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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글] 북한의 후계승계과정, 어떻게 볼 것인가

<<북한의 후계승계과정, 어떻게 볼 것인가>>



북한의 체제와 이념에 대한 배경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경로들이 대부분 차단되어 있는 사회적 풍토에서 북한의 후계승계과정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가장 정확한 이해는 아마도 후계승계 이후의 변화와 결과를 보았을 때 이뤄질 수 있지 않을까한다. 과연 현재의 후계구도가 성공적 승계일지 아닐지는 앞으로 북한사회의 발전양상과 그 결과에 따라 입증이 될 것이며 이는 철저히 북한의 몫이 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최근에 선거된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김정은 부위원장1)’의 후계승계가 북한의 체제에 비추어 볼 때 자기노선에 따라 적합하게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분명한 사실관계까지 부정하는 일부 세력들에 의해 북한에 대한 과학적 이해와 향후 정세전망에 장애가 조성되고 심각한 날조가 난무하고 있다.

이 글은 북한 체제의 이해에 따른 후계승계과정을 객관적으로 고찰하고, 후계승계에 대한 각계의 반응들을 평가하고, 후계승계과정이 향후에 미칠 파장도 예측해 보았다. 그리고 후계승계과정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과 관점이 어떠해야 하는지도 제시하였다.

승계, 계승이란 단어에는 ‘이어나가 발전을 지향한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우리는 향후 북한의 발전양상을 보다 정밀하게 진단하고 전망하기 위해서 북한 후계승계과정을 과학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1. 북한 체제의 특징과 수령의 후계승계과정


<북한의 “선군혁명2)” 체제와 ‘수령’>

북한식 사회주의체제를 가장 빨리 이해하는 키워드는 미국에 맞선 ‘반미반제’라는 ‘북한의 혁명’에 있다.

2차 대전 이후부터 90년대 초까지 미소냉전의 과정, 현재 미국의 일극 패권주의와 이에 맞선 중국, 쿠바, 이란, 베네수엘라를 비롯한 제3세계의 행보는 ‘반제’와 ‘자주’라는 대결 축에서 작용하는 역사적 현상이다.

북한 역시 거슬러 올라가 일본 제국주의와의 대결, 그리고 미국 제국주의에 맞선 “선군혁명”까지 현재진행형으로 “반제자주혁명3)”이라는 세기적 대결을 펼치고 있다.

때때로 북한학을 연구하는 일부 학자들은 북한의 현 반제적인 ‘선군혁명체제’를 국가적 ‘전시병영체제’로 규정짓기도 한다. 이는 단편적 해석으로서, 북한이 제국주의에 맞서기 위해 군사를 앞세운 선군혁명체제로서 국가체제를 운영하는 것을 빗댄 것인데 정확한 해명으로는 볼 수가 없다.

문제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이해하는 데서 가장 초보적인 배경지식도 없이 자본주의 국가체제만을 기준으로 삼아 북한체제를 재단하려 드는 것인데 이는 ‘이해’가 아니라 ‘몰이해’에 빠질 가능성이 많다고 할 것이다.

“제국주의가 있는 한 선군정치는 끝나지 않는다4)”는 것이 북한이 주장하는 ‘선군혁명체제’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선군혁명체제’가 직접 겨냥하고 있는 미국과 제국주의에 대한 대결구도를 두고 북한이 미국에 대해 극도의 거부감을 필요이상으로 가진 것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북한의 붕괴와 “급변사태5)”를 추구하는 미국의 군사작전계획 ‘5029’가 연중 내내 대규모 군사훈련으로 전개되는 현실이 북한에 주는 위협을 부정하는 몰상식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 구소련 전투기 한 대가 동해상으로 비행할 때 비상 사이렌을 울리고 전 방송에서 이를 위협이라고 하면서 규탄하던 한국의 과거 상황을 돌아보면, 북한에 핵을 선제사용하겠다는 미국이 핵항공모함까지 동원하여 대북군사훈련을 시도 때도 없이 전개하는 것에 북한이 어느정도 위협을 느낄지, 그 정도를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북한이 국가적 차원에서 “사회주의적 혁명체제”를 개척하는 ‘수령’의 존재를 중시하는 노선을 펼치고 있는데, 이를 북한의 체제로 인정하면서 객관적으로 살펴봐야 ‘수령’과 후계승계과정에 대해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지, ‘수령’ 중심의 사회주의체제를 인정하느냐 못하느냐를 가지고 따진다면 그 이해를 절대로 제대로 할 수 없다.

‘수령’이란 개념은 논리적으로 본다면 ‘혁명체제’의 주체로서 혁명집단을 처음부터 구성하며 당과 군대, 국가까지 전일적인 혁명체제를 형성해온 “탁월한 혁명지도자6)”, 국가영도자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으로서 ‘수령’이 존재할 수 없다. “근로인민대중”과 “피압박 식민조국을 해방”하기 위한 ‘혁명’과 ‘수령’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다. ‘수령’은 혁명체제의 시원과 형성, 결과 모두를 개척하고 달성한 집단의 구심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다.

북한은 수령을 단지 “여러 개인이 모인 집합체에서 선출된 한 명”으로 보지 않는다. 수령이란 존재는 ‘혁명’을 이끌어오고 그 과정에서 ‘혁명’의 동력을 이루는 사회구성원들로부터 ‘수령’으로 추대되는 유기적 과정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부연하면 혁명을 승리로 이끌어온 혁명지도자로서 당과 군대를 창설하고 대중을 혁명에 인입시켜 혁명집단과 체제를 성과적으로 형성시킨 정치지도자가 바로 ‘수령’이라는 것이다.
 

