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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가는 겨울밤 술 익어가는 소리
글 박은수 기자 ecoactions@kfem.or.kr
사진 이성수 기자 yegam@kfem.or.kr
“참으로 술맛이란 입술을 적시는 데 있다. 소 물 마시듯 마시는 사람들은 입술이나 혀에는 적시지도 않고 곧장 목구멍에다 탁 털어 넣는데 그들이 무슨 맛을 알겠느냐?”
다산 정약용 선생의 호통에 목구멍으로 넘어가던 술이 꽉 막힌다. 고백하건데 술이라면 빠지지 않는 나지만 술맛은 모르겠다.
어디 나뿐이겠는가. 술을 맛으로 먹는 사람이 어디 있던가. 적어도 내 주변에 없다. 맛을 음미하기는커녕 첫 잔은 ‘완샷’이라며
목구멍에다 털어 넣고 옆 사람의 빈 잔은 마치 그에 대한 결례인양 술 채우기 바쁘다. 술잔은 오고가고 술병은 늘어나지만 시간이
갈수록 술맛은 오리무중이다. 결국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과 반쯤 꼬부라진 혀로 대들지도 모른다. “다산 선생님, 술을 맛으로
마시나요, 취하려고 마시지.”
주당의 변명
굳이 변명을 하자면 다산 시대에 태어났다면 술 맛을 따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때는 술도 음식이라 집집마다 술을 빚었다.
된장, 고추장 담듯 술을 빚었다. 쌀과 누룩, 물만으로도 향긋한 음료가 만들어졌다. 들어가는 재료는 비슷하더라도 집집마다 내려오는
비법이 있었고 술 만드는 이의 손맛과 그 집을 둘러싼 기운들(온도와 미생물)에 따라 숨을 쉬며 술이 익어가면서 그 집만의 술맛이
완성됐다. 그 술을 어찌 술이라 하겠는가. 맛도 좋고 흥도 나는 음식이지.
하지만 1910년대부터 술맛이 변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조선의 주권(主權)만 빼앗은 것이 아니다. 세금수탈을 목적으로
주세령을 공포하면서 집에서 술 빚는 일을 금했고 술을 빚으면 높은 비율의 세금을 부과했다. 주권(酒權)마저 빼앗은 것이다. 해방이
되고서도 주권(酒權)은 회복되지 않았다. 박정희 정권은 집에서 술 빚는 것은 허했지만 식량부족을 이유로 쌀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쌀 대신 밀가루, 고구마, 감자 등으로 술을 빚게 했는데 재료가 달라지니 술맛을 찾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혼란스런 시기를 지나면서 주권은 집에서 시장으로 넘어갔다. 집에서 소규모로 빚어먹던 음식은 이제 상품이 되어 대량생산되고
유통된 것이다. 이쯤 되면 술맛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결국 사단이 나고야 말았다. 막걸리 발효시간을 최소화하고 생산단가를 낮추기
위해 효모 대신 공업용 카바이드를 넣은 막걸리들이 시중에 유통됐고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질 나쁜 막걸리, 마시면 머리 아픈
막걸리란 오명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이후 안전성 논란으로 카바이드는 식품에 사용이 전면 금지되었지만 그 때의 막걸리에 대한
선입견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카바이드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막걸리에는 첨가물이 들어간다. 아스파탐이 대표적이다. 아스파탐은 설탕보다 200배나 강력한
단맛을 내는 식품첨가물인데 시중에 판매하는 막걸리 대부분이 아스파탐을 사용한다. 업계는 단맛을 찾은 소비자들 때문이라고 하지만
다른 사정도 있다. 쌀 자체에 당분이 있기 때문에 막걸리는 단맛이 난다. 하지만 막걸리의 단맛을 내기 위해서는 적어도 쌀
1킬로그램에 물 4리터를 써야 한다. 아스파탐을 사용하면 쌀 1킬로그램에 물을 8리터까지 넣어 만들 수 있다. 원가가 반으로
줄어드는데 흔들리지 않을 업계가 어디 있겠나.
이쯤 되면 다산 선생이라도 술맛 찾기를 포기하실 듯싶다. 차라리 취하고 싶을 것이다.
주권 회복, 지화자!
그럼에도 사람들은 술을 마신다. 지난해 국세청 통계를 보면, 국민 1인당 14.8리터의 술을 마신다. 소주는 66.6병,
맥주 100.8병, 막걸리 14.2병을 마신다. 15세 이상 술 소비량 세계 2위, 위스키 등 독주 소비량은 OECD 가입국 중
1위란다. 낯부끄러운 기록이지만 OECD 가입국 중 노동시간이 가장 길고, 자살률은 평균의 2배나 되며, 출산율은 최하위라는
기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사회가 술에 너무 관대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뒤를 잇는다. 술에 관대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따져볼 일이다. 예를 들어 술을 마시든 마시지 않았든 폭력은 나쁘다. 죄질을 판단하는데 음주 여부는 필요하지
않다.
