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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어새 만나러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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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로 가는 길

6월 3일 토요일 아침 8시 반, 환경운동연합 앞 사직공원에는 버스가 한 대 서 있었습니다. 조그만 봇짐을 매고 날아가는 저어새가 예쁘게 그려진 프랑카드가 걸려 있습니다. 따오기, 저어새, 두루미와 함께 사는 세상, 저어새 생태기행. 원래 아침잠이 많은 터라 겨우 겨우 시간을 맞춰서 버스에 오르니, 이미 많은 분들이 이미 버스에 타고 있습니다. 큰 카메라를 들고 저어새 티셔츠를 입고 버스에 오르신 분은 동료분들과 중국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제 뒤로 버스에 오르시는 분들은 영어로 인사를 하십니다. 말투를 들어보니 일본에서 오셨나 봅니다. 버스 안에는 대만, 홍콩, 일본 이렇게 동아시아 전체에서 오신 분들이 계셨습니다.

또 버스를 더 둘러 보니, 초등학생 꼬마들도 보입니다. 제가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환경법률센터 간사님은 귀여운 아들 한빈이를 데리고 오셨고, 변호사님은 두살배기 건우와 함께 온 가족이 나들이에 나섰습니다. 버스가 꽉 찼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오신 분들로, 모든 연령대의 분들로 말입니다.

이제 버스는 출발했고 습지해양팀의 김경원 팀장님께서 창밖으로 보이는 한강하구에 대해서 설명해 주십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낙동강 하구, 을숙도 근처였습니다. ‘국민학교’ 다닐 적에 을숙도로 소풍도 많이 다녔습니다. 그 때에도 을숙도가 철새도래지로 유명하다는 건 알았지만, 강 하구를 보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는 배운 적이 없었습니다. 부산을 떠나 서울에서 살게 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강 하구 습지가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개발 시대에 학교를 다닌 이들 모두가 저와 마찬가지일 거란 생각이 듭니다. 함께 여행 온 어린 친구들을 보면서, 이 친구들은 내가 어릴 적 배우지 못했던 것들을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 다행입니다.


저어새의 고향, 유도

처음으로 저어새를 보러 가는 곳은 저어새의 둥지가 있는 곳, 유도 입니다. 군사시설, 즉 유도 소대의 부대 내로 들어 가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해병대 군인들이 근엄한 표정으로 부대를 지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저희들을 들여보내 주십니다. 인천에서 합류한 다른 버스에서 함께 내리니 사람들이 100명이 넘어 보입니다. 가족끼리 손을 잡고 함께 유도가 보이는 곳까지 걸어 갑니다. 화창한 날씨에 덕분인지 소풍 온 것 마냥 즐겁습니다. 지금 서 있는 곳이 북한과 맞닿은 휴전선 경계라는 사실은 까맣게 잊은 채로 말입니다.

섬이 바라보이는 초소에 서서 유도를 바라봅니다. 사진에서만 봤던 저어새를 눈으로는 처음 확인하는 순간입니다. 사진으로 보던 것처럼 저어새는 좀 어리숙하게 생겼습니다. 그 넓적한 부리 때문인지 바보같이 착해 보입니다. ‘네가 그렇게 바보같이 착하니까 약아빠진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나 보구나.’

하지만 한편으로 하얀 깃털 위의 노란 깃털의 장식을 보고 있으면 저어새가 참 아름답다는 생각도 듭니다. 유도는 동아시아 전역에 존재하는 검은머리 저어새 대부분의 고향이라고 합니다. 유도의 저어새들은 자신의 새끼를 낳아 기르기 위해 다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와 있는 셈입니다. 저어새들이 유도에 앉아 있는 풍경은 고향으로 돌아왔을 온 푸근함이 한껏 묻어 나는, 너무나도 평화로운 모습이었습니다.

왜 저어새가 이렇게 멸종위기에 처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어새가 멸종위기에 처하게 큰 이유 중 하나는 6.25 전쟁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저어새가 주로 둥지를 틀었던 곳은 바로 38선 주변, 6.25 전쟁의 최대 격전지였다고 합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저어새는 자신들의 집을 잃었고, 그때부터 개체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전쟁이 사람들의 둥지를 빼앗고,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저어새 역시 자신의 둥지를 빼앗기고, 자신의 생명을 빼앗겼던 것입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에는 새들도 살 수 없었던 것이지요. 유도에서 저어새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유도가 비무장지대라서 6.25 전쟁 이후로 사람의 손은 한 번도 닿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들이 살 수 없는 곳에서는 사람도 살 수 없다는 것 말입니다.