<주체사상에 기초한 수령론과 후계자론>

북한의 혁명체제는 “혁명의 주인은 인민7)”이라는 혁명사상에서 출발하였다. 일제 식민통치와 봉건제를 타파하여 민족의 자주와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혁명의 주체를 “인민(근로인민대중)8)”으로 파악한 것이 바로 북한의 주체사상, 혁명사상의 출발점이자 결론이다.

북한은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고 모든 것을 결정한다 –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9)”에 기초하여 모든 혁명과제를 해명하였다.

주체사상은 “자연과 사회로 구성된 세계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을 지배적이고 결정적10)”으로 보며, 사회역사발전 범주의 주체로서 ‘인민’의 지위와 역할도 마찬가지로 지배적이고 결정적으로 본다.

주체사상은 더 나아가 근로인민대중이 주체로서 “인민이 주인”이 되는 혁명을 승리로 개척하기 위해서는 “자주적 사상의식11)”에 기초하여 형성된 “수령과 당, 대중의 삼위일체이자 전일체12)”인 혁명의 “자주적 주체13)”가 있어야 한다고 밝힌다.

문제는 혁명의 “자주적 주체”가 자연적으로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체사상에 기초해서 해석하면 이치적으로 “자주적 주체”란 바로 걸출한 ‘수령’에 의해 지도되고 형성될 때 비로소 혁명승리를 개척하는 자주적 집단으로서 존립하고 기능할 수 있게 된다.

혁명의 “자주적 주체”를 형성시키기 위해서는 ‘수령’의 지위와 역할이 “절대적이고 결정적14)”이어야 가능한 것으로 된다. “사회역사발전의 자주적 주체15)”는 ‘수령’이 당과 군대를 건설하고 인민을 묶어세워 국가를 만들어온 전 과정의 결과물과 동일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볼 때 북한이 제국주의에 맞선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이라는 선군혁명16)”을 승리로 이끄는데서 최고로 중시하는 것이 주체사상에 기초한 “수령론17)”에 있다는 것을 잘 파악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수령’에 대한 충실성, ‘수령’의 모든 업적을 이어나가는 후계자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후계자론18)” 역시 같은 맥락으로 중시하는 것이다.

“혁명의 장구성”을 볼 때 수령이 개척한 혁명의 대를 이어나가는 것이 “혁명승리의 관건”이 되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19)

수령론과 마찬가지로 후계자론 역시 혁명을 이끌어가는 후계자의 혁명역량을 중시한다.

‘수령’의 역량이란 “혁명의 영도자로서 혁명을 이끌어가는 사상과 영도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하며 만인을 단결시키기 위한 덕성을 갖추어야 함20)”을 의미한다.

‘수령’이 개척한 혁명의 대를 이어나가는 “혁명의 계승자21)”가 바로 후계자다. 그래서 후계자의 역량은 곧 ‘수령’의 역량과 닮아야 하고 계속 이어 발전시켜갈 수 있어야 한다.

후계자의 역량이란 ‘수령’이 개척한 혁명의 업적을 성공적으로 계승하고 발전시킨 업적에서 드러난다. 후계자의 역량은 인민의 평가와 이를 대표하는 ‘수령’의 평가로 확인된다.

후계자 역시 혁명을 이끌어 온 평가에 기초하고 이에 따른 인민의 추대과정이 유기적으로 순환된 결과로서 존재하게 된다.

이렇듯 주체사상에 기초한 “후계자론”은 북한이 자신의 혁명을 끊임없이 개척하기 위한데서 결정적인 노선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승계과정>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64년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 한 후 같은 해 조선노동당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지도원으로 당활동을 펼쳐나갔다.22)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66년 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지도원을 겸한다. 이 과정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당사업에서 명확한 활동방향이 없다고 판단하고 김일성 주석의 사상을 당의 유일한 사상체계로 확립하는 것을 활동방향으로 규정하였다. 이러한 활동은 70년 제5차 당대회에서 주체사상과 혁명적 수령관을 확립하는 중요한 토대로 작용하였다.23)

그리고 67년 당 중앙위원회 제4기 제15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세우는 데서 종파주의와의 사상투쟁을 강력히 전개하여 당사상사업에서 결정적 전환을 이루고 혁명1세대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파격적으로 부상하기에 이른다.24)

이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68년부터 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영화예술과장, 선전선동부 부부장, 선전선동부 문화예술담당 부부장을 거친 후 73년에 선전선동부 부장, 당 중앙위원회 조직비서로 선출되면서 당의 조직사업, 사상사업을 총괄하며 당 사업 전 분야를 장악하게 된다.25)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당사업과 더불어 18세 때인 60년에 “서울근위 제 105류경수땅크사단”에 대한 현지지도를 하며 ‘인민군대’에 대한 사업도 본격화하였다.26)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74년 2월 당 중앙위원회 제5기 제8차 전원회의에서 중앙위원회 정치위원으로 선거되며 후계자로 추대되었고 인민들로부터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 ‘당중앙’이라는 칭호를 듣게 된다.27)

