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정책 활동소식

[교보환경포럼-자료]경제위기 극복과 환경보전을 위한 국가정책방향

교보환경포럼

” 발상의 대전환;
환경친화적인 경제위기 극복 방안 “에 제출된 토론자료집의 내용입니다.

문의 : 사단법인 시민환경연구소
서울 종로구 누하동 251번지 T.02-735-7034·F.02)730-1240

경제위기 극복과 환경보전을 위한 국가정책 방향

李正典·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
구태의연한 발상

흔히 우리의 현 경제난국을 환난이니 외환의 위기니 하는 말로 표
현한다. 이 말은 마치 환율이 안정되고 외국돈이 많이 유입되면 우
리의 경제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당면한 우리의 경
제난국은 단순히 외환의 위기나 금융의 위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총체적이고 고질적 부실로 인한 위기라는 점을 깊이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얼마 전에 성공리에 끝났
다고 하는 금모으기 운동도 그 뜻은 가상하지만 자칫 우리 경제위
기의 본질을 호도하거나 왜곡할 우려도 있었다. 우리의 경제난국은
정치와 정부의 구조개혁 그리고 산업과 재벌의 구조조정을 이루지
않고는 결코 헤쳐나갈 수 없음에 비추어볼 때 금모으기 운동은 우
리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릴 가능성이 다분히 있기 때문이다. 마
치 그렇기라도 하듯이 최근에는 우리 국민들은 IMF를 차츰 잊어가
고 있다는 징조가 도처에 나타나고 있다. 외신에 보도될 정도로 한
국사람들의 과소비가 다시 살아나고 있으며, 거리의 자동차 통행량
이 IMF조치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고 있다. 시급히 시행되어야할
정치와 정부의 구조개혁이 아직도 가시화되고 있지 않다. 그러니
우리의 경제난국이 10년 정도 장기화되리라는 예상이 나돌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 경제난국의 원인이 총체적이고 고질적인 까닭에 우리 사고방
식과 관행에 있어서 획기적 전환을 이루지 않고는 오늘 날 우리의
총체적 난국을 헤쳐나갈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정부의 최
근 행태를 보면 구태의연한 발상과 관행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
고 있다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예를 들면 그린벨트를 해제
하고 토지이용규제를 완화하려는 일련의 발빠른 정부의 옴직임은
과연 새 정부가 당면한 우리의 위기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
는지를 의심케한다. 물론 우리 나라의 그린벨트제도나 토지이용규
제에 불합리한 점이 많이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불합리한 것이
어디 그린벨트와 토지이용규제 뿐인가 ? 그 동안 일부 경제학자들
은 그린벨트 및 토지이용규제가 토지공급을 제약하여 지가상승을
유발함으로써 많은 경제적 사회적 문제를 야기시켜왔으므로 그린벨
트를 즉시 해제하고 토지이용규제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고 끈질기
게 요구해왔다. 과연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우리의 현실에 부합하
는지는 앞으로 정밀하게 검증해볼 일이지만 어떻든 그들의 주장이
옳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들의 주장대로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토지
이용규제를 대폭 완화한다면 갑자기 토지공급이 증가해서 땅값이니
부동산 값이 더 폭락하지 않겠는가 ? 그렇치 않아도 지금 땅이 안
팔리고 부동산 매기가 없어서 땅값, 부동산값이 떨어진다고 아우성
인데 그런 토지시장에 땅을 대량 퍼붓는다면 이것이야말로 불난 집
에 부채질하는 격이 아닌가.
