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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속에 가려진 아프리카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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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다닌 직장이 벨기에 회사인 유니온 미니에르(Union Miniere; 종합광산회사를 뜻하겠죠) 그룹이었습니다. 오랜 전통의 이 회사는 광산과 제련소 등을 가진 다국적기업이었지요. 코발트나 아연, 구리 같은 원료들을 팔며 런던 금속거래소(London Metal Exchange; 영국 런던에 있는 세계 비철금속을 거래하는 중심 시장) 시세를 확인하고 견적을 내던 기억이 나는군요. 벨기에 같은 작은 나라가 광물 산업에 크게 관여하고 있는게 신기했었는데 설명을 들으니 아프리카의 콩고와 같이 식민지로 삼았던 나라들에서 원료를 싸게 수급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 직장은 프랑스에 본부를 둔 ‘국경없는 의사회’였습니다. 아프리카에서의 구호활동으로 명성을 얻은 의료구호단체지요. 특히 95년에 르완다 학살 현장에서 구호활동을 펼치고 국제사회가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르완다의 비극을 알리는 데 공헌하여 나중에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했지요. 르완다에서 후투족과 투치족이 인종 청소 내전을 벌였는데 이 분쟁의 원인 제공자도 역시 벨기에라고 합니다.

출처: http://blooddiamondmovie.warnerbr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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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나믹한 액션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Blood Diamond)’를 보고 나니 이렇게 전에 다니던 직장들이 줄줄이 떠오르네요. 영화의 초반부에 반군들이 마을을 습격하여 사람들을 학살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반군들은 선량한 주민들을 낫칼로 쳐죽이고 또 남자들의 손을 자릅니다. (풀베는 칼로 목을 치는 것은 르완다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손을 자르는 잔혹성은 역시 벨기에 사람들이 콩고의 노예들에게 하던 것을 아프리카 사람들이 배웠다는군요.

고디바 초콜릿과 레페 맥주를 좋아하는 제가 이렇게 쓰다보니 마치 벨기에만 나쁜 나라인 것 같군요. 영화에서 마침 벨기에가 언급되어서 그럴 뿐 아프리카 비극의 원인제공자는 프랑스, 영국, 미국 등 대부분의 제국주의 열강들과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이런 선진국들을 주축으로 모여서 유엔(UN)을 만들었고 또 이런 분쟁의 현장에 개입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영화에서도 유니세프(UNICEF; 유엔아동기금)와 세계식량계획(World Food Program; WFP)이 자주 나오는데 난민들이 발생하였을 때 난민에 대한 지원을 하긴 하지만 정작 끝도 없는 이런 분쟁을 끝내거나 막아주지는 못하지요.

구호단체들이 겪는 딜레마도 그런 것입니다. 비극을 알리면 아프리카 바깥의 세상의 시민들은 기부를 하기도 하여 이들의 구호를 돕습니다. 그러나 구호단체들이 들어가 있다는 것만으로 선진국들이 어느 정도 면죄부를 받는 것은 아닐까? 병주고 약준다고 분쟁의 원인 제공자이기도 하면서 도와준다고 인도주의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출처: http://blooddiamondmovie.warnerbr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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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이 풍부한 아프리카는 갖고 있는 자원만큼 비극의 골도 깊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다이아몬드 자원이 그 원인이고 이것 뿐 아니라 가스, 석유, 다른 광물 등 자원이 풍부한 나라들에는 하이에나처럼 열강들이 달려들고 또 채굴권이나 커미션을 요구하며 같이 사업을 하는 군부나 반군 등이 있습니다. ‘만약에 이 땅에 석유가 나면 난리가 날거야’ 영화 속에서 시에라리온의 주민도 그런 말을 하죠.

자원이 발견되면 주민들의 삶터는 파괴되고 여자들은 강간을 당하고 남자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몸이 건장하다면 강제노역에 동원이 되고 아이들은 소년병으로 징집됩니다. 아프리카의 소년병은 현재 20만 정도라고 하는데요, 총의 무게가 버거운 막 초등학교를 들어갈만한 아이들부터 10대 소년들까지 소년병으로 끌려갑니다. 시에라리온에서 라이베리아에서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또 수단에서 소년병들은 학살을 연습하며 증오를 키우고 술이나 마약으로 두려움을 없앱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지요.