71년 김일성 주석은 “사회주의로동청년동맹 제6차 대회”에서 혁명의 계속성에 대한 연설을 통해 새 세대로 이어지는 혁명전통계승을 중시하는 사회적 기풍 확립을 강조하였다.28)

이러한 흐름은, 80년 제6차 당대회 사업총화보고에서 지적된 70년대의 성과가 혁명전통의 계승발전에 있었다는 것으로 결속되었다.29)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74년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30)”, “유일사상체계, 유일영도체계의 10대원칙31)”을 공식화하였고 이러한 당 사상, 조직 사업의 성과를 기반으로 80년 제6차 당대회에서 당 중앙위원회 위원,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당 중앙위원회 비서, 당 중앙위원회 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거되며 당의 핵심권력기관의 요직에 오르고 118개국 177개 축하사절단 앞에서 후계자로 공식 등장하였다.32)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김정은 부위원장의 후계승계과정>

김정은 군사위 부위원장은 “최고사령관 명령 제0051호”(경향신문2010.9.28)를 통해 김정일 조선인민군 총사령관으로부터 대장 칭호를 받고 2010년 9월 28일 당대표자회에서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거되었다. 이는 후계자로서 공식적인 직위를 부여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김정은 군사위 부위원장은 10월 9일 조선노동당 창건 65돌 중앙보고대회, 10월 10일 열병식에서 주석단에 공개적으로 전면 등장하였다.

10월 10일 조선노동당 창건 65돌 축하행사는 북한의 전면적 취재개방으로 80여개 외신들이 생중계한 사상 유례 없는 정치군사적 퍼레이드였다. 창건 65돌을 맞이한 경축 축포 야회, 10만 대집단체조 아리랑 공연과 평양의 대 축제까지 조선노동당 창건 65돌에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되었다. 또한, 대규모 열병식을 통해 북한의 미사일과 요격미사일종합체까지 미국을 전율케 할 수 있는 무력시위가 펼쳐지는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순간에 김정은 군사위 부위원장은 세계적 정치무대로 전면 등장하였다.

김정은 군사위 부위원장은 10월 10일 직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현지지도 동행이 공개되며 앞으로 더욱 빠르게 본격화될 전면적 등장을 예고하였다. 최근 노동신문은 전례 없는 파격적 조치로 동행 현지지도를 다룬 사진을 신문 지면을 늘려 거의 전체 지면에 싣고 조선중앙TV에서는 145장의 사진을 게재하는 보도까지 했다.(통일뉴스)

아직까지 김정은 군사위 부위원장의 활동에 대한 북한의 자세한 공식 발표 자료는 없다.

현재로서는 최근에 김정은 군사위 부위원장의 전면적인 공개등장에 집중하여 취재된 몇 가지 사실과 이에 근접한 여러 정보자료들이 있는 정도다. 이러한 자료들에 근거하여 추론하면 다음과 같은 활동과정, 후계추대의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김정은 군사위 부위원장의 혁명활동은 오늘의 북한이 가장 중시하는 선군혁명영도에서 집중되고 있다. 김정은 군사위 부위원장은 2002년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 입학하여 포병학을 전공했다고 알려져 있다. 대학원 과정으로 수학했다는 자료가 있으며, 2006년 김일성종합대학 물리학 과정까지 수학하여 미사일과 핵에 관한 능력을 상당히 겸비한 과정이었다는 평가도 있다.(시사저널2010.11.15)

여러 관련 단체들이 입수한 북한의 “위대성 교양자료33)”에 보면 김정은 군사위 부위원장은 포병은 물론 전 군종에 대한 지휘력을 발휘하며 포사격훈련과 실험, 컴퓨터 모의실험 등 군사의 최첨단 분야를 선도했다고 밝혀져 있다.

김정은 군사위 부위원장의 혁명활동은 주되게 “선군혁명 사상과 이론을 당사업, 국가사업, 군사사업에 구현하기 위해 사상이론활동을 정력적으로 전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34)

그리고 최근에 알려진 정보에 의하면 김정은 군사위 부위원장이 자강도에서 군사복무를 했다고 한다.(노컷뉴스2010.11.2) 이 대목은 자강도 희천발전소에서 군인건설자들이 “희천속도35)”라고 하는 21세기 “선군혁명의 인민군인정신36)”을 창조한 과정에 김정은 군사위 부위원장이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음을 추론가능하게 해주는 정보라고 할 수 있다. 작년 희천속도 사건의 배경이 되는 북한의 “150일 전투, 100일 전투37)”도 김정은 군사위 부위원장이 관여했음을 추론할 수 있다.

작년, 북한이 “광명성2호38)”를 발사할 당시 미국은 실제 요격하겠다고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정은 군사위 부위원장은 미국의 요격공격계획을 무력화하기 위한 “반타격부대”를 직접 지휘하며 미국과의 첨예한 군사대결전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한다.39)

이와 마찬가지로 올해를 포함한 최근 년에 주목되고 있는, 서해에서 집중적으로 전개된 북한의 “미사일발사시험과 포사격훈련40)”도 김정은 군사위 부위원장이 직접 지휘했다는 자료가 있다.

