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회원이야기

아버지와 동화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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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살 되던 해 봄 나는 선생님께서 빌려주신 그림책 한 권에 푹 빠져 있었다. “이 책 다 읽으면 다시
갖고 오너라. 다른 책을 빌려 주마.”『헨델과 그레텔』이라는 서양의 동화책이었다. 당시로서는 예쁜 여선생님께
책을 빌려 볼 수 있다는 건 이만저만한 행운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나는 그림책들을 빌려볼 요량으로 학교에
열심히 다니기 시작했다. 우리 어머니 표현에 의하면 알록달록한 과자로 만든 집 이야기를 읽고 잠들 때마다
입가에 침을 한 주전자씩은 흘렸다고 한다.

선생님께서 주신 동화책의 배경에 아버지의 그림자가 있었음을 알게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둘째아들을 일찌감치 학교로 보내 잦은 전근으로 고달파 하셨던 어머니의 손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요량을
갖고 계셨던 모양이다. 내 손을 이끌어 학교로 데려가 입학시켜달라고 사정사정 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또렷하게
생각나는 것을 보면….. 그러나 학교에 보내 짐을 덜겠다던 아버지의 희망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나이에 비해 이른 학교생활로 첫날부터 반쯤 얼이 빠져있던 내가 학교에 죽어도 안가겠다고 버티기 시작한 것이다.

동화책을 사서 선생님께 건넨 사람은 바로 아버지였다. 학교로 가는 길에 놓여있던 콘크리트 다리 난간을
폴짝폴짝 뛰어 다니다 시냇물로 곤두박질해 정신을 잃었던 봄날이었던 듯하다. 학교 양호실에 누워 창 밖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을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했을 때, 나는 선생님의 나지막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젠
책 사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이번에 학교에서 몇 권 구입했으니까요.”
그 때로부터 삼십 오 년이 흘렀다. 겨울잠 자던 개구리가 나오고, 땅 속 모든 생명들이 꿈틀거리는 이 봄날
다섯 살 난 아이와 함께 동화책을 읽으며 문득 아버지를 떠올린다.

필자소개
: 안병옥 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

환경운동연합 전신인 ‘공해추방운동연합'(공추련)부터 함께 활동하던 안병옥 부소장은
91년 독일로 건너가 하천생태학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올해 새롭게 환경운동연합
시민환경연구소에 부소장으로 오셨습니다.
두아이의 아버지로, 성실하고 온화하신 대선배님이 환경센터에 계심으로 더욱 든든합니다.

시민환경연구소의 환경에 관한 끊임없는 연구와 운동에 큰 활력소가 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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