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회원이야기

자연에 한 발, 도시에 한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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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물이 흐르는 내리천 전경 ⓒ박민영

2005. 8. 13.
첫째 날, 유난히 눈이 부시는 날씨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중남부 지방에 폭우가 내려 걱정이 되었지만 내리쬐는 햇살에 마음이
풀어진다. 아차! 그런데 오늘이 연휴 막바지란다. 여기저기서 차들이 모여들더니 이내 우리 차는 거북이걸음을 한다.
드디어 영주. 처음 탐사 장소가 봉화라는 것을 알았을 때에 가까운 거리라며 좋아하였는데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이제부터
길은 평지가 아닌 언덕으로 나있다. 여러 차례 재를 넘어 드디어 경상도와 강원도가 접한 곳 현동에 도착했다. 피곤해서 다들 그냥
잠자리에 들 줄 알았는데 반가운 마음에 늦은 저녁 식사를 하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2005. 8. 14.
둘째 날, 수달님을 뵈러 가는 길이라 예의를 갖춰 향이 강한 제품을 피해 채비를 한다. 숙소에서부터 꼬불꼬불 한참을 오니 강원도
영월의 내리천이다.

이번 탐사 팀에는 중학교 1학년 학생도 포함되어 있다. 다소 걱정이 되었지만 모험심도 있어 보이고 밝고 건강한 소녀라 마음이
놓였다. 우리를 안내해 주실 분은 수달보호협회 박원수 회장님이시다. 힘든 탐사라고 하셔서 대단한 무장을 하고 오실 줄 알았는데,
어째 그 분의 ‘조선나이키(고무신)’가 심상치 않다. 오랜 기간 휴식을 취한 곳이라 사람이 다닐만한 잘 닦여진 길은 보이지 않고,
키를 훌쩍 넘긴 풀숲과 며칠 전 폭우로 인해 불어난 계곡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첨벙첨벙 뛰어들어 앞으로,
앞으로 헤쳐 가는 수밖에. 그 분의 고무신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황구렁이 ⓒ이병우

수달은 집이 따로 없고 바위의 틈에서 서식한다. 일일이 다 노크해볼 수 없으니 입구에 거미줄이
처져 있지 않은 곳마다 들여다보며 관찰을 해야 한다. 선명하게 찍힌 수달의 발자국도 보고 자리를 잡기 위한 흔적도 볼 수 있었다.

거짓말처럼 여기 있는 이 자국들만 보고도 눈앞에 있지 않은 수달이 물 속에서 나와 바위 밑으로 들어가서 꼬리를 빙빙 돌려 자리를
잡고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상상된다. 그리고 군데군데 배설물까지…
회장님은 낙엽 속에서 자꾸 수달의 흔적을 찾으라고 하시지만 우리는 막막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 분의 말씀대로 밟혀진 낙엽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무심한 낙엽더미는 어느새 수달이 지나간 흔적으로 바뀐다. 20년 지기 수달 전문가는 역시 남다르다. 몇 개의 발자국만
가지고도 “어미 한 마리, 새끼 두 마리”를 외치시니 실로 감탄의 연속이다.
수달 서식지를 살펴보며 가는 동안 우리는 박원수 회장님께 수달에 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수달은 물고기와 개구리 등을 주로
먹는데, 녀석은 물 위의 먹잇감을 노리고 있다가 순식간에 물 속에서 다리를 낚아채는 ‘물귀신작전’으로 사냥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여기서 오해하기 쉬운 사실! 수달은 물가에 살지만 포유동물이라 육지에 적합하게 발달되어 있고, 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존의 상식을 뒤엎는 이런 얘기를 들으니 수달에 관한 궁금증만 더해갔다. 수달의 흔적들을 보며 가자니까 우리는 수달을
관찰하고 싶어서 찾아왔지만 수달의 입장에서는 우리의 방문이 습격으로 느껴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 꼭대기까지 자란 풀을 헤치고 가는데 미끈한 무언가 쉭~ 하고 지나간다. 앗! 뱀이다! 덜컥 겁이 나 소리소리 질렀더니 회장님이
뛰어나와 뱀을 잡으시고 우리의 귀여운 중학생 소녀는 망설임 없이 뱀의 꼬리를 잡고 당긴다. 생전 처음으로 큰 구렁이를 봐서 무섭기는
했지만 ‘이런 곳 아니면 또 어디서 보겠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황구렁이는 놓아주자 숲으로 금새 사라져 버렸다.