최근 북한기자를 인터뷰한 한국의 언론보도(연합뉴스)를 보면 김정은 군사위 부위원장은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천재로 4개 국어를 구사하며 CNC 최첨단화 사업, “강성대국의 불보라”로 불리는 축포야회의 프로그램을 직접 설계하고 지휘했다고 알려져 있다.41)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계승계당시 당사업에 나서면서 조국통일사업-대남사업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를 하며 대대적인 조국통일사업의 개편을 지시했다는 주장이 있다.(곁에서 본 김정일-김창현 저)

이와 유사하게 김정은 군사위 부위원장도 16세 때 논문을 발표하며 조국통일일꾼들의 사업을 비판하면서 2012년까지 김일성 주석의 조국통일 유훈을 관철하여 통일을 반드시 이루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천명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42)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정은 군사위 부위원장의 후계승계과정에 대한 여러 자료들에서 공통되게 발견되는 것은 김일성 주석의 혁명업적을 이어나가기 위한 활동, 특히 조국통일 유훈을 관철하기 위한 활동을 계승자의 가장 중요한 임무로서 중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정은 군사위 부위원장의 승계 과정이 압축적 승계과정인가?>

김근식 교수는 김정은 군사위 부위원장의 승계과정을 “압축적 승계”라고 분석했다.(폴리뉴스2010.10.17)

김정은 군사위 부위원장의 공식직함 선거에서 공개 등장까지가 10여일이라는 굉장히 빠른 시간 안에 전개되었는데 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승계 공개가 10여년의 시간이 걸렸던 것과 비교하면 압축적 승계의 속도였다고 평가할만하다.

김근식 교수는 일반적으로 볼 때 압축적인 만큼 위험도도 그만큼 커진다고 본다. 교수는 후계승계의 배경과 토대가 70년대와 지금이 동일하다고 보는 것 같다. 현재의 조선노동당의 발전 수준이 더욱 높은 단계에 올라선 것이라면 빠르면서도 안정적인 승계와 공개가 가능하다. 당 발전 수준에 맞는 속도에서 승계와 공개가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20대의 후계자가 공개된 지 10여일 만에 후계승계의 결과를 전면화한 사실은 그 어떤 정치정당사에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짧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그 어떤 정치정당사에도 없을 만큼 조선노동당이 상당한 안정을 구축하였을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결과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느냐다. 조선노동당이 44년 만에 치른 ‘역사적’인 당대표자회의 결과는 조선노동당의 당적체계가 높은 수준에서 완비되었음을 명백하게 시사하고 있다. 새로 개정된 조선노동당 규약에 들어간 표현과 최근 노동신문에서 강조하는 표현인 “사상적 순결체, 조직적 전일체, 행동의 통일체43)”라는 최고의 정치적 안정성 위에서 김정은 군사위 부위원장이 후계자로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북한 내부에서는 이번 조선노동당 당대표자회의 결과를 “통일단결에서 일심단결로, 일심단결에서 혼연일체44)”를 이룬 성과의 반영으로 바라보고 있다.

덧붙여, 김정은 군사위 부위원장이 북한의 ‘강성대국 건설’ 전략에서 대단히 결정적인 업적을 이루어 후계승계 및 공개과정에 짧은 시간이 걸렸을 것으로 추론해 볼 수도 있겠는데, 이에 대한 정보나 자료는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2. 북한 후계승계과정에 대한 각계 반응


북한 후계승계과정에 대한 반응은 다양하다.

반응은 크게 환영일색, 후계승계결과를 인정, 격렬하게 반대하는 것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각이한 반응의 종류를 살피기 전에 우리는 반응의 범위와 양이 전 세계적이라는 데서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김정은 군사위 부위원장의 공개와 전면적인 등장은 9월말부터 10월 한 달 내내 외신의 헤드라인으로 전 세계에 타전되었다. 북한의 후계승계과정은 한 마디로 전 세계적 관심사였다.

국제사회가 왜 북한의 후계승계과정에 대해 커다란 관심을 보이는 지 그 이유는 극명하다. 그것은 국제정세에 미치는 북한의 영향력이, 호불호(好不好)를 떠나 매우 지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각이한 반응을 살펴보는 데서 우리는 반응의 내용이 무엇인지, 그리고 각이한 반응 근저에 어떠한 정신상태가 자리하고 있는지 검토하여 앞으로의 파장과 전망을 정확하게 구상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환영일색의 반응>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양형섭 부위원장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청년 대장’ 김정은 동지를 모시게된 것은 영광”이라는 입장을 선명하게 밝혔다.(아시아경제2010.10.8)

최근에는 천도교 교령이며 월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오익제 부위원장이 “민족의 창창한 앞날을 보았습니다.”라는 기고문을 발표하여 “대를 이어가며 절세의 위인을 모심은 우리 민족의 행운”이라는 입장을 밝혔다.(조선일보2010.11.9)

이번 조선노동당 창건 65돌 행사를 취재한 외신들의 북한 주민, 어린아이 인터뷰를 보면 모두가 김정은 군사위 부위원장의 후계승계를 크게 환영하며 기뻐하고 있다. 외신들의 취재가 전면적인 취재개방 하에서 이뤄졌다는 점, 외신기자들도 북한 주민들의 꾸밈없는 생활을 보면서 연출된 것일 수 없다고 판단한 점(SBS 2010.10.16)을 보면 TV와 언론에 비친 북한 주민들의 표정과 반응은 진실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북한 축구대표팀 닥터와의 인터뷰(일간스포츠2010.11.10)를 봐도 북한 인민 전반이 김정은 군사위 부위원장의 후계승계를 높이 추대하고 있음을 분명히 파악할 수 있다.

