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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에서 침묵하는 크레인 앞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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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30일 남부터미널에서 24:00시에 거제도로 출발하는 심야 버스에 올라탔다. 나를 포함한 학생 3명과 환경연합에서 나오신 한분 총 4명이었다. 환경연합에서 나오신 분의 손에는 카메라가 쥐어져 있었다. 시위현장을 담기 위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잠깐 잠이 들었는가 싶었는데, 예정보다 빨리 새벽 03: 40분에 거제도에 도착했다. 선발대가 도착해있는 숙소로 가서 부족한 잠을 청했다.
다음날 오전 8시 숙소에서 아침을 먹으면서 비장한 작전회의 시간을 가졌다. 우리를 인솔해 주시는 시민환경연구소 최예용 실장님이 이번 작전의 총 책임자 역할을 맡았다. 생각 보다 치밀한 계획들이 짜여졌고, 좀 더 긴장감이 흘렀다. 우리들의 두려움도 커졌다. 이번 시위는 크게 두 팀으로 나뉘어져 이루어졌다. 해상에서 보트를 타고 크레인으로 접근하여 시위를 하는 팀과, 육상에서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간단한 시위도 하고 해상팀의 시위가 크레인에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 기자들을 그곳으로 안내하는 육상팀이다. 이번 시위의 근본적인 목표를 달성할 팀은 해상 팀이었지만 시선을 분산시켜주고 언론과의 기밀한 연락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주는 육상팀의 역할 또한 매우 중요했다. 육상팀은 거제 환경연합에서 나오신 분들과 여성위원회 회원들이 수고를 해주셨다. 처음으로 해보는 시위이며, 첫 해상 활동, 보트 탑승, 모든 것이 처음이라는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법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여건은 우리의 행동을 소심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 기름유출 사건에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삼성 측에 경종을 울리기 위한 행동이란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며 우리의 계획들을 되짚어보았다.


숙소 앞 바다에 고무 보트 2대와 콤비 보트를 띄웠다. 보트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 보다 육중한 체중을 자랑했기에 시작부터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방제복을 입고 마스크를 쓰고 플래카드와 깃발을 싣고 보트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는 이번 사건의 원인이 되었던 삼성 2호 크레인이 있는 해안을 향해서 출발했다.



 
ⓒ 최예용


 


육안으로 크레인을 확인할 수 있는 정도의 거리까지 접근했을 때 크레인은 해안으로 이동 중이었다. 우리의 시위가 있을 것을 예상해서인지 아니면 예정된 이동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시위를 준비하는 우리의 마음은 점점 불안해져만 갔다. 예상보다 빨리 시위를 시작하기 위해 육지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팀과의 연락이 긴박하게 이어졌고, 육지에서의 시간 지연으로 한동안 바다 한가운데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그 와중에도 크레인은 계속 이동하여 점점 시야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팀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기 시작해서 과격한 방법으로 보트로 직접 크레인의 진행을 막자는 의견이 나왔고, 좀더 기다려 보자는 의견도 나왔다. 결국에는 계획에 약간의 수정이 필요했다. 삼성 2호 대신 삼성 1호 크레인으로 이동을 해서 시위를 벌이기로 하였으며 육상팀과 그곳에서 합류하기로 하기로 하고 10여분 정도 보트를 타고 이동하였다.



육상팀과 언론인들이 가득 탄 어선 한 척이 그곳에 이미 도착해 있었는데 해상 경찰의 배 역시 그곳에 있었다. 처음에는 우리의 시위 자체를 저지하기 위해서 있는 것인 줄 알았는데 만약에 발생하게 될 물리적 충돌을 대비하기 위해서 출동한 것이었다. 크레인 가까이 보트를 대고 혹시라도 삼성 직원들이 알아채고 저지할까 싶어 신속하게 크레인 위로 올라갔다. ‘삼성규탄, 완전 복구 무한책임’ 구호를 외치며 플랜카드를 언론사 카메라를 향해 펼쳤다. 크레인 내에서 작업 중이던 삼성중공업 직원들이 시위를 말리고 강제로 플랜카드를 빼앗으려 하였다. 한 직원은 식칼을 가져와 플랜카드를 찢어버리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참가자 한명이 뒤로 나자빠졌고 양측의 대치상황이 잠시 발생하기도 했다. 한편으로 화장실이 어디냐고 묻는 시위대 일원에게 친절하게 화장실의 위치를 알려주는 재미난 상황이 연출 되기도 했다. 그들은 삼성의 직원일 뿐이지 우리가 규탄하고자 하는 삼성은 아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자리에 있었어야 할 사람들은 그들이 아니었기에 그들과 우리가 대치하는 상황이 참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 자리에는 없었던 그들이 우리의 이번 시위에 조금이라도 책임감은 느끼고 있을지, 사건이 발생 후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형식적인 공식 사과문으로 무마해 보려는 그런 생각이나 또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 최예용


ⓒ 최예용



보트에 몇 명의 기자분과 카메라맨만 태우고 우리는 다시 삼성 2호로 이동했다. 1호에서 우리의 뜻을 알렸다고는 하였지만, 이번 사건의 주범이라는 상징성을 갖는 2호에서의 시위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2호에서의 시위는 어떠한 제지도 받지 않았으며, 이곳 저곳을 찾아 다녀서 사고 당시의 충돌 지점을 찾아 낼 수 있었다. 그곳은 이미 수리되어 있었고 깨끗하게 페인트로 칠해 놓았다. 태안 해안이 이처럼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는 것이 쉽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많은 자원 봉사자들이 수고해 주고 있지만 우리가 가보았던 태안의 해안은 아직도 흉측하게 검게 덮여 있었고, 남해안 바다의 크레인은 이번 사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듯이 너무나도 고요하게 떠 있었다.


 




ⓒ 최예용
 
시위를 마취고 서울에 도착하여 인터넷으로 우리의 시위와 관련된 기사를 검색해 보았다. 조선일보와 기타 몇몇 인터넷 신문에 올라와 있는 기사를 발견할 수 있었지만 네티즌들의 리플은 그 후로도 달리지 않았다. 벌써 많은 이들의 머리 속에서 이번 사건은 잊혀져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방제 봉사활동도 중요하지만 우리들이 이번 사건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때에 삼성의 완전 보상을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순간에도 쉬쉬하면 이번 사건을 무마하려는 삼성과, 너무나 일찍 관심을 끊으려는 이들에게 우리의 이번 시위를 알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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