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회원이야기

“인간과 더불어 사는 DMZ를 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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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가 두 아이를 키우며 사는 이곳은 인적이 드문 철원평야입니다. 민통선 안인 이 곳에서는 논농사를 지으며
순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작은 마을을 이뤄서 살 뿐 도심의 공해도 차량의 소음도 없는 평화로운 곳입니다.

우리 부모님이 어렸을 적, 그러니까 50여년전 이 곳에서는 인간들이 큰 전쟁을 일으켜 쑥대밭이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는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서 먹이를 먹고 강가에서 잠을 자지만 나무가 우거진 것으로는 좀체 가지 않아요. 그곳에
가면 옛날 인간들이 곳곳에 매설해놓은 지뢰가 있으니까 아이들에게도 조심하라고 일러두었습니다.

우리 두루미들이 겨울나기를 하며 지내는 동안에는 가끔 낯선 인간들이 버스나 차를
타고 우리를 구경하러 오곤 합니다. 어제도 한 무리의 인간들이 (그 중에 절반 이상은 아주 무거워 보이는 카메라를
낑낑거리며 들고 다니더군요) 우리를 보러 왔습니다. 그나마 이 무리들은 우리에게 호의적인 생태보호주의자들입니다.
나도 오랜 경험으로 알 수 있거든요. 우리를 놀라지 않게 하려고 우리처럼 비슷한 색깔의 옷을 입고 조용조용 저들끼리
소곤대면서 열심히 렌즈의 초점을 맞추곤 합니다.

우리의 우아한 자태에 연신 감탄하는 그들을 위해 가족의 우두머리인 나는 남편과 아이에게
고개를 끄덕거려서 한번 나는 모습을 보여주자고 제안합니다. 우리의 날개짓을 보면 그들은 감탄사를 내뱉으며 찰칵찰칵
셔터를 누르기 바쁘지요. 이 소란에 덩달아 옆 논에서 자던 고라니도 겅중겅중 뛰어 달아납니다. 고라니까지 구경한
인간들은 아주 신이 났습니다.

우리 두루미들은 저 야단스러운 인간들이 많이 드나드는 걸 좋아하진 않습니다. 이
땅은 물도 좋고 먹이도 넉넉하고 우리가 아이들을 키우며 살기 적당한 곳이지요.

부모님 세대에 인간들이 벌이던 끔찍했던 전쟁으로 폐허가 됐던 이곳에서 우리 새들과 야생의 생명들은 조용히 폐허를
뒤덮는 초목이 자라는 것을 보며 잘 살아왔습니다. 늘 어디 개발할 곳이 없을까, 돈이 될 만한 거리가 없을까 찾는
인간들이 요즈음 이쪽 출입이 잦아지며 철로로 연결하고 도로도 연결한다는 소문을 들을 때마다 걱정이 됩니다.
인간들의 길이 이어지면 물길은 사라지거나 막히기 일쑤이고 인간들의 도시를 만들기 시작하면 새들의 공간은 사라지고
마니까요.

인간들의 욕심으로 요샌 이름도 고약한 ‘조류독감’이 퍼져 인간들을 두렵게 하는 모양인데
더 기막힌 것은 우리 철새들이 주범이라고 철새들을 없애자, 이동하지 못하게 하자 주장하는 인간들도 있다지요.

여기 DMZ 일원이 개발된다면 우리에게 또 무슨 누명을 씌우고 우리를 쫓아낼지 정말 두렵습니다. 당장 목전에 이익이
된다면 우리의 아름다운 자태도 쓸데없이 느끼는 무정한 인간들이 아니기를 바랄 뿐입니다.

버스를 타고 무거운 카메라를 매고 우리를 부지런히 구경하던 이들도 오후가 되니 슬슬
돌아가는군요. 오래전 폭격으로 뼈대만 남은 노동당사 앞에서 인간들은 모여 기념촬영을 하고 돌아갑니다.
그대들이 그렇게 조심조심 가끔 놀러온다면 우린 환영입니다.
그러나 이곳의 물길을 없애고 초목을 잘라내고 야생의 것들은 내쫓으며 그대들만의 세상으로 만들지 마세요.

추운 겨울 잘 나시길 바라며 총총.

2005년 12월 9일
철원에서 재두루미가

p.s DMZ에서 날아온 재두루미의 편지는 환경연합
회원 조은미 씨
가 대신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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