설령 백보를 양보해서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렇
다고 하더라도 그린벨트를 풀고 토지이용규제를 완화하는 일이 과
연 다른 급한 일을 제쳐두고 강행해야할 만큼 시의적절한지도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 경제의 엔진부분이 고장이 난 마당에 그
린벨트 해제와 토지이용규제 완화로 부동산경기가 과연 얼마나 활
성화될 지도 의심스럽고, 설령 활성화된다고 해도 우리 경제에서 가
장 부채율도 높고 부실하다고 알려진 건설업을 그대로 내버려두고
무리해서 살리려는 것도 문제다. 결국 우리 경제를 망가뜨린 부실
을 제거하기는커녕 부실을 다시 키우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어떻든 우리나라의 토지이용규제 제도에는 대폭
적 수술이 언젠가는 가해져야 한다는 데에는 이론이 별로 없을 것
이다. 예를 들면, 토지거래허가제나 양도소득세 등 시장에서 토지의
자유스런 거래를 저해하는 요인들은 과감하게 제거할 필요가 있다.
다만, 토지규제완화의 문제는 우리 경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도시
구조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국가적 중대사이기 때문에 결코 1, 2
년 사이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만은 우리가 명심해
야 할 것이다. 더욱이나 정치적 이해를 개입시키는 것은 위험천만
이다. 특히 그린벨트 문제는 그렇다. 사실 그린벨트지역에 지금도
허용되는 90평의 건축면적은 웬만한 3 세대도 큰 불편 없이 살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넓은 면적이다. 그린벨트의 진짜 문제는 그린벨
트주민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인데, 과연 이 상대적 박탈감을 그린
벨트해제로 해결하는 것이 최선인가는 신중히 고려해볼 일이다. 그
린벨트를 풀거나 선을 재조정하기 보다는 아니라 오히려 그린벨트
를 보전하면서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더 이익이 될지도 모른다. 흔
히 그린벨트를 풀자고 주장하는 일부 경제학자들은 도시지역에 있
어서 집적의 이익만 알지 녹지지역에도 엄연히 집적의 이익이 존재
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생태계는 연결된 한 덩어리를 이루
고 있을 때에 진가를 발휘하게 되어 있지, 분할된 생태계는 생태계
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환경보전의 차원에서 말하는 녹지, 사람들
이 진정으로 찾는 녹지는 생태계로서의 녹지이지 집 마당의 녹지가
아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그린벨트는 앞으로 생태계를 보전하기 위
한 벨트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경제위기의 근본원인:공급위주의 사고방식과 정책

그린벨트해제와 토지이용규제 완화를 통해서 토지의 공급을 늘리
려는 자세는 그 동안 우리 경제의 부실과 사회의 부실을 낳은 소위
공급위주의 사고방식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 우리 사회는
압축성장의 열망에 빠져 무엇이든지 부족하면 우선 공급을 늘려서
그 부족을 채우려는 사고방식, 즉 공급위주의 사고방식에 젖어버렸
고 정부의 정책도 그런 쪽으로 초점을 잡아 왔다. 에너지가 부족하
면 비싼 외화로 에너지를 사오기에 바빴고, 물이 부족하다고 댐을
건설해 물대기에 급급했으며, 땅이 부족하다고 마구 땅을 파헤치기
에 여념이 없었다. 교통혼잡이 심하다고 하면 무조건 도로를 많이
건설할 생각만 했지 교통수요를 적절히 통제하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이 모든 것이 고도성장으로 정당화되었다. 예를 들면, 서
울의 구로공단이나 전남의 대불공단 등 전국의 많은 공단들이 텅텅
비어 놀로 있는 판에 다른 한쪽에서는 공업용지 개발에 열을 올리
고 있고, 농촌지역에 놀고 있는 농지가 지천에 깔려 있다고 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농지공급을 명분으로 한 서해안 간척사업이 활발
하게 진척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에너지와 물 그리고 토지 등 자
원을 절약하고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일을 너무 등한시했으며 이런
자세가 고질화되었다는 것이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엄청난 양의 석유를 연기로 날려버리고 있으며 금수강산을 망쳐가
면서 만든 물을 물쓰듯 하고 있다. 잘 짓고 잘 쓸 생각은 않고 그저
짓기만 바쁘다 보니 삼풍상가붕괴니 성수대교 붕괴니 하는 어처구
니 없는 참사가 잇달았다. 이미 공급된 것을 잘 이용할 생각은 뒷
전에 미루어둔 채 공급에 급급한 정부와 기업의 공급위주 사고방식
이 곧 우리 경제를 고비용·저효율 경제로 만든 주요인이다.
