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정책 활동소식

[그린피스워크숍] 한국민중운동의 역사적과정과 평가

한국사회운동의 역사적 과정과 평가
황 인 성(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집행위원장)

1. 앞서서

먼저 국제환경문제 인식을 위한 공동웍샅에 참가하신 여러분께 이 땅에서
참된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싸우고 있는 한국민중들의 연대의 인사
를 드립니다.
날로 심각해져 가는 지구환경문제에 대응하여 전인류가 공동노력을 경주해
야 하는 이 때에 국경을 넘어 서로가 서로를 더욱 잘 이해하고 공동의 과제
앞에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한 이 모임에 한국민중운동의 걸어 온 길과 오
늘의 상황을 말씀드리게 되어 대단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사회운동의 발생과 전개는 민중의 삶을 둘러싸고 있
는 역사적 조건과 떼어 생각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한국에서 민중들이 궁극
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역사적 과제가 무엇이며 오늘 부닥치고 있는 문제
가 어떠한가를 소개하기 위해서는 먼저 근대이후의 한국역사에 대한 간략한
언급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역사적 과정이 배태한 한국
사회의 특징을 알아 보고, 민중운동의 발전과정과 현황을 서술하도록 하겠
습니다.

2. 한국현대사의 전개와 한국사회의 특징

한국은 다른 제3세계국가와 마찬가지로 시민계급의 성장에 기초하여 자주
적인 근대화와 자본주의화에 성공하지 못한 채 21세기 초엽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배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로써 19세기에 걸쳐 봉건왕조체제를 극복하고 근대적인 민족국가를 건설
하고자 하던 상층개혁과 아래로 부터의 농민투쟁이 모두 실패하고 한국사회
는 일본제국주의의 아시아 침략정책에 따라 식민지형 자본주의의 길을 걷
게 되었습니다.
일본은 조선을 대륙침략을 위한 군수병참기지와 일본에 대한 식량공급지로
설정한 식민지정책에 따라 북한지역에 대한 광공업 투자, 교통.통신의 자본
주의적 재편,자본주의 금융제도의 도입 등으로 일본에 편입된 형태로 자본
주의화하는 한편, 농촌수탈을 극대화하기 위한 반봉건적 구조를 온존시킴으
로써, 1945년 조선이 일제로 부터 해방될 때 까지 한국사회는 반봉건적,반
자본제적 생산관계를 사회적 토대로 하고 있었습니다.
가혹한 경제적 수탈과 민족적 억압에 맞서 민족해방을 실현하고자 하는 민
중의 열망이 1919년 3.1운동으로 분출하여 아시아민족해방운동의 봉화 역할
을 하는 등 끈질긴 민중의 해방투쟁이 전개되었으나 민족해방은 이같은 해
방투쟁세력의 단일한 힘에 의해 실현되지 못하고 세계2차대전에서 일본의
패전의 결과로 주어지게 되었습니다.
일제로 부터 해방된 한국민중은 일제의 잔재를 청산한 바탕위에서 새로운
근대적인 민족국가,민주적인 사회건설에 대한 희망으로 벅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민족의 운명은 또다시 전승국인 미.소 양국의 한반도에 대한 분할점
령과 군정실시로 인해 외세에 의해 크게 규정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
다.
식민통치하에서 잠복하고 있던 민중의 민족적,민주적 요구가 분출하고 이
를 기반으로 한 제 사회운동이 급격히 고양되는 가운데 한국민중은 일제잔
재청산과 사회의 민주적 개혁,통일민족국가의 수립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러
나 2차대전후 새롭게 조성된 미소간의 세계적 대결구조속에서 한반도를 동
아시에서의 군사적 전략거점으로 삼고자 하는 미국의 의도와 이에 편승하여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반민족세력에 의해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되고 이
어 북한에도 새로운 정부가 세워짐으로써 한국민중은 해방의 감격도 잠시
뿐 민족분단의 비운을 맞게 되었습니다.
