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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영화제 레드 카펫은 여배우들의 노출 경쟁의 공간이 됐다. 특히 신인배우들의 과감한(또는 과도한) 노출은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 확대돼 실시간 이슈화 된다. 자본주의 광고 시장의 3B(Baby,Beast.Beauty) 법칙에서 보듯이 섹슈얼한 어필은 잘 팔리는 상품 중에 하나다. 또한 우민화 책략의 대표격인 3S 정책 (Sports, Screen, Sex) 역시 섹스어필이 포함되어 있다.
한국에서 프로야구와 프로축구가 시작된 것은 각각 1982년과 1983년이었다. 비슷한 시기 극장가에서는 애마부인 시리즈와 매춘 등의 현대물과 변강쇠전 등의 고전 애로물이 흥행 돌풍을 만들었다. 80년 대 초중고를 다닌 나에게 거리 곳곳에 붙어 있던 영화 포스터는 성적 호기심을 극히 자극시키는 대상이었다. 스크린에 비춰지는 영상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 투영된 가상의 창작물이라는 점에서 당시의 성적 사회상을 말해 주고 있다.
인터넷의 보급은 외국의 하드코어 포르노가 퍼져 우리 사회의 은밀한 성적 사회를 대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노골적인 성적 표현은 여전히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나는 이러한 원인의 근저에 조선시대 성했던 유교적 의식이 깔려 있다고 배웠고 또 그렇게 인식했다.
조선시대 사회는 엄숙하고 도덕적인 사회라는 것이 나의 관념적 지식이다. 이런 의식을 두고「우리문화의 수수깨끼」의 저자 주강현 교수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조선시대 민중에 풍속에서는 대낮에 여성의 달거리 속옷을 드러내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 남자들이 이를 용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만큼 상황이 절실했다는 것이다.
남자들은 일상적 제의 및 의사 결정에 있어 주도권을 갖는 반면, 여성들은 위기의 상황, 예를 들어 극심한 가뭄 등 천재지변과 전쟁 등 사회변란 등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한계에 상황에서 등장한다. 주강현 교수는 여성들의 등장은 유교 전통에 반하는 ‘반란’의 형태로 등장한다고 지적한다. 진도의 도깨비 굿이 대표적 사례이다. 과부와 새댁의 달거리 피가 묻은 속곳을 장대에 올리고 나면 여자들은 무서울 것이 없다.
이를 두고 “여성들은 못내 드러내기 어려운 속곳마저 벗어들고 시위를 하니 이제 무서울 게 없다. 우먼파워가 기세등등하게 폭발하는 순간이다”라고 주교수는 표현하고 있다. 여성의 달거리는 생식을 상징한다. 주교수는 “생식의 힘을 주술의 힘으로 바꾸어서 마을공동체의 운명을 구하고자 도깨비 굿을 행한 것”이라 정리하고 있다.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황평우 소장에 따르면, 조선시대 관리의 가장 큰 역할을 ‘기우제’라 했다. 쌀농사를 경제의 근본으로 삼고 있는 조선의 경우 벼의 파종기와 생장기에 가뭄은 매우 치명적이다. 조선시대의 경우 가뭄 등이 발생하면, 왕은 스스로 자신의 부덕을 탓했다. 조선조 3대 왕인 태종은 자신이 죽어 용이 되어 비를 뿌리겠노라 했고, 실제 태종의 기일 즈음에 내리는 비를 ‘태종우’라 하였다고 한다.
지난해 5~6월 전국에 걸친 가뭄으로 논과 밭에 물을 대지 못해 난리를 났었다. 태종의 기일은 음력 5월 10일로 양수기 없었던 시절에는 그야말로 가뭄 끝에 단비였을 것이다. 그러니 왕이 하사한 비라 하여 비를 피하는 도롱이 등을 쓰지 않았다.
2008년 봉태규 주연의 영화 ‘가루지기’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그려진다. 영화는 80년대 이대근, 원미경 주연의 변강쇠전과 다른 맛이 있다. 영화는 매우 허약한(?) 남자 강쇠가 우연한 기회에 땅속에 숨겨진 포션을 득템해 말 그대로 강쇠가 되어 벌어지는 일을 풀어 나가고 있다.
<영화 '가루지기' 포스터>
영화에서 극심한 가뭄이 들자(위기의 상황) 마을 아낙들의 주도해 (여자들의 반란) 마을 뒷산 굴에 살고 있는 영험한 곰신(熊申)에게 처녀를 바치며 비를 기원하는 의식을 치르는데(생식력을 가진 처녀를 통한 주술적 기대), 그것이 매우 농염(성적 반란)하다. 공동체가 몰락하는 위기의 상황에서 여자들이 들고 일어나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무 껴안기 운동으로 알려진 인도의 칩코 운동은 비폭력 저항운동이라는 간디주의에서 시작해 에코페미니즘의 대표적 사례로 소개되는 경우이다. 칩코 운동은 마을 공동체의 숲을 지키기 위해 마을의 여성들이 주도해 개발 업자에게 저항했고, 공동체 내 남자들의 알코올 중독과 가장폭력 등을 해결한 성공적 사례이다. 시공간이 다르지만 위기의 상황에서 여성이 더욱 강한 것이 사실인가 보다.
다시 조선시대 이야기로 돌아가지. 조선시대 여성들의 성적 반란은 디딜방아 훔쳐오기와 줄다리기 굿 등에도 드러난다고 한다. 디딜방아는 곡식을 빻는 농기구로써 방아확과 방아 공이 등으로 구성돼 있는데, 생김새를 그대로 암수를 상징한다. 가뭄과 같은 극한 상황이 되면 소복을 입을 아낙네들은 옆 마을의 디딜방아 훔쳐와 가장 번화한 곳에다 거꾸로 세우고, 거기다 달거리 속곳을 단체로 걸어 둔다고 한다.
주 교수는 이를 두고 “하늘이 보고 까무라칠 일이 아닌가. 하늘도 놀랄 지경이라 비를 퍼붓고야 만단다”라면서 “피 묻은 속곳이 걸쳐진 디딜방아는 심지어 돌림병을 막아주는 힘까지도 지녔다고 믿는다”고 말한다. 줄다리기의 경우 암줄과 수줄로 나뉘는데, 남성의 생식기를 상징하는 비녀목을 암줄과 수줄 사이에 끼워 남녀의 행위를 상징화 한다. 줄다리기는 남자와 여자를 나눠 했는데, 암줄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한다.
어느 노시인께서 연이어 여성이 주도하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며 라디오 인터뷰에서 강하게 주장했다고 한다. 동서의 많은 사례가 위기의 순간에 여성이 남성보다 훌륭하게 대응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 어떤 여성은 남성보다 더 남성성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는 점에서 노시인이 지지하는 여성에게 여성성이 충만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마도 쌍차, 반값 등록금 등 우리 사회 현안을 풀어 가는 과정을 보면 노시인이 지지하는 여성의 여성성이 검증되지 않을 까 한다. 또한 과격한 남성성을 지닌 현 정권이 어머니 ‘강’을 망친 것에 대해서도 어떤 정책을 낼지도 지표가 될 듯 하다. 17년 만에 ‘우리문화의 수수깨끼’ 다시 읽다 보니 여러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