영화에서 소년병은 무능한 아버지에 대한 증오를 배우고 조국을 위한 전사로 세뇌를 당하여 나중에는 아버지에게 총을 겨누기도 합니다. 이곳에서는 죽음과 강간, 폭력과 수탈이 일상적이지요. 그러나 너무 얼굴을 찡그리진 마세요. 그들은 그 안에서도 웃고 사랑하고 꿈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잔뜩 동정심을 가지고 영양실조로 배가 부풀어오른 아이의 사진을 보고 기부를 결심하는 당신. 그 사람들도 우리랑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출처: http://blooddiamondmovie.warnerbr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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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주인공은 짐바브웨에서 태어난 백인입니다. 그는 얼굴은 백인인데 여느 아프리카인들과 비슷한 상처를 가졌군요. 즉 어머니는 강간을 당하고 아버지는 죽임을 당하고. 그가 자기를 희생하고 시에라리온의 주민 가족을 구하는 것이 이 영화의 얼개입니다. 그리고 또한 블러드 다이아몬드(분쟁 지역에서 생산된 다이아몬드)의 유통과정을 폭로하도록 하지요.

“이 모든 것이 낭만적인 결혼을 꿈꾸는 미국 여자들 때문이야.” 시니컬하게 그가 던지는 말입니다. 다이아몬드는 끝없이 고가에 팔리고 그 돈들은 주민들을 착취하는 반군의 자금이 된다. 뭐 그런 이야기입니다. 주인공(디카프리오)은 한 가족을 구하고 사랑하는 여자를 통하여 세계에 이런 문제를 알리게 하고 문제를 다 해결하고 나서야 장렬하게 죽는군요. (주인공이 살아서 여자들 다시 만나서 키스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너무 007 같아지면 안되니까.)

출처: http://blooddiamondmovie.warnerbr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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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엔딩 타이틀에는 킴벌리 프로세스(Kimberley Process; 아프리카 내전지역 반군세력의 무기조달 자금원인 다이아몬드 원석 거래를 차단하기 위한 국제적 장치)라는 것이 채택이 되어 분쟁지 다이아몬드는 거래하지 않겠다고 40여개 정부가 합의하였다는 설명이 나옵니다. 그러나 원산지 증명은 제대로 될 수 있는지 또 보석상들이 이런 것들을 따져볼지 회의적입니다.

재미있게 영화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했는데 아침의 안개 탓인지 글이 무겁군요. 사실 아프리카 얘기가 무겁기도 하잖아요. 끝없는 아프리카의 비극에 대해 말을 시작하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나눌 수 있습니다. 스타벅스 커피의 원두가 어디서 오는지, 얼마나 싼지 알고 싶지 않듯이 그 사람들의 끝도 없는 비극을 알고 싶지 않다는 거부, 원래 열등한 사람들이어서 그렇지 않은가 하는 선입견, 가엾거나 끔찍하다는 연민. 뭐 그런 식이죠.

아침 출근길에 나이지리아에서 현대중공업 직원들이 피습당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며칠 전엔 대우건설의 근로자들이 납치를 당하기도 했죠. 한국에서 아파트나 고층빌딩, 고속도로를 초고속으로 열심히 짓는 대한민국의 건설사들은 외국에서도 대형 프로젝트에 열심히 참여를 하고 있죠. 그러다보니 이렇게 현지에서 공격을 받기도 합니다. 기업의 논리는 이윤입니다. 기업이 이윤 추구를 하는 것을 뭐랄 것은 아니지만 그 이윤이 윤리적으로는 위배되지 않는가라는 고민도 이제 선진국으로 다가가는 우리나라도 반드시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한 예로 대우인터내셔널이 버마에서 대규모로 가스가 매장되어 있는 슈에 가스 지구에서 사업권을 따고 진행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사업의 파트너가 군부 세력이고, 이 가스 채굴의 과정에서 주민들에 대한 강제 노동을 비롯한 인권 침해가 횡횡한다는 거지요. 군부는 이 돈으로 무기를 사고 군부 독재를 강화하는 데 사용합니다.

올해는 돼지해여서 그런지 유난히 ‘돈 많이 버세요, 부자되세요’ 덕담들이 넘치는군요. 여기저기 황금돼지가 웃으며 번쩍거리네요. 아직은 우리가 석유나 전기 같은 자원들을 그런대로 싸고 풍족하게 쓰며, 우리의 기업들은 외국에서 저돌적으로 국위선양을 하며 돈을 벌어오고 물질적 풍요가 미덕이 되어가는 대한민국에서, 어느 날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를 보고 그 리얼하고 짜릿한 액션에 감동받는 것은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요? 당신은 시에라리온의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미소년같던 디카프리오가 남성적인 액션스타로 변신한 것이 멋있다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다이아몬드 반지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출처: http://blooddiamondmovie.warnerbr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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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가 가속화되는 이 세상에서 우리의 하루하루 안온한 일상은 가난한 시에라리온 소년의 삶에 깊이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당신도 느끼셨는지요?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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