이같은 분단정부의 수립이 있은 지 2년도 채 안되어 한반도는 2차대전후
최초의 대규모 열전의 장으로 변해 엄청난 전쟁의 참화를 감수해야 했을 뿐
아니라 민족내부의 불신과 대결구조가 심화됨에 따라 이후의 정치,경제,사
회의 발전과정에 커다란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었습니다.
반공을 앞세운 분단정권의 성립과 민족상잔은 자생적인 사회운동세력을 말
살하였고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장기집권을 위해 민중의 자유와 권리를 억
압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 이념은 사실상의 가부장적 전제주의를 분식하는
허울에 지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승만정권의 부패.무능과 경제의 파탄에 따른 민중의 불만은 1960년 4월
학생들을 필두로 한 시민봉기를 촉발하였고 그 결과 12년간 지속되어 오던
독재정권은 타도되었습니다.
4월혁명으로 그 동안 한국사회내부에 잠재해 있던 사회 각 계층의 이해가
분출되어 통일운동,노동운동이 활성화되는 계기를 맞게 되나 이같은 민주화
의 기회는 1년후인 1961년 박정희 장군의 군사쿠테타로 인해 다시금 봉쇄되
고 말았습니다.
군사정변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 군부가 취약한 정치적 정당성을 보완하기
위해 내건 통치이데올로기는 반공을 앞세운 국가안보와 경제성장이었습니
다. 수출지향적 공업화전략을 기초로 위로부터의 강력한 산업화를 추진하는
한편, 이를 명분으로 개발독재체제를 구축하게 됩니다. 18년간 지속된 박정
희 군사독재하에 있던 1960년대와 1970년대에 한국사회는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란 변화를 겪게 되었습니다. 서구나 일본의 경우 1-2백년에 걸쳐 진
행된 도농거주인구의 역전현상이 한국의 경우 30년만에 이루어질 정도로 압
축적인 고도성장이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이 과정은 국가의 주도하에 외국의 자본과 기술, 원자재를 국내의 값싼 노
동력과 결합하여 대량생산체제를 확립하고 선진자본주의 시장에 염가로 수
출하므로써 공업화를 진전시키는 것이었으며, 특정 기업집단(재벌)에게 금
융,세제상의 특혜를 몰아주어 이들이 성장을 주도하게 하는 과정이었습니
다. 국가와 재벌의 주도하에 저곡가,저임금-장시간 노동에 기초한, 곧 노동
자,농민,중소기업,자영업자 등 국민 대다수의 희생을 바탕으로 높은 생산성
을 확보하는 이같은 성장과정은 효율성을 앞세워 국민의 기본권을 극도로
제약하는 한편, 전 국토에 공해를 양산함으로써 민중의 민주적,생존권적 투
쟁을 격화시키는 과정이기도 하였습니다.
박정희 유신정권의 철권통치도 1979년 점차 확대되는 민중의 민주화 요구
앞에서 붕괴함에 따라 한국사회는 1980년 ‘서울의 봄’으로 명명되던 변혁의
계기를 맞게 되었지만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을 총검으로 짓밟은 광주학살
이 상징하듯이 또다시 군부의 반동적 정치개입에 의해 민주발전은 좌절되게
되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80년대 중반까지 한국사회는 보다 광폭한 군사
통치를 겪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60년대에서 80년대에 이르는 30여년의 압축적인 고도성장기간은
우리사회 한편에 강력한 국가통치체제를 구축한 반면, 다른 한편에는 농민
계층의 급격한 분해와 노동자 계급의 성장, 도시빈민계층의 확대,사무,전문
직 등 신중간계층의 증대 등 사회계급,계층구성의 분화와 다원화에 기초한
다양한 시민사회의 토대가 구축되고 사회운동의 발전으로 대항세력을 형성
해 가는 기간이기도 하였습니다. 수출지향적 고도성장체제가 갖는 모순의
직접적인 피해자였던 노동자,농민을 위시한 민중의 치열한 생존권투쟁과 학
생,지식인의 민주화투쟁이 군사독재에 염증을 느끼던 중산층으로 까지 확대
되는 1987년에 이르러 전개된 전국민적인 6월민주화대투쟁은 지배권력으로
하여금 더 이상 지금까지의 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어렵게 하였으며, 독재의
후퇴와 완만한 민주화의 과정을 강제하게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식민지화로 인한 한국사회의 자주적 발전의 차단과 식민지 경제구조로의
편입, 해방후의 민족분단과 민족상잔, 세계냉전체제의 최전방에 위치한 반
공보루로서의 정치,군사적 제약, 급속한 경제성장과정 등의 영향으로 한국
사회는 다양한 영역과 층위에서 불균형과 사회적 대립을 배태하고 있는 것
이 사실입니다. 이같은 역사과정속에서 조형된 한국사회의 특징과 해결과
제를 몇가지로 요약해 보겠습니다.
