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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일배와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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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정원(오남중학교 교사)
비가 내린다. 시원하게… 학교 뒤 자리잡고 있는 작은 한옥집 마당에 살구나무에 살색 살구가 풍성히 매달려있다. 교실 창가에
그 풍경이 그대로 들어온다. 우리교실은 참으로 멋진 풍경을 가졌다. 비내음 속에서 삼보일배를 떠올린다.

5월7일 KBS 수요기획 ‘삼보일배’

환경을 생각하는 교사모임에서 얼핏 삼보일배 얘기를 들었었지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때까지 잘 모르고 있던 나는 6일
밤 TV를 보면서 수요기획에서 삼보일배에 관한 것을 한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반
아이들이었다. 연휴기간이라서 전화를 하지 않는 이상 알릴 수가 없었다. 반 까페에 공지를 띄웠다. 늦은 시간에 하는 프로그램이지만
꼭 보라고. 너희들과 꼭 같이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라고. 그리고 연구실 사람들에게도 얘기를 했다. “오늘 수요기획! 꼭 보세요~”.
그날 밤 선배언니와 함께 TV 앞에 앉았다.

“네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

지난 한 달간 계속 해서 내 마음과 몸을 잡고 있던 되뇌임이다. 수요기획에서 문규현신부님을 뵜다. 신부님 한분과 스님 한분이
새만금 살리기 삼보일배를 하신다는 간단한 기사에서, 그리고 얼핏 봤던 문신부님의 존함에서, 난 그전에 내가 알고 있던 문 신부님을
떠올리지 못했었다. 내가 알고 있던, 80년대 말 임수경을 데리러 북한에 방문했던 문규현 신부님을 떠올리지 못했었다. 그런데…
그분이 그분이셨다. 수요기획을 보는 내내 마음이 떨리고 몸이 흔들렸다.
그 때부터 내내 수업을 하는 도중에도, 복도를 걸어갈 때도 문득문득 ‘지금 어디쯤에서 삼보일배를 하고 계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내 생각은 삼보일배의 행렬과 함께 움직였다.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동참해야했다. 마음이 계속 그렇게 움직였다.

나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과학수업을 하는 것보다 선생님 생각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 얘기를
하려고 하는데, 괜찮겠느냐고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삼보일배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마침 그 주 화요일에 환생교에서 긴급회의가
소집되었다. 주말에 삼보일배팀이 서울로 들어올 예정이고, 그때 아이들과 함께 환생교가 함께 하자는 것이었다. 드디어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긴 것이었다. 마음이 가 있는 곳에 몸도 함께 있을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삼보일배 홈페이지를 열고, 농발게
홈페이지를 열고, 새만금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환생교 활동을 해 온지 3년이 넘었지만, 아이들과 기행을 다니고, 정규수업 외
시간에 활동을 하기는 했지만 수업시간에 이렇게 직접적으로 얘기를 해보기는 처음이었다. 아이들은 매우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었다.
새만금이 어떤 곳이고, 갯벌이 어떤 곳이고, 그곳에 사는 생명들이 어떤 것이고, 그들의 삶은 어떤 것이고…간척사업은 어떤
것이고, 그것은 왜 시작되었고, 그것이 갯벌과 생명에게, 그리고 결국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게 될 것이고 하는 얘기들을 전개하면서,
내 목소리는 떨렸고 아이들은 더 깊이 함께했다. 그리고 삼보일배 얘기를 전했을 때 아이들은 그 사실을 알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함께 걱정했고, 안타까워했다. 그들의 마음 역시 삼보일배와 함께하기 시작한 것이다.

뉴스나 신문에 삼보일배 얘기가 나오면 어김없이 아이들은 달려와서 나에게 말하였다. 수경스님이 쓰려지셨다는 소식에 다들 마음이
아팠고, 함께 기도했다. 그 주에 내가 매우 격앙된 사건이 하나 더 있었다. 환생교 모임에서 받아온 커다란 삼보일배 포스터를
학교 게시판에 붙였는데,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떼이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누가 떼었는지 다음날 알 수 있었다. 사람이
이렇게 다른가 싶었다. 어떻게 이렇게 다른가… 어떤 사람은 자기 목숨을 내어놓고 하루에도 몇천번씩 절을 하며 생명을 살리고자
하고 있는데, 우리의 어리석음을 대신해서 고행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그 포스터 하나를 용납하지 못한다. 어떻게 이렇게 다른가…