북한 내부의 환영일색의 반응은 9월 28일 당대표자회와 조선노동당 창건 65돌 행사 시기에만 나타난 것은 아니다.

작년 경 김정은 군사위 부위원장을 지칭하는 “발걸음”이라는 노래가 북한 전역은 물론, 일본의 총련 동포들에게까지 확산된 사실이 이미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중앙일보2010.3.4)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볼 때 이번에 개최된 조선노동당 당대표자회가 있기까지 “조선인민군 내의 당원 대표자회에서 추대운동(조선일보2010.9.27)”이 펼쳐지고 군대를 비롯하여 각계에서 조선노동당 최고지도기관 추대운동이 펼쳐져 온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15억 인구의 중국도 환영일색의 반응으로 눈길을 끈다.

후진타오 주석은 9월 28일 북한의 당대표자회에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를 대표해 북한 노동당 당대표자회의 성공적 개최와 김정일 위원장의 총서기 재추대, 북한 노동당의 새 지도부 선출에 축하를 보낸다.”(경향신문2010.10.3)는 요지의 축전을 북한에 보냈다. 이는 중국이 김정은 군사위 부위원장의 후계자로서의 지위에 확실한 지지표명을 밝힌 것으로 된다.

후진타오 주석은 10월 10일 조선노동당 창건 65돌을 앞두고 보낸 축전에서도 “조선노동당이 부단히 발전하고 양국 우의가 대대로 이어지길 축원한다.”(아시아투데이2010.10.9)라고 밝혔다.

북중관계를 대대로 이어가야 한다는 것은 북한의 후계승계과정에 대한 중국 정부와 공산당의 지지와 환영의 입장이 일관하게 표출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의 차세대 최고지도자로 유력한 시진핑 부주석도 주중 북한대사관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창당 65돌 경축 연회에 참석해 “조선노동당의 새 지도체제와 함께 전통을 계승하고 미래로 향한 양국의 우호 협력관계를 진일보 발전시켜나가자”며 “조선 인민이 경제 발전과 민생 개선, 자주․평화 통일, 대외 관계 발전을 이룰 것이라고 믿는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중앙일보2010.10.11)

이번에 중국은 조선노동당 창건 65돌을 맞이하여 중국 공산당의 공안총책이자 중앙정법위원회 서기인 저우융캉과 왕자루이 대외연락부장을 대표단으로 파견했다. 이들은 모두 차기 최고지도부의 최고위급 서열로 지목되는 인물들이다.

저우융캉 서기는 사흘간의 방북 기간 무려 4차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견을 하였는데 이는 북한과 중국이 북중관계를 고도로 중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로 된다.

저우융캉 서기는 김정은 군사위 부위원장과도 3번의 공식적인 만남을 가졌다. 이는 양국의 새 지도부가 공식적인 외교의 자리에서 만난 것에 비견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취재진의 보도에 의하면 김정은 군사위 부위원장이 자신보다 연배가 높은 저우융캉 서기와 악수를 할 때 허리를 10도 숙여 인사를 한 것이 특이한 일화로 소개되었다.(미국의소리2010.10.16)
 

<사실과 결과를 인정하는 반응>

미국 정부(미디어오늘2010.10.1), 일본 정부(경향신문2010.9.27), 한국 정부(YTN 2010.9.10)는 북한 후계승계과정에 대해서 그 사실을 인정하는 입장을 일관되게 밝히고 있다.

사실에 대한 인정뿐만이 아니라 향후 북한의 후계승계과정에 따른 북한 내부의 안정성을 묻는 데에서도 한, 미, 일 당국은 현재까지 파악되는 사실이 없으나 금명간에 불안정한 위험기가 도래할 것이라고 보는 데서도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연합뉴스2010.11.14)

이러한 한, 미, 일 3국의 반응은 북한의 후계승계과정을 인정하는 동시에 앞으로 북한이 미칠 영향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미, 일 뿐만 아니라 주요 외국 정부들도 대개 비슷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한국의 주요한 주변국 반응과 마찬가지로 제1야당인 민주당의 반응도 북한의 후계승계과정의 사실을 인정하고 향후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연합뉴스2010.10.10) 진보야당인 민주노동당 역시 북한 체제 내부의 변화에 대해서 사실 그대로 지켜보고 남북관계 발전의 견지에서 바라보고 대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프레시안2010.10.8)

문제는 민주노동당의 입장에 대해서 일부 경향신문과 진보신당이 반발하면서 논란이 된 점이다. 논란의 조짐이 있는 형국에서도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는 “당의 입장은 곧 자신의 입장”임을 밝히며 북한 내부에 대해 간섭하지 않는 것이 원칙임을 천명했다.

이에 따라 일부 언론과 정당의 공격은 거세지는 듯 했다. 마치 ‘민주노동당 이정희 죽이기’라는 흐름을 조성시키는 듯 했으나 이는 모두 무위로 그치고 말았다. 그것은 개혁진영 전반에서도 민주노동당 입장을 대체적으로 지지했고, 결정적으로는 민주노동당의 입장이 전체 국민의 압도적 여론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전개한 여론조사에서 82.6% 국민들은 북한의 후계승계과정을 북한의 내부적 일로 인정해야한다는 설문결과(폴리뉴스2010.10.7)가 발표된 것이다.


<격렬한 반대 반응>

격렬한 반대 반응은 주로 탈북자단체, 뉴라이트단체, 반북단체, 소위 조중동 언론, 한나라당, 자유선진당 등과 같은 반북극우성향의 세력에서 나타났다.

