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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이유 71] 슈퍼스타 한철 씨 생명의 노래를 불러줘
글 박은수 기자 ecoactions@kfem.or.kr
사진 이성수 기자 yegam@kfem.or.kr
시민들과 하나되어 부르는 노래 ‘핵을 넘어 태양과 바람의 나라로
10월 20일 찬바람에 비까지 내릴 것 같은 날씨에도 탈핵을 위해 청계광장에 모인 이들의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괜찮아 잘 될 거야. 너에겐 눈부신 미래가 있어. 괜찮아 잘 될 거야. 우린 널 믿어 의심치 않아.” 무대 위 가수 이한철 씨는 기타와 젬베만으로 3000명이 넘는 이들을 사로잡았다. 그의 노래는 마치 탈핵을 바라는 시민들에게 전하는 위로와 응원 같았다.
그를 다시 만난 건 서울 기독교회관에서다. 남북평화재단 5주년 축하공연을 위해 왔다는 그에게 요새 자주 본다고 하자 “하는 일은 달라도 서로 같은 방향을 보기 때문”이라며 웃는다.
카메라 대신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다
가수 이한철, 사실 그의 모습은 화려한 연예인과는 거리가 멀다. 수수한 차림에 기타 하나 덜렁 메고는 천진난만하게 웃는 얼굴이며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인사를 건네는 그는 그냥 아는 오빠처럼 친근하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DJ가 되고 싶었어요. 음악을 하는 것보다 좋은 음악 골라서 듣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소개해주는 게 좋았거든요. 그러다 우연하게 기타를 잡게 되고 연주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곡을 만든 것 같아요.” 그는 처음 만든 곡 ‘껍질을 깨고’란 노래로 1994년 대학가요제 대상을 거머쥐고 가수로 데뷔했다. 벌써 18년, ‘슈퍼스타’ 뿐만 아니라 솔로앨범도 4장이나 내고 불독맨션, 주식회사 등 그룹을 결성해 다양한 곡으로 활동하는가 하면 가수 이소라 씨를 비롯해 다른 가수들의 노래까지 만들어준 실력파 뮤지션이다. 노래를 만들 때는 진심을 담아 만들고 스스로 그 노래에 감동 받지 않으면 남에게도 감동을 줄 수 없다며 발표하지 않는 고집스런 철학도 있다.
데뷔 초 그는 시트콤 등 방송활동을 통해 얼굴을 알리기로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방송에서 그를 볼 수 없게 됐다. “자의 반 타의 반이지요. 예능 방송 환경에 내가 적합하지 않은 것 같고 나도 뮤지션이 곡만 잘 쓰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부담스러운 자리에서 내가 아닌 다른 나를 만들어내는 것보다 내가 즐길 수 있는 자리에서 즐겁게 음악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꼭 카메라 앞에서만 노래를 불러야 하나. 무대가 크든 작든, 사람들이 얼마나 모이든 중요하지 않다. 마음 가는 대로, 자신을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간다는 한철 씨는 클럽이나 소극장 외에도 외규장각 도서 및 약탈문화재 반환을 위한 콘서트, 천주교 사형폐지 기원 생명이야기 콘서트, MBC노조 파업지지 콘서트, 용산참사 유가족 돕기 콘서트, 최근 탈핵 집회까지 수많은 무대에 올랐다.
일부러 찾아다닌 것은 아닌데 마음 가는 대로, 자신을 원하는 곳을 따라가다 보니 그리 되었다는 그, “정치외교학부를 전공하긴 했는데 학교 다닐 때는 정치, 사회문제에 정말 관심이 없었어요. 학력고사 성적에 맞춰 간 거라서. (웃음) 20대 후반 30대 접어들면서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내가 하는 음악이 내 방과 내 머릿속에서 나오지만 그것이 세상과 무관하지는 않아요. 무엇보다 제 아내가 관심이 많아요. 결혼하고 더 관심이 많아졌죠.”
그가 살짝 걱정이 됐다. 방송가에서 공공연히 블랙리스트가 떠돈다고 하지 않던가. “주변에서 너무 나서지 말라고 말리는 분들도 있긴 하죠. 하지만 고민하고 주춤주춤하는 순간에 와이프가 하는 게 맞지 않겠냐고 얘기하니깐 다시 생각하고 망설일 필요가 없잖아요. 그리고 저는 인디가수에요.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고 하기 싫은 것은 안 해도 된다는 장점이 있어요. 뭐 블랙리스트 올라가도 상관은 없어요. 큰 무대에 못 서고 힘 있는 미디어를 통해 음악을 손쉽게 퍼뜨리지 못해도 음악을 못하진 않잖아요. 공연은 계속 할 수 있잖아요. 이런 곳까지 못하는 건 아니니깐.” 그리곤 씩 웃는다. “일반 공연과 사회적 공연할 때 느낌이 다르긴 해요. 단순히 음악을 즐기는 것만이 아니라 필요한 순간에 연주를 하면 무대에서도 그게 다 보여요. 어떨 때는 위로를 건네고 또 어떨 때는 신명나는 분위기를 만들고, 그게 참 행복한 것 같아요. 공연하다가 울컥 할 때도 있죠. 손 놓고 있으면 내가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 그래서 더 열심히 하는 것 같아요.”
