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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책사업이 개인의 추억을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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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인아,
너는 너무 매정해”

가끔가다 주위 분들에게 듣는 얘기입니다. 매정한 성격,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아니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특히 제가
좋아하는 친구가 저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 매정한 성격은 가장 최대치로 발휘됩니다.
바로 관심을 끊어버리는 것이지요…

이런 매정한 성격이 있는 반면에 저는 무관심해진 사람이라도 그 사람과 같이
하였던 일들이나 함께 간 장소, 들은 음악, 나누었던 이야기, 상황들은 기억을 잘하는 편입니다. 추억에 대해서는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지요…그 추억에는 상대방 외에도 제가 주체가 되어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아주 많고 그것들로
인해 제가 성장하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또 어느 정도 이기적인 성격도 가지고 있어 제것을 빼앗아 가는 것에 대해서 무척 화를 잘 냅니다. 갓난아기였을
때 뉘여 놓기만 하면 쌔근쌔근 잘 자던 순둥이였던 저인데 지금의 소유욕에 대해서는 스스로도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애정과 욕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제 추억을 앗아간다면 얼마나 화가 날까요?

그런데 잠깐 한눈을 팔고 있으면 국책사업들이라는 것들이 제 추억을 부지부식간에
앗아가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당했다고 생각이 들면 때는 이미 늦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책사업은 아니지만 최근에 서울시에서 저의 집 근처에 있는 관악산에 강남순환고속도로를
건설한다고 합니다. 저희 집 뒷산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관악산은 집에서 고개만 돌려도 바로 보이는 산입니다. 세상에…
그런데 그 뒷산에 9.9km나 되는 장대 터널을 짓는다는 것입니다. 관악산은 제가 혼자서도 산책 할만큼 익숙한 산인데다가
관악산과 함께 숨쉬고 있는 서울대 안의 녹지들은 개인적으로 자주 찾는 곳입니다. 이번 여름 휴가기간에는 서울대 잔디밭에
누워서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한 권 독파도 했는데… 만약 터널이 건설된다면 짜증나는 도로소음에 푹 빠져 책을 읽을
수 있을지, 고개를 들면 장대 터널 위로 지나다니는 차들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것인지…

저에게는 추억이나 생활에 대한 변화만 주면 해결되는 일일 수 있겠지만 관악산에
사는 생물들은 생존권에 대한 문제가 걸려있습니다. 그들에 비하면 추억상실에 대한 불평은 사치스런 불만일수도 있습니다.
아니지요, 고속도로가 완공되면 도로를 달리는 차량과 서울대학교 앞에 정체된 차량에서 나오는 소음과 매연으로 대기오염이
가중되고 이로 인해 인근주민들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치겠지요…현재 대기오염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증가한다는 기사를
보더라도 사람들의 생존권 위협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그럼, 국책사업 중에 하나인 새만금 간척사업은 어떻게 제 추억을 앗아갈까요?
새만금에 처음으로 발을 담가 보고 걸어 본 때가 2001년 여름이었습니다. 그전에도 갯벌에는 가보았지만 새만금 같은
하구갯벌은 예전에 친구들과 함께 장난치고 놀았던 갯벌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 추억은 우선 뒤로 하고 2001년
회원분들과 함께 한 회원대회 행사 중 하나로 연날리기를 했습니다. 파란하늘에 걸려 있는 연들을 누워서 보는 것도 기억에
남지만 엄마랑 아빠랑 같이 연을 날리는 꼬맹이들의 표정은 2년이 지난 지금도 좀처럼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Dink(Double
income no kinds)족이었던 저는 이 사실조차 잊은 채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꼭 새만금에 같이 손잡고 와서
연도 날리고 조개랑 장뚱어랑 갯지렁이도 봐야지 하는 상상을 절로 했었는데요. 현재는 새만금 간척사업이 잠시 중단된
상태라 그 꿈을 버리고 있지 않지만 만에 하나 공사가 다시 재개된다면 제 미래에 만들고자 한 추억 역시 물거품이 되어버립니다.


한 개인의 과거, 현재, 미래의 추억을 지배하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 바로 국책사업입니다. 국책사업이라고하면 신문지면에나
나오는, 정치권에서 떠들어대는 먼 나라 얘기라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들이라고 생각되실 겁니다. 하지만 그 국책사업으로
인하여 시민 한분, 한분의 작은 생활습관에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특히 저에게는 제 추억을 앗아가기 때문에 화까지
납니다.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추억인데요…

저는 시민들이 자기 것은 챙기는 약간은 이기적인 사람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작은 생활습관, 추억들을 정부라는 거대 집단으로부터 빼앗기지 않았으면 합니다. 만약 그런 기미를
보인다면 당당하게 내 것을 앗아가지 말라고 주장하세요 .나의 생활을 지배하려고 하지 말라고요. 내가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것들을 가져가지 말라고 말입니다.


글 : 시민환경정보센터 사서간사 황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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