이런 세력들이 보여준 반응 결과는 누구나 다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반북적 극우세력들은 애초부터 북한에 대한 인정, 존중이 없고 남북관계 발전의 입장이 없기 때문에 북한의 후계승계과정도 감정적이고 대결적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물론, 찬반의 견해를 가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반북적 극우세력들의 반응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의 반대가 반대를 넘어선 허황된 왜곡으로 한반도 위기와 전쟁을 조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팩트)에도 기초하지 않는 맹목적인 반대는 정세를 악화시키는 후과를 가져오게 되어 있다. 극우세력이 주장하는 내용들은 대부분 북한의 “급변사태”를 기정사실화하며 북한을 붕괴시켜야 한다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들에게는 북한의 사실관계를 살펴보는 것은 불가능하며 오로지 자신들의 반북적 분위기에 동조해야만 대화가 가능할 뿐이다.

이들은 북한의 후계승계과정 후에 북한 내부에서 후계승계에 반대하는 유인물이 나오고 대자보가 붙는다는 보도들을 심심치않게 했는데 그러한 보도를 보면 취재원도 분명치 않고 사실역시 전혀 검증되지 않은 3류 소설류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류의 소설을 쓰는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 직속 민주평통 수석부의장도 마찬가지다.

놀라운 점은 극우단체와 보수정당, 보수언론과 마찬가지로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 진보신당 등 일부 진보적으로 알려진 단체와 언론에서도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반응을 표출하였다는 점이다. 손호철 교수와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은 북한의 후계승계과정에 대한 비판을 하지 않는 것 그 자체가 문제라며 사실관계 파악이전에 강력한 비난이 우선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의 반응은 북한의 후계승계에 대해 일종의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자신들의 사회주의적 노선이 북한 사회주의 체제와 다른 나머지 오로지 자신의 사회주의만 정답이며 나머지는 다 틀렸다는 독선적 판단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일부 반발인사들의 판단을 독선적이라 하는 것은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자신들의 이론을 들면서도 정작 후계승계의 정치적 배경과 사실여부는 중시하지도 않으며 남북관계 영향력까지 전혀 유념치 않으면서 북한의 후계승계과정을 비난하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종북주의’(프레시안2008.1.4)라는 편향적 입장에 심취한 나머지 북한을 바라보는 과학적 시야까지도 종북주의로 매도하는 마녀사냥식 감정배설이 소위 진보인사라고 알려진 일부 인사들에게서 발생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3. 세계정치무대 중심에 전면 등장한 김정은 군사위 부위원장


<강성대국을 향한 높은 자신감을 표출한 북한>

김정은 군사위 부위원장이 후계자로 공식화 된 지 단 10여일 만에 세계정치무대에 거창하게 등장한 현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북한의 후계구도는 국제사회의 초미의 관심사였다. 6자회담 재개 여부를 비롯하여 과연 북한의 체제가 미국이 일관되게 주장한 악의 축, 붕괴의 운명에 빠진 것이 아닌 국제사회 판도의 변화와 발전의 축이 될지 그 여부문제가 바로 관심의 핵이었다.

북한이 2012년에 사회주의강성대국의 대문을 열겠다는 것은 북한의 붕괴를 기대하는 미국의 압박과 제재를 넘어선 성공과 번영을 반드시 이루겠다는 것으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의 과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형국에서 북한이 후계승계를 높은 안정성 위에서 결속하는 것은 강성대국 건설을 두 해 앞둔 올해에 가장 중요한 문제이자 매우 민감한 문제로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예민한 국면에서 북한은 매우 차분하고 격식 있게 9월 28일 김정은 군사위 부위원장을 후계자로 공식화하고 조선노동당 창건 65돌 열병식장에서 후계자를 전면적으로 공개하였다. 전 세계 외신들의 렌즈를 통해 마치 그 외모가 김일성 주석과 너무나 흡사한 김정은 군사위 부위원장의 고화질의 사진이 세계 전역에 전파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래서 전 세계에 TV를 보고 인터넷을 보는 사람들 속에서 20대 약관의 나이의 후계자가 조부의 외모만을 닮은 것이 아니라 그 기질과 구상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무성한 추측까지 나타나고 있다.

2012년까지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겠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구상과 ‘선군혁명영도 업적’을 가장 앞장에서 구현하고 반드시 조국통일의 대문까지 열 것이라는 김정은 군사위 부위원장의 구상은 세계적 정치무대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것이다.


<대북적대정책의 파산>

미국은 그 동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에 불순한 기대를 걸어왔다.

그러나 미국은 작년 8월 4일의 클린턴 방북에 이어 올해 5월과 8월, 두 번에 걸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비공식 중국방문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재함을 파악하고는 논란에 빠졌다. 9월 28일 당대표자회에서 “변함없이 높이 추대”(데일리NK2010.9.28)된 김정일 총비서에 대한 선거결과로 미국은 북한의 급변사태를 가정하는 그 상상력 자체가 완전히 봉쇄당한 처지에 이르게 되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 클린턴은 “정력적 활동”(조선일보2009.9.20)이라 칭하였다. 이명박 대통령도 “강력한 통치”(뉴데일리2010.10.29)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재함을 인정하였다.