▲선명한 수달 발자국 ⓒ이병우

삶은 고구마, 감자, 옥수수, 계란으로 싸온 점심 도시락을 먹은 후, 배까지 차오르는 물을 건너고
가파른 절벽을 맨손으로 오르고 들쑥날쑥 바위를 지나며 계곡을 따라 앞으로 전진한다.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지만 나가는 곳은 보이지
않으니 설레임은 차츰 불안함으로 바뀌어간다. 한 명 두 명 다리가 풀리기 시작한다. 날이 어두워지자 우리 일행은 핸드폰의 전원을
켜고 일렬로 풀숲을 헤치며 나아간다. 모두 마음속으로 ‘무사히 나가게 해 주소서’라고 빌고 있겠지? 저 멀리 반가운 불빛이 보인다.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이 이렇게도 부러운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물을 보며 좋아하던 중학생 소녀도 이제는
물소리가 지긋지긋하단다. 그도 그럴만하지. 우리는 밤 8시에나 내리천 계곡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10시간의 계곡 탐사. 길고
긴 여정이었다.

2005. 8. 15.
셋째 날, 우리의 탐사 일행 중 일부는 아침에 떠나고 나머지 일행은 막힐 것을 예상해 저녁나절에 출발하기로 했다. 먼저 찾은
곳은 산양이 사는 산이다. 말이 산이지 경사가 심한 비탈길이어서 오직 산양만이 이 지역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고 한다. 흙이
밀려나가기도 하고 나무뿌리와 박혀 있는 돌들을 잡고 비탈길을 오르자니 지지기반이 약해서 일행 중 하나는 큰 돌이 떨어져 팔을
다치고 말았다. 산양은 사람을 무서워해서 자주 나타나는 길목에서 관찰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발자국만 보여 주고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이곳에 또 하나 유명한 것이 열목어이다.
추운 곳에 사는 놈들이라 이 곳은 그들이 서식하는 일종의 남방한계이다. 현불사에서 이 놈들을 기르고 있는데 이 고기를 탐내어
수달이 자주 출현한다고 한다.

▲현불사에 사는 열목어 ⓒ이병우

현불사 대웅전 오르는 길에 쭉쭉 뻗은 멋진 소나무들이 우거져 있는데 이곳이 바로 까 막딱따구리가
사는 곳이다. 위를 잘 살피고 가다 보면 지름이 제법 되는 튼실한 나무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나무 아래에는 새의
부리로 이 구멍을 만들면서 떨 어진 듯한 얇은 나무토막이 널려 있다. 헌데, 흥미로운 사실은 깊숙한 곳이 아닌 사람이 다니는
길을 향해 둥지를 내어놓았다는 것이다. 아래를 내려다보며 우리를 구경하겠다는 심산인걸까?

▲까막 딱따구리 둥지! ⓒ이병우

아쉬움을 남겨둔 채 차는 봉화를 떠난다. 쨍쨍 내리쬐는 햇살이 서서히 비가 되어 내린다. 우리더러
시원하게 가라며 하늘에서 보내주신 손님 덕분에 떠나는 마음이 포근하게 느껴진다. 3일 동안 우리 하호는 야생 동물을 만나기 위해
야생 동물이 되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그들의 삶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었을까? 수달은 무자비한 하천 정비 공사로 살 곳을 잃어가고
산양은 자기들이 이동하는 산허리가 도로로 인해 두 동강이 나버렸으니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팔과 다리가 쑤셔오는
힘든 일정이었지만 자연 속에 살아있는 녀석들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었기에 가슴이 따뜻해지는 탐사였다.
이번 탐사로 인해 힘든 길을 함께 헤쳐가며 하호 회원들이 하나가 되었고, 몸과 마음으로 야생 동물의 고된 삶을 이해하며 그들과
우리가 하나가 되었다. 앞으로도 이렇게 우리는 ‘도시에 한 발, 자연에 한 발씩 나누어 딛고’ 살아갈 것이다.

▲어려운 탐사를 함께 한 하호 회원들 ⓒ이병우

글/ ‘하호’ http://haho.kfem.or.kr 장슬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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