▲ 일정이 끝나고 보라매 공원에서 모인 선생님과 학생들의 모습

토요일, 환생교가 아이들과 함께 삼보일배 하는 날…

함께하겠다고 의사를 밝힌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혼자 그 아이들을 다 데리고 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서, 아이들에게 모임
장소와 개인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는, 그날은 녹색반 아이들과 반 아이들을 중심으로 내가 데리고 갈 예정이었다.
그날 모인 아이들은 37명이었다. 일부러 챙기지 않았는데도, 자발적으로 시간을 기억해서 마음을 먹고 나온 아이들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신대방삼거리역으로 향했다. 아이들은 들떠있었다. 자기들이 의미있다고 여기는 아주 중요한 일에 여기저기서 모인 많은 사람들이
함께함을 보고, 그 속에 있는 자신을 보며, 아이들은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그 무언가를 받아안고 있었다. 드디어 삼보일배 하시는
네 분의 성자들과 행렬을 마주하게 되었다! 수경스님은 휠체어에서 내리셔서 함께 삼보일배를 하고 계셨다. 그날 삼보일배 행렬은
참으로 길었다. 삼보일배 하는 행렬 뒤로 우리 아이들이 결합했다. 아이들은 무릎보호대도 없었다. 장갑도 없었다. 나 역시 전날
무릎보호대를 사려고 하니 꽤 비싼 값이었다. 그래서 대신할 다른 것을 찾아 챙겨왔던 터였다. 아이들이 준비 못 해올 거란 생각이
그때 들었는데, 역시나 아이들은 준비를 해오지 못했다.

2시간의 삼보일배… 아이들은 정말 진지했다. 모두들 정성껏 삼보일배에 함께 했다. 무릎이 아프고 다리가 아프고 덥고 힘들텐데도,
아이들은 그 대열에서 빠져나오지 않았다. 환생교 선생님들과 다른 학교 학생들이 계속 중간에 들어오고 들어오고 해서 우리 아이들과
앞 뒤로 헤어져 있었는데, 쉬는 시간에 앞 에 떨어져 있던 아이들에게 가 보니 자랑스레 시커멓게 된 손을 들어보인다. 무릎이
아프다고, 힘들어 죽겠다고 한다. 그런데도 빠져나오는 녀석이 없다. 다시 또 작은 손을 합장하고 삼보일배를 시작한다. 정말 멋진
아이들이다.

5월 24일의 삼보일배 일정이 끝나고 다들 보라매공원으로 모였다. 아이들이 신부님과 스님, 목사님과 교무님을 뵌다고 난리다.
몸이 많이 안 좋으신 분들, 쉬시게 해 드려야한다고 했지만, 이미 아이들 마음에 우상으로 자리잡은 그 분들을 뵙고싶어하는 그
순수한 마음을 막을 길이 없다. 아이들은 앞 뒤 재지 않는다. 뵙고 싶으면 뵙고, 인사드리고 싶으면 가서 드린다. 그리고 또
나에게 와서 한껏 자랑을 늘어놓는다. “선생님, 저 문규현 신부님 사인 받았어요! 목사님이 안아주셨어요!” 아이들을 타이르긴
했지만, 가까이서 뵙고 싶은 마음은 나도 한가지여서, 귀찮게 해 드리지 않고 그냥 가까이서 뵙기만이라도 하려고 아이들을 따라
천막 쪽으로 갔다. 문규현 신부님이 저쪽 나무 의자에 앉아서 무릎을 주무르고 계신다. 환하게 웃어주시는데, 몸둘 바를 모르겠다.
뭐라 말씀을 드려야할지 모르겠다. 그저 내밀어 주신 손을 두 손으로 정성껏 부여잡았다. ‘문신부님과 악수를 하다니…’ 한눈에
뵈도 너무 수척해지셨다. 지난 50여일의 고행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했다. 아파왔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한 녀석이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전요, 정말 몰랐어요. 새만금 일들이나, 이런 분들이 계시다는 것을요.
너무 존경스러워요. 있잖아요, 정말로, 저 분들과 함께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해요.”

교사로서 학생으로부터 이런 고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고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온 세상이 그 무엇으로
짠하게 물드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아쉬움과 죄스러움은 여전했다. 아이들을 챙기고 앞뒤로 뛰어다니고 행렬을 맞춰야하고 그러느라 온전히 삼보일배만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삼보일배를 함께 하는 것을 열망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다음날은 개인사정으로 삼보일배를 참여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가, 생각을 바꿨다. 교사로서가 아니라 그저 나라는 한 존재로서 삼보일배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수요기획을 같이
본 그 선배언니와 함께 가기로 약속을 했다.

그 다음날 아침…비가 왔다. 마음은 그렇지 않았지만 전날 두 시간의 삼보일배만으로도 힘들었던 모양이다. 감기까지 걸린 상태여서
그런지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하지만 일어나 앉았다. 매일 길에서 주무신 분들도 계시다! 처음부터 같이하려고 보라매공원으로 향했다.
빗줄기는 조금씩 더 굵어졌다. 네 분의 성자는 또다시 앞장을 서신다. 매우 추웠다. 비는 금새 온몸을 적셨다. 챙겨온 무릎보호대는
자꾸 흘러내려 맨 무릎이 땅에 닿았다. 아프다… 다리가 떨리고 팔에 지탱해서 일어나려니 팔까지 떨린다. 쉴 때마다 흥건해진
장갑을 짠다. 시커먼 물이 줄줄 나온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세 번 걷고 한번 절을 했다.

