 그 외 1도 독도(송도)는 조선영토로서,
일본과는 관계없는 땅이니 그렇게 심득하라.”는 요지의 결정서 훈령을 3월29일 내무성에 보냈다.
태정관의 이 훈령은 4월9일자로 시마네현 지사에게 하달됐다.

이것은 결정적인 자료다. 일본의 근대정부도 국가최고기관인 태정관이 면밀한 조사 검토 끝에
독도·울릉도는 일본 영토가 아님을
공문서 훈령으로 명확히 결정해
중앙 정부는 물론, 지방 관청에까지 훈령을 내린 것이다.

이 밖에도 일본 육군성과 해군성 지도, 수로지 등에도
(울릉도,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증거는 다수 있다.

연합국 ‘한국 독도영유권’ 인정
1. 연합국의 독도 한국영토 판정과 독도 반환
1943년 11월 미국·중국·영국 등 3대 연합국 수뇌들은
카이로 회담에서 ‘카이로 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에서
한국의 독립을 약속하고,
일본이 1894년 청·일전쟁으로 빼앗은 타이완과 팽호도,
빼앗은 모든 영토, 폭력과 탐욕으로 빼앗은
모든 다른 지역에서
일본을 축출할 것을 약속했다.

일본은 1945년 8월15일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고,
9월2일 항복문서에 조인하면서 포츠담선언의 내용을
일본정부와 그 승계자가 성실히 수행할 것을 확약했다.
이에 카이로선언은 포츠담선언과 일본 항복문서를 통해 일본에 구속력을 갖게 됐다.

연합국은 1945년 9월2일
국제법상의 기관으로서 연합국최고사령부(SCAP)를 설치,
구 일본제국이 1894년 1월1일 이후
빼앗은 모든 영토를 원주인에게 돌려주는 작업을 시작했다.

1946년 1월29일에는
연합국최고사령부 지령 제677호 제3항에서
제주도·울릉도·독도를 한국영토로 판정, 주한 미군정에 이관시켰다.
한국이 독립하면 즉각 인계인수하도록 한 것이다(지도 (1) 참고).

연합국최고사령부는 1946년 6월22일 SCAPIN 제1033호를 발표,
독도와 그 12해리 수역에
일본의 접근을 막으며 독도가 한국영토임을 거듭 명백히 했다.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그해 12월12일 국제연합 총회는
당시의 영토(독도 포함)와 주권을 승인했다.

독도도 대한민국 주권에 속한 영토로 공인받은 것이다.

3. 조약 초안 작성 때의
일본의
독도 침탈을 위한 로비

연합국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초안은,
1∼5차 미국 초안까지는 합의서에 따라
독도를 명백하게 한국 영토로 명기했다.

그러나, 일본 임시정부가
시볼드를 내세워 맹렬한 로비에 들어갔다.

로비의 미끼는
독도를 일본 영토로 넣어주면,
독도를 미국 공군의 기상관측소와 레이더 기지로 제공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미국측은 일본측의 로비에 의해,
제6차 미국 초안에서는 독도를 한국 영토에서 빼내 일본 영토에 포함시켜서 연합국에 회람시켰다.

영국·호주·뉴질랜드 등은 제6차 미국 초안에 반대했다.

한 나라의 국가이익을 위해
연합국의 합의를 위반해서
독도의 소속을 옮기면

동아시아에
분쟁의 씨앗을 뿌린다는 것이었다.

미국측 내에서도 전문가들은
독도가 한국영토이므로
한국 영토로 명시할 것을 권고했다.

난처해진 미국은 7·8·9차 초안에서는 아예 독도 명칭 자체를
한국과 일본의 영토에서 모두 누락시켜 버렸다. 조약 초안에 ‘독도’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영국측은 이에 반발, 독자적으로 1·2·3차 초안을 작성하고,
독도를 한국영토에 포함시켰다.

당황한 미국측은 영·미 합동 초안을 작성하자고 영국측에 제의하여,
결국 수차례 회의를 거치면서
영·미 합동 초안이 단일안으로 작성…

5. 독도는 울릉도의 부속섬
일본정부의 독도영유권 주장의 핵심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제2조에서 일본이 포기하는 섬 이름에 독도가 누락돼 있어 독도는 일본이 포기하지 않은 일본영토란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이 주장은 광범위한 반론과 비판을 받았다.

