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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3 회원모임/ 가을밥상과 한권의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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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방랑”에서 “동양기행”까지
일본을 비롯한 동양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끼쳐온
후지와라 신야의 “황야의 개”
2009년 간으로, 신간으로 구입해 두고, 읽지 않은 채 두었다가 우연히
이번 기회에 읽게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그것을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 청춘의 여행을 기록한 “인도방랑”으로부터 34년(물론 지금은 거의 37년)…오랜 세월 저자가 봉인 해온 충격의 세험이 마침내 밝혀진다!
라는 조금은 자극적인 문구가 책 후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그러나, 읽다 보면, 그것이 과장만은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저자는 현대 일본사회의 한 전환점으로서 1995년을 보고 있다.
1995년은 한신아와지 대지진이 있었고,
사회적으로는 옴진리교사건으로 일본사회에 일대 충격이 가해진 해이다.
그리고 세계문명사적으로는 윈도우가 나온 해로 본다.

이 책은 저자가 이런 일본 사회의 일대 전환을 이루는 옴진리교 사건에 대해서,
꾸준히 탐구하면서 찾아낸 새롭고 놀라운 사실들이 증언되고 있다.
또한, 그런 옴진리교와 같은 의사종교에 끌려들어가는 현대 젊은이들의 마음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한국어러도 번역이 된 듯 한데,
절판인 것 같다.
당연히 함께 원서를 읽을 사람들을 구한다.
일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특히 작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3.11대진재, 무차별 살인사건 등으로,
대변되는 현대일본과 일본인들에 대해서 이해하고 싶다면,
꼭 한번 읽어볼 것을 권한다.

아래는 책의 일부분.

세계는 환영이라는 생각이 있다.
인도의 어떤 성자가 주창한
과격한 세계관이다.
현세는 물론 내세도,
성도 속도, 선도 악도,
깨달음도 미망도,
그리고 해탈에 의한 진아의 빛도,
그것은 환영이고, 한줄기의 꿈.
지구가 다 탄 곳에서 시작되듯이,
모든 가치는 일찌기 타버린
재 위에 핀 헛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는 이렇게
편안한 것이다.
나의 마음은,
이 진아의 대붕괴의 시대에,
그 환영설에 기운다.
그리고 환영의 바다에 낚시줄을 드리우고,
여러가지의 환영들을 희롱한다.

-112-123쪽-
제재소를 나와 잠시 걷다가 문득 아버지의 그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갑자기 모든 수수깨끼가 단숨에 풀리는 듯 했다. 그 말이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즉, 천궁의 20년주기라는 것은 세대교체의 단위가 아닌가 생각했다. 이세진구라는 것은 특수한 건물이다. 그리고 거기에 사용되는 신구의 종류도 특수한 것이다. 그것을 만드는 기술은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기 전에 전해져야만 한다. 몇 백년 세워져있으면 분명 건물은 남지만 기술은 사라진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기술전승이라는 의미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수작업 속에는 반드시 마음이라는 것이 있다. 기술의 전승은 마음의 계승이기도 한 것이다. 즉, 이세진구는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파괴됨으로써, 그 형태 속에 잠긴 일본인의 마음을 계승시켜 갔던 것이 아닐까.
이것은 무엇을 나타내느냐 하면 구축이란 파괴이고, 파괴란 구축이라는 것이다.
즉 이세진구의 경우는 기술과 마음의 전승이 파괴라는 기묘한 제사를 나았다. 그러나 그 영위 속에는 다른 의미도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천궁 전에도 천궁 후에도 이세진구를 방문했는데, 분명 그 전후로 공기가 달랐다.
-중략-
그것을 보고 그 파괴행위는, 기술과 마음을 전하는 의미를 가짐과 동시에, 시간과 공간의 정화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진자라는 것은 도리이로 구분된 폐쇄공간이다. 세월과 함께 공기가 전체된다. 마치 섬나라 일본의 원형질같은 것이다. 그 일본과 일본인의 마음의 원형질인 이세진구는 과거에는 이슬람교도들의 메카와 같이 일본인의 일상 속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그 마음의 규범이 되는 상징이 일정 주기를 가지고 파괴된다. 즉 20년에 한 번은 괴멸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재생된다. 이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이 행위는 섬나라라는 폐쇄공간 속에서 살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정체되는 공기를 정화하는 하나의 의식(목욕재개의식)으로서 기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가령 그렇다면, 이 장대한 낭비는 지혜인 것이다. 그런 부의 지혜가 경제효율만에 의지해서 구축된 전후의 일본사회에는 생겨나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따라서 마음은 계속 정체된다.

[출처]藤原新也 ”黄泉の犬” 후지와라 신야 “황천의 개”|작성자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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