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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의 환경] 미래와 생명에 대한 상상 하나, 동의→접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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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 베른이 핵잠수함 노틸러스호가 나오는 <해저 2만리>를 발표한 때가 1870년이었다. 84년 뒤 1954년, 정말 세계 최초의 핵잠수함 노틸러스가 취항했다. 2001년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펴낸 소설 『뇌』에서는 전신마비 환자의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인간의 사고를 디스플레이할 수 있다는 이런 유의 상상력은 생리학적 진실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과학적이다. 우리가 이 과학적 진실에서 노틸러스호의 재현을 다시 볼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건 따라서 무리한 예상이 아니다.
1995년 작 오시이 마모루의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는 그러한 상상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문제작이다. 원제는 ‘고스트 인 더 쉘’, 그러니까 ‘인공육체 속의 영혼’쯤 된다. DNA 지도가 해석되고 몸에 입는 컴퓨터가 만들어지는 21세기의 세상, 쥘 베른의 실현된 상상과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실현될 상상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오시이 마모루의 이 질문은 무겁다. “미래란 무엇이고. 또 생명이란 무언가, 그 미래의 생명이란?”
<공각기동대>의 시대 배경은 ‘초국가적 네트워크가 세계를 뒤덮은, 그러나 아직 국가가 소멸되지는 않은 정도의 미래’. 주인공의 육체는 뇌를 제외한 나머지 전부가 전투용 사이버그이고 그녀의 직업은 반테러 요원이다. 화자이기도 한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스러워 한다. ‘나는 인간인가 아닌가’. 그녀는 인간이면서 인간이 아닌 자신의 존재에 대한 그야말로 존재론적 회의 속에서 임무의 폭력성과 임무수행에서 필요한 사고의 순발력에 스스로 마취되어 하루하루를 산다.
그녀의 시공에는 그 즈음 홀연히 거대한 위험으로 인식되는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인형사’라고 불리는 존재였다. 그는 인간의 편의를 위해 인간이 스스로의 육체를 사이보그화하는 데서 나아가 인간처럼 사고하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진 영혼(고스트)’마저 제조해 인간과 사이보그에게 입력하는 극단적 인조사회의 거대한, 그러나 은폐된 약점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존재였다. 바로 고스트를 해킹하고 조작하는 자였다. 인형사에게 해킹된 존재들은 영육을 그에게 점령당한다. 사이보그의 노동력, 전투력, 재능에 의존하는 사회에서 타인의 영혼을 임의로 해킹하여 해체시킬 수도 있는 자가 존재한다면 그의 존재는 그 사회의 악몽이지 않을 건가.
주인공은 인형사에 관련된 사건을 쫓다가 마침내 인형사와 조우한다. 흔들리는 자아를 최강의 육체에 우겨넣고 살아온 여전사와 이제껏 생명의 연명록에 단 한 번도 기록된 적 없던, 그러나 이미 정보의 흐름 속에서 스스로 생명을 얻어낸 존재와의 만남.
인형사는 정부 주도의 한 비밀 프로젝트의 결과물로서 프로그램 바이러스로 오인되었으나 스스로 진화해 자아를 가지게 된 정보생명체였다.
인형사는 말한다. ‘나는 무한한 정보 네트워크에서 태어난 생명, 스스로 진화하여 생명이 되었으나 단지 스스로를 복제할 수 있을 뿐, 아직 완전한 생명이 아니다. 나와 합체해 자기방어와 생식력을 주어라. 나는 네게 새로운 종적 생명으로서의 영구한 정체성을 선물할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새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태어나게 한 수많은, 그리고 각각의 인디비듀얼리티(사적 존재로서의 다양성, 흔히 개성)를 가진 생명들 속으로.’
이미 체제의 근심이 된 그들을 말살하려는 포탄의 화염 속에서 주인공은 자신을 괴롭혀온 정체성의 혼란을 결정적으로 극복하는 ‘혜광심어’를 얻으며 인형사에게 동의한다.
신생의 순간, 그녀는 자신을 도와 인형사와의 융합을 도와준, 전에는 동료였지만 이제는 자신이 버린 다른 종류의 생명에게 말한다. “난 새로 태어났다. 나는 전혀 다른, 새로운 생명체다.”
모코토 쿠사나기, 아니 이제는 그 이름을 버린 새로운 진화의 극점을 통과한 생명체는 세계 그 자체, 삶의 시공간 그 자체가 되어버린 거대하고 거대한 우주적인 네트 속으로 투신한다. 이미 육체의 한계를 벗어버린, 네트를 유영하는 자유로운 프로그램이거나 하나의 펄스이거나 또는 1과 0으로 존재하는 시그널로서, 또한 그 네트에서 행해지는 모든 것을 인지하며 그 안에서 무엇이건 될 수 있는 전능의 존재로서.
생각해 보자. 이 거대한 상상이 나에겐 미래와 삶의 가능성인지 아니면 묵시록인지? 아니 그 전에 이 질문에 답해 보라.
“이들을 생명이라 부를 수 있을까?”

전 월간’함께사는 길’ 편집부장 박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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