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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과 절망의 끝에는 새로운 희망이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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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라도 사제 구요비 신부


프랑스 리용의 외곽지대인 라 기요띠에르에는, 불미스러운 사건이 끊이지 않는 카바레, 프라도가 있었다. 1860년 생 앙드레 성당의 본당 신부였던 앙투완 슈브리에 신부는 기도의 응답으로 이 골칫덩이 카바레를 매입하게 된다.
성북동 주택가에 자리 잡은 프라도회 한국지부. 11월 회원 인터뷰의 주인공인 구요비 신부로부터 프라도가 사실은 카바레 이름이라는 말을 듣고 필자는 웃음을 터뜨렸다.   
“슈브리에 신부님은 하느님께 프라도를 주시면, 그곳을 거쳐 가는 모든 영혼을 봉헌하겠노라고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프라도의 원뜻은 스페인어로 양이 먹는 풀을 뜻한다고 한다. 어찌 보면, 150년 전의 카바레 프라도는 이름에 걸 맞는 역할을 찾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 후로 프라도는, 빈민 아동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갱생에 필요한 교육을 제공하는 학교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곳에서 빈민들과 함께 생활하고 교육하던 신부들의 공동체가 바로 프라도 사제회다.

“1981년 사제 서품을 받고, 직접 신도들과 마주하게 되면서 사목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지요. 때마침, 고 김수환 추기경님이 프라도회를 추천해주셨어요. 사목에 관해 더 많이 배워 오는 것은 어떻겠느냐고요. 그렇게 해서 노동사목을 배우러 프랑스 리옹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절망과 좌절은 엄밀히 ‘죄’입니다.

1988년 프랑스에서 돌아온 구요비 신부는 구로성당의 주임신부직을 맡게 되었다고 한다. 구로성당은 공단과 가까운데다,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시기여서, 노동자를 비롯하여 소외된 계층의 신도들이 많이 찾았다고한다. 공단에 만연해있던 오염실태와 공해문제를 접하게 되다보니, 자연 환경운동에도 참여하게 되었다는 구요비 신부의 말이다.

“하루는 농성장에 있는 노동자들을 방문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내가 좀 겁이 많은 사람이라 (웃음) 좀 걱정이 되었습니다만, 신부는 모두에게 먹히는 존재, 신도님들을 위해서는 어디든 가야지요. 사실은 내가 그들을 위해서 뭘 해줄 수 있을까, 그게 더 큰 걱정이었지요. 같이 싸워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도움을 줘야 할지 몰랐으니까요. 그런데 뜻밖에도 농성장에 있는 분들이 원한 건 고백성사였습니다. 농성장에 있느라, 성당은 둘째 치고 기도드리기도 마땅하지 않다면서 말이지요. 그래서 나중에는 카톨릭 신도들 뿐 만아니라, 개신교 신자님의 고해성사까지도 받았지요.”

원래, 필자가 원한 얘기는 농성장에서 이루어지는 드라마틱한 기득권의 탄압과 저항(?)이었는데, 이외로 구요비 신부의 이야기는 순하고 착하기만 하다.
“세상에는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닌데, 신부님은 좋은 이야기만 하시네요. 안 좋은 쪽을 아예 인정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보시면서도 덮어두시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진정한 선과 악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선과 악, 모두 가능성만을 가진 것들이죠. 완벽한 선이 존재하기 어려운 것처럼, 악이라 불리는 것 안에도 분명히 선은 존재합니다. 저는 그 선을 믿는 것이지요. 살면서 사람들은 수많은 실망과 좌절을 맞보게 됩니다만, 사실 완벽한 좌절과 절망은 없습니다. 좌절과 절망 끝에는 새로운 희망이 존재하니까요. 적어도 우리 종교에서, 좌절과 절망을 인정하는 것은 주님의 축복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 이름만큼이나 특이한 이름을 가진 구요비 신부다. 이름의 뜻을 물어보니, 구약성서에 나오는 이름, 욥을 한국식으로 풀어쓴 이름이란다. 욥은 하느님의 절망적인 시험을 이겨내고 은총을 받은 주인공이다.
‘네 시작은 미미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말이 나오는 욥기의 바로 그 욥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왕성한 활동으로 주목 받고 있는 구요비 신부는 검소한 생활과 소탈한 성격으로 인터뷰 내내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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