이런 주장은 법과 제도에도 적용된다. 법과 제도 역시 공급위주의
사고방식에 지배되었다. 정부는 사회문제만 발생하면 법과 제도를
만들어 이를 틀어막기에 급급했고 그러다 보니 토지공개념법안, 쓰
레기수거료 종량제 등 졸속 법이나 제도가 양산되었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 환경관련 법만 해도 20여 개나 양산되었다. 이와 같이 법
과 제도에 있어서 공급위주의 사고방식과 풍토는 우리 정부와 국민
으로 하여금 이미 있는 법과 제도를 잘 지키고 시행하고 그리고 잘
다듬는 지혜를 발휘하지 못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준법정신을 흐
리게 하여 기초사회질서를 어지럽혔고 사회제도의 난맥을 초래하였
다. 제대로 시행하지 못하는 법이나 규제는 공무원의 부정부패를
조장하는 온실이 된다는 것을 우리 국민들은 잘 깨달아야 할 것이
다. 오늘 날 방만한 정부산하단체가 세금낭비와 국가경쟁력 저해의
주된 요인으로 지탄을 받고 있지만 이것 역시 공급위주의 사고방식
이 초래한 법과 제도의 남발 탓이다.
문제는 그런 공급위주의 사고방식과 정책이 경제를 망치고 사회를
부실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의 환경도 망쳤다는 사실
이다. 에너지의 낭비는 우리 대기오염의 주범이며 동시에 교통혼잡
의 원인이면서 쓰레기오염의 원인이고 또한 지구환경보전을 명분으
로 한 국제사회 압력의 원인이기도 하다. 물의 낭비와 남용은 물부
족을 낳았고 수질오염을 유발하였다. 수질오염이란 요컨대 내 이익
만 생각하고 물을 함부로 쓰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공급위
주의 토지개발은 토지의 비효율적 이용을 초래하였을 뿐만 아니라
도시환경을 크게 파괴하였다. 각종 환경파괴 사업들은 공급위주의
정책이 만든 각종 법과 제도의 뒷받침을 받고 있음은 물론이다.

IMF시대의 경제정책과 환경정책

이와 같이 고비용-저효율이 우리의 경제도 망치고 우리의 환경도
망쳤다면 고비용-저효율을 저비용-고효율로 바꾸는 것, 바로 이 것
이 우리 경제도 살리고 우리 환경도 살리는 근원적인 처방이 될 것
이다. 우리 사회의 고비용-저효율이 공급위주의 사고방식과 풍토에
기인한다면 저비용-고효율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런 공급위주의 사
고방식과 풍토 대신에 절약과 효율을 최우선으로 내세우는 사고방
식과 풍토, 즉 수요관리 위주의 사고방식과 풍토를 우리 사회에 시
급히 정착시켜야 할 것이다. 이제는 무조건 발전소를 짓고 댐을 건
설하기 보다는 에너지와 물을 아끼고 효율적으로 이용하도록 수요
를 잘 통제하는 것이 오히려 더 경제적임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
이다. 무조건 토지를 새로 개발하기 보다는 이미 공급된 토지를 잘
가꾸고 이용하는 자세는 단순히 많은 토지와 돈을 절약한다는 가시
적 이익을 떠나 세계에서 가장 좁은 땅에서 살아야 하는 국민의 올
바른 자세일 것이다. 이제는 법과 제도가 절대로 공짜가 아니라 막
대한 국민의 세금을 소모하는 것임을 깊이 인식하고 기존의 법과
제도를 잘 가다듬고 정리하며 일단 만들어진 법과 제도는 철저하게
집행하고 철저하게 준수하는 풍토를 조성해야 할 것이다. 자원의
이용에 있어서 절약과 효율, 법과 제도의 운용에 있어서 절약과 효
율, 이것이 바로 수요관리위주 사고방식의 핵심이다. IMF시대는 우
리에게 공급위주의 사고방식과 정책을 지양하고 수요관리위주의 사
고방식과 정책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 경제를 망가뜨린 요인이 또한 그 동안 우리 환경
도 망가뜨린 요인이라는 점을 잘 인식한다면, 우리 경제를 살리는
일이 우리 사회의 최우선적 과제이기 때문에 환경문제는 당분간 접
어두거나 혹은 부차적인 문제로 다루어야 한다는 주장은 우리의 경
제위기의 본질을 잘 못 생각하고 있는 주장임을 알 수 있다.