첫째 한국사회는 식민통치와 이후의 분단체제하에서 강력한 외세의 지배
와 간섭이 군사.정치,경제적으로 관철되고 있는 사회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정치,군사,경제 등 제 측면에서 자주적 기반을 확대하고 갈라진 민족을 통
일하여 번영을 누리고자 하는 민족적 열망이 어느 사회보다 강렬하게 존재
하고 있습니다. 당면하게는 전쟁의 위협을 거세하고 평화를 정착시키며, 반
세기 동안 서로 다른 체제속에서 살아 온 민족을 통합하는 역사적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둘째, 분단과 독재로 점철된 한국현대사는 우리사회에 강력한 국가주의적
전통과 중앙집권적 권위주의의 잔재를 남겨 놓았습니다. 이는 시민혁명의
경험없이 근대적 국가체제를 형성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냉전대립으로 인해
시민사회의 자율성은 극도로 제약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세계적인
탈냉전 기류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는 아직도 반공,반북이데올로가 상당
한 힘을 발휘하고 있으며 남북이 서로를 동반자로 규정한 남북합의서가 발
효된 지금에도 남북은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는 법,제도에 의해 민간의 자발
적인 통일운동, 사회운동이 탄압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적 토대의 변화로 각 계급,계층의 정치적 참여욕구는 증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의 정치활동 금지 등 법적 제약과 정치이데올로
기의 협소성으로 말미암아 시민사회의 실질적 정치참여는 크게 제약당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따라서 분단독재의 유산을 청산하고 민주주의를 성숙시키는 것은 우리사회
에서 변함없는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셋째, 지난 30년간 압축적인 고도성장을 통해 우리사회은 양적인 측면에
서는 눈부신 성과를 거둔 것이 사실이지만 그 이면에는 민주화의 지체와 지
역적,계층적 불평등의 심화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루지 않으면 안되었습니
다. 곧 재벌위주의 경제력집중과 분배정의의 실종, 경제의 대외종속성심화,
환경생태계의 파괴, 지역,계층간 갈등의 심화로 인한 사회불안 등의 폐해를
남겼으며 이의 극복을 위한 사회,경제적 정의실현, 사회민주화의 과제를 부
각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급격한 국제경제구조의 재편과 전지구적 규모의
환경위기에 대처하기 위하여 성장,형평,환경의 가치가 조화된 새로운 경제
발전전략의 모색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3. 한국민중운동의 전개과정과 평가

한국민중이 외세의 식민지배와 분단독재에 맞서 민족의 주권을 확립하고
통일된 민족국가 건설과 민주적인 사회의 실현을 위해 지난 1세기동안 끊임
없이 싸워 왔습니다.
그러나 민족해방운동의 조직적 성과와 전통은 남한에서는 남한단독정부의
수립과정과 전쟁시기를 통하여 철저히 파괴되어 단절될 수 밖에 없었습니
다. 따라서 오늘까지 연속성을 지니고 발전하고 있는 운동의 흐름은 60년 4
월혁명이후부터 새롭게 생성되었습니다.
특히 60년대에 들어 본격화된 산업화과정은 광범한 농민의 이농과 도시집
중을 야기하였고 저곡가-저임금을 바탕으로 한 수출드라이브 정책은 노동자
들의 무권리상태를 강요하고 전 사회적으로 빈부의 격차를 심화시켯습니다.
