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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동점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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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상류 도보여행, 삶을 생각하다.

 

 

 

 

삶이 고달프고 지칠 때, 나는 곧잘 걷는다. 걸으면서 내 안의 나와 이야기 한다. 그리고 세상이 서럽게 그리울 때도 걷는다. 차를 타면 주변 모습은 속도만큼 그저 빠르게 흘러가지만, 걸으면서 보이는 세상은 곧 내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세상이 된다. 

 

지난 11월 3일, 나는 작년과 올 여름에 이어 강원도 태백시의 낙동강 발원지 황지연못부터 경북 봉화군 석포면 승부리까지 약 40Km 구간을 걸었다. 이 길은 태백선 기차가 낙동강 옆 31번 국도와 910번 지방도를 따라가는 곳으로, 중간 지점에 지금은 폐쇄된 동점역이 있고, 마지막에는 하루 왕복 3번 기차가 다니는 승부역이 있다.  

 

 

 

 

동점역(銅店驛)의 이름을 보면 과거의 모습이 묻어난다. 동점역 부근에는 퉁점 마을과 말바드리 마을 등 재미난 이름의 마을이 있다. 예전 금과 은을 캐는 곳을 금점(金店), 은점(銀店)이라 했는데, 퉁점은 구리의 우리말로 동점(銅店)을 말한다. 말바드리 마을은 구리 원석을 싫은 말(馬)을 받은 곳이란 의미이다. 이 일대가 동광석으로 이름깨나 알려졌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승부역(承富驛) 부근의 승부 마을은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재물이 오르는 곳’이다. 지금은 퇴색했지만, 과거에는 이곳이 화려했던 곳이라 추측케 한다. 실제 승부역에는 ‘승부역은 하늘도 세평이요, 꽃밭도 세평이나, 영동의 심장이오, 수송의 동맥이다’라는 바윗글이 있다. 깊은 산으로 둘러싸여 보이는 하늘은 세평에 불과하지만, 영동지역의 물품을 싫어 나르는 철도가 있어 예전의 화려함을 말해 주는 것이다. 

 

 

 

 

낙동강 동점승부코스에는 손 덜 탄 낙동강의 모습이 남아 있고, 물이 산을 뚫고 지나가는 구문소(求門沼)라는 절경이 있어 걷기에 심심하지 않다. 여름에는 물기를 잔뜩 머금은 태백과 봉화의 깊은 산 골짜기에서 시리도록 찬 물이 내려온다. 가을에는 갈색으로 변하는 리기다 소나무가 사시사철 변하지 않는 토종 소나무와 함께 흐르는 강과 어우러져 색의 향연을 만들어 준다.  

 

내가 이 코스를 좋아 하는 이유는 삶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행가 가사처럼 누군가에게 ‘인생은 미완성’이다. 또 누군가에게는 옷 한 벌 건졌기 때문에 ‘수지맞는 장사’다. 내게 인생은 동점승부다. 하나를 더하고, 하나를 빼면 ‘0’이 되는 것처럼, 태어남이 있으면, 죽음이 있어 균형을 맞춘다. 살아 있는 것이 아름다운 것은 무한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일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고, 죄가 있으면 벌이 있기 마련이다. 단지 시간이 좀 걸릴 뿐이지, 언젠가는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 세상이기에 말이다. 그렇기 믿고 싶다. 그래서 나는 이 구간을 ‘낙동강 동점승부코스’라 부른다.  

 

동점승부코스에서 나는 인생을 읽는다. 태백시의 31번 국도는 왕복 4차선이지만 동점역 부근부터는 왕복 2차선으로 줄어 든다. 승부역 부근에서는 아예 외길이다. 잘 나갈 때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외길로 가는 것이 인생이다. 동점역과 승부역 사이에는 석포역이 있는데, 아연을 생산하는 영풍석포제련소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을 지날 때면 초입부터 악취가 나는데, 연한 두통을 일을 킬 정도다. 작년에 석포역 부근으로 귀촌했다는 한 아주머니는 냄새 때문에 하루 종일 향을 피우고 있을 정도다. 이곳이 동정승부 구간의 가장 큰 난코스다.  

 

 

 

그러다 석포제련소를 멀리하면 한 시간에 차량 한 대 정도 지날 정도의 한적한 길이 나온다. 낙동강 물살도 더 크고 넓어져, 여기저기서 시원한 노래가 퍼진다. 세월의 흔적만큼이나 퇴색한 철도는 주변과 동화돼, 그저 풍경이 된다. 삶이란 것이 동점승부 코스와 같지 않을 까 싶다. 석포제련소 부근과 같은 고난 또한 많은 것이 삶이기 때문에 말이다.

 

나는 걷는 걸 많이 좋아 했다. 걷고 있으면, 어제 일부터 유년의 기억까지 새롭게 떠오른다. 제 작년에는 이 땅에서 마흔 해를 버텨온 기념으로 한강, 금강, 영산강, 낙동강을 따라 ‘걸어서 마흔 여행’을 했고, 환경운동연합에서 처음 활동할 1999년에는 백두대간 1600 여 킬로를 종주했다. 대학 때는 버스를 두고 한 시간 거리를 걸어 다녔고, 좋아 하는 여자가 내 친한 친구와 사귀는 걸 알았을 때는 수원에서 안산까지 네 시간을 넘게 걸었던 적도 있었다.  

 

 

 

내가 처음 한 나절 이상 걸었을 때는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새벽 리어카 배달일 끝내 시고 거하게 약주 드신 아버지는 그날따라 주무시지 않고 작은형과 나를 택시에 태워 경기도 의정부시 망월사 계곡으로 갔다. 한 여름 계곡은 만원인데다, 술 취한 아버지가 부끄러웠던 나는 비틀거리는 아버지를 멀리서 따라가고 있었다. 

 

그러다 아버지는 갑자기 위에서 내려오는 택시를 타고 사라지셨다. 작은형과 나는 한 동안 멍한 상태였다. 돈 한 푼 없었던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여덟 시 간 넘게 걸어 집에 도착했다. 동네 어귀에는 어머니와 식구들이 나와 있었다. 어머니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아버지에게 역정을 내신다. 아직 술이 덜 깨신 아버지는 미안한 눈빛을 나와 작은형에게 보냈다. 

 

이 기억이 지난 여름 낙동강 동점승부코스를 걸으면서 들었다. 며칠 걸을 생각으로 텐트까지 짊어졌고, 때마침 내리는 강한 빗줄기를 뚫고 걷다 보니 걸을 때마다 발바닥에 통증이 강했다. 아니나 다를까 큼지막한 물집이 주렁주렁했다. 여행의 통증은 어찌 보면 내 삶의 보약이다.  

 

 

 

생각해보면 우리 아버지의 삶의 보약은 두꺼비가 새겨진 소주였다. 별명도 두꺼비. 네 남매 키우느라 흔한 여행한번 못가셨다. 술 잡수고 고된 노동과 삶의 무게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이 당신에겐 여행이었다. 동점승부코스를 걷는 동안 작년에 돌아가신 아버지 기억이 많이 난다. 억수로 쏟아지는 빗물이 눈에 들어 가서인지, 눈에서도 비가 내렸다.  

 

올 겨울, 눈 내리는 낙동강 동점승부코스를 다시 가고 싶다.  

 

(사진 제공 : 함께 사는 길 이성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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