IMF조치 이후 한 때는 거리의 교통혼잡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대기도 많이 깨끗해졌으며 폐기물의 재활용도 활기를 띠고 있는 등
우리의 환경이 저절로 개선되고 있고 환경개선을 위한 노력이 자발
적으로 잘 이루어졌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별도로 환경문제에 대
해서 대책을 강구하고 투자할 필요가 무엇이 있겠느냐는 주장을 제
기하였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우리 환경문제의 본질을 잘 이해하
지 못한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주장과 관련해서 분명히 강
조해둘 것은, 우리 경제와 사회가 구조적으로 환경친화적이 되지 않
고는 환경문제가 근원적으로 해결될 수 없으며 따라서 유엔환경개
발회의에서 천명된 지속가능발전의 원칙을 이루어낼 수 없다는 점
이다. 물론 IMF조치 이후 거리의 교통량이 현저하게 줄어들었고
그래서 교통혼잡이나 교통공해가 많이 줄었으며 국민들의 과소비도
많이 진정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으며 재활용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
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적으로 바람직한 현상
들은 일시적일 가능성이 높다. IMF의 한파가 진정되고 경제가 다시
호전되면 또 다시 교통혼잡과 대기오염이 재발할 가능성은 얼마든
지 있고 과소비가 또 기승을 부리면서 폐기물재활용이 슬그머니 사
그러들 것이다. 결국 그러다 보면 또 IMF구제금융조치를 불러올
파탄지경이 다시 벌어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될 것이다. 1970년대
초반 소위 오일쇼크가 우리나라를 강타했을 때도 에너지 절약이니
소비절약이니 하는 범국민적 근검절약운동이 불길처럼 일어났었다.
그러나 그 얼마후 오일쇼크의 한파가 걷이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낭비풍조, 거들먹거리는 풍조, 과소비풍조가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
작했다. 만일 그 오일쇼크 때에 일본이 그랬듯이 우리나라가 에너
지절약 및 효율적 이용을 제도화하고 체질화했더라면 오늘날과 같
이 IMF구제금융조치를 당하는 지경까지 우리 경제가 허약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진정 경계해야 할 것은 과거의 타성에 젖어서
IMF사태를 핑계로 경제만을 살리려는 무모한 성장위주의 논리, 개
발위주의 논리가 다시 돋아나는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특히 우리의 경제구조와 정부구조 그리고 각종 환경관련 제도들이
환경친화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IMF조치는 우리 경제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기본틀을 완전히 새로 짤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
다. IMF조치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대부분의 개혁사항들은 진작부
터 우리 스스로 했어야 할 것들이다. 사실 지난 2,3십여년 동안 이
루어 놓은 우리 경제와 사회는 부실 투성이의 날림이었다. 그래서
어차피 오래 견딜 수가 없는 것이었다. 지난 해 11월말에 일본의
고베시에서는 고베지진복구 1,000일 기념행사가 있었는데 이 모임에
참여한 일본의 시민환경단체들은 고베시의 지진참사를 환경친화적
인 고베시 재건의 기회로 삼을 것을 굳게 다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이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을 무척 안타까워 하였다는 점
은 우리에게 타산지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이제야 말로 우리 경제와 사회를 환경친화적으로 다시
짤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 사실 수요관리 위주의 사고방식과
정책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그 동안 환경전문가들과 환경단체들이
여러 차례 강조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마치 경제전문가들
이 금융자율화를 소리 높이 외쳤고 지난 해 초반부터 금융대란이
온다는 말이 꾸준히 나돌았지만 정책당국자들이 이를 묵살하였던