재벌중심의 고도성장정책이 배태한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모순은 2차 경제
개발5개년 계획이 끝나는 60년대말과 70년대 초에 오면 사회표층으로 가시
화되면서, 분신,폭동 등 극단적인 노동자,빈민들의 저항행동을 표출시겼습
니다.
노동자,농민 등 기층민중의 권리의식을 자극하고 이들을 조직화하고자 하
는 일체의 시도가 위험시, 불순시되고 있는 정치,이데올로기적 상황과 관변
어용조직만이 허용되고 있는 조건속에서 초기 기층민중의 저항은 지극히 자
연발생적이며 비조직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회적 모순의 집적에 따른 기층민중운동의 자연발생적인 생성과
정치적 불안의 증대는 지배세력으로 하여금 보다 강력한 파쇼체제의 구축
을 통해 정치적 안정을 꾀하도록 하였습니다.
동시에 이같은 억압체제는 광범한 지식인,종교인,야당정치인,학생 등의 민
주화투쟁을 불러 일으키면서 민주화,인권운동의 전선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이처럼 70년대에 들어 확대되는 민주화투쟁전선하에서 섬유,봉제,전자 등
노동잡약적인 여성사업장을 중심으로한 민주노조운동을 위시하여,농민운동,
도시빈민운동 등 기층민중운동이 조직적으로 분화, 발전하기 시작하였습니
다.
아직 농촌의 분해가 완만하게 진행되고 노동자계급이 형성되고 있던 60년
대에는 사회운동이 주로 학생,야당 등에 의한 정치적 성격의 운동-한일회담
반대,3선개헌 반대 등-이었던 데 반해 70년대에 들어서는 종교인,교수,해직
언론인,정치인,학생 등이 주도하는 반독재민주화운동과 함께 민중들의 생존
권투쟁이 결합되고 확산되었던 것입니다.
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군사적 진압을 마지막으로 기존의 권위주
의적 정치체제를 재편성한 신군부가 민주화운동세력의 무차별 탄압,언론통
폐합,관료숙청 등 ‘테러통치’를 통해 통치기반을 확립하던 80년대 초기는
모든 사회운동이 침묵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1982년 3월 미문화원방화사건을 계기로 학생운동의 조직적인 저항
이 시작되고 1983년에 와서는 청년운동이, 1984년 부터는 노동운동,농민운
동,민중문화운동,민중교육운동,빈민운동 등 각 부문 사회운동이 좌절감을
극복하고 정비되기 시작했고 각 지역에서도 민주화운동조직들이 재건되었습
니다.
이같은 운동세력의 대오정비는 단순한 과거의 복원이 될 수 없었습니다.
광주항쟁을 경험하면서 이 땅의 민중들은 우리 사회의 기본성격에 대해 보
다 분명히 이해하고 미국,군부,재벌 등 지배세력과 민중의 대립이 분단극복
과 민주화, 곧 자주,민주,통일의 실현을 통해 극복될 수 있다는 인식의 전
환이 수반되는 과정이었습니다.
각 부문의 민중세력은 효과적인 민주화투쟁을 위해 민중의 연대조직인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을 건설하고, 민주화의 내용,목표,방법상의 견해차
이가 다소 존재하고 있었지만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중심으로 청년학생,종교
인,양심적인 법조,언론인 등 전문직 종사자,보수야당,민중운동세력간의 폭
넓은 정치연합을 형성해 냄으로써 1987년 6월 민주화대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었습니다. 중산층까지 동참한 광범한 국민의 민주화투쟁으
로 정치적 위기를 맞은 군사정권은 군사적 진압과 정치적 양보의 기로에서
노태우 여당 대통령후보의 대통령직선제를 비롯한 8개항의 민주화조치-6.29
선언-를 발표함으로써 양보를 통한 지배질서의 안정화를 택하게 되었습니
다.
아래로부터의 국민적 투쟁이 강제한 군사독재체제의 후퇴는 국민의 승리
이자 동시에 체제안정을 꾀하기 위한 지배세력의 능동적인 통치전략이기도
한 것이었습니다.
6.29선언을 계기로 한국사회는 제한적이지만 위로부터의 민주적 이행의 과
정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각 부문별,계급계층별,지역별 이익을
실현하고자 하는 대중들의 집단적 움직임이 폭발하였으며, 가장 강력하고
조직적인 것은 노동자세력이었습니다.