한 국정부의 공식적 비판은 독도는 울릉도의 부속섬이기 때문에 독도영유는 모도(母島)인 울릉도 영유국가의 영유가 된다는 것이었다. 한반도 주변에 거의 3000개 가까운 섬들이 있는데, 이를 모두 조약문에 쓸 수 없으므로 일본 방향의 대표적 섬으로 제주도·거문도·울릉도만 든 것이었다. 제주도의 일본 방향에 우도(牛島)가 있는데 조약문에 제주도만 기술돼 있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국제사회는 한국정부의 국제법상 ‘부속도서론’에 입각한 해석을 압도적으로 지지해 독도를 한국영토로 해석했다. 신어업협정 이전까지 대부분의 세계 지도들에서 ‘Dokdo’로 표시했다. 일본은 독도를 울릉도에서 분리, 독도가 울릉도의 부속섬이 아님을 세계에 내보이려는 노력에 집중하게 되었다.

6. 국제사회에서 공인된 한국영토
연합국의 독도에 대한 판정과 정책은
1945년 1월29일부터 1952년 4월28일까지
독도는 한국영토라는 하나의 일관된 합의에 의거한 것이었다.

일본제국주의가
영토 야욕으로 침탈 또는 편입한 모든 땅은
일본영토에서 제외하여
원주인에게 반환된 것이 연합국의 합의와 원칙이었다.

대한민국이 1948년 8월15일 수립되어
연합국으로부터 독도를 인계인수한 그날부터 독도의 영유국가는 대한민국이고,
이 사실은 그해 12월12일 국제연합(UN)으로부터 공인받았다.

1948년에 확립된 대한민국의 독도영유권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하물며 (3년이 지난)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같이
독도 명칭만 누락시켜 모호하게 표현했을 경우일지라도
독도를 일본영토라고 해석하는 것은 천만부당한 억지인 것이다.

그것도 진실을 추구해서가 아니고,
거짓 근거(로비와 왜곡)로 미끼를 만들어 로비를 해서 명칭을 누락시켜 애매모호하게 한 것으로는
기존의 한국 독도영유권이 부정될 리가 만무하다.

일본정부, 2차 대전후 “울릉도도 일본 땅?”
일본 정부가
독도 뿐 아니라 울릉도까지 자기네 땅이라고 국제사회에
로비를 벌였던 사실도 새로 밝혀졌습니다.

이번에 발굴된 문서에는
일본 외무성이 패전 다음해인
1946년 6월 만들어 배포한 홍보 책자가 포함돼 있습니다.
‘일본 본토에 인접한 소도서’라는 제목의 이 책자에는
일본 주변의 섬들이 네 부분으로 나뉘어 수록돼 있습니다.

신용하 : 일본이
독도와 울릉도를 침탈할 영토 야욕을
대한민국 독립 해방(1945.8.15) 후에도 가지고 있었다는 걸 나타내는 거니까…

한일 친선관계는
일본이
독도 침탈야욕을 버릴 때만이 가능하다…

독도가 한국땅이라는 사실을
일본을 제외한
세계가 다 알고 있다…

일본은
독일처럼 정직하고 깨끗한 사람이 될 것인가,

계속 양의 탈을 쓴 늑대처럼
앞뒤가 다른 사람이 될 것인가…

일본이 저지렀던 과오는…
타가 알고, 자가 알고,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

군국 제국주의 침략 야욕과…
왜곡을 그만 하길 바란다…
고래도 완전히 멸종시키려 하는가…
바다가 다 일본 거냐?…
섬이면 다 일본 거냐?…

거짓과 왜곡의 나라…일본…
칼과 군국제국주의 나라…
전쟁광의 나라…

겉으로는 온난화다 어쩌구 선을 위하는 척하면서…
검은 돈으로 매수와 로비를 서슴치 않고,
왜곡과 날조를 서슴치 않고,
군비 증강을 서슴치 않는 나라…

정치인들이 다 이상하지만…
일본은 더욱 괴상한…

양의 탈을 쓴 늑대…

ps>((독도는
대한민국 경찰들과 삽살개, 해안 경비대가 지키는
대한민국 영토이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서부터
독도가 대한민국 땅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살인하고 도둑질한 모든 것들에 대해
사과하지는 못할 망정,
망언과 망상 그리고,
또 다시 빼앗으려는 일본 군국 제국주의의 야욕은
과거의 죄를 뉘우치지 못한 그 증거이다.

증거를 나열하자면…
끝이 없으니…
오늘은 그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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