것과도 흡사하다. 이제 그 동안 수없이 강조되어 왔던 환경정책들
을 IMF조치가 몰고 온 국민정서를 타고 밀어부칠 기회가 왔다고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수요관리 위주의 사고방식과 풍토를 우
리 사회에 확고하게 정착시키고 나아가서 우리의 경제구조와 정부
구조 그리고 환경관련 각종 제도들을 환경친화적으로 탈바꿈함에
있어서 IMF조치를 좋은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새로운 세계이념의 등장과 우리의 환경정책

구시대의 공급위주 사고방식과 정책은 우리의 여건에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1992년 6월 [유엔환경개발회의(UNCED)]에서 채택되어
범지구적 규범이 되고 있는 지속가능발전의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
는다. 요즈음 유행하는 세계화라는 것이 세계의 규범에 우리도 적
응하는 것이라고 하면,수요의 증가에 무조건 순응하여 공급을 늘릴
생각만 하는 사고방식은 세계화에도 역행한다는 것이다. [의제 21]
에 의하면,요컨대 지속가능개발의 이념은 자연환경이 우리 인류를
수용하는 능력에 한계가 있으므로 우리의 모든 활동은 이 수용능력
의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통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핵심으로 하
는 이념이다. 우리의 활동이 환경의 수용능력 안으로 통제되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의 소비는 절제되며,자원은 효율적으로 이용되어
야 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지속가능개발의 이념은 현재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상품의 생산양식이 환경친화적으로 바뀔 것을 요구
하며 또한 특히 선진국에서 성행하고 있는 물질주의 소비풍토가 크
게 자제되어야 함을 요구한다. 기존의 지배적인 사고방식은 자본이
경제성장의 가장 근원적인 한계라고 가르치고 있지만 지속가능개발
의 이념은 바로 이 환경의 수용능력이 생산의 근원적 한계요 경제
성장의 근원적 한계임을 강조한다. 따라서 자본을 대규모로 동원한
무절제한 개발이나 자원공급은 자연환경의 수용능력을 범하기 때문
에 지속가능개발의 이념에 위배된다. 요컨대,지속가능개발의 이념
은 자연자원의 공급보다는 자연자원에 대한 수요의 철저한 관리를
요구하는 이념이다. 에너지, 물, 토지라고 해서 그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에너지, 물, 토지를 아껴쓴다는 것,이들에 대한 수요를 관리
한다는 것은 단순히 우리의 필요가 아니라 지속가능개발을 명분으
로 하는 시대적 요청이다.
흔히 21세기는 무한경쟁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국가
간 경제전쟁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한다. 이런 경제전쟁을 주도하는
세계적 이념은 자유무역의 이념이 될 것이다. 자유무역의 이념은
세계 각국의 자유스러운 무역을 통한 상호이익의 증진을 지향하는
이념이며 자유경쟁을 강조하는 이념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이 자유
무역의 이념을 전 세계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중추적 국제기구는 국
제무역기구(WTO)이다.
그러나 흔히 21세기를 환경의 시대라고도 한다. 이 말은 환경문
제가 더욱 더 심각해져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음을 반영하는 말이기도 하고, 하나 뿐인 지구의 보전을 위한 인
류의 드높은 염원을 반영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 환경의 시대에 지
구의 환경보전을 위한 인류의 공동노력을 주도하는 범지구적 이념
은 지속가능발전의 이념이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21세
기는 자유무역의 이념과 지속가능발전의 이념이 지배하는 시대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문제는 이 두 이념이 각각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그렇고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이 두 이념 사이에서 곤혹스런 입장에 처하
게 될 것이다. 자유무역의 이념은 자유경쟁을 통한 경제발전 내지
는 경제성장을 중요시하는 이념이다. 그러나 지속가능발전의 이념
은 하나밖에 없는 지구의 환경보전을 으뜸으로 생각하는 이념이다.
