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회원이야기

“황토는 염색하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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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 찜질방, 황토 내의, 황토 화장품, 황토 목욕, 황토 벽지 심지어 황토 아파트까지 요즘엔 ‘황토’자 들어가면 일단 장사가
잘 된다. 그 말은 그만큼 요즘 사람들이 황토에 관심을 갖고 있고 바꿔 말하면 황토가 사람과 자연에게 주는 선물이 많다는 것을 말한다.

알다시피 우리 선조들은 모두들 흙으로 집을 짓고 황토방에서 잠자고, 황토 아궁이 앞에서 불 지펴 부인병을 막고, 배가 아프거나
여러 질병을 치료하는 약으로 황토를 쓰고, 황토로 구운 그릇에 음식 담아 먹으면서 황토와 더불어 건강하게 살아 왔다. 황토가
사람에게 좋은 건 이루 말할 수는 없지만 산업이 발달하고 사람 살기 편해지면서 황토는 현대사회의 한 구석으로 물러났다. 그만큼
황토의 가치를 몰랐고, 푸대접했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태양의 기운을 받은 최고의 생명물질 황토는 특유의 자연친화적인 성질과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소망
때문에 서서히 이 시대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최근 황토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황토 유사품’이 활개를 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
황토에 자존심을 걸고 ‘가짜황토’와 정면으로 대결을 시작한 사람이 있다. 주식회사 ‘토텍’ 대표 조규성 씨. 얼마 전에 인터넷으로
환경운동 연합 회원이 된 조규성 씨를 만나러 하얀 솜이불 같은 구름이 낮게 뜬 뜨거운 날 다 저녁에 일산으로 갔다. ‘상호가
<햇살가득한 집>이라는데, 거실 베란 다 문 같은 큰 유리에 햇살이 가득 들어와 커튼을 치지 않으면 눈이 부실 정도로
넓고 아늑한 곳에, 주인장은 황토로 염색한 옷을 입고 분명 넉넉하고 우아한 웃음을 띄고 있을 거야. 혹시 황토라 하니까 찜질방처럼
약초 냄새에 멍석이라도 깔려 있는 분위기는 아닐까’

여러 생각을 하면서 암센터 건너편 뒷골목을 돌아 들어가는데 햇살가득한 집은 눈에 쉽게 띄는 곳에 있었다. 들어가 보니 햇살은커녕
오히려 좀 어두워서 낮에도 불을 켜놔야 할 정도다. 옛날 집 마루 뜯어다 갖다놓은 책상이 앉아 있고 둘레에는 둘둘 말린 황토
염색천과 황토 속옷이 담긴 상자들이 천장까지 쌓여 있었다. 염색한 온갖 생활 소품들도 멋있게 전시돼 있는 게 아니라 그냥 한쪽
구석에 있었다. 사무실인지 손님맞이 방인지 모르겠지만 어른 넷이 둘러 앉으니 여유가 없다. 짐작했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지만
그런데 이상하게 이 분위기가 오히려 낯설지 않고 편안했다. 방금 산에 가서 나무 한 짐 해온 듯한 주인장의 품새와 인상이 뺑
둘러 있는 황토 물건들과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황토라는 게 어쩌다 한번 봐도 친근함이 느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조규성
씨도 처음 만나는 사람 같지가 않았다.

조규성 씨는 더 젊었을 때 시골에서 우리밀 살리기 운동에도 참여하고 우리 콩 살리기 운동 생산자 대표를 맡기도 한 농민운동가
출신이다. 이제는 사업가인데도 아직 농부 같은 인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건 아마도 황토라는 게 시골에 가야 얻을 수 있는 흙이고
조규성 씨 자신이 그 사업가의 번듯하고 세련된 이미지로 탈바꿈하길 별로 원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황토 염색이라는 게 일일이 손으로
작업을 해야 하는 까다로운 일이라 대량 생산이 그동안 어려웠다. 그래서 값도 비쌀 수밖에 없었고. 하지만 조규성 씨는 대량으로
생산해 낼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해 침구나 생활 소품, 옷, 벽지 따위를 모두 대량으로 생산해낸다. 대량 생산을 한다고 해서 물건을
함부로 만드는 건아니다. 조규성씨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조규성 씨는, 최근 황토 제품을 만들어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매장에 옷이나 황토 제품을 납품하고 있는 다른 황토회사들과 싸울 준비를 하고 있다. 왜냐하면 시중에 판매되는 황토 제품이 대부분
순수 황토 제품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실제로 그 곳에 납품되는 속옷과 손수건을 가져와 물에 적셔 간단히 제품 비교를
해보여줬다. 그런데 다른 회사 팬티와 손수건은 물을 빨아들이지 않고 또로록 물방울이 흘러 내리는 반면 조규성 씨가 만든 천은
금방 물을 쏘옥 빨아들였다. 속옷의 생명은 흡수력이다. 땀이나 물을 흡수하지 못하면 속옷의 자격이 없는 것 아닌가? 이것 말고도
황토로 만든 제품이 진짜냐, 가짜냐를 실험하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는데 그 모든 실험에 당당히 나설 만큼 조규성 씨는 자신있다.
다른 회사 대표들과 공식적으로 검증하자고 제의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아무 소식이 없는 상태다. 조규성 씨는 황토 염색을 하면서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 사람들에게 부탁한다.

“황토염색을 대단한 행위처럼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황토 제품의 효능보다는 유사품을 만들어 놓고 포장을 근사하게 해서 오히려 진정한 황토 물건의 이미지까지 흐려놓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정말 황토를 아끼고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이다.

“황토는 정확히 말하면 염색이 아닙니다. 다른 천연 염색과
달리 황토는 황토의 미세분말이 올 속에 들어가 안 빠져나가는 거지요.”

조규성 씨가 만들어 쓰는 황토는 정말 미세해서 염색하는 과정에서도 다른 회사 제품 염색과정과 조금 다르다. 보통은 염색할
때 따뜻한 물을 강조하는데 조규성 씨는 찬물도 크게 상관없다고 한다. 그만큼 자신이 쓰는 황토에 자신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조규성 씨는 더 젊어서 농민회 일할 때 환경부에서 일했던 경력도 있고 또 어느 정도 업적(?)도 있어 지금 고양환경운동 연합에
가입한 것이 결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한동안 사업에 몰두하다 소홀한 환경운동에 대해 일종의 미안함이랄까 아니면 자신의 일을
유기한 일종의 빚진 마음이랄까… 아마 그런 걸 떨치고 싶었을 거다. 또 조규성 씨 말대로 소속감을 느끼면서 조금 더 활기찬
환경운동을 꿈꾸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제 고양환경운동연합은 조규성 씨처럼 스스로 문을 연 회원들이 마음껏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말이 나온 김에 올 가을 회원들을 대상으로 황토염색체험을 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기분 좋게 허락하셨다. 그때쯤 하늘은 더 높아
있고 다 파래졌을 텐데, 길게 이어진 빨래줄에 황토빛 옷들이 널려 갈바람을 쐬고 있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한들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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