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회원이야기

남산에는 어떤 새들이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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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날 같지 않게 포근하고 햇빛도 따사로웠다. 남산 아래의 모 호텔 앞으로 가는 길 내내
사람들이 미소 지은 얼굴로 조깅하는 모습이 눈을 즐겁게 했다. 호텔 앞에 도착해서 조금 기다리니 순박하게 생긴 한 아저씨가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제가 아까 전화한 하호모임 사람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날 바래다 주셨던 어머니는 그곳에서 그만 헤어지고 난 그 분과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조금 더 가니 다른 회원께서 무지 큰 카메라를
가지고 사진을 찍고 계셨다.

사실 학교와 학원만 오가던 일상에서는 새로운 만남이랄 것이 별로 없다. 학원에서 만나는 애들이야
뭐 서로 배우러 오는 목적이니 서로 아는 척도 안 하는 편이고, 그러다보니 실제로는 학교 친구들이 인간관계의 전부라 해도 괜찮을
것이다. 덕분에 난 중학교 때 식충식물 카페에서 활동했던 이후로 2, 3년만의 모르는 사람들과의 만남이라 초긴장상태로 곧장 돌입했다.

▲’하호’ 남산 탐조에 참여한 하호 회원들. ⓒ하호 이병우

카메라를 들여다보시던 분께서 우리의 기척에 고개를 들으셨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네. 사진 찍고 계셨나 보죠?”
“저어기 박새하고 쇠박새를 찍고 있었죠. 어, 근데 이 친구는??”
“제가 어제 말씀드린 새로 들어온 친굽니다. 아직 고등학생이라는군요.”
이 말에 난 용기를 내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확실히, 말이 안나왔다. 분명 처음 만날 때는 이름하고 학교까지 말하려고 했는데. 입 안에서 말이 빙빙 돌았다.
“아, 반가워요. 이름이 뭐예요?” (솔직히 이 말이 제일 반가웠다)
“김백상이요.”
“김백상. 어디 학교죠?”
“경복고등학교 2학년이요.”
“우와, 오랜만에 학생 회원이네요!”
다행히도 회원분께서 친절하게 물으셨고, 난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말 못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

두 분의 친절한 말씀에 내 긴장도 얼음이 녹듯 녹아버려 쉽게 말을 할 수 있었다. 일단 우리는
다른 회원분을 기다리는 동안 뒤에 있는 남산 생태공원을 둘러보기로 했다. 생태 공원은 상당히 공을 들인 듯 여러 가지 다양한
장소가 있었다. 작은 논과 밭, 짚에 쌓여있는 덤불, 굵직한 소나무 등등. 역시 맑은 공기와 함께 풍겨오는 솔 냄새가 가장 기분
좋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오래되지 않아서 그런지 여기저기서 인간의 손길이 느껴졌다는 점이다. 원래 식물이 오래되면 가로수
에서도 자연을 느낄 수 있는데 그런 느낌이 없었다.

▲쇠박새 ⓒ하호 이병우

숲길에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볼 수 있었던 것은 박새 무리였다. 사진기를 가져오신 분은 열심히
사진을 찍으셨고, 난 다른 분께 평소 헷갈렸던 박새, 쇠박새, 진박새 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확실히 머릿속 자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음.. 가슴에 줄이 있는 것은 박새고, 줄 없는게 진박새, 쇠박새. 그중 진박새는 머리에 무스 발랐고.’
옛날에 도감 보면서 혼자 끙끙 댈 때보단 훨씬 이해가 잘 됬다.
중간에 무수하게 많은 직박구리를 보고나서 호수에 도착했을 때 백은주 회원분이 합류하셨다.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산행을 하며 탐조를 시작했다. 초등학생 땐 달팽이하고, 거미가 개미 먹는 것을 보려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죽치고 앉아서 관찰했었다. 그러다 달팽이가 알을 낳는 모습이라도 발견하면 얼마나 기뻤던지… 그 기쁨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하얀색 검정색 빨간색으로 꽃단장을 한 곤줄박이의 모습과 흑과 백만으로도 충분히 귀여운 박새들을 보며 옛날 어렸을 적의 느낌이
되살아 났다. 어치의 모습과, 태어나서 처음으로 실제로 본 맹금류 말똥가리는 내 마음을 벅차게 했다.

▲멧비둘기 ⓒ하호 이병우
▲홍여새 ⓒ하호 이병우

그러다 문득 ‘침묵의 봄’ 에서 언급한 수많은 새들이 떠올랐다. 그래, 맞아. 사실 이 정도보다
더욱 많은 새들이 있어야 정상이잖아. 다들 어디 간 거지? 전망대에 도착했다. 내 눈앞에 드넓은 서울의 모습이 확 펼쳐졌다.
끝없는 집들. 도로들. 도로 넘어 집, 집넘어 도로. 잠시 한강. 그리고 또 집들. 그 곳들 역시 지금 남산에서 본 새들의 보금자리였을
것이다. 지금은 인간의 주거지로 변모되며 파괴된 새들의 보금자리. 갑자기 서울경치가 미워졌다.
도대체 인간이 뭐길래 이렇게 이기적으로 구는 거지? 저 드넓은 땅을 새들이 발붙일 곳 하나 없이 욕심을 내서 뭐하자는 거지?
전망대에서 나와 말똥가리를 보고 나서 난 학원을 가기 위해 일행에서 빠져나와야 했지만 학원으로 가는 길 내내 남산에서 본 새들과
서울의 전경이 머리 속을 맴돌았다.

아까 내가 걷던 지하철역 입구도 직박구리, 까치, 어쩌면 말똥가리의 터전이었을지 몰라. 그리고
지금 화학식이 적혀 있는 이 종이는 딱따구리의 보금자리였던 나무였을 지도 몰라. 내가 이 종이와 공간을 사용할 자격이 있는 걸까?
이 책의 주인이라고 해도 돼는 걸까? 고민하던 내게 해답이 떠올랐다. 그래. 여러 동물들의 희생으로 내 앞에 놓여있는 이 책과
종이를 소중히 사용하자. 그리고 열심히 노력해서 내가 되고 싶은 생명과학자가 되어 다시 그 새들과 동물들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자. 다시는 그런 희생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자. 언제부터 였을까? 내 친구들 꿈이 모두 죽을 사람으로 변했다. 의사, 검사,
변호사… 남북통일이 안되니까 이젠 장래희망 통일이냐? 하며 웃었던 나도 언제부턴가 공란이 된 나의 장래희망 칸을 발견했다.
어렸을 적부터 꿈꾸던 ‘생명과학자’라는 글자는 사라지고 난 빈칸.
하지만 이곳 하호 모임에서 정말 오랜만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나니 더 이상 갈등과 망설임은 생기지 않는다. 누가 뭐래도,
아니 세상이 뭐래도 나의 꿈은 생명 과학자다. 고통받는 동물들을 위해 수의 기술도 있고, 도시 한복판에 숲도 퍽! 하고 만들
수 있는 권력이 있는 슈퍼 울트라 생명 과학자. 내가 가장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하고 싶은 일이다.

2006년 1월 14일
글/ 환경연합 회원소모임 ‘하호’ http://haho.kfem.or.kr
김백상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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