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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 속에서 도보여행, 힘들지만 그래도 멋이 있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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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내리는 겨울 동해, 순백의 백사장

 

 

 

12월 1일, 강원도 영동지역은 아침부터 폭설이 쏟아졌다. 낯 한 때 대설주의보가 발령될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동해시부터 강릉시를 목표로 걷고 있었다. 걷는 이에게 폭설은 엄청난 시련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하루였다. 

 

 



 

전날 동해시 묵호중학교 학생들 대상으로 ‘영화 속 환경 이야기’ 특강을 끝내고 묵호항을 거쳐 어달 해수욕장까지 약 1시간 반 정도 걸어 갈 때 까지만 해도 그야말로 ‘해피’했다. 생각 보다 날은 춥지 않았고, 높고 푸른 하늘빛은 그대로 바다로 이어져 둘을 구분하기 쉽지 않았다. 

 

 

 

포구에서는 오징어잡이 배들이 출항하고, 때를 맞춰 수많은 갈매기들의 군무가 석양빛을 받아 일렁이고 있었다. 그야말로 겨울 바다 도보 여행에서 딱 좋은 상황이었다. 이런 상태라면 새벽녘 이글대는 해님도 볼 수 있을 것이라 잔뜩 기대 했었다. 어달 해수욕장 부근에서 이른 시간에 숙소를 잡은 것도 바로 그 탓이다.  

 

 

 

다음 날 새벽 네 시부터 설레발쳤다. 2층 숙소 창문을 열고 주황빛 가로등에 비춰진 파도소리를 들었다. 하얀 포말이 연실 올라오는 것이 어제보다 거세다. 급히 일기예보를 검색했다. 다른 지역은 추워도 맑다고 하지만, 강원 영동 지역은 눈 또는 비가 내린다고 한다. 강수확률 60%에 적설량 5mm. 

 

폭설에 눈을 뜨기도 힘들어 

 

고생의 시작은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적설량은 잘 못 본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5mm가 아니라 동해시 예보는 5Cm 였다. 나의 수차례 여행경험은 눈 또는 비 5mm 정도면 그냥 무시해도 된다고 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동해 일출 시간인 새벽 6시 전에 길을 재촉했다.  

 

 

7번 국도인 일출로를 따라 대진항에 들어서기 전부터 어둠 속에서 얼굴을 때리는 것이 있었다. 가로등 주위를 살피니 눈이다. ‘차라리 비가 아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겨울에 비를 맞으면, 가뜩이나 바람이 강한 해안에서는 체온 관리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주위가 밝아 오기 시작한 망상해수욕장부근부터 바람은 눈을 더욱 강하게 뿌려댔다. 너른 백사장에는 조금씩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조그마한 눈 알갱이가 보이는 것이 싸리눈이다. 그때부터는 걷는 것조차 힘들었다. 강릉 쪽에서 강한 바람이 불고 있어서, 나는 바람을 안고 걸었다. 그 때문에 얄미운 눈 알갱이들은 모자와 안경 틈새를 비집고 안구를 바로 때린다.  

 

 

따가운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연달아 때리는 통에 눈을 뜨기조차 힘들었다. 인도가 없는 좁은 국도변이라 차들은 비록 속도를 높이지 못하지만, 내 옆을 스치듯 지나간다. 도로는 곳곳이 이미 빙판으로 변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 까, 견인차가 앞 쪽이 상당히 부서진 승용차를 끌고 가는 모습을 봤다. 확인해 보니 동해고속도로에서 13중 추돌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차가 빙판길에 미끄러져 나를 덮칠 수도 있을 것 같아 억지로 눈을 뜨려 했지만, 눈은 자율신경 기관이라 내 의지를 따르지 않았다.  

 

주변이 온통 눈밭으로 변하니 잠시 앉아 쉴 곳도 마땅치 않다. 오전 10시가 넘어서자 눈은 아예 함박눈으로 변해 더욱 거세게 몰아치고 있었다. 결국 더 이상 전진은 무리란 판단에 옥계 휴게소 부근에서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가기로 했다. 

 

아무도 밟지 않은 순백의 백사장, 딴 세상에 온 듯 

 

되돌아오는 길은 바람이 뒤에서 불었기 때문에 한결 수월했다. 정오 가까이 되니 눈과 바람이 다소 잦아드는 듯 했지만,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빙판이 된 길에 눈이 쌓여 확인할 방법이 없는 통해 넘어질 뻔 했던 것이 수차례 였다. 그 때마다 몇 년 전 다친 무릎과 허리에 무리가 갔다. 최대한 종종걸음으로 신발의 앞쪽부터 눈을 짚어야 했다. 그렇게 이날 폭설 속에서 30Km를 걸었다.  

 

 

돌아오는 길에 망상해수욕장을 다시 찾았다. 백사장은 이미 황금빛이 사라지고 순백으로 덮여 있었다. 백사장 한편에 지난 여름의 화려했었을 모터바이크들은 마치 얼어붙은 듯 고요했다. 어느 누구의 흔적도 없는 순백의 광장이 눈앞에 펼쳐지니, 별천지에 온 듯 했다. 나 역시 함부로 발자국을 남길 수 없어 왔던 길로 되돌아 갔다. 

 

폭설 속에서 걷다 보니 발바닥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조금 씩 다르다. 눈이 많이 쌓인 곳에서는 ‘뽀드드득’ 거리고, 적은 곳은 ‘뽀득’ 거린다. 부지런한 주민들이 눈을 치운 곳은 아무 소리 없다. 주변 나무들도 옷을 갈아입어 눈꽃이 반짝였다. 어제 봤던 홀로 바다에 서있는 까막바위도 그새 머리가 하얗게 변해 있었다.  

 

눈은 내가 서울행 버스를 올라 탄 3시 경까지도 계속됐다. 잠시 수그러드는 듯 했지만, 이내 다시 거세지는 상황이다. 폭설 속에서 8시간을 걸었던 탓에 버스에 앉자마자 잠이 들었고, 평창 휴게소에서 눈을 떴다. 세상에나…하늘엔 구름 한 점 없었고, 날씨는 포근했다. 폭설 속에서 도보여행, 권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맛이 있는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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