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회원이야기

[시집]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나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이 나인
空王(공왕)처럼

고요한 투명성의 來歷(내력)은 오래된 것이다
눈꺼풀을 떼어낸 눈처럼
거울은 눈을 감지 못하고 있다

(‘거울과 눈’에서)

이 짧은 시에는 긴 설명이 달렸다. ‘거울이 하나의
눈이라면 그것은 눈꺼풀 없는 눈, 속눈썹 없는 눈, 눈동자 없는 눈이라고 말할 수 있다…거울이 하나의 눈이라면
그 눈은 우리를 무심하게 보고 있다.’ 기이하게도 인간은 자신을 볼 수 없다. 인간은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비춘다.
시인은 시에 자신의 얼굴을 비춘다. 얼굴은 일찍이 있었으되 그것을 보게 된 것은 시를 통해서였다. 시인에게 ‘쓰다’라는
행위는 ‘보다’와 다르지 않다.

시집에 실린 50여 편의 시는 언뜻 보아 그 무게가
가벼운 듯 싶은데, 한 걸음 발을 담그면 깊다. 가령 이런 것들이다.

우리는 한계 속에서 살다 무한 속에 죽을 것이다
그러면 좀 억울하지 않은가
우리는 무한을 누리다 한계 속에 죽을 것이다

(‘수평선’에서)

이제는 많이 친숙해진 ‘텅 빈 세계’보다 신작
시집에서 도드라진 것은 ‘쓰다’와 ‘보다’의 동격이다. 먼저 풍경이 있고 시는 그것을 ‘본다’.

들장미라는 말이 떠오르기 전에
들장미가 있었다’

(‘재 위에 들장미’에서)

그러니까 최승호씨에게 시 쓰기는 이미 있었던 것을 발견해내는 일이다. 그렇게 쓰다 보면 시인 자신은 볼 수 없었던
얼굴도 발견한다.

정오 무렵, 섬을 가로지르다
평지처럼 밋밋해진 무덤을 밟고 서 있는
수염 긴 염소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나를 들여다보는 듯한 기묘한 느낌!

(‘아지랑이’에서)

자료발췌 :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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