오바마의 미국이 펼친 대북적대정책의 골자는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였다. 간단히 말해 ‘북한이 붕괴될 때까지 버텨보자’는 것으로 세계 ‘초강대국’이라는 체면에 맞지 않는 전략인 것이다.

여기에다 천안함 문제를 6자회담 재개 여부의 전제로 하겠다며 큰소리치던 미국과 한국 정부의 입장도 되돌아선지 이미 오래다. 북한과 협상을 천안함과 무관하게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한겨레신문 김지석 논설위원은 이러한 미국의 대북전략을 ‘전략적 무능’이라고 비판하였다.

올 한 해 서해 NLL 문제를 비롯하여 ‘핵억제력에 기초한 보복성전’등 북한의 군사적 경고와 압박에 미국이 보여준 대응은 그저 ‘가만히’있는 것이었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이라는 미국의 핵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는 아직까지도 북한의 영해 아래 인접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고대하던 “급변사태” 대신에 김정은 군사위 부위원장이 “선군혁명의 후계자”로 세계정치무대에 전면 등장하는 장면을 지켜봐야 했다. 미국은 후계승계과정에 대해서 아무런 정보도 없었고 그래서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세계는 미국이 대북전략에서 실패한 절망감을 극복할 뾰족한 수가 과연 있을지 의문부호를 달고 있을 뿐이다.


<확고부동한 북중협력과 동북아지대 정세주도>

세계정세의 중심지인 동북아 정세는 ‘완벽한 조중협력’구도로 소용돌이치고 있다.

세계자본주의권의 경제위기 이후 미국의 그 어떤 압박에도 중국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그러한 중국이 북한을 대하는 태도는 예전과 확연히 다르다.

작년 원자바오 총리의 방북 이후 올해 중국의 지도부가 북한을 대하는 태도는 확실히 북중협력을 지지하고 기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올해 한국전쟁 참전 60돌을 맞이한 중국의 발언은 공세의 수위가 초절정에 이르렀음을 파악할 수 있다. 중국의 차세대 지도자인 시진핑 부주석은 중국의 참전을 ‘침략에 맞선 정의’(연합뉴스2010.10.26)라고 밝혔다. 이는 한국 정부에게 극도로 예민한 문제다. 중국의 차세대 지도자가 한국전쟁은 ‘남침’이라는 입장을 가진 한국을 옆에 두고 외교적 수사 따위는 아예 기대하기도 힘들만큼 전면적인 북한중시발언을 하는 것은 커다란 변화라 할 수 있다.

동북아에서 북한 발 “급변사태”가 아닌 북한 발 <급변발전> 가능성이 전망되는 근거에는 바로 현재의 북중협력구도가 또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조금 통속적으로 표현하자면 세계의 공장이자 G2 강대국인 중국이 과연 어느 쪽으로 줄을 대고 있는지, 이러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동북아를 중심으로 한 북중 열강연대구도가 어떻게 국제사회로 확산되어 나갈지 뚜렷하게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 미국은 동북아정책에서도 두려움의 시선으로 북중협력관계를 우려하기에 이르렀다. 김정은 군사위 부위원장 등장 이후 더욱 거세질 북중협력발전은 미국의 근심을 더욱 크게 만들 것이다.


4. 북한의 후계승계과정을 대하는 올바른 관점


<과학적 인식태도>

후계승계과정에 대한 과학적 인식태도의 결여는 대개가 검증되지도 않은 “건강이상설”, “급변사태설”과 저열한 수준의 정세분석인 “중국이 북한을 잠식한다는 설” 등에서 시작한다.

그러한 ‘설’들은 북한의 붕괴를 기대하는 심리와 여러 가지 확증되지 않은 정보들이 제멋대로 조합하고 작용해서 나온 가설에 불과하다. ‘사실’(팩트)이 결여된 가설을 사실로 전제하고 현상을 분석하니 당연히 정보도, 결론도 정확할 수가 없다.

과학적 인식태도는 사실과 가설을 분별할 수 있게 한다.

작년 8월,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은 방북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직접 면담을 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력적 활동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미국은 보즈워즈 미 대북특사를 방북시키기에 이른다.

초보적인 국제정세 상식만 있어도 어떤 설에 기대를 하거나 막연히 기다리는 식의 우를 범하지 않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후계승계과정을 허위사실과 무근거한 정보에 연결지어 해석하려는 비이성적 태도는 사람을 바보 청맹과니로 만들게 하고 말뿐이다.


<통일의 상대에 대한 협력의 관점과 관심>

북한은 우리와 함께 통일을 이룰 상대다. 통일의 상대에 대한 관심은 통일 지향적이어야 한다. 통일을 지향한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무시와 간섭이 아닌 인정과 존중을 의미한다.

북한의 정치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6.15남북공동선언에서 제시한 연합연방제의 가능성이 열린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그것을 무조건 반대하고 없애려고 한다면 이것은 반목과 대결로 이어질 것이고 심지어 전쟁으로 비화될 수밖에 없다. 애초부터 북한을 두고 통일을 이룰 상대로 보지않고 없애야 할 대상이라는 붕괴론에 입각한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붕괴론을 버리지 않게 되면 한반도의 공존과 번영에 대한 이성적 관점, 상식적 지향은 사라지게 된다.

통일지향적 관점은 남북이 상호 발전을 추구할 수 있는 협력의 분위기를 이끌어내게 된다.