자유무역의 이념은 사익추구가 곧 공익이 된다는 신념을 밑바탕으
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전체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사익추구를 정
당화한다. 자유무역의 이념에 의하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사
익과 공익은 조화되게 되어 있다. 이런 사고방식은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시장경제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있으며 따라서 현실
적으로 무척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사고방식이 환경문제의 해결에도 통할 지는 극
히 의심스럽다. 각 개인의 사익추구 행위가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은
너무나 많은 불확실성의 베일에 싸여 있기 마련이다. 예컨대, 기업
들이 오존층파괴물질이라고 하는 CFC를 개발해서 시판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아마도 그 어느 누구도 이 물질이 그렇게 엄청난 환경악
영향을 가져오리라고는 미쳐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심지어 CFC
를 개발한 연구자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CFC를 마시기까지 하며
이 물질의 무해함을 증명했다고 한다. 다행이 CFC의 경우에는 조
기진단이 나와서 그런대로 대책을 마련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항
상 이렇게 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암으로 죽는 사람들을 보
면 자각증상이 나타났을 때는 이미 손을 쓸 여지가 없는 경우가 대
부분이라고 한다. 환경문제의 특성에 비추어 보아 개인의 무분별한
사익추구로 인한 환경악영향이 소리 없이 누적되다가 어느 날 느닷
없이 터지면서 우리 인류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줄 가능성은 얼마든
지 있다. 바로 이것이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진실로 걱정하는
바이며, 이들의 눈에는 자유무역의 이념은 전체이익의 희생 위에 개
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그런 무분별한 행위를 부채질하는 참으로
무책임한 이념으로 보인다. 그래서 “생각은 범지구적으로,그러나 행
동은 지역적으로”라는 환경구호가 시사하듯이 지속가능발전의 이념
은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에 앞서 우선 전체의 이익을 먼
저 생각해보기를 강력하게 요구한다.
이와 같이 앞으로 21세기를 지배할 두 가지 이념이 우리에게 요구
하는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이 상당히 다르지만 우리의 현 상황에
대하여 이 두 이념이 한 가지 공통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종래의 공급위주의 사고방식은 이제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급위주의 사고방식이 가져온 낭비로
는 21세기의 치열한 경제전쟁을 이길 수가 없다.

국책사업의 재검토

구시대의 공급위주 사고방식으로부터 수요관리위주 사고방식으로
의 전환은 우선 각종 법제와 정부조직의 전면개편을 요구한다. 앞
에서 언급한 토지이용규제의 대폭적 정비가 불가피할 것이다. 다만
이 작업은 국민경제의 현재와 미래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므로 수
년간 치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 동안 정부의 공급위
주 정책의 수행에 손발이 되었던 각종 산하단체의 대폭적 통폐합
및 역할변화는 시급한 과제가 될 것이다. 종전의 개발위주의 각종
정부산하단체는 수요관리 위주로 기능전환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공급위주 사고방식으로부터 수요관리위주 사고방식으로의 전환은
각종 대형 국책사업의 타당성을 타진하는 틀을 바꾼다. 예를 들면,
공급위주의 사고방식에서는 현재의 엄청난 물낭비를 주어진 것으로
보고 물공급을 위해서 계속 댐을 건설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타당하
게 판정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요관리위주의 사고방식에서는 예
컨대 가격정책을 통해서 현재의 1일 1인 급수량을 독일이나 프랑스
의 수준으로 줄이고 그 대신 댐건설에 투입될 돈을 다른 긴요한 국
가적 용도에 이용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더 타당하다
는 결론이 나올 수가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전환에 더하여 IMF관리체제라는 특수한 경제
상황 역시 각종 국책사업의 타당성을 변화시킨다. 경부고속전철사
업과 같이 투자비가 대규모로 소요되는 사업은 더욱 더 그렇다. 잘
알려져 있듯이 경부고속전철의 건설을 계속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정부 부처 사이에도 상당한 견해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통전문가내지는 토목전문가들은 경부고속전철 사업이
타당성 있는 사업이라고 상당히 자신있게 대답한다. 서울과 부산
사이는 교통량이 무척 많은 축이기 때문에 교통수요를 어떻게 잡더
라도 경부고속전철의 경제성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통행
요금이 10만원 가까이 되지 않으면 경부고속전철은 개통 후에도 상
당한 기간 적자를 면하기 어렵다고 보는 교통전문가도 있다. 그러
나 엄밀히 말해서 적자가 난다고 타당성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개별 사업의 경제성(다시 말해서 재무성)과 국민경제 전체의 차원에
서 본 경제성은 상당히 다를 수가 얼마든지 있다. 예를 들면 대부
분의 지하철은 엄청난 적자를 보고 있지만 그렇다고 요금을 5천원
으로 올릴 수는 없다. 그래서는 대중교통수단으로서의 의의를 송두
리째 상실하기 때문이다. 국책사업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판단
근거는 우선은 국민경제 전체의 차원에서 본 경제성이다.