저 앞에 수경스님이 계속 보인다. 수경스님만 보고 간다. 어떤 곳에선 시궁창 냄새가 올라온다. 어떤 곳은 움푹 파여 빗물이 고여있다.
어떤 곳에선 빵냄새가 풍긴다. 차만 다니던 교차로 한복판에도 사람들의 무릎이 내려앉는다. 어떤 곳이건 가리지 않고 모두들 다리와
두 손과 이마로 만난다. ‘힘들다… 아… 고통스럽다… 어떻게 이 길을 오셨단 말인가…’ 여의도 공원까지 오전 일정이
끝났단다. 어디선가 준비해 주신 점심을 정말 맛있게 받아 먹었다. 감사한 분들이 너무도 많다. 오후까지 쭉 있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해야할 다른 일들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너무 추워서 거기서 1시간 반을 그냥 기다리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아찔했다. 그래서 오후
일정은 참석하지 않고 집으로 왔다. 그런데… 일은커녕… 나는 완전히 뻗어버렸다.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밤까지 일어나지
못하고 잠에 빠졌다. 일어나선 또 마음이 불편하다. 이럴 거였으면 끝까지 같이 했어야 했다는 생각에 죄송스럽기만 했다.

월요일 아침, 아이들이 몰려온다. 다리가 아프다고 절뚝거리면서 연방 웃는다. 다리 아프다고 한껏 얘기하면서 묻는다. “선생님
이번 토요일에도 가실 거죠?” 내가 어제도 갔었다고 하니, 왜 안 데려 갔느냐고 타박이다. 어떤 녀석은 나보다도 먼저 삼보일배
홈페이지에 올라온 우리학교 애들 사진을 찾아서 나한테 보여준다. 그렇게 삼보일배는 나와 아이들을 그리고 아이들과 갯벌을, 그리고
아이들과 성직자분들을, 그리고 아이들과 세상을 연결지어주었다.

▲ 일정이 끝나고 밝은 표정으로 아이들에게 사인을 해주시고 계시는 이희운 목사님

5월 31일 삼보일배 마지막 날에도 나는 아이들과 함께했다. 마지막까지 아이들은 삼보일배를 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집회장소에
모여서 앉아있던 우리는 삼보일배 행렬을 찾아 광화문쪽으로 갔다. 여전히 맨앞에 서 계신 그 분들을 뵈었다. 삼보일배 행렬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었다. 아이들은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 삼보일배 행렬에 합류했다. 맨 뒤는 목발을 짚으신 한 시민이 계셨다.
당신의 자세로 온 마음을 다해 삼보일배하시는 모습을 뵈었다. 우리 모두가 그랬을 것이다. 자기의 온 마음과 몸을 모아 내가 발딛고
있는 이 땅과 가장 가까운 자세로, 그리고 나를 가장 낮추는 모습이자 가장 정성된 모습으로 그 행렬에 함께 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마음이 거대한 물결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늘 우리를 계속 일깨우는 네 분이 계셨다.

올봄부터 세상이 이상했다. 말도 안되는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는 세상이었다. 전쟁이 그러했다. 힘과 자본의 논리가 그대로 관철되는
지금의 세계가 이미 예고하고 있던 것이었는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현실이 되어버리는 상황이 되자 그 먹먹함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전교조관련한 일들이 터졌다. 일들은 틀어지고 꼬여갔다. 진보의 목소리는 모두 이익집단들의 자기 목소리로 치부되었다. 답답하고
막막하고 설명되지 않는 세상이었다. 그런데, 그런 세상에 죽어가는 새만금 갯벌같은 세상 한가운데, 그분들이 계셨던 것이다.
그 분들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내가 그분들과 같은 시공간에 존재하여 그분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했다.

그리고 난 새로이 아이들을 만났다. 아이들과 함께 느끼고 함께 얘기하고 함께 아파할 수 있었다. 그 공감과 연결됨의 체험이 우리를
깨어있게 하고 세상을 바로 볼 수 있게 함을 느낀다. 네가 아파서 나도 아픈 우리가 되었던 것이다.

삼보일배 홈페이지 어느 날 동영상 맨 앞에 이런 글이 있었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사람이 적을지라도 그들 때문에 세상은 아름답다”
참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보았다. 세상은 눈물겹게 아름다웠다.

삼보일배가 끝나고 많은 사람이 변화되고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새만금은 아프다. 오늘 삼보일배 갔던 한 녀석이 와서 울상이
되며 말한다 “선생님, 어떻게 해요… 방조제가 거의 완공이 된대요.” 그 녀석의 마음이 너무 기특한데… 나는 할 말이
없다. 어쩜 이리도 그들은 꿈쩍하지 않는지…문정현 신부님의 울분이 자꾸 떠오른다. 이 희망과 절망의 줄다리기는 끝남이 없을
것임을 짐작한다. 새만금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그러할 것임을. 그러나 그렇기에 희망을 놓을 수 없다.

삼보일배 속에서 만난 사람들, 아이들 하나하나 다시 떠올린다. 나에게 희망의 증거가 된 사람들. 그들을 떠올리는 것으로 나는
길을 잃지 않고 걸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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