맛이 사라졌다고 해서 멋까지 버릴 필요는 없다. 특히나 막걸리에는 오덕(五德)이 있다 하지 않나. 취하되 인사불성일 만큼
취하지 않고 새참에 마시면 요기되고 힘 빠졌을 때 기운을 돋우고, 안 되던 일도 막걸리 한 잔 마시고 넌지시 웃으면 되고, 더불어
마시면 크고 작은 감정들이 풀린다는 그 오덕 말이다. 그 멋을 부려야지 강요하고 경쟁하듯 취하고 내가 술을 먹는 것인지 술이
나를 먹는 것인지 오락가락한다면 이는 술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 해가 지나기 전 빼앗겼던 주권을 되찾아야겠다. 삼겹살에 소주 약속을 미루고 내 손으로 술을 빚어 술맛부터 찾아야겠다.
공자의 쌀, 노자의 누룩, 부처의 물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시인 조지훈의 삼도주가 아닌 내 손맛이 깃든 컬컬하지만 청신한 맛을 볼
수는 있지 않겠나. 술이 익으면 좋은 사람 불러 입술에 적셔본 술맛을 논하고 올 한해도 잘 넘겼다고 토닥이고 혹여나 가슴에
품었던 응어리도 풀고……. 그 어떤 술맛이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우리집 막걸리 빚기
사실 좀 황당했다. 막걸리에 들어가는 재료며 방법이
이렇게 간단하다니. 모든 음식이 그렇듯 청결과 손맛, 그리고 자연의 시간을 기다리는 자세만 있으면 된다. 술맛을 아는 남자,
하우스막걸리 예찬론자이자 울산환경연합 국장인 이동익 씨가 ‘막걸리를 빚는 알고 보면 간단한 비법’을 전한다.
•재료: 쌀 1kg, 누룩 0.2kg, 물 1.5L •용기: 찜통, 거름망, 술담을 용기, 거름 주머니(모든 기구는 소독한 후 사용한다)
1.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쌀을 씻는다. 그리고 2~3시간 정도 물에 충분히 불린다.
2. 물에 불린 쌀은 채에 담아 물기를 뺀다.
3. 고두밥을 짓는다. 찜기에서 한 40분 정도 찐 후 불을 끄고 20분 정도 뜸을 들인다.
4. 고두밥을 다 지었으면 펼쳐 놓고 밥을 미지근하게 식힌다. 밥이 뜨거우면 효소가 죽어버린다.
5. 누룩은 미지근한 물에 30분 정도 담가 놓는다.
6. 어느 정도 식은 고두밥에 누룩을 넣고 치댄다. 20~30분 정도 치대면 떡처럼 찐득해진다.
7. 술독을 준비하는데 소독이 중요하다. 막걸리는 발효식품이라 발효과정에서 나쁜 균이 술을 변질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뜨거운 물을 붓거나 수증기를 쐬어 용기를 소독한다.
8. 술독에 누룩을 치댄 고두밥을 넣고 물을 붓는다. 뚜껑을 닫는데 2~3일 정도는 숨을 쉴 수 있도록 공기구멍을 만들어야 한다. 비닐로 씌울 때는 이쑤시개로 5~10개 정도 뚫어주고 뚜껑일 경우는 느슨하게 닫아준다.
9. 술 익기 좋은 온도는 25~27도. 그 이하는
발효가 더디고 그 이상 온도가 올라가면 효소가 죽어버린다. 아파트라면 베란다에 두면 적당하다. 발효가 시작되면 보글보글 기포가
올라오는데 소독된 주걱으로 위아래를 잘 저어 발효를 도와준다. 2~3일 정도 저어주다가 뚜껑을 꽉 닫아주고 술이 익어가길
기다린다.
10. 술을 담근 지 7일이 지나면 발효가 거의 다 된다. 뚜껑을 열어 술을 잘 저은 다음 거름망과 천주머니로 술을 걸러낸다.
11. 걸러진 술의 도수는 16도 정도. 물을 넣고 도수를 조절하는데 걸러진 술에 같은 양의 물을 넣으면 8도 정도로 내려가고 술의 양은 두 배가 된다.
12. 막걸리는 하루 정도 실온에 두었다가 냉장고에 보관하고 마시면 된다. 특히 김치냉장고에 보관하면 더 깊은 맛을 볼 수 있고 청량감을 더 원하면 마실 때 워터토닉을 넣으면 된다며 이동익 국장이 깨알 같은 팁을 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