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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기]신음하는 만리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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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시에서 자동차를 타고 북서쪽으로 1시간 정도 가면
팔달령에 다다른다. 입구에 내리면 넓은 주차장 양쪽으로 우리나라 70년대 유원지같은 분위기의 식당과 상점들이 줄지어 서있다.


조금만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면, 산위를 타고 오르는 긴 케이블카가 제일 먼저 눈에 띈다.

‘세계의 문화유산’이며 ‘인공위성에서도 보이는 유일한 인류의 건축물’이라는 만리장성에 오르기 위한 첫 단계가 케이블카라는 사실에
필자는 놀랐다.

케이블카는 간단하게 지주 몇 개 박고 끝내는 공사가 아니다.

케이블카를 운행하기 위한 전력을 끌어오기 위해 대형 철탑들의 개설이 불가피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산림훼손은 당연한 것이다.

또한 공사를 하는 업주들은 케이블카가 이용객들의 안전을 최대한 보장할 수 있다고 공언하지만, 중국의 자연조건 속에서는 대형사고의
위험을 간과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뉴스에서 케이블카가 추락하거나, 고공에 매달려 아찔한 순간을 경험하는 소식을 가끔 접하게 된다.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는 곳을 따라가면 케이블카가 사람들을 태우려고 대기하고 있다.
그 곳에서 사람들의 표정은 두가지로 엇갈린다. 만리장성에 오른다는 생각에 환한 표정을 한 사람과 케이블카를 타야한다는 두려움으로
가득찬 사람.

▲ 만리장성의 정상. 다수의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10분쯤 케이블카를 타고 가면 산 정상이라고 여겨지는 곳에 내리게 된다.

케이블카에서 바깥으로 이어지는 긴 터널을 걸어서 나오는 순간, 눈 앞에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풍경이 펼쳐진다.

높이 약 9m, 너비 4.5m의 톱날 모양의 성벽이 끝없이 뻗어있다. 울창한 숲이든 산이든 모조리 뚫고 지나가 마치 영화에서
보았던 거대한 용들이 기세를 뽐내며 꿈틀거리는 듯한 형체, 이것이 바로 2700㎞의 만리장성이다.

중국이 7개국의 강국으로 분열돼 항쟁이 일어나던 시대에 흉노족의 침입방지를 위해 각
나라의 국경선에 장성이 건축되었다.

그러다 기원전 200년경 진(秦)이 천하를 통일하자 시황제는 예전에 여러 나라가 건축한 장성을 연결하여 최초의 만리장성을 완성시켰다.

지금의 장성은 명대에 이르러 완성된 것이다.

끝없이 펼쳐진 만리장성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인간이 도저히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엄청난
대역사(大役事)를 이루어낸 과거 봉건왕조의 힘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것도 잠시, 그 대역사와 함께 죽어간 민초(民草)들의 애환을 느낄 수 있다.

송나라 때의 명재상 왕안석은 “진나라 사람의 절반은 만리장성 때문에 죽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진다. 수 양제
때 1백만 명을 동원했는데 열흘 동안 60만 명이나 죽었다는 기록이 전해오기도 한다.

만리장성 주변의 산은 바위로 이루어져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나무를 심었다 하니 민초의 애환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실제로 나무들은
아직도 한줄로 잘 맞추어져 심어져 있다.

정상으로 보이는 곳에 올랐을때, 여는 관광지처럼 성벽에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 조각을
파서 쓴 글들이 가득했다. 옆에는 음료수와 기념품 등을 파는 상인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그러나 이들을 통제하는 관리인이나 문구들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베이징 부근 약 6백50km에 걸쳐있는 ‘문화적 가치가 있는 풍경’이라는 장성의 일부분은 미국에 본부를 둔 세계유산기금(WMF)에
의해 ‘가장 위기에 노출되어 있는 1백개 유산’의 하나로 지정되어 있다는 사실이 무색하게 느껴진다.

얼마 전 만리장성 1백군데를 조사한 결과 3분의 1이 이미 소실되었다는 충격적인 뉴스가
나왔다.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인해 관광객 유치에만 열을 쏟을 뿐, 만리장성의 보호라는 측면은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중국은 세계의 유산인 만리장성을 문화와 더불어 자연보전에 가치를 두는 관광으로 전환해야 할 때다.

▲ 남편과 만리장성에 오른 이현정 간사.

만리장성에 휴식년제를 도입하는 것은 어떨까

세계가 인정하는 ‘대국’이라는 위상을 중국은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해줄 것이다.

글, 사진/ 에코시티 이현정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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