살아있는 모든 것은 아름다워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도 크다. 2007년 삼성중공업과 허베이스피리트호 충돌사고로 서해가 기름 범벅이 되었을 때 그는 동료가수들과 함께 ‘기적’이란 노래를 부르고 노래 저작권과 수익금 전액을 서해안 돕기에 내놓은 적도 있다. 그럼에도 그 당시 서해로 달려가 기름을 닦지 못했다며 미안함을 전하는 그다.
생활 속에서도 깨알 같은 실천이 빠질 수 없다. 일회용컵 대신 텀블러를 사용하고 가급적 차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려고 한다. “관심은 있는데 실천을 잘 하지 못해요. 제가 아는 형 중에 윤형배란 형이 있어요. 제주도에 사는데 삶 자체가 생태적이에요. 화장실도 생태화장실을 만들고 자전거로 이동하고 심지어 잘 씻지도 않아요. (웃음) 그 형이 좋은 이야기도 해주고 책도 소개해줘요. 많이 배우죠.”
환경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그의 노래 ‘모든 것은 아름다워’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숨 쉬는 나무들, 헤엄치는 물고기들, 나부끼는 저 새들도 모든 게 아름다워. 우릴 에워싼 모든 것, 저마다 이유가 있어. 빛나는 지구를 나눠 쓰는 하나일 뿐이라네.’란 가사처럼 그는 환경을 단순히 나에게 좋은 것, 해로운 것으로 나누지 않는다. “한 번은 방송촬영 때문에 카리브해 섬나라 트리니다드 토바고를 여행한 적이 있어요. 세계적인 바다거북이 산란장이 있었는데 한밤에 젊은이들과 거북이 구조 활동을 벌였어요. 알에게 막 깨어난 거북이들이 바다로 가야 하는데 바로 옆 도로에서 나오는 불빛 때문에 도로로 나가 차에 치여 죽는 일이 많았거든요. 한 밤에 도로로 가는 거북이들을 잡아 바다에 보내주는데 내 손안에서 거북이가 발로 간질이는 거예요. 그 때 왠지 모를 감동이 등 뒤로 올라오더라고요. 책에서 생태적 감수성이란 단어를 봤을 땐 잘 와닿지 않았는데, 아 생태적 감수성이란 이런 게 아닐까 싶었죠. 내가 살아있는 무엇인가를 지켜줬을 때 오는 감동이랄까. 못 지켜주면 화가 나기도 하고 눈물도 나고. 그런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할 것 같아요.”
그러기에 4대강사업은 더욱 안타깝다. “뮤지션들도 4대강사업은 안 된다고 공연도 엄청 했어요. 근데 우리나라는 대통령의 집중된 권력의 힘이란 것이 엄청 난 것인가 봐요. 그렇게 국민들이 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래서 투표를 해야 하고 좋은 사람을 뽑아야 하나 봐요.”
세상과 함께 노래하는 그대가 바로 슈퍼스타
2012년도 이제 한 달 남았다. 돌아보면 숨 가쁜 한 해였다. 3년 만에 『작은방』이란 4집 솔로앨범을 냈다. 그 이전에 밝고 신나는 분위기와 달리 마음을 추스르고 습관적으로 들떠서 보여주지 못했던 감성을 담았다며 그에게 있어 쉼표와도 같은 음반이라고 소개한다. 불독맨션의 재결성도 빼놓을 수 없다. 또 에코생협과 함께 당뇨병, 고혈압 등 만성질환자를 위한 친환경식단 에코밥상 캠페인에도 참여하고 있다. 매번 강좌 때마다 진행과 공연을 맡아 강좌의 흥미를 돋운다. 그밖에 크고 작은 공연들, 공연들에서 만났던 수많은 관객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12월에는 환경재단과 함께 피스 엔 그린보트를 탄다. “3년 전에도 탔어요. 출항을 하면 배는 그 자체가 마을이에요. 그게 정말 좋더라고요. 작은 마을 단위로 공동체가 이뤄지면 여러 가지 문제가 없어질 것이라는 내용을 책에서 본 적 있는데 그런 경험을 그 안에서 합니다.”는 그는 벌써부터 설렌다. 12월 29~31일에는 연말토크콘서트를 한다. 토크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되는 연말콘서트는 관객들과 함께 2012년을 되돌아보고 못 다한 이야기들을 풀어내며 내년을 준비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죽을 때까지 가수로 살고 싶다는 그, 어떤 가수로 남고 싶을까. “누군가가 ‘힘들 때 이한철 씨 노래가 큰 힘이 되었어요.’라고 말해줄 때 그때 정말 행복해요. 누군가 필요한 순간에 배경음악이 되는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의 노래엔 사랑이 있고 사람이 있고 생명이 숨 쉰다. 노래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때론 세상을 위로하고 때론 용기를 주는 그야말로 슈퍼스타다. ‘오빠’를 외치는 소녀부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세상과 함께 하는 한 한철 씨를 외치는 시민부대는 그대와 함께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