경부고속전철사업에 대한 교통전문가나 토목전문가들의 견해는 그
야 말로 경부고속전철사업 하나만을 놓고 생각한 견해일 뿐 국민경
제 전체의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견해는 아니다. 어떻든 백보
를 양보해서 교통전문가나 토목전문가의 말대로 경부고속전철 사업
그 자체는 상당한 타당성을 가진다고 하자. 국책사업이라면 어떠한
사업이든지 그 자체로서 타당성을 가져야 할뿐만 아니라 ‘다른 사
업’과 비교해서 더 높은 타당성을 가져야만 진정으로 타당성을 가진
사업이다. 경부고속전철이라고 해서 그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여
기에서 말하는 ‘다른 사업’이란 다른 국책사업뿐만 아니라 민간부문
의 사업도 포함한다. 여기에서 우선 꼭 짚어봐야 할 것은 경부고속
전철의 건설이 우리 경제에 미칠 엄청난 부담이다. 1997년 교통개
발원이 새로 작성한 경부고속전철 타당성검토 보고서를 보면 경부
고속전철 건설에 소요될 비용은 애당초 5조 8천억 원에서 17조 6천
억 원으로 늘어났다. 그나마 이 비용에는 감사원이 지적한 약 4조
5천여 억원의 비용이 누락되어 있다. 결국 총비용은 17조 6천 억원
이 아니라 22조 3천억원에 이르는 금액이다. 우선 문제는 이 돈을
세금으로 조달하든 채권으로 조달하든 또는 다른 어떤 방법으로 동
원하든 결국 민간부문이 쓸 돈이 일단은 고속전철사업에 이전된다
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민간부문의 수 많은 사업들에 쓰여야 할
돈이 22조 3천억원이 감소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경제위기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수출부진도 아니오
임금인상을 위한 춘투도 아니오 순전히 민간부문에 자금이 없다는
것이다. 왜 민간부문에 자금이 없나? 잘 알려져 있듯이 외국돈이
썰물처럼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흑자도산이 줄이어 벌어지
고 있고 중소기업은 30%의 고리대금을 얻기도 어려울 정도로 돈이
없어서 쩔쩔 매는 판이다. 실업자가 왜 양산되는가? 순전히 공장
을 돌릴 돈이 없어서 문을 닫기 때문이다. 이렇게 민간부문은 극심
한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는데 우리 정부가 안이하게 그 어마어마한
22조 3천억원을 경부고속전철 사업에 퍼부을 생각을 한다는 것은
아무리 정부가 위기불감증에 걸렸다고 하지만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나 이 22조 3천억원 중에는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돈도
상당히 많이 있어서 가뜩이나 어려운 시국에서 국내경제에 미치는
위축효과는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흑자도산이 줄줄이 이어지고
실업자가 200만이 발생하는 상황을 묵살해도 좋을 만큼 경부고속전
철 사업의 타당성이 높은가는 다시 한번 더 심각하게 짚어볼 문제
다.