다만 안타까웠던 건 지난 봄에 내린 폭우 때문에 번식에 성공한 저어새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둥지가 폭우에 휩쓸려 내려간 것 같다고 합니다. 그래도 다시 번식을 시도하는 중이라고 하니, 이번에는 꼭 번식에 성공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강화 동편 논

유도 소대를 떠나서 함께 점심을 먹고 저어새의 채식지 강화 동편 논으로 출발했습니다. 창밖으로 논이 펼쳐집니다. 김경원 팀장님이 마이크를 잡으시고는 “논에서 저어새를 가장 먼저 발견하시는 분에게는 큰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라고 합니다. 모두들 논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선물이 탐이 나서가 아니라 저어새가 밥 먹는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 강화 동편의 한 논에서 저어새들이 백로와 무리지어 먹이를 구하고 있다. ⓒ 박종학
▲ 강화 동편의 한 논에서 저어새들이 백로와 무리지어 먹이를 구하고 있다. ⓒ 박종학

버스가 강화도의 국도를 달리는 중에 갑자기 김경원 팀장님이 “저어기, 저어새 아냐?” 하시더니 쌍안경으로 확인을 합니다. “저어새 맞네. 차 세워주세요.” 멀리 떨어진 곳에 맨 눈으로 보면 새끼 손톱보다도 작게 보이는 하얀 새 한 마리가 있기는 했습니다만, 그게 저어새라는 걸 육안으로 알아 보는 건 미션 임파서블 같아 보였습니다.

선영 간사님께 여쭤 봤습니다. “도대체 팀장님은 어떻게 그 거리에서 저어새라는 걸 알 수 있어요? 부리가 보이는 것도 아니었는데.” 간사님의 대답이 정말 멋졌습니다. “병필씨는 애인이 저 정도 거리에 있다면 알아보지 않았겠어요? 멀리 떨어져 있다고 못 알아 보면 그건 애인이 아니지요.”

모두들 버스에서 내려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저어새 한마리가 채식을 하는 모습을 바라 봤습니다. 한참동안 조용히 저어새를 바라봤습니다. 저는 저어새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바라봤습니다. 모두들 저어새를 사랑하는 분들이구나. 저어새를 애인 삼고 계신분들이구나. 이 분들 덕분에 저어새가 아직도 살아있는 것이구나. 저어새는 저어새를 사랑하는 분들의 노력 덕분에 10년동안 그 수가 3배 이상 늘어났다고 합니다. 바로 지금 함께 저어새를 보고 있는 분들 덕분이라는 생각에 가슴에 가슴이 짠 해집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자리를 옮기는 중 이번에는 저어새 4마리가 백로 2마리와 함께 채식을 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번에는 도로에서 무척 가까운 논이었기 때문에 정말 가까이에서 저어새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어새의 이름 대로 논을 휘이 휘이 저어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분오리돈대에 올라 강화 남단 갯벌을 보다

▲ 지난 6월 3일 저어새 생태기행 참여자들은 멀리 저어새의 서식지
▲ 지난 6월 3일 저어새 생태기행 참여자들은 멀리 저어새의 서식지 ‘각시바위’가 바라보이는 분오리돈대를 찾았다. ⓒ조한혜진

한참동안 저어새가 밥 먹는 모습을 보고 나서, 생태기행의 마지막 장소, 분오리돈대로 향했습니다. 그 곳은 세계 4대 갯벌 중 하나인 강화 남단 갯벌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멋진 곳입니다. 분오리돈대로 올라가는 길에, 생태기행 오신 모든 분들과 함께 저어새 작은 사진전 ‘저어새야 놀자’ 개막식을 가졌습니다. 동아시아 각국에서 오신 분들의 말씀을 듣고, 초등학생 친구들의 축하 공연도 보았습니다. 이런 노력들을 통해서 저어새를 사랑하는 분들이 더 늘고, 그럼으로써 저어새 보호 노력이 더욱 힘을 가지게 되게 될 것입니다.

사실 저어새를 보호해야 하는 것은 저 예쁜 저어새라는 새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도에서 보았던 저어새는 재갈매기 무리와 함께 어울려 둥지를 틀고 있었습니다. 강화남단 갯벌은 저어새 뿐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새들의 서식지가 되고 있습니다.

저어새를 ‘깃대종’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깃대종은 생태계의 여러 종 가운데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인식하는 생물종입니다. 이러한 깃대종의 서식지를 보호함으로써 수많은 다른 생물들의 서식지를 지켜낼 수 있다고 합니다. 다시금 저어새를 보호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이지 느끼게 됩니다.

분오리돈대에 서서 저 멀리 갯벌의 저어새를 보고, 같이온 분들과 함께 기념촬영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맛있는 떡도 나누어 먹었습니다. 쉽게 누릴 수 없는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새보다는 사람이 우선이다?

“새보다는 사람이 우선이다.” 이런 비슷한 문구를 본 건 새만금 간척사업에 찬성하는 지역주민이 내건 프랑카드였던 것 같습니다. 지역주민들에게는 자기 집값이 오르고, 자기 자식들이 일자리를 얻게 될 지도 모르는 사업이 한낱 “새 몇 마리” 때문에 중지되어서는 안 된다고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그 주민들의 마음이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아무리 저어새를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고 해도, 사람보다는 새가 우선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개발 사업들이 과연 사람들에게는 행복을 가져다 주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이스털린 경제학자는 “물질적 풍요가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가”에 대해서 20년이 넘는 기간동안 30여개가 넘는 지역에 걸쳐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는 오히려 사회전체의 차원에서 국민소득이 증가한다고 해도 행복하게 느끼는 사람의 비율은 증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것을 경제학자들은 “이스털린 패러독스”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제가 분오리돈대에서 느낄 수 있었던 행복. 그것은 물질적 풍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저어새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저어새를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그 행복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단 생각을 가져봅니다. 그게 “함께 사는 길” 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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