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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리 꼬마물떼새를 구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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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장영희 선생님.


어제 5월 9일은 선생님이 하늘나라로 떠나신 지 1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종종 다니셨던 서강대 성당으로 발길을 향했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통해서 깊은 사모의 마음을 가진 친구와 함께 가서 미사를 드리고 기도를 했습니다. 마침 더할 나위 없이 화창한 교정에는 라일락들이 한껏 향기를 퍼뜨리고 있었고 철쭉과 모란과 여러 봄꽃들이 처연하도록 아름다웠습니다.


미사를 끝내며 부르는 성가에는 ‘라일락 향기 퍼지는 오월에 하늘엄마께’ 그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신자가 아닌 우리들은 하늘엄마가 누구일까 짐작만 해보다가, 마리아라는 세례명을 가지셨던 선생님을 생각하며, 언니이자 어머니 같던 선생님 생각에 더욱 눈물이 났습니다.


선생님의 1주기 즈음 찾은 남한강에서


아침에 우리 어머니가 TV를 보시더니, 방송에 장영희 선생님 1주기 소식이 나왔다고 전합니다. 참 고우신 분이 돌아가셨다고 혀를 차시면서 제자들이 낭송해 드린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우리 늙으신 어머니도 따라 읊어보십니다.


헐떡이는 작은 울새 한 마리 도와
둥지에 올려줄 수 있다면
내 삶은 헛되지 않으리 


Or help one fainting Robin
Unto his Nest again
I shall not live in vain (에밀리 디킨슨 시 일부)


울새는 딱새과에 속하는 아주 작은 새입니다. 아이의 작은 손으로도 충분히 둥지에 올려줄 수 있는 그런 조그만 새지요. 어쩌다가 둥지에서 떨어져서 기운을 잃고 죽어가는 작은 새 한 마리 구할 수 있다면, 우리 삶은 헛되지 않다고 시인은 노래했습니다. 시의 앞부분에서는 ‘누군가의 애타는 가슴을 달래고, 한 생명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면 내 삶이 헛되지 않으리’라는 시구도 있습니다.



▲ 장영희 교수님의 1주기 즈음 남한강을 찾은 조은미 회원


지난 토요일 어버이날에는 다시 남한강을 찾았습니다. 선생님이 아껴주시던 우리 아이는 저에게 건성으로 등 몇 번 두드려주고 안마를 마친 후, 종이 카네이션을 건네주고 친구들과 놀러 나갔습니다. 저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환경운동연합 회원들과 아름다운 여강길을 다시 걸었습니다.


강천보 공사현장에는 강물이 막혀 있고, 불도저들이 밤낮 없이 일한 덕분인지 거대한 공사장이 강바닥에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곳이 원래 강이었을까 싶었습니다. 제가 4대강 답사길에 초대한 것을 모르고 그냥 강길이나 같이 걷자는 말에 따라오신 어머니는, 파헤쳐지고 짓뭉개진 공사장에 “마음이 답답하구나” 한마디 하십니다.


한편 아직 남아있는 여강길을 걸으실 때는 “흙길을 밟으니 참 좋구나” 연신 말하고 또 말합니다. 구비구비 흐르는 강을 따라, 때로는 물살이 급해지는 여울을 보면서, 간혹 꼬마물떼새의 삐욱삐욱하는 고운 소리를 들으며 푸른 길을 걸었습니다. 나루터의 늙은 느티나무도 우리를 반겨주었고 커다란 그늘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물살이 구비를 도는 여강에는 자갈로 이루어진 작은 섬이 보입니다. 신륵사에서 지내고 있는 활동가는 자갈밭에서 어여쁜 물떼새 알을 보았다고, 어쩌면 알들이 자갈과 똑같은 색깔이어서 구분해내기 어려웠다고 신기해했습니다. 흰목물떼새는 역시 작은 새인데, 강가의 자갈밭에 동글동글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운다고 하네요.


미국의 울새 한마리, 우리에겐 여강의 꼬마물떼새


우리들에게 문학적 감수성을 일깨워주신 선생님.


선생님께서 남겨주신 사랑과 문학의 씨앗을 어떻게 잘 틔울 것인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선생님처럼 아름다운 글로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싶으나, 멋진 글을 쓰기에도 뭔가 대단한 성공을 하기에도 아직 부족하기만 한 제자입니다. 그러다가 오늘 아침 선생님이 즐겨 좋아하신 디킨슨의 시를 다시 읽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울새 한마리는 우리에겐 여강의 꼬마물떼새임을 깨닫습니다.



작은 생명, 누군가의 아파하는 가슴, 고통받는 이웃들…
절대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큰 것을 이루려고 욕심내지도 않겠습니다.
딱 디킨슨의 시에 나온 만큼만, 새 한마리라도 구하겠습니다.
그러면 이미 제 삶이 헛되지 않은 거라고 시인도 선생님도 말씀해주셨으니까요.




2010년 5월 10일에 선생님을 그리워하며 은미가 드립니다.


* 이 글은 5월 10일자 오마이뉴스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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