물론 그 22조 5천억원을 1,2년에 다 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
리의 경제위기가 앞으로 4,5년은 계속된다는 것이 경제전문가들의
공공연한 진단이고, 최근에는 앞으로 10년간 불황이 계속되리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우리 경제가 살기 위해서는 우선 민간부문이
살아나야 한다. 그러자면 민간부문이 쓸 돈이 원활하게 조달되어야
한다는 것이 첫 번째 선결조건임은 물론이다. 만일 22조 5천억원
을 민간부문에서 뺏어 간다면 아마도 민간부문은 상당한 타격을 받
게 될 것이다. 민간부문이 거덜나면 경부고속전철도 소용이 없다.
왜냐 하면 경부고속전철은 민간부문의 과도한 물류를 해소하기 위
한 것인데 민간부문이 거덜나면 경부고속전철로 해소할 물류도 없
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경부고속전철사업은 모순을 내포한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이 그랬듯이 만일 현재의 전망대로 불
황이 앞으로 10여년 계속된다면 물류 역시 앞으로 10여 년간 예상
보다 상당히 감소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실만으로도 경부고속전
철의 타당성은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경부고속전철사업의 추진이 고용을 창출하여 실업
을 흡수한다는 반박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경부고속전
철사업 때문에 민간부문의 고용이 감소하는 효과가 발생한다는 점
을 간과하고 있다. 사실 IMF시대의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는 실업
문제라는 데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결국 경부고속전철과 민간부
문, 그 어느 쪽이 더 큰 고용효과를 가지는가를 냉철히 짚어보아야
한다. 며칠 전에 나온 KDI보고서는 실업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도
금융부문의 강도 높은 구조개편이 최우선 과제라고 주장했다고 하
는데, 이런 주장은 결국 금융부문의 개혁을 통해서 민간부문이 더
많은 돈을 쓰게 하는 것이 고용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음을 뒷받침
한다. 경부고속전철사업을 이용해서 실업을 흡수하려는 것은 마치
파리를 잡기 위해서 도끼를 이용하는 격이다. 파리를 잡는데는 파리
채가 제격이다. 실업은 노동집약적인 사업을 통해서 흡수하는 것이
경제적이요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서 산림가꾸기라든가 재활용을
위한 쓰레기분리 등 손이 많이 가는 사업들이 실업흡수에 효과적이
다. 재활용산업의 고용효과는 다른 산업에 비해서 대단히 고용효과
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경부고속전철사업은 아무리
보아도 노동집약적인 사업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경부고속전철사업을 포함한 모든 국책사업의 타당성은 사회적·경
제적 상황변화를 무시하고는 생각할 수 없다. 이 말은 경부고속전
철사업, 인천국제공항, 경인운하, 새만금간척사업, 등 그간 공급위주
의 정책에 따라 추진된 모든 국책사업의 타당성을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해야 함을 의미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타당성 재검토작
업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이해관계가 걸린 정부부
처나 기관이 아닌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기관에서 담당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미 수행된 경부고속전철사업의 타당성검토 작업의 신빙
성이 매우 의심스럽다는 점에서 검토기관의 중립성과 독립성은 더
욱 더 절실하다.
실업문제가 의외로 매우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정부는
실업구제를 위한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제는 실업구제를 위한 각종 대책들이 많은 돈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실업대책으로 5,6 조원의 기금을 마련할 것으로 알
려지고 있다. 그러나 실업구제도 중요하지만 이를 위한 자금의 마
련 방법도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왜냐 하면, 앞에서도 강조하
였듯이 우리의 현 경제상황이 극도의 자금경색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업구제를 위한 자금조달과정이 민간부문의 경제활동을
위축시키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매우 긴요하다. 아마도 민간부문을
다치지 않으면서 실업구제를 위한 기금을 대규모로 조성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정부의 각종 국책사업들의 대폭 정리일 것이다. 예
를 들면, 우리 국민들이 화장실 변기에 벽돌 한 장씩 넣음으로써 물
이용량을 약 5%만 줄여도 영월댐을 비롯하여 기존 물공급기초시설
투자계획의 축소가 가능하고 이로부터 최소한도 5,6 조원을 무난히
실업구제를 위해서 빼낼 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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