가혹한 수탈과 무권리상태에서 고통받던 노동자들의 분노와 노동조건개선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나오면서 87년 7월부터 9월까지 3,400여 사업장에서
파업이 발생하고 1,400여개의 조합이 새로 건설되는 거대한 노동계급의 진
출을 보였습니다 .
이처럼 억눌린 각 사회영역의 대중적 요구가 짧은 시간내에 거세게 터져
나오면서 계층적 이익을 중심으로 한 대중운동이 노동운동,농민운동,빈민운
동, 각종 중산층운동 등이 성장하는 한편,특정계층운동의 범위를 넘어 전사
회적인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를 중심으로 한 환경운동,평화통일운동, 각종
성차별에 반대하는 여성운동 등이 활성화되면서 사회운동은 보다 대중화되
고 다원화하는 시기를 맞게 됩니다.
90년대에 오면 그간 반독재민주화투쟁을 중심으로 광범하게 형성된 민주연
합전선이 해체되고 사회운동내에서도 협의의 민중운동세력들과 시민운동세
력으로 분화되는 속에서 포괄적인 정치쟁점을 중심으로한 단결보다는 부문
대중의 구체적 이익을 중심으로 운동력이 편성되는 양상를 보이게 됩니다.
또한 동구사회주의의 붕괴와 세계자본주의체제의 급격한 변화는 전통적인
변혁적 민중운동 내부에 인식상,실천상의 혼란을 야기하는 한편, 이데오로
기적 지형의 보수화와 독점자본을 위시한 사회기득권세력의 체계적인 민중
포섭전략에 바르게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민중운동의 정치적 헤게모니가 축
소하는 양상을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세계적 수준의 탈냉전 기류와 한국사회의 자본주의화에 따른 계급구성의
변화는 전반적으로 대중의 자주,민주의식을 고양시켜 다양한 형태의 자발적
인 조직화와 참여활동을 증대시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중운동세력의 총
체적인 상황개입력과 정치적 위신의 약화라는 모순적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볼 때 한국의 민중운동은 6,70년대의 자연발생적 투쟁에 근거한
생성기를 거쳐 80년대의 반파쇼민주화투쟁과정속에서 각 부문과 계급계층별
로 운동조직을 건설하고 자주,민주,통일이라는 이념적 지향과 운동의 대중
적 토대를 구축하게 됩니다. 이로써 분단독재체제를 변혁하여 통일된 민주
사회를 건설할 대항세력으로서의 자기를 정립한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 세계정세의 급격한 변화와 한국사회의 민주주의적
이행기라는 과도적 상황속에서 새로운 내적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고 할 것
입니다.
한국사회는 90년대에 들어 언론자유의 확대 등 자유권의 신장, 자유로운
정당활동,지방자치제의 실시 등으로 절차적 민주화에 일정한 진전이 나타나
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국가보안법,노동법 등 반민주악법의 존재는 여전히
노동조합과 민족민주세력에게는 완전한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하게 하고 있
으며, 인구의 상위 10%가 부의 43%를 소유하고 상위 5대재벌의 점유율이
40.9%나 되는 경제적 불평등을 구조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단기적 성과를 앞세운 고도성장과정이 배태한 각종 부패구조와 사
회안전장치의 취약,사회윤리의 부재와 환경사고의 빈발 각종 폐해를 남겨
놓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분단독재와 고도성장체제가 남겨놓은 정치,사회경제적
부조리를 개혁하여 삶의 질이 중시되는 성숙하고 통일된 민족공동체를 지향
하는 사회운동의 이념과 방법,체계를 모색하면서 각 부문의 민중역량을 결
집해야 할 시점에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각계 각층의 통일지향적이고 민주적인 사회운
동을 지역대중의 구체적 요구를 중심으로 지역적 연대를 강화하면서 민중운
동과 시민운동의 특성을 존중하면서 폭넓은 협력관계를 형성하여 이를 실질
적인 우리사회의 민주적 개혁과 통일의 힘으로 성장시켜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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