북한이 경제발전을 이루는 데서 한국이 지원하는 문제는 민족적 협력과 남북관계 발전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 될 수 있다. 한반도 전체의 지극히 정상적인 발전과 번영을 이루려면 서로에 대한 지원이 필수적이다.

북한 역시 한국이 자주적이고 민주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적극 지지해야 한다.


우리는 북한이 후계승계과정을 거친 이후 앞으로 어떠한 변화를 이루어 나갈지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격변하는 한반도와 동북아, 세계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의 역량, 수준을 옳게 파악하기 위한 노력을 더욱 많이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아래 출처와 참고문헌>

1)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북한이 선군정치를 핵심으로 보는 상황에서 후계승계의 핵심적 지위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약칭 ‘김정은 군사위 부위원장’으로 공식적 직위를 이 글에서 표현하였다.
2) 논문 : 북한에서 ‘선군’의 등장과 선군사상이 갖는 함의에 관한 연구(진희관) 6p <선군정치의 등장 배경 (1) 대외적 요인>
3) 위 진희관 논문 : ‘선군정치는 제국주의와의 심각한 대결을 이끄는 위력한 정치’ 9p
4) 발제문 : 북한 선군정치의 전망(이대근) Ⅶ. 선군정치는 언제 끝나나 ‘북한을 위협하는 제국주의가 영원히 사라질 때’
5) 이명박 정부 ‘컨틴정시 플랜(비상계획)’ : 북한 ‘급변사태’ 시나리오 작성하고 붕괴를 가정 점령이후의 ‘부흥’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6) 논문 : 북한의 정치사회화 및 수령관에 대한 인식변화 연구(박정란, 강동완) 10p 2. 수령의 지위와 역할
7) 기고 : [아,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2.주체사상과 북한사회(차문석)
8) 논문 : 주체사상의 형성과정과 기능에 대하여(한헌준) ‘주체사상의 원리’
9) 위와 같은 논문 ‘주체사상의 원리’
10) 위와 같은 논문 ‘주체사상의 원리’
11) 논문 : 북한의 역사와 현실(김남수) 3. 북한의 사상
12) 13) 14) 논문 : 북한의 정치사회화 및 수령관에 대한 인식변화 연구(박정란, 강동완) 10p~11p 2. 수령의 지위와 역할
15) 안정식 기자의 북한 포커스 _ 북한정보 _ 정치 : ‘사회역사발전의 자주적 주체인 수령의 영도를 받을 때에만 인민대중은 역사의 자주적 주체가 될 수 있다’
16) 연합뉴스 2004년 12월 20일 노동신문 보도 : 북한 ‘선군정치로 강성대국 건설’강조
17) 논문 : 김정일 시대의 이해를 위하여(김남식) ‘북한의 수령론은 그 내용이 수령일반에 관한 이론이 아니고 당과 혁명위업 수행에서 수령의 지위와 역할에 관한 이론’
18) 논문 : 북한의 후계자론(이교덕) 후계자론의 등장_ 김일성 주석 1971.6.24 사회주의로동청년동맹 제6차 개막연설 ‘혁명의 대를 이어 혁명을 계속’이란 언급 _ 김정일 국방위원장 1971.10.1 당 중앙위원회 청년사업부 및 사로청 중앙위원회 책임자와의 담화 ‘청년들을 대를 이어 혁명을 계속하도록 (중략) 우리 혁명발전의 절실한 요구’
19) 21) 위 논문 _ 가. 계속혁명의 필연성, 나. 계속혁명의 원칙, 다. 계속혁명과 후계자
20) 논문 : 북한의 정치사회화 및 수령관에 대한 인식변화 연구(박정란, 강동완) 10p~11p 2. 수령의 지위와 역할
22) 23) 24) 25) 논문 : 북한의 후계자론(이교덕) : 후계자론의 등장
26) 연합뉴스 보도 2010.1.7 :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60년 김일성 주석을 수행하고 이 부대에 처음 간 이후 모두 27차례 부대를 시찰하였다.
27) 28) 29) 30) 31) 32) 논문 : 김정일연구1 후계자로서의 부상과 권력주조 재편(이종석) _ 2. 성장과 부상과정 _ 3) 권력부상과정 1964년부터
33) 34) 열린북한방송 2010.10.10 : ‘청년대장 김정은동지에 대한 위대성자료’
35) 중앙일보 북한네트 : ‘희천속도’는 “선군천리마를 타고 강성대국으로 비약해 나가는 오늘의 대고조시대를 추동하는 위대한 사회주의 건설속도”
36) 월간말 선군정치 특집 : ‘인민군이 혁명적 군인정신을 발휘하고 그 정신을 사회의 모든 분야에 파급’
37) 한국일보 : 북한 ‘새로운 혁명적 대고조’를 일으킬 목적으로 150일전투를 하고 이어서 100일 전투 진행
38) 위키백과 : 광명성2호는 조선이 2009년 4월 5일에 발사한 은하2호 로켓 탑재한 인공위성
39) 41) 열린북한방송 2010.10.10 : ‘청년대장 김정은동지에 대한 위대성자료’
40) 논문 : 후계문제 ‘암호’를 푸는 독해법(한호석)
42) 자주민보 2010.10.7 ‘김정은 대장의 기질은 과감, 예측불허의 독창적 방법탐구’
43) 통일뉴스 2010.9.29 : 개정된 조선노동당 규약 서문
44) 민중의소리 2010.7.1 : 당대표자회, 영도력 높이는 데서 획기적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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